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06)
106화
제갈 세가주의 창백한 입술이 매끄럽게 올라가며 천천히 눈을 떴다.
“하하. 부녀의 사이가 도탑네요.”
제갈 세가주가 몸을 일으키려는 것을 아버지가 도와주었다.
“감사합니다.”
가느다란 흰 머리칼이 야윈 뺨 위로 흘러내렸다.
눈을 뜬 제갈 세가주는 아주 독특한 느김의 소년이었다. 그늘진 눈매에는 신경질이 어려 있었고 옅은 청회색 눈동자에는 조소 어린 체념의 빛도 엿보였다. 이게 아이에게서 나올 수 있는 얼굴인가 싶을 정도였다.
제갈 세가주가 희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언제 눈을 떠야할지 고민했답니다.”
그때 마차 문이 열리고 막추가 사발이 놓인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순식간에 마차 안이 탕약 향으로 가득해졌다.
막추는 일어난 제갈 세가주를 향해 황급히 다가왔다.
“도련님! 정신을 차리셨군요!”
도련님이라니. 막추는 제갈 세가주를 어릴 적부터 돌본 모양이었다.
막추의 도움을 받으며 제갈 세가주가 탕약을 무려 세 그르이나 마셨다.
‘윽, 눈 뜨자마자 탕약이라니. 심지어 저걸 한 번에 다 먹는다고? 내 속이 느글느글 해.’
제갈 세가주는 불만 한 점 없이 모두 단번에 마셨다. 그리고 따뜻한 차 한 모금을 마시며 입가심했다.
문득 고개를 들자 아버지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셨다.
“왜요?”
“뭔가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느냐?”
“뭘요?”
나는 바보인 척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바보다.’
아버지가 내 콧등을 손가락으로 툭 건드렸다.
“알아들었으면서 모르는 척하지마라.”
막추는 이 계절에 제갈 세가주 어깨에 두꺼운 모피 외투를 걸치고 화로에서 달궈 둔 따뜻한 돌까지 품에 넣어 준 후 조심스레 마차를 나갔다.
제갈 세가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폐를 끼쳤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인사드리지요. 제갈 세가의 제갈화무입니다.”
콜록,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밭은 기침을 한 제갈 세가주가 말을 이었다.
“이런 몸이지만 제갈 세가주이기도 하지요.”
나와 아버지가 자기소개를 끝내고 아버지가 곧장 용건을 꺼냈다.
“제갈 세가주가 왜 여기에 쓰러져 계셨던 겁니까?”
제대로 무공을 익힌 호위 한 명만 있었더라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제갈 세가주는 별것 아니라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동행했던 의원은 갑자기 어머니 몸이 나빠지시면서 그 의원을 부르셔서 돌아갔고요.”
제갈 세가주가 숨이 찬지 잠시 말을 멈추고 찻물을 들이켰다.
“호위는······ 하하, 그러게요. 이 쓰레기들이 갑자기 다 어디 갔나?”
아버지가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별로 안 믿기시겠지요.”
제갈 세가주의 말은······ 제갈 세가의 대부인이 그대를 모살하려 했단 말이오?”
제갈 세가주는 받침대에 팔을 기대고 턱을 괸 채 씩 웃었다.
“모든 어미가 자식을 사랑해야 한다는 법이 있습니까?”
막추가 도와 달라 하면서도 차마 말하지 못한 이유가 살짝 이해됐다.
대체 친어머니가 자식을 죽이려한 것이었다는 말을 어떻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제갈 세가주의 가볍고 노래하는 듯한 어조에서는 이런 무거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아버지도 가문을 위해 이 병든 핏줄을 이으셨고, 어머니도 필요 때문에 아이를 낳았을 뿐이죠.”
본인의 양친을 향한 냉소가 대단했다.
“제가 죽으면 제갈 세가는 사라지고 모든 것이 어머니 손에 들어갈 텐데요.”
“······ .”
나와 아버지는 침묵했다.
‘목숨 한번 구해 줬다가, 남의 집 가정사를 듣다니. 그것도 매우 찝찝한······.’
제갈 세가주가 말을 이었다.
“목숨을 구해 주신 은혜를 언젠가 꼭 갚겠습니다. 제가 계속 살아 있다면요. 하하하하.”
“······ .”
“······ .”
* * *
제갈 세가주도 정신을 차렸으니 계속 길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우리와 제갈 세가주는 함께 출발했다. 나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척하며 계속 아버지를 살폈다. 하지만 정말 아무 이상이 없으셨다.
‘음······. 내가 정말 잘못 본 건가?’
두 시진 후, 하늘에 붉은 석양이 타들어 갈 때 객잔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만약 아버지의 계획대로 객잔까지 가서 제갈 세가주를 치료하려 했다면····· 으음, 과연 살아있을 수 있었을까?’
나는 객잔 1층에서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갔다.
방에 들어가기 전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방에 들어가서는 곧장 침상으로 걸어가 이불을 들췄다.
“너 왜 여기 있어? 네 주인은 어쩌고?”
이불에 구겨져 있던 고양이가 귀를 쫑긋 세우며 꼬리를 살랑거렸다.
나는 고양이의 앞발 안쪽을 잡고 들었다.
‘이 감촉, 이 무게, 이 눈동자.’
그때 그 고양이가 확실했다.
원래는 마차에서 고양이에 관해서 물어보려 했었다.
그런데 대뜸 들은 제갈 세가의 가정사와 아버지의 몸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잊어버렸다.
나는 고양이를 다시 내려놓고 엉덩이를 탁탁 쳤다.
“앞서 봐. 네 주인한테 가자.”
이 고양이가 진짜 평범한 고양이면 알아들을 리가 없고······.
고양이가 침상에서 뛰어내리더니 걸어갔다.
내가 따라가지 않고 지켜보자 나를 돌아본 고양이가 냐앙-하고 울었다.
‘역시.’
헛웃음을 지으며 고양이를 따라 발을 옮겼다.
객잔 복도와 계단을 지나가며 신기하게도 한 사람도 마주치지 않았다.
곧이어 고양이는 살짝 열려 있는 방문 앞에 잠시 멈추었다.
문틈 사이로 콧노래가 들렸다.
나는 금안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냈다. 오늘 오는 내내 아버지를 살피느라 무리하였는지 머리가 조금 띵한 느낌이 들었다.
방 안에는 제갈 세가주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문을 열자 고양이가 먼저 안으로 쏙 들어갔다.
제갈 세가주가 탁자 근처에서 다기를 든 채 나를 돌아보았다.
“왔어, 연아?”
“······?”
“이리 와서 앉아.”
생글생글 웃는 낯을 보며 내 머릿속엔 물음표가 가득했다.
이 뜬금없는 언행은······ 뭐지?
내가 언제부터 제갈 세가주랑 친우가 된 거지?
먼저 들어간 고양이가 사뿐사뿐 걸아가 탁자 위로 올라갔다.
일단······ 나도 고양이를 따라 의자에 앉았다.
어린 소년이지만 한 가문의 가주이기도 하니, 당혹스러운 마음을 뒤로 미루며 정중하게 예를 차렸다.
“제갈 세가주님, 어째서 제 이름을 부르시는 건가요?”
“너도 불러.”
“······.”
이건······ 이건 애가 남궁류청한테 했던 말 같은데. 그런 말을 한 벌을 받는 건가······?
내 앞에 마주 앉은 제갈 세가주가 탁자 위의 접선을 집어 들며 말했다.
“나는 사실 연이 널 만나러 왔어.”
내가······ 남궁류청을 정말 짜증나게 만들었던 것 같았다.
나는 먼 곳에 있는 남궁류청을 그리워하며 듣지 못할 그를 향해 심심한 사과의 말을 했다. 그리고 제갈 세가주를 향해 말했다.
“그래. 그래서 날 왜 보고 싶었던 건데, 제갈화무 씨?”
“화무 씨?”
눈을 깜빡이던 제갈 화무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아저씨 같고 좋네. 나는 평생 아저씨는 못 될 테니, 네가 불러주는 걸 즐겨야겠다.”
“······.”
처음 눈떴을 때부터 느꼈는데, 이 자식······ 네대로 미친놈이었다.
나는 인상을 찡그리고 물었다.
“너, 몇 살이야?”
“얼마 전에 생일이 지났으니, 열하나.”
“······.”
나는 머리를 짚었다.
‘열한 살의 언행이 저렇다고?’
대대로 머리가 좋다는 제갈 세가 사람들이니까 이해하자.
심지어 그들의 가전 무고은 육체의 능력에 오롯이 집중하는 다른 가문들의 무공과 달리 지능도 향상했다.
세간에서는 제갈 세가가 너무 지략을 추구하다 머리가 하얘진 것이라 떠들곤 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아닌 걸 알았다.
제갈 세가의 하얀 머리와 회색빛의 눈동자. 직계들이 모두 요절한 이유. 그건······ 모두 다 천마신교의 수작이었다.
제갈 세가는 백도 정파인들을 규합해 무림맹을 세운 가문이었다. 그리고 대대로 무림맹의 군사로 천마신교를 견제했다.
천마신교 입장에서는 그런 제갈세가가 얼마나 거슬렸겠는가?
그리하여 그들은 오랜 기간을 두고 제갈 세가에 침투해 그들을 몰락시킬 계획을 세웠다.
제갈화무의 절맥증은 세계 일통에 방해되는 제갈 세가를 몰락시키기 위해 천마신교에서 아주, 아주 오랜 세월 준비한 덫이었다.
이 진실은 후일 남궁류청이 알아낸다. 하지만 그땐 이미 제갈 세가의 피를 이었다고 할 만한 사람은 아무도 남지 않았을 때였다.
내가 금안의 능력으로 제갈 세가주를 살려야겠다 마음 먹은 이유 중 하나였다. 대체 천마신교에서 제갈 세가를 왜 이렇게 짓밟았는지 안다면 그들의 약점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아버지는······ 그냥 도와준 걸로 아시지만······.’
나는 금안으로 계속 제갈 세가주를 살피며 말했다.
“그런데 이렇게 움직여도 되는건가요?”
“왜 다시 존대야? 반말해도 돼.”
“아, 가까워지기 싫어서 그런거예요.”
“음?”
제갈화무가 살짝 놀라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그래, 그래. 마음대로 하렴. 뭐, 일단 네 질문에 답하자면 그럼,움직여도 돼. 이렇게 몸이 개운한 것이 얼마 만인지. 고마워.”
“감사 인사는 제가 아니라 아버지께 하세요.”
제갈화무가 빙그레 웃으며 은근하게 말했다.
“연아, 내가 말했잖아. 나는 널 보러 온 거라고.”
“······.”
“나는 네가 무슨 능력을 가졌는지 알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의심이 싹텄다. 아니 이미 의심이라기보단 확신에 가까웠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제갈화무의 접선이 내 얼굴을 찌를 듯 공격해 들어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접선을 막아냈다.
천산염제에게서 이마를 계속 맞으며 수련한 결과가 여기서 나타났다.
자연지기를 끌어모은 손날에 닿는 공력이 상당했다.
“지금 뭐 하는······!”
그때 탁자의 고양이가 갑자기 달려들었다. 하지만 나에게 달려든 것이 아니라 그대로 내 어깨를 넘어······.
갑자기 흐릿하던 눈앞이 환해졌다.
“······!”
바닥에 사뿐히 착지한 고양이 입에 내 눈가리개가 물려 있었다. 따로 면경을 찾지 않아도, 내 눈동자가 금색으로 빛날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제갈화무를 노려봤다.
제갈화무가 접선을 거두며 방긋 웃었다.
“눈이 아주 예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