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69)
269화
만신창이었던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온몸의 모든 부상이 씻은듯이 나아 있었다. 백회혈 부근의 작렬하는 듯한 통증만 아니라면 당장 만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맞은편에선 태고 진인이 나를 꿰뚫을 것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압박감이 느껴져야 마땅하나 이번에는 달랐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공손 총사였다. 그는 거의 실성한 듯한 낯이었다.
그 말을 시작으로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퍼져 나갔다.
공손 총사가 마치 동아줄을 잡듯 물었다.
“태고 진인, 이, 이, 이, 어찌 된 일입니까?”
“······빈도도 모르는 일이오.”
“그럼 대체······!”
그때 태고 진인이 내게서 시선을 떼며 관중석 한 곳을 바라보았다.
나와 할아버지의 시선 또한 그곳으로 향했다.
이윽고 비단 무복의 중년 사내가 한 무리의 사람들을 이끌고 위풍당당하게 걸어 왔다. 위지백이었다.
위가의 무사들, 일부 맹원들, 그리고 같이 축출된 동맹 세력도 함께였다. 저팔에 붕대를 감고 있는 관 문주는 위 맹주의 산장을 탈출할 때 습격한 자였다.
남궁완 아저씨를 비롯해 나와 남궁류청을 죽이려 한 일로 무림맹 뇌옥에 갇혀 있었는데······ 위지백이 풀어 낸 모양이었다.
“위 맹주다!”
“멀쩡하잖아? 그럼 왜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거지?이제 와 나타나는 것은 뭐고?”
“이상하오.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지 않소?”
시상식 단상 앞까지 온 위지백이 목함을 바라보며 말했다.
“역시 이렇게 되었군.”
공손 총사가 말했다.
“위 가주,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근신하지 않고, 라는 말이 절로 들렸다.
공손방을 바라본 위지백이 조소하듯 비웃었다.
“내가 못 올 곳이라도 온 듯한 반응이오?”
“크흠.”
“위가주!”
다들 헛기침을 하며 기분 나쁜 기색을 내보였다. 그리고 소림 승려가 대표로 나서듯 말했다.
“아미타불. 위 가주, 우리 모두 합의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거늘, 어찌 된 일이오?”
그때 태고 진인이 말했다.
“역시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 무슨 뜻이오?”
위지백이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는 저 계집에게 물어보시지요.”
시선이 내게 몰렸다.
나는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모르겠는데.”
” ! ”
내 짧은 대답에 주변이 화들짝 놀라는 게 느껴졌다.
나는 멈추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내가 왜 인간 말종의 말을 듣나?”
나는 보란 듯한 심드렁한 태도를 내보였다. 위계와 배분을 중시하는 강호다. 위가주의 눈이 당연히 뒤집혔다.
“네 놈!”
분노한 위지백에게서 장풍 같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거의 기세만으로도 압살할 수 있을 만한 위협이었다.
쿵!
할아버지가 한 발 내리찍는 순간 나를 감싸며 위지백과 맞부딪친 기파에 강한 돌풍이 주변을 휩쓸었다.
“으앗!”
“헉!”
갑작스러운 바람에 이미 몇 번 당한 군중은 화들짝 놀라며 거의 바닥에 엎드렸다.
그러면서도 도망치는 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천하 강자들의 충돌.
평생 한 번 볼까말까 한 것이다.
비무 대회와도 달랐다.
그들 위로 목소리가 울렸다.
“어딜 감히 내 앞에서 내 손녀를 위협하느냐?”
“백리 세가주······.”
위지백이 이를 아득 물었다.
내 머리에 아직 남아 있는 천마지보의 공능이 위지백의 당황한 감정을 느끼게 해 주었다. 위지백의 계획에 할아버지가 이 자리에 있는 건 없던 것이다.
일촉즉발의 분위기에 다들 마른 침만 삼킬 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네게 묻고 싶은 게 있었느니라.”
할아버지가 사납게 웃었다.
“가문의 배신자, 백리의란. 그 아이를 어디다 숨겼느냐?”
나는 살짝 놀라며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네가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다 알고 왔느니.”
“숨기다니! 하나 위가의 손님으로 있었던 건 맞소.”
위지백의 가문에 숨어 있었다니. 찾을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왜 여기에 오셨는지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근신 중이라지만, 근신이 위지백의 무위를 줄여 주는 건 아니었다. 아버지의 힘으로 위가를 수색할 수는 없었으리라.
그런데 위지백의 태도는 오히려 당당했다.
“내 기이한 이야기를 들어서 말이오. 아마 백리 세가주도 듣는다면 매우 놀랄 것이오.”
나는 재빨리 끼어들었다.
“위 가주, 괜찮으세요? 우리 고모 취미가 독살인데.”
화들짝 놀란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것을 느끼며 말을 이었다.
“내가 다섯 살 때 고모가 탄 독약에 죽을 뻔했고, 큰오라버니도 고모 독에 죽을 뻔했거든요.”
“······!”
경악이 좌중을 감쌌다.
몇몇 대방파 같은 경우는 이미 알고 있을 정보였으나, 대다수는 모르는 일.
백리의란이 한 짓은 가문의 치부, 소문을 내 봤자 제 얼굴에 침 뱉기일 뿐이었고, 게다가 백리명과 내 몸 상태도 연관된 비밀이기에 소문나지 않도록했다.
뭘 꾸미는지 알 수 없으나······
고모가 얽혔다면 분명 절대 우리에게 유리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타이밍을 잡은 데에도 이유가 있을 터.
‘그렇다면 선공필승이지.’
고모로 무슨 짓을 꾸미더라도 사람들이 의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소곤거리는 목소리들이 들렸다.
“세상에! 그래서 갑자기 쫓겨났던 거였소? 왠지 이상하더라니. 대체 무슨 이유로 쫓겨났나 했더니만. 쯧쯧.”
“그런 악종을 왜 손님으로 받아준단 말이오? 위 맹주도 무슨 생각인지.”
“왜 예전에 그런 소문이 돌지 않았소? 백리의란이 마교와 얽혔으니, 백리 세가가 마교의 끄나풀이라고. 내 알기로는 그 소문이 가장 먼저 흘러나온 곳이 벽가던데······.”
순식간에 위지백을 바라보는 시선들에 의심이 섞였다.
위지백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놀란 낯이 아니었다. 다만 이 자리에서 그 사실을 왜 밝혔냐는 듯 나를 때려죽이고 싶은 눈빛이었다.
그때 호통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백리연, 그만하지 못하겠느냐!”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가 나무라듯 말을 이었다.
“가문의 일을 감히 멋대로 떠벌리다니!”
나는 살짝 억울하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할아버지는 정말 매서운 기세였지만 나는 알았다. 진짜로 화내는 것이 아님을.
말을 맞춘 적 없지만······ 똑똑한 사람들끼리는 눈만 봐도 서로의 뜻을 아는 법이다.
어느새 다가온 아버지가 나를 위로하듯 어깨에 살짝 손을 올렸다. 왠지 아버지는 내가 정말 혼났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지금 설명할 수 없기에 고개만 숙였다. 어쟀든 아버지의 모습까지 합쳐서 완벽한 장면이 탄생했다.
할아버지가 말했다.
“백리의란을 내놓거라. 내 가문의 일이다. 네깟 놈이 끼어들 계제가 아니란 거지. ”
명백하게 깔보는 태도에 위지백의 얼굴이 불그죽죽해졌다.
천하 강자에 오르고 무림맹 맹주가 된 이후로 언제 이렇게 무시를 당해 봤겠는가?
같은 천하 강자에 올았더라도 지금 나는 알 수 있었다.
위지백은 내 할아버지를 당할 수 없다.
분명한 격차가 느껴졌다. 그리고 천하 강자인 위지백이 이를 모를 리 없었다.
그때였다. 숨 막히는 둘의 대치에 또 다른 기운이 밀려들었다.
맑은 기운은 가볍게 느껴질 법도 했으나 그 기세만큼은 절대 밀리지 않았다. 언제든 날 선 검처럼 벼릴 수 있는 공세가 느껴졌다.
“둘 다 그만하시지요.”
태고 진인이었다.
태고 진인이 위지백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일로 왔는지 들어는 보지요.”
할아버지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위지백이 보란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핫! 역시 태고 진인과는 말이 통할 줄 알았습니다.”
태고 진인이 무표정하게 위지백을 보았다.
“위 가주, 내가 자네의 편을 든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네만.”
경멸하는 눈빛에 이를 악문 위지백이 뒤쪽을 향해 말했다.
“언제까지 숨어 있을 생각인지?”
“······.”
위지백과 함께 온 동맹 사람들이 모인 방향이었다.
“당장 나오도록!”
한 여인이 그들 사이에서 거의 끌어 내쳐지듯 튕겨 나왔다.
몇 년간 보지 못했지만 바로 알아볼 수 있는 얼굴.
백리의란이었다.
백리리의 말처럼 정말 변한 곳 하나 없었다.
“백리의란 아니냐? 아주······ 오랜만이구나.”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으르렁거리는 듯싶었다.
마지막에 고모의 단전을 폐하고 쫓아낼 때 남아 있던 혈육으로서의 마지막 온정조차 모두 사라진 듯 보였다.
할아버지에게서 풍겨 나오는 위협적인 기백에 고모의 입술이 달달 떨렸다.
어떠한 위협도 닿지 않도록 나를 보호해 주던 할아버지와 달리 위지백은 고모를 향해 아무런 보호도 해 주지 않았다.
그리고 내 어깨를 붙잡은 아버지의 손에 점차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슬슬 통증이 느껴질 정도에 나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왜 그러시는 거지?’
그때였다.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하던 고모의 눈동자가 아버지를 보았다. 그 옆에 선 나도 함께.
고모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눈빛이 증오가 가득했다.
고모가 갑자기 이쪽을 향해 손가락질 했다.
“백리의강! 선량한 탈을 뒤집어쓰고 모두를 속이니 좋더냐? 세상 모든 게 다 네 뜻대로 흘러가는 것 같지? 하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
저 미친 사람이 내 아버지께 뭐라는 거야?
내가 입을 열기 전 고모가 소리쳤다.
“네 딸, 어미가 누구더냐?”
순간 나는 하려던 말을 잊어버렸다.
갑자기 여기서 내 어머니 얘기가 왜 나와?
나는 아버지를 보았다.
이제는 아버지가 거의 내 어깨를 부서트릴 듯 부여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통증도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고모가 소리쳤다.
“당연히 말할 수 없겠지! 천마의 딸이니까!”
고모가 정확히 나를 가리켰다.
“저 계집의 어미는 천마의 딸입니다! 저 계집은 천마의 손녀지요!”
주변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천마의 혈육이 백도 무림 대회의 우승자라니! 통탄할 지경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