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31)
131화
같은 시각.
호법을 서던 무영은 백리의강을 바라보았다.
백리연을 지켜보는 백리의강의 표정이 아주 무섭도록 굳어있었다.
검 손잡이를 쥐고 있는 손등엔 핏줄이 바짝 서 있었다. 쥐고 있는 검의 손잡이가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았다.
좋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렇게 긴장해 있다가는 운기를 하는 이보다 지켜보는 이가 먼저 지쳐 나가 떨어질 수도 있었다.
무영이 잠시 입을 열었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다시 닫았다.
저렇게 바짝 날이 서 있으면서도 백리의강에게서 피어나는 기파는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알아서 잘하시겠지.
자그마한 아이를 보았다.
눈을 감은 아이의 표정은 평온했다. 요동치는 진기 파동만 아니었다면, 앉은 채 잠들었다고 여길 정도였다.
그리고 다시 백리의강을 바라보았다.
음. 그 백리의강이라도 딸의 일이라면 저렇게 긴장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나흘.
내가 제갈 세가주에게 공청석유의 모든 기운을 넘겨주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공청석유때문인지 나흘을 내리 운기했어도 몸이 아주 쌩쌩했다.
그리고 드디어 나는 제갈 세가주의 흐린 눈동자를 마주했다.
그때만큼은 공청석유가 아쉽지 않은, 꽤 마음에 드는 광경이었다. 물론 제갈 세가주가 또 정신을 잃지 않았다면 말이다.
잠시 몸을 일으켰다가 다시 고개를 픽 뒤로 넘기며 쓰러졌는데, 정말 기겁했다.
다행히도 이번에 정신을 잃은 것은 매우 피곤해서였다.
그러니까 잠든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고생은 내가 다 했는데 말이다.
* * *
“여기요.”
언두가 내게 두둑한 주머니를 건넸다.
“아기씨가 계셔서 다행이에요. 제가 신경 써야 하는데, 정신이 없다보니······. 더 필요한 건 없으세요?”
나는 두툼한 주머니를 확인했다. 그 안에는 쉽게 집어먹을 수 있는 간식이 잔뜩 들어 있었다.
“없어.”
“아기씨라도 자주 찾아가 주셔서 다행이에요. 후우, 도려님은 완전히 잊어버리신 듯싶어요.”
“그런 것도 있고······ 내가 아버지한테 여쭤봤거든.”
“뭐라고 하시던가요?”
“실력으로 이기면 된대.”
“허 참. 허어. 허 참.”
언두가 차마 뭐라고는 못 하고 기가 막힌다는 듯 한숨만 내쉬었다. 그런 언두를 뒤로 하고 나는 처소를 나왔다.
넓은 백리 세가를 걷고 걷기를 한참.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작고 많은 기운들에 시야가 어지러워졌다.
곧이어 백색의 수련복을 입은 청소년들부터 내 또래의 아이들이 조금씩 보였다.
나를 알아본 몇 명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여기는 백리 세가의 무사들이 머물며 수련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이곳 수련장 가장 바깥쪽엔 아직 제자가 되지 못한 어린 수련생들이 머무는 자그마한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서 선배들의 시중을 들며 수련을 하다가 무재와 근골이 괜찮다 싶으면 진짜 제자로 발탁되는 것이다.
나는 담장 구석에 훈련용 짚 인형들을 쌓아 놓은 곳으로 올라갔다.
곧이어 담장 위로 내 머리가 쑥 솟아올랐다.
담장 안쪽에서 익숙한 얼굴을 찾을 수 있었다. 일전에 남궁 세가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가 흑시에서 구해 온 고아들이었다.
그 후, 아버지는 그 아이들이 백리 세가에 머물면서 검을 배울 수 있게 해 주었다.
물론 선택권은 본인에게 있었다.
하인이 되거나, 백리가를 나가는 방법도 있었다. 심지어 백리 세가에 머무는 동안 간신히 친지를 찾은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백리 세가를 떠난 아이는 딱 두 명뿐이었다.
(가 봤자 배고픈 건 똑같아. )
(큰아버지한테 맞고 싶지 않아요.)
아이들은 제각기 다르지만 비슷한 이유로 이곳에 남았다.
그리고 남은 아이들은 거의 모두 검을 배우는 것을 택했다. 하인보다는 무사가 훨씬 멋있어 보여서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제법 늘었네.’
자리에 있는 몇몇은 검을 놓지 않고 연습에 매진하고 있었다.
백리 세가에 처음 왔을 때만해도 검을 어떻게 쥐는지도 모르던 아이들인데, 이젠 제법 수련생 태가 났다.
‘다들 필사적이니까.’
아이라도 알 건 알았다.
특히 흑시에서 물건처럼 팔릴뻔하며 세상 풍파를 겪은 아이들에게는 아버지가 준 이 기회가 앞으로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동아줄이라는 것을.
이를 아는 아이들은 죽을힘을 다해 노력했고, 덕분에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그때 건물 뒤쪽으로 작은 아이가 흰 수련복을 한 아름 들고 오다가 나를 발견했다.
“언니!”
“진진! 아기씨라고 부르랬잖아!”
아이 뒤쪽에 다른 소년이 황급히 따라붙으며 말했다.
저 둘 다 아버지가 데려온 고아였다.
진진이라 불린 아이는 그때 콧물을 흘리며 내게서 그릇을 가져갔던 아이였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안녕. 잘 지냈어?”
“응!”
“그럼 나 여기 있는 거 모른 척 해주고 이제 가.”
“응!”
진진이 뒤뚱거리며 걸어갔다.
“아, 맞다. 진진, 이리 와. 너도.”
진진과 뒤쪽의 소년을 불렀다.
진진이 뒤뚱거리며 다시 왔다.
“이건 비밀이다.”
둘은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꼼지락거릴 때부터 아이들은 이미 기대감에 눈을 빛내고 있었다.
나는 주머니를 끌러안에 있는 땅콩과 잣을 한 움큼 쥐어 꺼내다 멈칫했다.
“음, 둘 다 손이 없네.”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 담벼락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마치 아기 새들처럼 입을 벌린 아이들 입에 손에 쥔 땅콩을 넣어줘다.
“자, 그럼 가.”
아이들이 볼을 우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이고 떠났다.
잠시 더 수련장을 지켜보던 나는 바닥으로 폴짝 뛰어내렸다.
자연지기를 이용해 거의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점점 자연지기를 쓰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담벼락을 빙 돌아 수련장에 들어가려 할 때였다.
어딘가 멀리서 진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 언, 아니, 아기씨!”
한달음에 달려온 진진은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도와조! 소한 오라버니가······!”
* * *
소한은 아버지가 데려온 아이 중에서 가장 왜소한 아이였다.
하지만 내가 지켜본 바로는 제일 검에 재능이 있었다. 약간 문제가 있었지만······.
콰당!
요란한 소리와 함께수련원 한쪽에서 폭소가 터졌다.
“하하하, 물에 빠진 생쥐 꼴이네!”
“물 길어 오는 일 하나 제대로 못 해서 어디 쓰겠어?”
“낙오자 자식!”
진진을 따라간 곳은 마구간이었다.
넘어진 소한이 물을 흠뻑 뒤집어쓴 채 웃음거리가 되어 있었다. 소한은 겁에 잔뜩 질린 기색이었다.
소한의 문제점은 기질이 너무 약하다는 것이었다.
소한을 둘러싼 이들은 그를 내려다보고 낄낄댔다.
백리 세가의 무사가 되려는 이들이 많은 만큼, 수련생들도 각양각색이었다.
하지만 대체로 3종류로 나눌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백리 세가 권속 가문의 자제들.
그들은 수련생 가운데에서도 귀한 대접을 받았다. 그들이 이곳에 오는 건 그저 보여 주기식으로, 선배들과 안면을 트기 위해서였다.
참고로 쌍둥이들과 대련하며 기분을 맞춰 주던 아이들이 대부분 저 권속 가문 자제들이었다.
그 아래로는 백검단원의 자식들이 있었다. 그들은 일찍부터 교육을 받은 덕분에 대체로 실력도 배경도 우수했다.
그리고 최하층엔 백리 세가에서 일하는 이들의 자식들이 있었다.
장원 관리인부터 짐꾼까지, 자신의 자식이 조금만 근골이 된다싶으면 모아 둔 돈을 바쳐 이곳에 집어 넣었다.
백리 세가의 정식 제자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만약 정식 제자가 되기만 한다면 백리 세가 내에서도 어깨를 펴고 다닐 수 있으니 당연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데려온 고아들은 그 사이에 끼지도 못했다.
몇몇 출신도 모를 천한 것들이 백리 세가에서 수련하는 데에 불만을 품기도 했다.
그리고 아주 당연하게 불만은 괴롭힘으로 이어졌다.
“하하하, 똥 냄새!”
“어딜 감히.
너희들 위치가 바로 거기야!”
그때 백색 무복을 입은 소년이 말했다. 저 백색 무복은 정식 제자가 입는 복장이었다.
“야, 닦아.”
“예?”
“너 때문에 내 신발에 흙탕물이 튀었잖아? 빨리 닦아.”
소한은 큰소리에 겁을 먹고 자신의 소매로 신발을 닦아 주려 했다.
“어디 더러운 옷으로 내 신발을 닦으려 해? 내 신발 더 더럽힐 일 있어?”
소년이 버럭 소리치며 물이 고인 흙을 발로 찼다. 그러자 그나마 깨끗하던 소한의 얼굴마저 흙탕물에 더러워졌다.
아이들이 또 와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빨리 가서 깨끗한 물이랑 수건을 가져와!”
소한이 어깨를 바들바들 떨며 더러워진 몸을 일으켰다.
그때.
“여기. 깨끗한 수건.”
소한을 막아서는 목소리에 그들의 시선이 내게로 꽂혔다.
나는 소한에게 품에 있던 손수건을 내주었다.
“아, 아가씨!”
백색 무복의 소년을 위시한 아이들이 화들짝 놀라며 물러섰다.
아이들은 내게 다 들리도록 저들끼리 정신없이 속삭였다.
“뭐야? 언제 온 거야?”
“몰라! 아니, 분명 그 자식한테 망 보라고 했는데!”
“아씨, 하필······!”
소년들의 얼굴에 망했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나는 소한에게 어서 일어나라 눈짓하며 소년들 앞으로 나갔다.
“이게 지금 뭐 하는 거야?”
“그, 그게······.”
나와 눈이 마주친 애들은 우물거리며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백색 무복의 소년은 달랐다.
“덜 떨어진 애 좀 가르치고 있었어요.
왜요. 무슨 문제라도?”
오히려 소년은 당당하게 나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저야말로 묻고 싶은데요. 아기씨가 여긴 어쩐 일이세요?”
“······.”
“아니~ 검도 못 쓰는 몸이신데, 자꾸 이렇게 수련장에 왔다 갔다 하는 거 되게 웃기는 거 알죠?”
정식 제자라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걸까?
보아하니 일부러 아버지와 관련된 아이들을 괴롭히러 온 듯 보였다.
소년이 이죽거리며 말을 이었다.
“듣자하니 요즘 다시 검술 수련을 한다던데요.”
소년의 여유로운 모습에 다른 아이들도 전염된 것처럼 긴장을 풀고 웃기 시작했다.
“혹시 검 배우고 싶어서 그러신 거예요? 제가 가르쳐 드릴까요?”
“그래.”
“네?”
“한 수 가르쳐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