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the World Tree RAW novel - Chapter 178
그럼 나중에 봬요
백도와 술을 거하게 마시고. 부어라 마셔라 하며 뜨거운 밤을 지낸 다음 날.
나는 부신 눈을 비비며 침대 위에서 일어났다.
“…으음.”
피로를 느끼지 않는 몸이지만 그래도 취기를 피로 삼아 잠을 자니 나름대로 잘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는 잠이 필요할 땐 술이나 마시면 되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키니 내 어깨에 무언가 묵직한 게 딸려나왔다.
“…삐이.”
잠결의 시바.
나를 꼭 안은 것이 마치 코알라다.
시바도 눈이 부신지 나처럼 눈을 비비며 작은 입을 크게 벌리고 걱정 없이 하품을 했다.
“뺘아아아아~!”
귀여운 하품소리.
아침에 봐도 우리 딸은 귀엽다.
나는 시바를 양손으로 끌어안고 볼을 부비적대었다.
“시바 나랑 같이 잤어? 이리와 안아보자~”
“아빠 조아!”
힘없이 들린 시바가 양 팔을 벌려 내 머리통을 꽉 부여잡더니, 나랑 똑같이 볼에 자신의 볼을 부비적거렸다.
딸 키우는 맛이 정말 쏠쏠하다니까.
“삐이~”
시바와 함께 아침을 맞이하고, 서로 비비적대며 자리에서 일어나니 마침 문쪽에서 누군가 걸어와 나와 눈을 마주쳤다.
외출복으로 옷을 차려입은 천도다.
“이제 일어났느냐?”
“아 네. 오늘 바로 가시는거예요?”
“……더 있는다고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쓴웃음을 지으며 피식 웃은 천도는 고개를 돌리더니 캐리어 하나를 내 앞에 가져왔다.
그동안 이곳에 생활하며 사용했던 옷가지들만이 그 안에 들어있었다.
이외의 생필품은 딱히 필요하지 않은 걸까.
천도를 바라보니 걱정말라는 듯이 내 앞에 다가와 이마에 손을 얹었다.
그대로 머리카락을 옆으로 쓸어 내린다.
“음…. 이제 못 볼 제자의 얼굴이로구나.”
“아니 시발. 그 말만은 하지 마세요.”
“왜그러냐? 한동안 못 볼 얼굴은 맞는데.”
“그건 아는데 좀 불안합니다. 스승님 오래오래사셔야죠. 좆되는 주문은 하지 마십쇼.”
“……그러느냐?”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인 천도는 짐짝을 들고 다시 문쪽으로 다가갔다.
“그래서 공항으로 갈 건데, 따라 올 것이냐.”
“당연히 가야죠. 제 스승님 가는데. 그런데 마법 안쓰고 공항으로 가게요?”
“…가끔은 느긋한 것도 좋지 않으냐.”
“하긴.”
마법만 사용하면서 게임마냥 확확 이동하면 편하긴 하지만, 탈것에 타서 주위 풍경을 구경하며 딴짓을 하는 맛은 알지 못한다.
그리고 사실 좌표를 알지 못하는 지역은 굳이 계산을 하는 것보단 직접 찾아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좌표를 외우는 것도 일이고.
열 개 이상은 한 번에 못외운다고 해도 좋으니 말이다.
‘나도 지금 도원 좌표는 잊어버린지 오래지.’
매일 밤 복습하지 않으면 잊어버리는 좌표. 지금은 유치원이랑 아카데미의 좌표만 하나씩 외워두고 있다.
순식간에 몇십 곳을 외워대는 황도가 천외천이다.
“황도누님은요?”
“깨어있다. 부르면 되느냐?”
“아뇨… 스승님이 지금 나와있는 이유가 따로 있겠죠. 갑시다. 제가 씻고 나와서 운전할게요. 비행기표는 몇시에요?”
“10시 30분이다.”
지금이 9시니까 널널하네.
기숙사랑 공항까지 거리가 그리 멀지도 않다. 차로 타면 금방이다.
나는 시바를 어깨에 태우고 시바의 이마가 부딪히지 않게 조심해서 방을 나오며 천도에게 물었다.
“아침은 드셨어요?”
“…나가서 대충 때울 생각이다.”
“음, 토스트라도 만들어 드릴테니 드실래요? 제자 음식 이제 못 먹는데.”
“그것도 좋겠구나.”
내 제안이 마음에 든다는 듯 천도는 싱긋 예쁜 얼굴로 미소를 지어왔다.
그 어여쁘고 감정 표현이 드문 얼굴에 드러난 미소는, 역시 지금 봐도 여전히 가장 뇌리에 박히는 얼굴이었다.
나는 시바를 한 손에 들어 올리고 세면대에서 물을 틀어 세수를 시작했다.
“시바 숨 참아.”
“삑!”
-에푸에푸.
한 손으로 물을 받아서 얼굴에 착착 물을 뿌린다.
눈곱도 떼주고 볼이랑 목도 닦고, 손을 모아서 시바의 코에 가져다대었다.
“코 흥. 귀 먹먹할 정도로 세게 풀진 말고.”
“쁘으응!”
“반대쪽.”
“쁘으!”
콧물 정리. 내가 어릴 땐 알아서 했는데. 시바를 키우다 보니 은근히 내가 하게 된다.
세수를 끝내고 나도 적당히 세안을 마친 뒤,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대충 말리고 주방에 섰다.
지금 시간에 진수성찬을 차릴 순 없으니 식빵 몇 장을 꺼내 팬에 마가린을 두르고 음식을 시작한다.
계란 프라이에 햄 몇 장.
그리고 딸기잼.
듬성듬성 잼을 발라서 종이에 싼 뒤 가장 먼저 천도에게 내미니 천도는 식탁에 앉아 그것을 받아 입 안에 넣었다.
“……맛있구나.”
딸기잼을 진짜 과도할 정도로 많이 넣어서 초딩입맛인 스승님에게는 딱이다.
채소도 하나 없으니 얼마나 맛있겠어.
“황도 누님이랑 백도것도 만들어뒀으니까 저기 종이에 싸서 포장해서 가져가요.”
“알겠다.”
그리 말한 나는 이번에는 토스트에 양상추를 몇 개 섞어 시바의 손에 쥐여주었다.
“삐.”
토스트를 잡아든 시바의 어딘가 불만이 있어보이는 표정,
나는 왜 이래요. 하는 얼굴이 딱 봐도 보인다.
“안 돼. 너는 채소 먹어야지.”
“…삥.”
단호한 대답에 시바는 기분이 상했는지 나를 향해 메롱 혓바닥을 내민다.
내 딸이 이젠 나한테 혀까지 내미네?
기분 나쁘지는 않고 점점 표현할 수 있는 동작이 많아진다는 거에 오히려 감동마저 일었다.
‘많이 컸네.’
그래도 채소는 먹어야 키가 크지.
내 유전자는 몰라도 순결의 세계수의 유전자가 어떨지 모르니까, 모델같은 비율을 가지려면 지금부터라도 관리를 해야한다.
나는 내 몫의 토스트를 만들기 전에 시바의 옆에 앉아 먼저 토스트를 먹였다.
“아~ 비행기 날아간다~”
대충 토스트를 날리면서 시바의 입에 쏙.
아앙, 작은 입을 벌린 시바의 입에 토스트가 한 입 가득 들어간다.
-오물오물.
썩 맛이 나쁘지는 않은지 입가를 씰룩이는 시바.
내 옷을 잡아당기며 꼴딱 삼키더니 바로 다음 입을 보챈다.
그렇게 시바의 식사를 돕고 있으니, 나를 빤히 바라보던 천도가 절반쯤 먹어치운 토스트를 쥐곤 후후 웃었다.
“정말… 보기 좋은 부녀구나.”
“그래 보여요?”
“응. 언제 봐도 그렇게 느낀다….”
흐뭇하게 웃는 천도. 이번에도 자연스러운 웃음이었다.
천도의 입장에서 사이가 좋은 부녀는 정말 아주 오랜 과거에 있었던 일일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가 쌀쌀맞게 변했다고 하니까. 적어도 천도가 아버지와 친했던 때는 유아시절이겠지.
그런 천도의 배경을 아는 입장으로선 그 웃음이 약간 씁쓸하게 느껴지는 감도 있었다.
“…아. 지금 먹이고 있으니 네 토스트는 내가 만들어도 되느냐?”
“어? 네. 그래도 돼요.”
먹던 토스트를 한 입에 집어넣은 천도는 자신있게 자리에서 일어나 내 몫의 토스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과연 얼마나 잘 만드는지 볼까.
생각해보니 천도는 그다지 요리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때 먹었던 주먹밥도… 되게 짰지.’
소금 조절이나 그런 걸 못하는 편.
그래서 그때 먹었던 음식도 사실상 천도의 얼굴을 보면서 먹은 것이나 다름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천도는 첫 동작부터 되게 어설펐다.
마가린을 통째로 들어 후라이팬에 문대는데 힘조절을 못해서 그대로 쫙 기름이 과하게 흘러나왔다.
식빵은 꾹꾹. 성의는 있지만 손이 팬에 닿는 것도 모르고 있다.
‘어….’
전투 요리?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벌써 손은 몇 번은 데었을 거다.
“…토스트 만드는 거 맞죠?”
“뭐가 이상하느냐?”
“아뇨. 음.”
황도의 요리는 적어도 구색은 잘 갖추고 만들기라도 잘하지.
스승님은…. 앞으로 내가 먹여 살려야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
“완성이다.”
천도는 기어코 토스트를 완성해 나에게 들고 왔고. 나는 토스트를 쥐어 그것을 눈앞에 가져왔다.
‘일단… 심하게 탄 곳은 없고.’
거무죽죽하지만 오래 익혔다고 둘러대면 어찌저찌 변명이 될 수준.
나는 시바에게 남은 토스트를 쥐여주고 천도의 토스트를 한 입 꽉 깨물었다.
달달한 딸기잼이 토스트 안에서 팍 튀어나왔다.
미간을 찌푸릴 정도의 달달함!
깜짝 놀라 토스트를 씹으며 천도를 바라보니,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내 안색을 날카롭게 살펴보고 있었다.
“어떠느냐?”
과거를 보고 오니 왜… 그때 그 어린 천도같지.
아니다.
요리를 할 때만 천진난만하게 변한다고 해야할 성 싶다.
나는 씁쓸하게 토스트를 삼켰다. 딸기잼이 목과 코와 입을 한 번에 범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많이 달달하네요.”
“달면 맛있지.”
그래 토스트가 달아도 뭐 이상할 건 없지 않는가.
인가 샌드위치라던가. 편의점에서도 그런 걸 파니까.
나는 토스트를 마저 한 입 깨물었다.
“…음.”
“하나 더 먹고 싶느냐?”
“아뇨. 어제 술을 많이 마셔서 괜찮아요.”
…이 사람은 내가 보듬어야 한다고.
이번만큼은 눈이 퇴화되었는지, 내가 맛있게 먹고 있다고 착각한 천도를 보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
천도와 아침을 대충 해결하고 나온 공항.
그녀의 차를 운전하며 공항에 모시니, 놀랍게도 그 보상으로 들어온 것은 천도의 나름 값이 있는 자동차였다.
“키다. 이걸 쓰도록.”
“…정말 필요 없어요?”
“굳이 자동차를 쓸 필요가 없고… 기분이니 말이다.”
“하긴, 스승님이면 그냥 걷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르겠네요.”
자신의 짐을 맡기고 의자에 앉아 출발할 시간을 기다린다.
이 이후로 대화를 많이 못한다고 생각하니 내 입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잔뜩 튀어나왔다.
“굳이 위험한 일은 맡아서 하지 마세요.”
“…그걸 제자인 네가 해야할 말이느냐? 내가 할 말이다.”
“그런가?”
“수련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잘 생각하고 행동해라.”
“…그 말 그대로 돌려드릴게요.”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보내주는 거다.
아니 보내준다고 표현하는 게 맞나?
그냥… 이 사람들이 내 눈 밖에 난다는 게. 어딘가 불안해진다.
그때 보았던 광경이 가끔씩 떠오르고 잠을 잘 때마다 악몽을 꾸는 건 솔직히 정상인이 겪을만한 일은 아니지 않는가.
‘그나마 술 마시고 옆에 내 딸 끼고 자니까 악몽은 안 꾸는데.’
어쨌든 천도가 나중에 위험한 상황에 처한다는 건 정말이다.
나는 스승으로서 조언을 하고 있는 천도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무튼 밥도 잘 차려 먹고. 정말 위험한 적이 있다면 도망치는 걸 부끄러워하지 말아라. 누군가를 지키려할 때는 강단있게 하고. 그 점에 대해서는 너에게… 듣고 있나?”
이목구비 구분히 뚜렷하고 인형같이 생긴, 웃을 땐 천사같고 평소엔 무서운 얼굴.
양면이 너무 달라서 나조차도 가끔 의문을 품을 때가 있지만 그래도 예쁘다는 사실만큼은 변치 않는다.
그래서 그런가.
-…사형~!
그 얼굴을 보다보니 문득 어린 천도가 생각이나서.
나는 무심코 손을 뻗어 천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키 차이가 나름 나다 보니, 천도의 표정 변화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아 실수.”
“…뭘하는 것이냐?”
“아뇨 그냥 어쩌다보니….”
쓰담쓰담.
천도는 무표정한 얼굴에, 흔들리는 눈동자로 아주 작은 당황의 감정을 표하고 있었다.
그래도 손을 떼라고 소리를 치지는 않는다.
보들보들한 머리를 쓰다듬자 옆에서 시바가 내 옷을 잡아당겼다.
“삐, 삐!”
너도?
남은 손으로 쓰다듬자 갸르릉 소리를 낸다.
“…….”
“은근 머리 부드럽네요.”
“시끄럽다.”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슬그머니 내게서 머리를 내뺀 천도는 손으로 자신의 정수리를 문지르며 고개를 몇 번이나 갸웃였다.
그녀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나는 모른다.
마침 들어오기 시작한 비행기.
“…아무튼. 내 말 다 알아들었겠지?”
천도는 나를 한 번 다그치곤, 몸을 바꾸어 황도와 백도. 차례대로 나와 한 마디씩 이야기를 나눈 뒤 비행기에 올라 탔다.
“그럼 나중에 봬요.”
“응.”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머지 않은 때에 만날 수 있으리라.
나는 떠나가는 천도의 뒷모습을 보며 시바의 손을 올려 살랑살랑 흔들어 주었다.
-피식.
뒤를 돌아본 천도가 손을 흔드는 시바와 그 손을 잡고 같이 흔드는 나를 보더니 또 한 번 웃었다.
한 번 보기도 어려운 미소를 두 번이나 보다니. 오늘은 대길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