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정말, 정말이에요? 아버지가 어디가 편찮으신 거예요?”
“무슨 소린지 모르겠구나.”
“할아버지!”
나는 다급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제가, 제 능력으로 기의 흐름을 볼 수 있다 했잖아요. 그런데 아버지를 볼 때 이상했던 적이 있어요.”
할아버지가 머리를 짚었다.
“하아. 의강 그 녀석도 하필······.”
할아버지는 날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걸 말해 줘야 하나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할아버지 무르팍을 잡고 무릎을 꿇었다.
“알려 주세요. 아버지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 거예요?”
“······하아.”
할아버지가 또 깊은 숨을 내쉬며 내 팔뚝을 잡았다.
“일어나거라.”
“할아버지! 제발요.”
“네가 알아서 좋을 것 없느니라.”
“하지만, 할아버지 이미 알았는데 어떻게 여기서 그냥 넘어가요!”
버티는 나를 할아버지가 손쉽게 일으켰다.
“돌아가거라.”
할아버지의 굳은 표정에서 알려줄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
어떻게 울어보기라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같은 말을 두 번 반복하는 것을 싫어했다. 누구도 예외는 없었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
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제가 얻은 능력, 이걸로 아버지를 도울 수도 , 그럴 수도 있잖아요.”
“······.”
그 말이 할아버지를 설득했다.
몇 번이고 수염을 쓰다듬으며 침묵하던 할아버지가 느리게 입을 열었다.
“네 아버지의 병은 나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 생전 처음 보는 증상이니라. 정확히 무슨 병인지조차 밝히지 못했다.”
“병이라고요?”
아버지가 병이 있었다고?
할아버지가 착잡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능력으로 봤댔지. 그래. 네가 본 대로다. 의강의 내공 흐름에 가끔 문제가 생기는 듯하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이따금 운기가 불가능해지는데, 1각에서 2각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온다고.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모든 걸 이해했다.
갑자기 기막이 깨지고 아버지가 전음을 하지 않던 이유. 내공 흐름에 문제가 생겨서, 운기를 제대로 할 수 없어서라면.
‘그럼, 제갈 세가주를 도울 수 없다고 하셨던 것도?’
물론 길 위에서 진행하기에는 위험한 일이니 거절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아버지치고는 너무 단호하게 안된다고 하셔서 살짝 이상하다 여겼다.
‘당장 아버지가 하실 수 없으니까······.’
그래서 안 된다고 하신 게 아닐까?
“언제부터····· 언제부터 그런 건가요?”
“나도 잘 모르느니라. 나도 네 아비와 대련을 하다가 문제가 있는 걸 알게 된 것이지.”
“······.”
“걱정 말거라. 진행 속도가 느리다.”
“느리다고요?”
나는 만에 하나의 희망을 부여 잡는 느낌으로 물었다.
“만약에 계속 병세를 이대로 두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그 전에 치료법을 찾아내야지.”
“그야 당연하죠! 당연한데······.”
나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 무서웠다.
목소리가 살짝 떨려 왔다.
“그런데 만약에, 그 만약에 계속 진행되면.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 조금씩 내공 흐름이 막히는 부분과 시각이 길어지고 있다. 아마도······.”
나는 숨조차 멈춘 채 할아버지의 말을 들었다.
“언젠간 검을 들 수 없게 되겠지.”
“아버지가······ 아버지가 검을 들 수 없게 된다고요?”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아버지가?
내 아버지가 검을 못 든다고?
“석 태의가 말하길······ 당장 목숨에 위협이 되진 않아 보인다 했다.”
“아······.”
다행인 건가?
목숨에 문제가 없으니 다행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죽을 병이 아니라니까.
하지만 검을 쓰지 못하게 된다는데? 아버지가 검을 들지 못하게 된다는 것인데.
무인은 검으로 말한다. 더는 검을 들지 못한다는 것은 무인으로서 죽음을 뜻했다.
정말로 살았으니 다행이라고, 목숨엔 문제가 없으니 다행이라고 여길 수 있는 것인가?
‘검 하나만 들고 강호를 누비던 아버지가 이제는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만 하는······.’
심지어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그런 병을 앓고 계신 줄도 몰랐다. 끝까지 숨긴 것이다.
나는 순간 든 생각에 고개를 들었다.
“·····잠깐만요, 할아버지. 병이라고요?”
“확실하진 않다. 누구도 설명할 수 없는 증상이니까 말이다. 병일 거라고 추정하는 것이지.”
할아버지가 내 어깨를 쥐었다.
“하지만 연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지금 당장은 크게 문제 되는 것은 아니니. 거기다 제갈 세가주가 일단 완화 방법을 알아냈다. 진행을 늦추는 사이에 치료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게야.”
나는 할아버지의 설명을 반쯤 한 귀로 흘렸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 말했다.
“할아버지······ 병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래.”
“그럼요 천명금혼단을 구해 오신 게 아버지 때문인가요?”
* * *
아버지가 할아버지께 천명금혼단을 얻어 온 건 내가 아홉? 열? 그 정도의 나이였을 때였다.
내가 여섯 살때, 천명금혼단을 내어 달라는 아버지로 인해 첫 소란이 벌어졌다.
그때 할아버지는 끝까지 내어주지 않았다. 그 일을 시작으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당시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몰랐다. 그리고 남궁완 아저씨가 찾아왔고, 만신의를 만나러 떠났고, 치료 받지 못했다.
심지어 몸도 지금보다 훨씬 허약했던 때. 아버지가 끝내 할아버지에게서 천명 금혼단을 얻어 오셨다.
‘그때 아버지의 표정이 어땠었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천명금혼단에 온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때쯤에는 나도 천명금혼단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그걸 내주지 않는 것을 원망도 했었다.
아버지가 가져오신 조그마한 목함.
그 안에 들어있는 동그란 환약이 마치 내게는 구원처럼 보였다.
그리고 천명금혼단을 먹고 난 후.
깨어난 내게 가장 먼저 보인것은 아버지의 그늘진 얼굴이었다.
단전은 낫지 않았다.
아버지는 몇 번이나 확인을 반복하고 무언가를 말할 듯이 입을 달싹였다. 그러나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한숨을 내쉬며 방을 나갔다.
나는 그저 이불 속에서 숨죽여 울 뿐이었다.
계속 내 몸을 짓누르던 여러 통증과 잔병치레가 모두 사라졌다.
하루에 예닐곱 그릇씩 먹던 약도 더는 먹을 필요가 없었다.
허약하던 몸이 건강해졌다. 늘 시리던 손과 발도 온기가 돌았고, 뛰어다닐 수도 있었다.
검을, 무공을 익히지는 못하지만 사람 구실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세상 모든 사람이 검을 들고 살지는 않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려 했다.
마음을 정리할까 홀로 산책을 나갔다. 그리고······
“들었어?
천명금혼단을 먹었는데 안 나았대!”
“와,그럼 천금을 주고도 못 사는 약이 그냥 날아간 거야?”
“그렇다니까!”
“4공자님이 불쌍하다 불쌍해.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해서는.”
“불쌍한 건 용국 언니지. 내가 들었는데, 천명금혼단을 얻는다고 백검단의 무사님들도 몇 명이나 죽었대! 너 알지? 용국 언니랑 혼약했던 백검단의······.”
“헉 그럼 그 무사님이 돌아가신 게 천명금혼단 구하다가 돌아가셨던거야?”
“그렇지. 차라리 죽지. 어떻게 저렇게 꾸역꾸역 살아서 백리가 망신은······.”
더는 듣고 있을 수 없어 걸어나왔다.
나를 본 여종들이 깜짝 놀라 일어났다. 나는 그들을 지나쳐 처소 중문을 넘어갔다.
“드, 들은 거 아냐?”
“괘, 괜찮아. 제가 뭘 어찌할 건데?
4공자님도 이제 포기하셨을 걸.”
여종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아무도 없는 조용한 후원을 찾았다.
연못가의 걸상에 앉아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문득 든 시선에 사람이 닿았다.
할아버지.
아주 오랫동안 지켜보고 계셨던듯, 후원에 흐드러지게 핀 배꽃이 어깨에 꽤 쌓여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수그렸다. 할아버지가 무서워서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내게 할 말이 있는 것처럼 계속 바라보고 계셨다.
나는 감히 도망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목덜미가 뻐근할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할아버지는 사라지셨다.
“먉옹.”
갑작스러운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제갈 세가주의 흰 고양이.
흰 고양이가 내 발치에 몸을 문지르고 있었다.
고개를 들자 별이 반짝이는 짙푸른 밤하늘이 보였다. 객잔에 딸린 정원. 언제 여기까지 온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나무에 기대 주르륵 주저앉았다.
품 안으로 고양이가 뛰어들어왔다.
고양이는 금색의 눈동자를 빛내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멍하니 바라보다 고양이를 살짝 끌어안았다. 미약한 온기가 위안이 되는 것만 같았다.
나는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연아, 쓸데없는 생각 말거라.
천명금혼단은 그저 수가 없을 때 쓰려 구해 온 것이다.”
방을 떠나기 전에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하지만 어떻게 정말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겠는가?
일말의 희망을 품고 아버지가 내게 천명금혼단을 주었듯, 할아버지 또한 같은 마음이셨을 텐데.
회귀 후 모든 걸 안다 여겼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머릿속이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바스락. 사각. 바스락. 사각.
수풀이 밟히는 소리와 함께 옷자락 스치는 소리도 들려왔다.
“연, 소저. 무슨 일이기에 그런 얼굴이야?”
창백한 얼굴. 길게 늘어트린 백발.
계절에 맞지 않은 하얀색의 피풍의.
밝은 달 아래 소년은 고요한 밤을 몰아내듯 어둠 속에서 홀로 재수 없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