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57)
257화
풍 가주가 나를 붙잡고는 근처의 가장 높에 솟은 바위 위로 뛰어올랐다. 모두에게 잘 보이게 하려는 듯했다. 그 움직임에 목을 감은 천잠사의 줄이 좀 더 파고 드는 것이 느껴졌다.
남궁완 아저씨의 표정이 좀 더 창백해졌다.
“걱정마시오. 해를 끼칠 생각은 없으니. 대신 다들 이곳에서 물러가 줘야겠소.”
“이런 비열한······!”
여기서 우리가 물러가면 동굴 안에 남아 있는 부인들이 어지 될지는 불 보듯 뻔했다.
“우리가 진심으로 싸워 무얼 얻을 수 있겠소? 남궁 세가 또한 무림맹의 우군 아니오?”
“이따위 짓을 벌이고도 동맹이라고!”
“우리도 남궁 세가의 핏줄을 끊을 생각은 없소.”
“푸흣.”
그때 상황에 맞지 않는 웃음소리가 났다. 내 웃음소리였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터진 것도 있지만 반은 고의기도 했다.
풍 가주가 기가 차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 웃음이 나오느냐?”
“아, 정말 누가 악당인지.”
“······제정신이 아니로군. 도발한다고 내가 넘어갈 것 같으냐?”
그때였다. 사람마다 약간의 시차는 있었으나 다들 짜기라도 한 듯 한 곳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탁.
그 자리에 백색 무복의 사내가 가벼운 발소리를 내며 멈춰섰다.
풍 가주가 놀라 소리쳤다.
“배, 백호단주······!”
이제 전 백호단주였으나 저도 모르게 소리친 듯했다.
나는 금안으로 멀리서부터 아버지가 오고 계시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오는 병력까지도.
곧이어 아버지 뒤를 따라온 백검단원과 전 백호단원들이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무슨 광경인지 모르겠군.”
매우 싸늘하게 굳은 얼굴이었다. 이렇게 화가 난 표정은 처음 볼 정도였다.
“어, 어떻게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늦었소!”
아버지는 이를 듣지 못한 것처럼 나를 향해 말했다.
“괜찮으냐?”
“음, 네. 할 만한 것 같아요.”
“그래.”
그렇게 말한 아버지가 눈을 꽉 감았다. 아주 짧게 괴로운 듯한 눈빛이 스쳤다.
아버지는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나를 향해 뛰어올랐다.
“의강!”
“대협!”
경악한 듯한 남궁완 아저씨와 남궁류청의 외침이 들렸다.
풍 가주 또한 소스라치며 내 목을 조른 줄을 당겼다.
“백호 단주! 미쳤소? 딸을······.”
소리치던 풍 가주가 갑자기 말을 멈추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검이 그대로 풍 가주의 몸을 관통했다.
푹!
“······!”
다들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점차 천잠사에 담긴 내공이 약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곧이어 천잠사의 통제력이 내게 온전히 넘어왔다.
치열하고 팽팽하던 싸움의 끝이었다.
천잠사가 내 목에서 느슨히 풀어졌다. 나는 풍 가주의 품에서 빠져 나왔다.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있던 풍 가주가 속삭이듯 더듬거렸다.
“자, 잠깐.”
아버지가 가차없이 검을 뽑아냈다.
“커억-!”
후두둑 바위에 붉은 물이 들었다. 아버지가 마저 검을 들었다.
현무단주가 소리쳤다.
“백호단주! 그만하면 되었소. 우리가 졌소.”
아버지는 멈추지 않고그대로 풍가주의 목을 내리쳤다.
“내 딸을 건드린 자는 살려두지 않네.”
* * *
“고마워.”
나는 류청에게 인사를 건넸다.
“······.”
남궁류청의 상처는 다행히 별로 깊지 않았다.
하지만 남궁류청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남궁류청이 가만히 내 목을 바라보았다.
나는 설명했다.
“괜찮아. 깊진 않아.”
목에 살짝 상처가 났지만 깊지 않았다. 호신강기도 있기에 생채기 정도랄까. 남궁류청의 상처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
하지만 남궁류처은 계속 말이 없었다.
나는 남궁류청의 상처에 붕대를 감는 걸 지켜보다가 일어났다.
그때 남궁류청이 갑자기 내 손을 붙잡았다.
“······.”
그러고는 또 말이 없었다.
이대로 손을 잡아 뺄 수 있을 정도로 미약한 힘이었지만······.
나를 바라보던 표정이 생각났다. 결국, 나는 뿌리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옆에 앉았다.
잠시 후, 급하게 자리를 비웠던 남궁완 아저시가 돌아왔다. 내상을 입었으니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를 한 움큼 토해냈으리라.
남궁완 아저씨가 아버지를 향해 물었다.
“의강, 여긴 어찌 알고 온 것이야? 연이 말로는 네가 소식을 받아 보려면 꽤 걸릴 거라던데.”
그러자 아버지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나는 움찔 놀라며 남궁류청 뒤로 슬쩍 숨었다. 그리고 고개만 쏙 내밀고 물어보았다.
“맞아요. 대체 어떻게 오신 거예요?”
아버지가 나를 매서운 눈길로 응시하다가 어딘가로 손짓을 했다.
곧이어 누군가 끌려왔다.
남궁완 아저씨가 말했다.
“저건······ 벽 소가주?”
의문형인 이유는 벽 소가주의 모습이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엉망이었기 때문이었다. 꽤 고초를 치른 듯한 모습이었다.
백호단원이 벽 소가주를 거의 내동댕이치듯 던졌다.
“끄억!”
벽 소가주가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그가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이, 이, 이거 너무한 거 아니오!”
하지만 백호단원은 오히려 역겹다는 듯 바닥에 침을 퉤 뱉고 멀어졌다.
‘이게 무슨······?’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백리 대협! 이, 저, 저런 짓을 하는 걸 두고 볼 테요?”
사람을 쉽게 재단하지 않는 아버지가 혐오스럽다는 표정으로 벽 소가주를 바라보았다.
벽 소가주가 흠칫 놀라며 어깨를 움츠렸다.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벽 소가주가 그간 계속 위 맹주에게 여인들을 바쳐 왔다네.”
“······!”
공급책 역할을 맡은 것이 벽가였던 것이다.
아버지가 벽가의 행태를 알게 된 것은 무림맹에서 벌어진 실종을 조사하면서였다고 했다.
역시나라고 할까.
아버지는 계속 실종사건을 조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벽가는 위지백에게 원하는 여인을 제공하고 위지백은 그런 벽가의 뒤를 봐주는 식으로 서로 상생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고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한 증거는 잡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던 와중 갑자기 벽가장이 멸문하게 된다.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위 맹주가 제게 도움이 되지 않으며, 자신의 비밀을 아는 벽 소가주를 살려 둘 리 없다고 생각했지.”
그리고 역시나 위 맹주는 벽 소가주를 은밀하게 처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벽 소가주를 지켜보고 있던 아버지가 벽 소가주를 구해낸 것이다.
벽 소가주는 제 목숨을 이어가고 싶다면 아버지께 협조해야 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렇게 이 산장의 존재를 알아내고 찾아온 것이었다.
“······왜 갑자기 제대로 사정도 모르는 현무단을 움직였나 했더니만. 자네 때문에 정신이 없었나보군.”
현무단주가 입을 꾹 다문 채 열지 않았다.
현무단을 포박하던 전 백호단 사람들은 꽤 착잡한 표정이었다.
한때 제 동료였던 이들을 포박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현무단주는 그나마 단주인 점을 예우해 내공을 쓸 수 없게 점혈만 하고 묶진 않았다.
아버지가 현무단주를 향해 물었다.
“왜 그랬나? 자네가 왜······ 이런 일에 협조했지?”
현무단주의 검법에 녹아 있는 백리 세가의 검법을 보아, 현무단주는 아버지와 꽤 오랜 기간 대련을 반복하며 수련한 것을 알수 있었다.
즉, 두 분은 꽤 친밀한 사이였다.
현무단주가 딱딱하게 답했다.
“맹주님께 받은 은혜에 보답했을 뿐이오.”
“할 말은 그것뿐인가?”
“그래.”
아버지의 표정은 평소와 다름없었지만, 나는 알았다. 아버지가 꽤 상처받았다는 사실을.
나는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아, 색마가 훔친 무공을 나눠받은 걸 보통 은혜라고 하나요?”
이것이 마치 역린이었던 듯 현무단주가 버럭 소리쳤다.
“네깟게 뭘 알겠느냐! 팔자 좋게 태어난 주제에.”
“오.”
가만히 대화를 듣던 남궁완 아저씨가 빽 소리쳤다.
“넌 뭘 감탄하고 있어!”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뇨. 저한테 팔자 좋게 태어났다고 하는 사람 처음 봐서요.”
“뭐?”
나는 축축한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말했다.
“다들 그러던데. 제 어미가 누군지도 모르고 내공 폐인까지 돼서 팔자가 사납다고.”
“······.”
현무단주가 입을 조가비처럼 꾹 다물었다. 그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뒤늦게 깨달았다.
‘자, 자, 잠깐만. 여기 아버지도 계셨지?’
너무 생각없이 던지고 봤다.
나는 원래 그러려고 했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물론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하지만요. 이런 아버지를 두었다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팔자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죠, 아버지?”
말하며 아버지를 최대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
아버지는 이곳에 오신 후 내내 내게 살짝 화가 나 있었다. 다행히도 내 말에 어처구니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좀 전에 한 내 말을 담아 두거나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현무단주를 향해 다시 말을 이었다.
“현무단주께서는 불쌍한 아녀자들을 멋대로 납치하고 핍박하고······ 진실이 밝혀질 것 같자 죽여서 입을 막으려 들고.”
“······.”
“그러려고 검을 익히셨나 봐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보통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
“마두요. 당신들이 처단해야 한다고 소리치던 그 마두.”
남궁완 아저씨의 미소가 아주 흐믓했다.
“얹힌 게 다 내려가는 기분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