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66)
166화
* * *
“계십니까? 접니다.”
“장 부관,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온 장석량 옆에는 답지 않게 단정한 차림새의 제갈화무가 있었다.
‘쟤가 여긴 어떻게 온 거지?’
가문이 뒤숭숭해서 외부인은 거의 들어오지 못하는 상태였는데, 수백당까지 들어오다니.
제갈화무는 옅은 미소를 지은 채 태연하게 문턱을 넘어 부채를 흔들며 방 안을 거닐었다. 오랜만에 만나서일까? 어쩐지 그 모습에서 시선을 떼기 힘들었다.
그때 장 부관이 가볍게 기침을 하며 말했다.
“가주님께서 오늘 제갈 세가주님을 불러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제갈 세가주님이 아기씨를 만나 뵈어야겠다고 하여······.”
의문이 풀렸다.
장석량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아기씨, 가주님께서 제갈 세가주의 도움을 받은 사실을 모두 아셨습니다.”
“그래요.”
적당한 시기에 할아버지께 모두 사실을 밝혀도 좋다고 하였다. 장석량이 내 부탁을 받은 것이라고 모두 말한 모양이었다.
장석량이 곤혹스러운 듯 눈치를 조금 보더니 말했다.
“그러니까······ 제가 진실을 말씀드리기 전에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장 부관이 곽씨 어멈을 데리고 있던 것이 아니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계셨다는 거야.”
제갈화무가 끼어들어서 답했다. 그러곤 장석량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만 가 보세요.”
나는 인상을 찡그리고 제갈화무를 보았다.
‘자기 가문 사람도 아닌데 되게 당연하게 명령하네.’
장석량이 살짝 고개 숙이고 물러나려는 모습을 보다가 한 가지 사실이 떠올라 흠칫 놀랐다.
‘잠깐, 장 부관이 나가면 제갈화무랑 단둘이 있는 거잖아?’
갑자기 격렬하게 방에서 나가고 싶어졌다. 그런 내 심정을 안다는 듯 제갈화무가 활짝 웃었다.
나는 서둘러 시선을 돌렸다.
장석량이 나가고 시비가 다고와 찻주전자를 들로 올 때까지 방 안에 침묵이 맴돌았다. 딱히 언급하지 않았는데, 시비가 가져온 것은 도화차였다.
‘하긴 쟤가 우리 집에서 매번 도화차를 먹었으니······ 딱히 비밀도 아니겠네.’
향긋한 향이 풍기고 눈치를 보던 내가 입을 열었다.
“기분은······”
“고마······”
하필이면 둘 다 동시에 입을 열었다.
나와 제갈화무 둘 다 웃는 듯 우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봤다.
“먼저 말······
“너부터······.”
제갈화무가 부채로 먼저 말하라는 듯 나를 가리켜 내가 고개를 저었다.
“아냐, 너부터 말해.”
제갈화무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까딱이고 말했다.
“기분은 좀 어때?
“······.”
나는 묘한 표정으로 제갈화무를 보았다.
“왜?”
“말버릇이야??
제갈화무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너는 만날 때마다 기분을 물어 봐.”
제갈화무가 상대의 생각을 파악하는 방법 중 하난가?
하지만 내 말에 제갈화무는 미간을 살짝 모았다.
“내가 매번 그런 말을 했다고?”
“응.”
나는 찻잔을 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곰곰히 생각하는 듯하던 제갈화무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러네.”
그러고는 나를 응시하며 부드럽게 웃었다.
“네가 웃었으면 해서 그런가 봐.”
순간 찻물을 흘릴 뻔했다.
나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찻잔을 내려놓았다.
제갈화무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표정 좀 봐.”
얼굴에 터질 것처럼 열이 오른 것이 느껴졌다.
‘정말 미친 거 아냐? 으아아아!’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팔에 오소소 돋은 소름을 문질렀다.
“너, 너는 어떻게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 창피함도 없어?”
얘랑 단둘이 남은 게 옳은 선택이었을까?
“어차피 이미 눈치챘는데 뭐하러 속이고 있어?”
“······.”
제갈화무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나른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어떻게 됐는지 연락도 없고 말이야.”
“네 비선을 이용하면 되잖아.”
제갈화무의 입가에는 미소가 어려있었으나 다소 침울한 기색으로 말했다.
“정말 서운해. 그래도 나는 너에게 직접 듣고 싶었지.”
“······.”
“내가어색해?”
“······.”
그럼 안 어색하겠니?!
마치 그날의 고백을 나만 기억하는 것 같았다.
제갈화무는 오히려 신기하다는 듯 나를 살폈다. 그리고 기쁘다는 듯 웃었다.
“회귀 전엔 구애받은 적이 없었나봐? 내가 처음?”
“아니거든?”
“으응. 그래. 맞아. 아니라고.”
“저기 입 좀 다물어 줄래?”
입을 꾹 다문 제갈화무가 눈을 휘며웃었다.
어금니를 꽉 깨문 내가 서둘러 말을 돌렸다.
“이번 일 도와줘서 고마워. 네가 아니었으면 어려웠을 거야.”
“말로만 고맙다고 하고 넘어가는 거야?”
“······.”
도움을 많이 받긴 했다.
생각해 보면 제갈화무가 장석량에게 부하처럼 명령을 내린 것보다 내가 제갈화무를 부하처럼 부려 먹은 게 더 많을 터였다.
‘아주 당연하게 써먹었지······.’
하지만 나는 억울했다.
내가 알아서 하려는 걸 자꾸 제갈화무가 옆에서 건들고 도와주겠다고 꼬시고 온갖 말로 나를 설득 했었다!
내가 자신의 목숨을 살려 줬으니 돕는게 당연하다고······.
‘이래서 구두 계약을 믿지 말라는 거구나.’
나는 살짝 떨떠름하게 말했다.
“음······ 알겠어. 혹시 원하는 거라도 있어?”
제갈화무가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응. 하나 있어.”
“······.”
왜 이렇게 걱정되지?
“······뭔데?”
“화내지 않기.”
“뭐?”
“내 말을 듣고 화내지 않기.”
제갈화무는 빙글 웃었다.
“으으으음, 알겠어.”
나는 제갈화무를 살짝 노려보았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는 거야?”
제갈화무는 웃기만 하다 말했다.
“아까 내 질문엔 왜 대답 안 해줘?”
“무슨 질문? 아 기분이 어떠냐고?”
제갈화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때문에 지금 매우 떫어.’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잠시 머뭇거리자 제갈화무가 다시 말했다.
“오랫동안 계획하던 일을 이룬거잖아? 생각보다 기뻐 보이지 않네?”
아니라고 좋다고 말하려다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다른 피해자가 있으니까.”
제갈화무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입을 비죽였다.
백리명을 언제까지 계속 재워 둘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결국, 그는 내공을 잃은 사실을 깨달았다. 당연히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처음에는 그럴 리 없다고 부정하다가 나중에는 성치도 않은 몸으로 방 안의 모든 걸 부수며 울부짖다 쓰러졌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직 자신을 그렇게 만든 게 고모란 건 알지 못했다. 하지만 알게 되는 것도 머지않았다.
제갈화무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역시 말해야겠네.”
“뭘?”
“사실은 내가 백리명에게 약을 쓰도록 한 거야.”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제갈화무를 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네 고모가 백리명을 노리도록 했어.”
“······.”
나는 당혹해서 제갈화무를 보았다.
고모가 백리명을 표적으로 삼은게 제갈화무의 짓이라고?
“어떻게?”
“네 고모 지인 친우들에게 말을 흘렸어. 백리명이 백리표보다 나은 점이 하나도 없다고.”
“······.”
어찌 된 일인지 이해했다.
백리명이 백리표보다 나은 점 하나 없다. 누구나 할 만한 얘기였다. 제갈 세가주의 말이라는 점이 무게를 좀 더 주는 정도.
하지만 그게 고모의 귀에 들어간다면 달랐다.
고모의 주변에는 고만고만한 수준에 고모에게 아첨하는 사람들뿐이었다. 그들은 고모를 기쁘게 하려고 제갈 세가주가 흘리듯 한 칭찬을 열심히 옮겨 댔을 것이다.
그리고 고모는 평생 아버지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이었다. 제갈화무의 말은 고모에게 다딜달게 들렸을 것이다.
때마침 백리명과 쌍둥이들 사이가 틀어졌다.
고모는 자신이 모욕을 당한 것처럼 여겼고, 백리명이 내 편을 들어준 것이 그녀의 트라우마를 건드렸을 것이다.
그때 아마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백리명만 없다면 내 아들이 백리 세가의 후계가 될 수 있지 않나?
제갈화무가 한 일은 별것 아니었다. 다만 고모의 성격을 파악해 자극할 만한 말이었을 뿐.
제갈화무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게 아니었다면 널 노렸을 테니까. 무슨 약인지도 정확히 알 수 없는 걸 네가 먹게 둘 수는 없잖아?”
자신이 한 짓이니 내 탓이라고 여길 필요 없다.
제갈화무가 전하고 싶은 뜻은 이것이었다.
“미안.”
전혀 미안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
정말 무슨말을 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나를 걱정해서 한 일이었다.
하지만······ 조금만 잘못해서 백리명이 죽어버리고, 증거를 하나도 잡지 못했다면?
“그리고 하나 더 알려 줄 게 있어.”
“어떤 거?”
“그 스님 말이야.”
“고모가 쫓던 스님?”
먼 거리에 있었기에 일단 고모에게 약을 내어주었다는 진술만 먼저 받아낸 후에 데려오고 있었다.
아직 알아낼 것이 많은 상태였다.
대체 어떻게 그 약을만들었는지 왜 고모에게 주었는지 왜 도망쳤는지 등등.
제갈화무가 이번에는 정말 미안한 낯을 했다.
“죽었어.”
“뭐라고? 갑자기 왜?!”
제갈화무의 청회색 눈동자가 진지한 빛을 띠었다.
“몸에서 혈고가 나왔어.”
나는 눈을 크게 떴다.
혈고.
핏빛의 벌레로 사람 몸속에 자리잡는 기생충이었다.
그리고 특별한 약을 주기적으로 공급받지 않으면 기생한 사람에게 끔찍한 고통을 주다가 죽게 만든다.
딱 봐도 어디선가 쓰기 좋아 보이지 않는가?
그렇다. 마교에서 사람을 조종하기 위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