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67)
167화
가장 흔하게 쓰이는 대상은 첩자.
혈고가 몸에 있는 마교의 첩자들은 자신의 목숨을 인질로 잡혀 절대 배신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만약 잡히더라도 문제없었다. 정보를 빼내기도 전에 이렇게 금방 죽어 버리니.
“내 실책이야. 혈고가 있는 줄 알았다면 일을 빨리 처리했을 텐데.”
제갈화무에게 잡힌 순간부터 약 공급은 끊겼을 것이다.
“······아니야.네가 아니었다면 혈고로 죽은 줄도 몰랐겠지.”
몸을 해부해 보지 않는 이상 혈고로 죽었는지 알아볼 수도 없었다.
갑자기 여기서 마교라니.
나는 탁자를 짚으며 일어났다.
“가 봐야겠어.”
* * *
고모가 갇혀 있는 곳은 북쪽 끝의 전각이었다.
관리하는 이 없이 먼지만 쌓인 채 방치되어 있던 이곳은 백리 성을 지닌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가두는 곳이었다.
곽씨 어멈이나 고모의 다른 시비들이 갇힌 감옥에 비하면 천국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고생 한 번 안 해 보고 사치스럽게 살아온 고모는 버티기 힘들 것이다.
높은 담벼락 너머론 전각 지붕도 보이지 않았다. 유일한 입구 앞은 두 명의 무사가 지키고 있었다.
백검단원으로 오며 가며 꽤 얼굴을 본 익숙한 낯이었다.
그들은 나를 보고 놀란 다음 뒤쪽의 백발 청년을 보고는 더 놀랐다.
“아기씨, 제갈 세가주님.”
인사를 올린 무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가주님께 출입 허가를 받으셨습니까?”
“······아뇨.”
백검단원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가주님께서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라 하셨습니다.”
나는 눈을 내리깔았다.
‘어쩔까?’
사안이 사안이라 엄선했는지 둘 모두 백검단원으로 실력이 좋았다.
촥.
제갈화무가 펼친 부채를 살랑거렸다.
“어쩌지? 안 된다는데. 다시 가주님을 뵙고 와야 하려나?”
“······.”
“응? 연아, 왜 대답이 없어?”
“······.”
서로 얼굴을 바라본 백검단원이 초조하게 나를 달래려 들었다.
“아기씨, 정말 죄송합니다. 아기씨를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주님의 명을 지켜야 하므로 부디 불충을 저지르게······ 어······ 어라?”
“으음?”
백검단원이 갑자기 비틀거리고 부축하려던 이도 함께 비틀거렸다.
그때 번개처럼 뻗어 온 손이 두 사람의 혈을 짚었다.
풀썩, 풀썩.
눈을 부릅뜬 두 명의 백검단원이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나는 머리부터 쓰러지는 한 명을 붙잡아 다치지 않게 내려놓고는 손을 홱 내저었다.
내 의지에 따른 자연지기로 거센 바람이 확 불어닥쳤다.
제갈화무의 백발이 날개처럼 펼쳐졌다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나는 멈춘 숨을 들이켰다.
“푸하. 미리 말을 해 줘야지!
나도들이마실 뻔 했잖아!”
“널 믿었지.”
휘어진 제갈화무의 청회색 눈동자는 즐거움에 반짝였다.
숨을 가다듬고 쓰러진 백검단원들을 내려다보았다.
“······몸에 나쁜 건 아니지?”
“그럼. 좋은 꿈을 꾸고 있을 거야.”
그렇게 말하니 마약 같잖아.
제갈화무가 칠이 벗겨진 문에 다가갔다. 소음을 내며 열린 문 앞에서 제갈화무가 왜 안 오냐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발을 떼며 말했다.
“아, 그냥 왠지 익숙한 느낌이라.”
“익숙하다고?”
“응. 저번에 백리명에게 향할 때도 이렇게 막아선 사람들이 있었거든. 그때 류청이랑 야율이 이런 식으로 도와줘서.”
내 앞길이 막힐 때마다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왠지 모르게 감흥이 들었다.
제갈 화무가 말갛게 말했다.
“다들 널 좋아하니까.”
“······.”
문을 넘자 갑자기 시야가 뒤틀리는 기분이 들었다. 금안이 아니라면 알아채지 못했을 테다.
“조심. 여기서부터는 손을 잡자.”
조심스럽게 잡아 오는 손길이 있었다. 제갈화무가 가볍게 말했다.
“진법때문에. 길을 잃고 계속 헤매게 만드는 용도야.”
담벼락이 높고 실력이 좋다고 하나 고작 두 사람이 지키고 서 있을 수 있었던 이유다.
“이 정도 진법은 금안으로 뚫을 수 있어.”
“으응. 그렇지. 내가 헤맬까 봐.”
“······.”
거짓말. 이깟 하급 진법에 제갈세가주가 헤맨다니.
하지만 마주 잡은 손을 타고 올라오는 한기와 창백한 안색을 보고 아무 말 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 * *
빗장을 풀고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문을 열었다.
가구 하나 없이 텅 빈 공간이 보였다
금 간 석조 바닥에 잔뜩 쌓인 먼지와 어떻게 굴러들어 왔는지 모를 낙엽들.
‘변함없네.’
오래전 나도 이곳에 갇혀 본 적 있었다. 쌍둥이들이 나를 괴롭히기 위해 이곳에 집어넣었다.
그때의 난 진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밤새 전각 안에서 떨었다. 이틀 후, 아버지가 나를 찾아낼 때까지.
크게 고뿔에 걸렸고, 앓다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내가 정신머리 없이 돌아다니다 혼자 그곳에 들어간 것으로 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내게 저 말이 진실이냐고 물어봤지만······.
나는 입을 다무는 것으로 긍정했다.
진실을 말해 봤자 소용없을 걸 알았다. 이미 시비나 하인들을 다 매수했을 테니까.
괜히 아버지만 또 목소리 높여 싸우게 되고 모두 내가 문제라는 시선을 보낼 테니까.
고모와 쌍둥이들이 사고를 치면 할머니가 흔적을 처리한다.
그들의 가족애란 그런 거였다.
자그락.
안으로 들어서자 바닥에 깨진 자기 조각이 나뒹굴었고, 치우지 않은 음식이 썩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 더러운 모포를 두른 고모가 다리를 감싼 채 쭈그려 앉아 있었다.
내가 들어온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고모.”
고모가 번뜩 고개를 들었다.
엉망인 머리카락에 수척해진 낯빛.
나는 환하게 웃었다.
“오랜만이에요.”
“······.”
“추레한 게 고모랑 딱 알맞네요.”
“네가 감히 나를 비웃으러 와?”
당장이라도 나를 찢어 죽일 것만 같은 눈빛이었다.
기분이 매우 좋았다.
“좋은 소식이 있어요. 이제 곧 나가실 수 있을 거예요.”
“······뭐?”
눈빛에 희망이 차오르는 걸 보며 말했다.
“비록 단전이 부서지고 사지근맥이 잘리겠지만 여기 계속 갇혀 있는 것 보단 낫잖아요?”
“뭐라고?”
“곽씨 어멈이 모두 자백했어요. 곧 처분이 내려올 거예요.”
“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어······ 어머니가······ 어머니가 가만히 있으실 리가 없다고!”
“믿기 싫으면 믿지 마세요. 하여튼 그래서 곧 고모를 볼 수 없을테니, 마지막으로 허심탄회하게 대화 좀 해 보고 싶어서 찾아왔죠.”
“하! 허심탄회? 내가 네 말을 믿을 것 같으냐? 누군가 엿듣고······.”
나는 손을 휘둘러 기막을 펼쳤다.
“······!”
“어때요? 이 정도면 믿으시려나?”
나는 부채로 반대쪽 손바닥을 두드리며 느릿하게 걸어갔다.
“고모는 지금 내공이 봉인되어 있으니 못 느낄까 봐 일부러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봤어요. 하긴 뭐, 내공이 있어도 고모는 기막을 펼칠 수 없으니 못 알아봤겠네요.”
“너······.”
“어떻게 그 나이가 되도록······ 휴. 됐어요. 고모 재능이 없는 거 세상 모두가 아는데.”
어느새 고모의 코 앞이었다.
고모의 낯이 악귀처럼 일그러지고, 내게 덤벼들었다.
“악!”
오히려 고모가 뒤로 나자빠졌다.
고모가 바닥에서 버러지처럼 꿈틀거렸다. 눈물마저 흘리고 있었다.
“아, 실수.
갑자기 달려들어서 저도 모르게.”
나는 부채를 흔들거렸다.
제갈화무가 빌려준 부채였다.
‘기물이라더니 정말······
대단하긴 하네.’
내공을 불어넣는 순간 소리도 없이 바늘이 날아갔다.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걸요.”
“미친······ 네가 미쳤구나?!
내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널 가만두지 않을거다!”
나는 부채를 펼친 후 팔랑거렸다.
흠, 어째 이러면 제갈화무랑 좀 비슷하려나?
“휴, 실수라니까요. 바늘 하나 가지고 그만 꽥꽥 거려요.”
씨근덕거리며 상처를 살펴보려던 고모가 덜컥 겁을 집어먹은 표정을 지었다. 손끝만이 덜덜 떨리며 더는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나한테······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게야?”
“음. 저도 잘······? 이게 제갈 세가주 물건이거든요. 고모랑 단둘이 얘기한다니까 걱정이 큰지 꼭 가지고 가 달라고 해서.”
“뭐?”
“그래도 뭐 치명적인 독은 아닐거예요.”
눈을 부릅뜬 모습에 작게 웃었다.
그때 갑자기 기막이 흔들리는 느낌에 깜짝 놀라 돌아보았다.
‘결이? 어떻게 들어온 거지?’
기막을 펼치면 대화가 새어나갈 염려가 없어서 좋지만 웬만하면 펼치려 들지 않는다.
펼치고 있는 상태가 피곤하기도 하거니와 이런 식으로 기막 바깥 기척도 느끼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결이는 태연하게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부채까지 줘 놓고는······.
충격을 받았던 고모가 다시 정신을 차렸는지 소리쳤다.
“제갈 세가주의 물건이라고? 하! 제갈 세가주부터 남궁 소가주까지, 그 전부터 알았지만 아주 가문을 팔아먹을 녀석이로구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받는 거죠. 참고로 고모에게 약을 넘긴 스님도 화무가 잡은 거랍니다.”
나는 고모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드디어 도착해서, 오늘 가문에 데려왔죠.”
나조차도 스님이 죽은 사실을 좀 전에 알았는데, 바깥과 두절된 고모는 전혀 모를 것이다.
만약 스님이 마교와 얽힌 걸 고모가 알고 있다면······.
나는 고모의 표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