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75)
75화
처소로 들어서자마자 야율이 기다렸다는 듯 내게 수건을 내밀었다.
천산염제가 오면 야율은 자리를 피해 버렸다. 혹시나 다시 제자 제안을 해서 귀찮게 굴까 봐 피하는 것이 뻔히 보였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죄책감이 가득했다.
아버지가 나와 야율을 보고 먼저 처소 안쪽으로 향했다.
나는 야율에게 물었다.
“잘하고 있어?”
“······하고 있어.”
천산염제는 야율에게 양의 기운을 억누르는 운기법과 처방을 알려 주었다.
이걸 한다고 극양지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악화하는 걸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다 하였다.
목숨 줄을 연장한 건데도 야율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나 때문이었다.
야율은 천산염제가 운기법과 처방을 알려 준 이유가 내가 천산염제에게 금나수를 배우는 조건으로 얻어 온 거라고 믿고 있었다.
저렇게 우울한 낯을 볼 때마다 내가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사실은 그게 아니야······.’
내가 금나수를 배우든 배우지 않든 천산염제는 야율에게 운기법과 처방을 알려 주었을 터다.
겨우 찾은 극양지체를 죽게 둘 리 없을 테니까.
하지만 이제 와 사실을 말하기엔 늦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저 괜찮다는 듯 웃었다.
그 모습이 오히려 야율에게 더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 * *
“가주님, 천산염제께서 오셨습니다.”
“들여라.”
남궁무철은 뒷짐을 진 채 돌아보지 않았다.
바로 뒤까지 온 천산염제가 말했다.
“뭘 그리 보나 했더니만. 왜 몸이 근질근질 한가?”
“왜, 그렇다면 상대해 주겠나?”
“다 태워도 된다면 얼마든지.”
“그건 아니 되지.”
그러고도 장식대의 검에 시선을 고정하던 남궁무철이 말했다.
“근래 마교가 조용하네.”
“좋은 일이지만 이상한 일이군.”
“그래. 대체 무얼 준비하고 있는지····.”
“맹주 자리도 내려 놓은 지 오래거늘 아직도 신경 쓰는가.”
고개를 저은 남궁무철이 몸을 돌렸다.
“바람이나 쐬지.”
천산염제와 함께 방을 나선 남궁무철이 솟구쳐 올라 지붕을 밟고 몇 걸음만에 호수 근방의 2층 전각에 도착했다.
그 뒤를 천산염제가 따랐다.
“연이는 잘 따라오나?”
“······나쁘진 않소.”
남궁무철의 눈썹이 놀란 듯 치켜 올라갔다.
“오, 나쁘지 않다? 자네에게 그런 평을 듣다니.”
“쓸데없는 소리 마십시오.”
“제자로 들일 생각인가?”
“극양지체도 아닌데 어찌.”
“극양지체면 들였을 거라 들리네만.”
“······.”
남궁무철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마을 쓸 곳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 연이 그 아이는 은혜를 알고 심성이 곧으니 자네에게도 좋은 일일세.”
“허, 마치 제 손녀처럼 말씀하시는구려?”
“그러게. 아쉽군.”
남궁무철을 홱 돌아본 천산염제가 눈을 부라렸다.
“내가 먼저 찜했소. 그 아이에게 손 뻗을 생각일랑 꿈도 꾸지 마십시오.”
“제자 아니라며?”
“흥.”
천산염제가 콧방귀 끼고 말을 이었다.
“형님이 지금 그 아이 신경 쓸때요?
내 들은 바론 형님 손자녀석에게 문제가 있다던데. 검기를 다시 못 낸다면서요?”
“음.”
남궁무철이 침음성을 냈다.
“그럴 수가 있나? 내가 처음 검기를 만들었을 땐 너무 오래돼 기억도 가물가물하군.”
처음 검기를 만들어 낸 것을 벽을 넘었다고 표현하곤 했다.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는 뜻이었다.
처음 벽을 넘는 것이 매우 어려울 뿐.
넘고 나서 다시 뒤로 후퇴하는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남궁류청이 그 상태였다.
한번 검기를 만들었으니 이제 진검에 검기를 만들며 익숙해져야 할 시기.
하나 남궁류청은 검기를 다시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듣도보도 못한 상황이었다.
살며 단 한 번도 실패한 적 없는 남궁류청의 반응이 어떠할지는 굳이 알아보지 않아도 될 터였다.
“류청, 그 아이도 고민이 크지.”
남궁무철의 시선 끝에 연무장 위를 펄럭이는 무명천이 닿았다.
* * *
몇 번 왔다고 연무장의 모습이 익숙했다. 그리고 익숙함 사이에서 달라진 점을 몇 가지 찾을 수 있었다.
볕이 직사광선으로 내리쬐지 않게 하늘에 무명 천막을 쳐 놓은 것이다.
‘오, 좋은데! 눈부시진 않겠군.’
오늘 연무장에 나온 것은 아버지가 남궁류청과 지도 대련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서하령은 없었다.
서하령은 내가 창궁관에 들어가고 얼마 뒤에 수향문에 잠시 돌아갔다. 어머니 생신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령이 있었으면 좋아했을 텐데.’
연무장 반대편에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나타났다. 남궁류청이었다.
남궁류청도 창궁관에 들어가기전이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런데 얼굴이 왜 저래?’
그동안 굶기라도 했는지 또 살이 무척 빠져 있었다. 안색도 나쁘고, 눈가에 그늘도 짙은 것이 며칠 제대로 자지 못한 낯이었다.
나는 놀란 속을 숨기며 남궁류청을 향해 다가갔다.
“오랜만이야.”
남궁류청이 나를 흘끔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반응이 매우 건성이었다.
순간 내가 남궁류청과 마지막에 헤어질 때 싸우기라도 했나 기억을 더음어 볼 정도였다.
‘음, 아니야. 안 싸웠는데.’
확신하고 다시 말을 걸었다.
“그동안 왜 한 번도 안 왔어?
창궁관에서 나온 지도 꽤 됐는데.”
“우리 약조는 네 손이 나을 때까지 아니었어? 내가 널 왜 보러 가야하지?”
“그냥 잘 지냈는지, 얼굴 보는 거지.
얘기도 하고······.”
“뭐 하러?”
“······.”
내 말문을 막은 남궁류청은 태연히 자신의 소맷자락을 정돈했다.
‘이 자식이······ 왜 또 병이 도졌지?’
남궁류청의 지병이 다시 도진 모양이었다.
대충 내가 정한 지병의 이름은
‘세상을 따 시키는 병’ 이었다.
고개를 조금 틀자 남궁류청 뒤쪽에 거리를 두고 서 계신 남궁완 아저씨와 심 부관이 보였다.
남궁완 아저씨의 얼굴은 붉으락 푸르락 터질 것 같았고, 심 부관은 안색이 창백했다. 그다지 크게 얘기하진 않았지만, 고수시니 당연히 대화를 모두 들었을 터였다.
당장 호통치고 싶은 걸 참는 표정이었다.
‘음, 세상과 거리 두는 아들 때문에 참 고생이 많으셔.’
남궁완 아저씨를 위해 남궁류청에게 한 번 더 말을 건네기로 했다.
“나는 가끔 네 생각나서 보고 싶던데.”
남궁류청이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살짝 놀란 눈빛이 나를 향했다.
나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는 나 안 보고 싶었어?”
“······난 수련하느라 바빠.”
남궁류청이 눈가를 찡그리며 잘라냈다.
나는 팔짱을 끼곤 남궁류청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상한데.
왜 이렇게 날 서 있는 거야?’
나는 문득 떠오른 사실에 다시 입을 열었다.
“류······ 아니, 공자.”
무심코 이름을 부를 뻔했다.
“뭐 고민거리라도 있어?”
남궁류청이 눈썹을 움찔 떨었다.
있나 보네.
남궁류청은 고민거리가 있을 때마다 매우 예민해졌다. 보통 그 고민거리는 검에 관한 것이었고.
“······네가 신경 쓸 일 아니야.”
“너무 무리하지 마.”
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뒤돌아 연무장 가장자리로 향했다.
‘참, 어렵다 어려워.’
내 손 때문에 붙어 있던 짧은 시간.
남궁류청이 나를 친우로 여기기엔 모자랐던 모양이었다.
솔직히 저 날 선 태도에 서운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크게 실망하지도 않았다. 쉽게 친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으니까.
이를 모두 지켜봤을 아버지가 내게 말했다.
“······괜찮으냐?”
난 말없이 아버지 품에 안겼다.
아버지가 내 등을 도닥였다.
연무장 반대편에서 남궁완이 남궁류청을 향해 무언가 말하고 계셨다.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이 나무라는 듯 보였지만, 남궁류청은 아버지의 호통에도 어딘가 정신이 팔린 듯한 태도를 보였다.
‘저래서야 오늘 대련에 집중할 순 있으려나?’
아버지가 내 어깨를 잡고 살짝 밀어냈다. 이제 대련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럼 여기서 지켜보거라.”
“네.”
팔락이는 옷자락이 멀어졌다.
내가 창궁관에 들어가 있던 새 남궁류청과 아버지의 통성명도 진즉에 끝났다 들었다.
‘그러고 보니 원래 전개면 아버지가 남궁류청을 제자로 받아들일 시긴데······.’
아직 그런 말은 없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둘이 주고받는 목소리가 들렸다.
“검기를 만들 수 있다고 들었다.
네 또래에 그 정도 경지를 이룬 이는 없을 터. 나도 한번 견식하고 싶구나. 진검을 들거라.”
“깨달음이 미진하여 다시 내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음?”
저게 무슨 소리야?
나 또한 아버지를 따라 남궁류청을 의아하게 보았다.
‘이상하네.’
남궁류청의 검기에 베였던 내 손바닥이 아물고도 남은 시간이었다.
그동안 검기를 다시 만들지 못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