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17)
217화
* * *
남궁류청이 말했다.
“거리보다는 평생을 함께 살아가야 할 이들의 마음이 맞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때 아버지의 찻잔이 탁자에 내려왔다.
“백리리 이야기란다.”
“예?”
“방금 혼사 얘기말이다. 백리리 이야기를 한 거다.”
“······.”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향해 말했다.
“아버지. 아직 확실치 않은 일을 이렇게 말하고 다니는 건 온당치 않습니다.”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바라보다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네 말이 옳다.”
탁자의 분위기가 살짝 가라앉았다.
평소라면 내가 말을 건네며 분위기를 바꾸려 들었겠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때 우리 옆을 대여섯 명의 젊은 청년들이 우르르 지나갔다.
점소이에게 안내받은 손님들은 바로 우리 건너 탁자에 자리 잡았다.
차림새와 허리춤에 찬 검들, 그리고 정순하지 못한 내공으로 보아 이 근방 사파의 공자들처럼 보였다.
별생각 없이 흘끔 바라본 내 귀를 그들의 말이 잡아챘다.
“동호방주가 죽었다더군!”
무슨 소리야? 벌써 죽었다고?
“대체 누가 죽였다던가?”
“누구긴 누가야? 백리 세가의 백리연밖에 더 있겠는가!”
뭐야? 나 안 죽였어! 살려는 드렸다고!
“또 그 계집이야?”
나는 눈썹을 찡그렸다.
“내가 듣기로는 백리연이 죽인 건 아니라더군. 동호방주의 팔을 잘랐는데······.”
“아니, 또 팔? 죽일거면 죽이던지 왜 팔을 자른단 말인가.”
“꼴에 백도라고 체면차리나 보지.”
“하여간 동호방주를 죽인 건 동호방 간부 중 한 명일 거라고 하더군. 동호방주가 팔을 잃었으니 옳다구나 하고 바로 반역을 일으킨 게지. 벌써 내분이 일어났다더군.”
“동호방주가 죽은 건 그렇다 치더라도, 그 계집이 동호방주를 상대했다는 게 말이 돼? 그 계집 나이가 이제 열여덟인데? 허풍이겠지. 아니면 뭔가 음험한 수를 쓴 게 아니겠는가?”
“음험한 수라니?”
“흥, 생각해 보게. 다들 들은 바 있지 않나? 뻔하지.”
“자네 뜻은 그러니까······.”
“그래. 마교도 놈들 수법을 빌렸겠지.”
“에이. 그래도 백도 정파인데······.”
그 뒤로 이어진 말들은 말도 안 되는 중상모략, 악의에 찬 비방이었다.
계례를 치르고 떠난 여행에서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이 들었다.
그리고 느낄 수 있었다.
이제 갓 10대 세가에 이름을 올린 백리 세가를 시기 질투하는 이들이 이렇게 많았구나.
어떻게든 흠집을 잡아 백리 세가를 고꾸라트리기 위해 사방에서 호시탐탐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일은 하나하나 화 낼 가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그 계집이 그렇게 미인이라던데?”
결국, 나왔군.
이어질 말들은 뻔했다.
나는 황급히 할아버지와 남궁류청의 손등에 내 손을 올려 꽉 내리 눌렀다. 그러고는 눈에 잔뜩 힘을 준 채 할아버지와 남궁류청을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 다 내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평안하게 맛집을 즐기고 싶다고······!
없는 곳에서는 나랏님 뒷말도 한다는데, 이렇게 들을 때마다 반점과 객잔을 뒤엎으면 피곤할 뿐이었다.
‘참고로 아버지를 막기 위해서는······.’
매우 죄송스럽지만, 아버지 발들을 내 발로 밟았다.
어쩔 수 없었다.
내 손은 두 개뿐이지 않은가!
그때 할아버지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남궁류청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내 고루한 이는 아니니 남녀칠세 부동석을 지켜야 한다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 할애비가 보는 앞에서 남녀가 손을 덥석덥석 잡아서야 쓰겠느냐?”
나는 눈을 끔뻑 거렸다.
‘아니, 할아버지······.’
남궁류청이 붙잡은 게 아니라 내가 붙잡은 건데요······?
그때까지 굳어 있던 남궁류청이 황급히 내 손을 뿌리쳤다. 어찌나 손길이 매서운지 튕겨 나간 손이 아플 정도였다.
“얘야, 그렇게 거칠게 하면 연이가 다칠 수도 있지 않으냐?”
그걸 또 남궁류청이 공손히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마음이 급해서요.”
“그래. 조심하거라.”
인자하게 웃은 할아버지가 아직도 할아버지를 붙잡고 있는 내 손을 도닥이며 말했다.
“너도 참. 내 나이가 몇인데 나서겠느냐? 걱정하지 마라.”
안도하려는 찰나였다.
할아버지가 우리 뒷자리 좌석에 다른 손님처럼 위장하고 있던 호위를 향해 손짓했다.
“처리해라.”
아니이이? 본인만 안 나서면 되는 거냐고! 뭘 처리해?
하지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호위무사가 나서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호위무사가 나서려는 찰나 누군가 객잔 계단을 급하게 뛰어오르는 소란이 들렸다.
뒤이어 점소이의 목소리도 들렸다.
“찾으시던 분이 이분들 맞나요?”
점소이 옆의 사내는 얼마나 숨을 가쁘게 쉬는지 답은 못 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또 동전을 건네받은 점소이는 우리를 매우 흥미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내려갔다.
숨을 헉헉 들이쉬며 다가오는 이는 나도 아는 얼굴로 할아버지 여러 부관 중 한 분이었다.
내가 찻잔을 내밀자 감사하다는 눈을 하고 단숨에 들이켰다.
아버지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일인가?”
부관은 머뭇거리며 말하기 두려워했다.
나는 눈치껏 기막을 펼쳤다.
부관이 입을 열었다.
“방금 본가에서 온 소식입니다. 그러니까 둘째 아가씨께서······ 둘째 아가씨께서······.”
둘째 아가씨라면 백리리였다.
할아버지가 호통쳤다.
“빨리 말하거라!”
“둘째 아가씨께서 가출하셨습니다.”
“뭣? 그게무슨 말이야!”
부관이 품에서 서신을 하나 꺼냈다.
“여기 둘째 아가씨께서 남겨 놓은 서신입니다.”
그러고는 잠시 머뭇거리다 덧붙였다.
“서신을 본 심 부인께서 충격을 받고 쓰러지셨습니다.”
서신을 본 할아버지가 대로하며 탁자를 내리쳤다.
읽어 보라는 듯 아버지께 넘겼고 나도 함께 내용을 볼 수 있었다.
백리리는 꽤 구구절절 긴 말을 서신에 써 놓았지만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런 내용이었다.
[연 언니를 따라서 저도 수련하러 떠납니다. 찾지 마세요. 때 되면 돌아올게요.]“······.”
이래서 애들 앞에서는 찬물도 가려마시라고 하는 걸까?
누굴 보고 집에서 몰래 도망치는 법을 배웠는지는 따질 필요도 없었다.
할아버지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걸 보며 나는 현실을 도피하듯 생각했다.
‘음, 나랑 아버지가 만들었지만, 이 역용술 정말 괜찮구나. 저렇게 얼굴 달아올라도 문제없고.’
할아버지가 탁자를 탕탕 내리치며 말했다.
“그 아이의 행복은 네가 걱정해줄 필요 없겠구나. 스스로 찾으러 나갔으니! 아주 자유분방한 집안이야. 누굴 보고 배웠나 했더니 제 언니를 닮은 게야! 그 언니는 제 아비를 닮고!”
“······.”
나는 최대한 죄송스럽다는 듯이 양손을 모으고 고개를 푹 숙였다.
‘젠장. 백리리.’
리리야, 이렇게 편들어 준 것을 한 식경도 안 돼서 후회하게 할 거야?
천하 십강인 할아버지의 손녀 둘이 번갈아 야반도주하다니.
강호의 호사가들이 신나 떠들법한 일이었다.
‘아, 밤에 도망친 것은 아니니 야반도주는 아닌가?’
할아버지가 벌떡 일어났다.
“너희들끼리 먹거라. 나는 가야겠으니!”
아버지가 황급히 뒤따라 일어나며 말했다.
“배웅하겠······”
“필요 없다!”
버럭 소리친 할아버지가 나와 아버지를 노려보다가 객잔을 빠져나갔다.
폭풍이 몰아닥친 느낌이었다.
“하아.”
나는 속에서 우러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머리를 짚었다가 벌떡 일어났다.
나는 의아하게 바라보는 아버지와 남궁류청의 시선을 뒤로한 채 여전히 떠드는 무인들에게 다가갔다.
“이봐.”
“그러니까 백리연이······ 뭐냐?”
“뭡니까?”
신나게 떠들던 여섯 무인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나는 웃으며 물었다.
“하던 말 계속해. 백리 세가, 백리연이 뭐라고?”
그때 제일 앞장서서 악의에 찬 비방을 하던 놈이 말했다.
“뭐야, 이 계집은?”
내 얼굴에 미소가 짙어졌다.
“뭐긴 뭐야, 너희가 욕하던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