Dragonslayer's Class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57
357화
바닥에 꽂힌 섀턴의 검이 뽑히지 않았다.
해신의 몸에 박혀 있던 창은 아주 쉽게 뽑혔었다.
성창 역시 지크의 힘에 반응해 형태를 바꾸고 그를 주인으로 인정했다.
그런데 이 검은 지크의 손길에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뽑힐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으으음!”
지크는 아예 양손으로 검을 잡고 힘껏 뽑아 보려 했다.
하지만 검은 아서의 표현처럼 바닥에 붙어 있기라도 한 듯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지크를 유심히 보던 아서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됐다. 됐어. 그만하거라.”
아서의 말에 지크가 검에서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났다.
그가 짐짓 놀란 기색을 보이며 아서에게 물었다.
“마법이라도 걸려 있는 게 아니고서는…… 이렇게 단단하게 박혀 있을 리가 없습니다.”
아서는 지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그가 지크를 보고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드레이커의 가주들이 다음 대 후계자에게 이 검을 뽑아 보라고 시키고, 실패하는 것을 보며 기뻐하는 것은 전통 아닌 전통이지. 전대 가주가 내 실패를 보고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 시켜 보니 알겠구나.”
장난스러운 아서의 말에 지크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서가 땅에 꽂혀 있는 다른 검들에게로 시선을 돌려 그것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곳에는 역대 드레이커 가주들의 검이 모여 있는 곳이지.”
그가 팔을 뻗자 빛이 일어나며 그의 손에 검 한 자루가 쥐어졌다.
아서의 머리카락 색을 닮은 잿빛 검.
지크는 그 검이 아서 드레이커의 전용 무구인 칼리번임을 알고 있었다.
본래 드레이커 가문의 후손들은 대개 귀한 무구들이 가득한 가문의 보고에서 자신이 쓸 무기를 고르게 된다.
아벨이 들고 있던 적룡검 역시 그런 종류의 무구였다.
하지만 아서 드레이커의 칼리번은 드레이커의 보고가 아닌 그가 젊은 시절 들어갔던 던전에서 얻은 검이었다.
칼리번이 정확히 어떤 기능을 가진 무구인지는 밝혀진 바가 없었다.
아서 드레이커가 워낙 강해 검의 능력을 제대로 보일 만한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서는 칼리번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죽으면 나를 대신해 이 검이 이곳에 꽂히겠지. 여느 가주들과 마찬가지로 말이야.”
그러다가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단 한 명, 이곳에 검을 두지 못한 가주가 있다.”
그가 지크를 보며 말했다.
“테라칸 드레이커, 위대한 용살자의 검은 이곳에 들어오지 못했지.”
드레이커 중 가장 유명한 전설 속 인물이자, 오늘날 드레이커의 기반이 되는 용살법을 창안한 테라칸이 이곳에 검을 두지 못했다는 것은 무척이나 이상한 일이었다.
지크는 유적지에서 성왕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하크. 테라칸의 검이었지.’
연인이자 영혼의 반려인 바하무트의 육체를 소멸시킨 검.
그 검은 놀랍게도 사악한 기운을 품은 채 타락한 아벨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지크는 테라칸의 검인 자하크가 마왕의 힘을 품고 있던 바하무트를 소멸시키며 마기에 물들어 마검이 된 것이 아닌가 추측 중이었다.
그가 처음 발견했던 바하무트의 심장 역시 아주 강력한 저주에 오염되어 있었기에 충분히 그런 가정이 가능했다.
지크는 짐짓 모른 척을 하며 아서에게 물었다.
“왜 테라칸 드레이커의 검만 이곳에 없는 겁니까?”
그 말에 아서가 잠시 고민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크, 너에게 드레이커 가문의 비사를 말해 주마. 그 누구에게도 결코 밝혀서는 안 된다.”
지크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서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테라칸 드레이커는 절대검가로 불린 드레이커 가문의 진정한 혈족이 아니었다.”
지크는 아서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성배를 통해 테라칸의 과거를 봤던 지크였다.
가문에서 쫓겨난 것으로 보였지만, 그는 엄연히 드레이커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테라칸이 왜 드레이커 가문에서 핍박받고 쫓겨났는지 그 이유는 알지 못했다.
아서가 지크를 보며 말을 이었다.
“테라칸 드레이커는 천박한 피가 섞인 사생아였다.”
지크는 그제야 왜 드레이커에서 테라칸의 과거를 지우려 했는지를 이해함과 동시에 그들의 편협함에 비웃음을 던졌다.
‘하여간 그놈의 빌어먹을 혈통. 어쨌거나 혈통을 중요시 여기는 드레이커로서는 시조로 알려진 테라칸이 사생아였다는 걸 밝히고 싶지 않았겠지.’
속마음을 감춘 지크는 아서의 말에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테라칸의 후예인 우리는 진정한 드레이커가 아닌 겁니까?”
그 말에 아서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우리는 명백히 진정한 드레이커의 피를 이었다. 절대검가의 자랑스러운 혈통을 말이다.”
아서가 지크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다만, 세간에서는 우리를 용살자의 후예라 칭하며 테라칸 드레이커를 가문의 시조로 알고 있다. 테라칸 드레이커의 업적은 확실히 대단한 것이기는 하지만…… 천박한 사생아의 피가 드레이커를 대표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지독할 정도로 오만한 혈통주의.
그 오만함이 해방전쟁의 역사를 왜곡하고, 테라칸의 진정한 정체 역시 감춰 버린 것이었다.
아서가 지크의 눈을 마주 보며 말했다.
“지크, 내가 너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너야말로 드레이커의 비밀을 지키고 이를 유지해 갈 수 있는 자격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크는 자신에게 신뢰를 담아 말을 건네는 아서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가 지크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오늘 나에게서 들은 것은 결코 밖으로 새어 나가서는 안 되는 드레이커의 가장 중요한 기밀들이다. 지크, 나와 약속을 하자꾸나. 이 비밀은 네가 죽을 때까지 홀로 간직해야 한다. 알겠느냐.”
지크는 아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가문의 가장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선조에 얽힌 비사를 공유하는 아버지.
그는 아서의 행동을 통해 뭔가를 느꼈다.
‘칼리 누님이 아닌 나를 후계자로 삼으려 한다?’
아서의 말대로 정말 칼리나 아벨을 여기로 데려오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떠나서 아서는 진심으로 지크를 후계자로 삼으려는 듯싶었다.
잠깐 생각한 지크가 아서를 보며 말했다.
“가주님께서는 칼리 누님 대신 저를 후계자로 세우실 생각이십니까.”
그는 돌려 말하지 않고 곧장 아서에게 그의 의도를 물었다.
민감할 수 있는 후계자 문제를 직접적으로 물어본 자신의 막내아들을 향해 아서가 웃으며 오히려 질문을 던졌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구나. 지크, 칼리를 제치고 네가 후계가 될 수 있겠느냐.”
지크는 순간 주먹을 꽉 쥐었다.
아벨과 싸울 때는 사실 혈육과 싸운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았다.
어쩌면 전생에서 학살의 기사로서 아벨이 저지른 수많은 악행들을 봤었기에 그를 죽이는 데 거리낌이 없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벨과 달리, 칼리는 전생에서 딱히 인연을 맺은 적이 없었다.
가문에서 쫓겨났던 지크를 보호하지도, 그렇다고 핍박하지도 않았다.
그저 방관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번 삶에서의 칼리는 지크의 든든한 동맹이었다.
그녀를 가주로 앞세워 드레이커 가문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고 그 뒤에서 힘을 더 키운 후에 완벽하게 가문을 집어삼키는 것이 본래 그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크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칼리 누님을 앞세우는 것으로는 드레이커 가문을 제어할 수 없다.’
드레이커 가문은 여전히 많은 비밀을 감추고 있었다.
지크는 자신의 계획을 바꾸기로 했다.
그가 아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해야 한다면 그리할 것입니다.”
감정이 담기지 않은 냉혹한 목소리였다.
지크의 대답을 들은 아서가 다시 싱긋 웃었다.
“그래, 드레이커의 혈족은 결코 망설여서는 안 된다. 적이라 생각된다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밟아 놓고, 또 밟아서 완벽하게 뭉개야 한다. 그래야 뒤탈이 없는 법이지.”
아서 드레이커의 방식은 잔혹하기는 했지만 효과적이었다.
전생에서 히트맨 시절 지크의 수법은 아서 드레이커의 방식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적은 철저하게 해치우고, 그 누구보다 냉혹하게 움직였다.
이번 삶은 기사로서 새로운 방향을 정했지만, 그의 심장에는 여전히 히트맨 시절의 냉혹함이 남아 있었다.
아서가 그런 지크를 향해 말했다.
“지크, 나는 너에게 수호 기사 위를 내릴 것이다.”
그가 지크의 눈동자를 마주 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도 그 자리를 거부하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느냐.”
그의 말에 지크는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수호 기사 위를 받겠습니다. 그리고 칼리 누님의 반응을 기다리겠습니다.”
진정한 후계자 후보가 된 뒤 칼리 측의 반응을 기다리고 그에 맞는 대응을 하겠다는 지크의 대답에 아서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좋다. 칼리도 너도 모두 훌륭하게 성장한 내 자식들이다. 둘 중에 누가 어떤 선택을 하든 나는 이를 기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만약 둘이서 결전을 벌일 때가 되면…….”
아서가 지크의 어깨를 잡고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아벨을 쳤을 때처럼 하면 된다.”
지크는 순간 아서의 말에 소름이 돋았다.
‘모든 걸 다 알고 있었나.’
지크가 조인족 게토에서 아벨을 죽인 것도, 그가 흑색 기사의 경지에오른 것도 아서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벨로 인해 수호 기사위의 자리가 비었다며 그 자리를 내리겠다고 한 것은, 지크가 정당하게 승부를 겨루어 아벨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니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 주겠다는 의미였다.
지크는 어금니를 꽉 물었다.
‘아서 드레이커, 역시나 방심할 수 없다.’
그는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고 아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최선을 다해 가주님의 기대에 부응 하겠습니다.”
아서는 자신이 바라던 대로 성장한 막내아들을 보며 만족스러운 듯 웃음을 지었다.
* * *
지크는 아서와의 대화를 마치고 사계성에서 나와 아틀라스의 숙소로 돌아왔다.
아서 드레이커와의 대화는 언제나 격렬한 전투보다 더 큰 피로를 안겨 줬다.
무한 체력에 힐링 팩터, 거기에 불멸지체라는 체질까지 가진 지크였지만 쏟아지는 피로감을 견디기 어려웠다.
결국 그는 돌아가는 마차에서 눈을 감고 있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다.
그런데 순간 뭔가 낯선 느낌에 퍼뜩 정신을 자린 지크는 자신이 지금 마차가 아닌 다른 곳에서 깨어났음을 깨달았다.
‘여긴?’
주변에 시원한 향이 가득한 대나무 숲.
지크는 이야기의 은자가 머물고 있는 우로보로스 산의 영역임을 눈치챘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집 안에서 이야기의 은자가 나왔다.
“어? 아이고, 이제야 연결이 됐네.”
은자가 질린다는 표정을 지으며 지크를 바라봤다.
“너는 몸 구조가 어떻게 돼 있길래 잠도 안 자니?”
타박하는 이야기의 은자를 보며 지크가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최근에 이런저런 일들이 있어서 좀 바빴습니다.”
그 말에 이야기의 은자가 혀를 찼다.
“하여간. 아무튼 잘됐다. 너한테 할 말이 있어서 오랜만에 불렀어.”
지크의 옆에 앉은 은자가 부채를 흔들며 말했다.
“얼마 전에 우리 애들 만났다면서?”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조인족 게토에서 아드난과 보드미르를 만났습니다.”
그 말에 이야기의 은자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지크를 바라봤다.
“허, 알수록 신기한 놈이란 말이야. 보통 사람들은 하이랜더랑 잘 엮이는 일이 없는데. 여기를 직접 찾아오지를 않나…… 이 정도면 분명 네 카르마가 하이랜더 맹약을 맺는 쪽으로 유도를 한 거나 다름없는데 그건 또 싫다 그러고 참.”
지크는 은자의 말을 듣고 속으로 뜨끔했다.
본래라면 잊혀진 자들의 숲에서 나이젤과 만나 하이랜더의 맹약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번 삶에서는 하이랜더의 맹약을 거부하기 위해 일부러 최대한 나이젤 스승과의 만남을 미루고 있었다.
그럼에도 계속 하이랜더들과 엮이는 것을 보면 그의 말처럼 뭔가가 있긴 한 것 같았다.
‘은자의 말대로 하이랜더와 나는 운명적으로 뭔가가 연결되어 있는 걸까.’
지크는 잠깐 생각하다가, 이야기의 은자가 또 하이랜더의 맹약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다른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저에게 하실 말씀이 무엇입니까.”
지크의 말에 은자가 퍼뜩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아, 다른 게 아니고. 조인족 게토도 그렇기 이번 신성 왕국도 그렇고. 아무래도 뭔가가 이상해서 오랜만에 하이테이블을 총소집했어.”
하이테이블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마수들을 막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자리를 비우는 것 자체를 꺼려 했다.
그런 하이테이블들을 총 소집했다는 것은 하이테이블의 수장이 그들을 불러 모았다는 소리였다.
하이랜더의 일원이었던 지크 역시 하이랜더들을 이끄는 하이테이블의 수장이 누군지는 알지 못했다.
이야기의 은자가 지크를 보며 본론을 꺼냈다.
“우리 쪽 수장이 너 좀 보고 싶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