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05)
105화
* * *
아버지가 천재라 다행이었다.
아버지는 모든 책을 읽어 보셨고 어디에 넣어 뒀는지도 기억하고 계셨다.
아버지가 알려 준 위치의 짐을 뒤지자 바로 절맥에 관한 서적이 나왔다.
절맥증. 진기를 순환하는 8개의 경맥이 좁아지다 막혀서 요절하는 병이었다. 진기와 관련한 병이고, 단전 폐인이 된 나와는 정반대의 증상을 지녔다.
그래서 내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꽤 열심히 읽었었다.
아버지도 아마그러실 것이다.
내가 필요한 부분을 다시 복습하는 사이, 아버지는 제갈 세가주가 있는 커다란 마차를 다른 사람들이 통행할 수 있도록 조금 넓은 공간으로 이동시켰다.
이 모든 일에 2각(30분)정도 소요되었다.
나는 마차 안에서 어린 낯의 제갈 세가주를 보고 고뇌했다.
‘이거 통증이 꽤 될 것 같은데······
얘가 버틸 수 있으려나?’
살펴보니 경맥이 좁아도 너무 좁아서 진기를 돌리면 상당히 아플 것 같았다.
나는 막추를 향해 물었다.
“저······ 이거 그냥 해도 되나요?
고통이 꽤 심할 것 같은데, 진통제 없나요?”
내가 하기로 한 후 내내 걱정스러워 하던 막추는 살짝 감탄한 낯으로 나를 보았다.
“역시 백리 대협의 따님이군요. 예, 맞습니다. 통증이 상당할 테지만······ 그냥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째서요?”
“가주님은 이미 진통제 대부분에 내성이 있습니다.”
나는 놀란 눈으로 제갈 세가주의 어린 낯을 보았다.
막추가 말을 이었다.
“가주님께 통할 정도로 진통 향을 피워놓게 되면 소저가 정신을 잃을 수 있습니다.”
“아······ .”
그때 갑자기 소리 없이 흰 고양이가 내 바로 옆으로 다가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금색 눈동자가 마치 내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미양.”
고양이가 머리를 내 팔에 문질렀다.
고양이는 귀엽지만, 저 고양이는 찝찝했다.
나는 고양이를 떨어트리기 위해 슬슬 밀어냈지만, 고양이는 꿈쩍도 안했다.
“저리 가. 방해야.”
“냥.”
그때 주변을 살핀 아버지가 마차에 다시 들어왔다.
“아버지, 이제······ 어?”
아버지를 돌아보던 나는 멈칫했다.
아버지에게서 느껴지는 내공의 흐름이 뭔가 부자연스러웠다.
어디가 어떻게 다르다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었다.
왜 맨날 똑같은 걸 보다가 어딘가 약간 달라졌다고 느끼는데 확실하게 어딘지는 알 수 없는······ 그런 미묘한 차이였다.
내가 아버지의 내공 흐름에 정신이 팔린 사이, 아버지는 양반 다리를 하고 언제든지 검을 뽑을 수 있게 검집째 허벅지 위에 올려 놓았다.
“연아, 준비는 다 했느냐?”
“······ .”
“연아.”
“······ .”
“백리연!”
나는 화들짝 놀라 답했다.
“아! 네. 부르셨어요?”
“그래. 어디에 정신이 팔린 것이야?
어서 시작하거라.”
그 말에도 나는 연신 제갈 세가주가 아닌 아버지를 힐끗거렸다.
“연아, 집중해야지.”
“소저, 어서 부탁드립니다.”
막추가 나를 절박하게 바라봤다.
막추의 그런 모습에도 나는 아버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버지가 엄한 목소리로 나를 나무랐다.
“백리연, 목숨이 걸린 일이다.
이제 와 안 하겠다는 것이냐?”
아버지의 매서운 눈빛을 보고 나는 어깨를 움츠렸다.
“아, 아뇨. 아니에요. 그게 아니리······.”
정말 오랜만에 보는 눈초리라 면역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입술을 깨문 채 제갈 세가주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래. 정신 차리자.’
나는 숨을 깊에 들이 내쉬었다.
아버지가 내가 하겠다는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 주신 건, 내 능력이 절맥증 환자를 운기시키는데 상당히 적합하기 때문이다.
소량이지만 치유력이 있는 자연지기를 불어넣어 체력 소모를 줄일 수 있다. 그리고 주변의 지기를 조종하는 능력으로 다른 사람의 내공, 즉 제갈 세가주의 단전의 내공을 움직일 수 있었다.
아버지의 내공으로 강제로 제갈 세가주의 운기를 이끄는 것보다 훨씬 몸에 부담이 적었다.
나는 누워 있는 제갈 세가주의 하단전에 손을 올려놓았다.
‘절맥증인데 이 정도의 내공을 지니고 있다니.’
제갈 세가의 저력인지 살기 위한 몸부림인지는 알 수 없었다.
저 내공으로 운기하면서 경맥이 좁아지고 막히는 것을 막아 왔을 것이다.
나는 자연지기를 조금씩 불어 넣었다.
조금 지나자 제갈 세가주의 숨이 미약하게나마 편안해 졌다.
이쯤 하면 됐다 싶은 나는 제갈 세가주 단전에 모여 있는 내공을 움직이려 했다. 그러자 자연지기를 조종하는 것보다 훨씬 큰 저항력이 느껴졌다.
‘주인 죽이기 싫으면 좋은 말로 할때 움직여라. 주인 죽으면 너희들도 다 사라지는 거야. 어?’
나는 내공을 열심히 갈구고 협박했다.
과연 먹혔는지 제갈 세가주의 내공이 자연기지와 어우러지며 조금씩 내 인도를 따라 비좁은 경맥으로 향했다.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일주천, 몸 안에서 내공을 한 바퀴 겨우 돌리고 손을 뗐다.
어느새 등허리가 땀으로 푹 젖어 있었다.
“끝났어요.”
나는 제갈 세가주의 낯빛을 살폈다.
제대로 진기가 순환하기 시작해서인지 시체같이 파리하던 입술도 조금은 사람 같아졌다.
그 정도만 확인하고 곧장 아버지를 돌아봤다.
‘뭐야?’
그런데 꿈이라도 꾼 듯이 아버지의 내공 흐름은 문제 없었다.
눈을 부릅뜨고 살펴봐도 그랬다.
“뭔데!”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아버지와 막추가 깜짝 놀라 나를 바라봤다. 나도 깜짝 놀라 한 손으로 입을 막았다.
아버지가 고개를 젓더니 제갈 세가주의 손목을 짚어 기맥을 살폈다.
나는 그사이 아버지를 샅샅이 살폈다.
금안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려 머리끝부터 발끝의 세맥까지 샅샅이 살폈다.
예전에 아버지가 불쾌해하셨던 건 이미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렇게 한참을 살펴보았는데······ 정말로, 정말로 아무런 이상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제야 온몸의 긴장이 탁 풀렸다.
아버지는 제갈 세가주를 살피는 것을 끝내고 내 행동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께 제갈 세가주를 제대로 치료했다고 확언을 받은 막추는 내게 연신 고개를 숙였다.
“소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주름진 눈가를 손등으로 닦아 냈다.
“그, 그럼 저는 가주님이 깨어나시면 드릴 약을 준비하고 오겠습니다. 잠시만 자리를 지켜 주십시오.”
막추가 나가기 전 아버지가 말했다.
“치료 전에도 말했지만, 이는 연이가 아니라 내가 한 것으로 알리십시오.”
“물론입니다. 절대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막추가 마차를 나가고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연아, 아비의 몸은 다살펴 보았느냐?”
“네······.”
살펴보는 것을 불쾌해하셨는데 혼나겠지?
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어깨를 움츠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저 내 머리에 손을 툭 올릴 뿐이었다.
“어떻더냐?”
“네?”
“네가 보기엔 어떠냐는 말이다.”
나는 당황하여 눈을 깜빡이다가 말했다.
“어······ 아무런······ 이상도 없으세요.”
건강 그 자체였다.
내공과 흐름 모두 안정적이다.
온몸을 도는 진기도 활력이 넘쳤다.
정말로 내가 잠깐 헛것을 본 것만 같았다.
“그래. 겁먹지 말거라. 몰래 보지만 않으면 된다.”
“네.”
대답하며 생각했다.
‘다음에는 몰래 봐야지.’
그래도 불안해서 물었다.
“아버지, 혹시 어디 몸이 편찮으시거나 그러신 데 있어요?”
“걱정 말거라.”
아버지의 대답을 듣고도 전혀 안심되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거슬리는 오묘한 기분. 하지만 잡히는 것도 없었다.
‘분명······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무슨 병이 있다는 말은 없으셨는데.’
아버지의 팔을 붙들고 말했다.
“아버지, 제 곁에서 오래오래 건강하셔야 해요.”
아버지가 희미하게 웃었다.
“진인사 대천명, 하늘이 우리를 보우하신다면 오래 함께 할 수 있겠지.”
아버지! 무슨 소리세요? 내가 듣고 싶은 대답은 그게 아니야!
아버지가 내 하얗게 질린 낯을 향해 말했다.
“그보다 네가 걱정해야 할 것은 다른 것 아니냐?”
“네?”
“네 능력말이다. 언제는 세상에 알리고 싶지 않다지 않았느냐?”
“아······.”
나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 말했다.
“그런데 어차피 아버지가 하신걸로 말을 맞추기로 했으니 상관없지 않을까요?”
아버지가 진지한 낯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네가 정녕 그 능력을 숨기고 싶었다면 이 일에 나서서는 안 됐다.”
“네?”
“네가 그 능력을 쓸 때마다 흔적이 남고, 누군가는 의심할 거란다. 영원한 비밀은 없단다.”
“······.”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괜히 나선 건가? 하지만······ 아버지도 반대하지 않으셨는데. 갑자기 왜 이런 말을 하시는 거지?
거기다 왠지 서러운 기분이 들었다.
나는 열심히 해서 다른 사람 목숨을 구해 줬는데 혼나고 있다니.
그럼 도와주지 말았어야 한단 말인가? 이럴 거면 차라리······ 라는 생각마저 들 때였다.
“하지만 연아, 그렇게 살고 싶으냐?”
네?”
“모른 척하고, 눈을 돌리고,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나서지 않는다면. 그러면 네가 원하는 대로 숨길 수 있을 거다.”
“······.”
“그러지 못한다면 마음 가는 대로 하거라.”
아버지는 환한 웃음을 지었다.
“나는 네가 아무 계산 없이 사람을 살리겠다 나선것이 정말로 뿌듯하단다.”
나를 바라보는 온화한 별이 내리는 애정 어린 칭찬.
잠깐이나마 들었던 서러움은 모조리 날아가고 나는 아버지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은은하게 바라보던 아버지가 손을 들어 살짝 내 턱을 밀어 올렸다. 그러자 멍하니 벌어져 있던 입이 합 다물렸다.
아버지가 작게 웃다 갑자기 정색했다.
‘응?’
아버지가 누워 있는 하얀 소년을 보며 말했다.
“제갈 세가주, 정신이 드셨으면 눈을 뜨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