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dicate the world to my Russia RAW novel - Chapter (182)
074. 폭주하는 세계(1)
1.
세상이 혼란스러우면 그걸 이용해 먹으려는 무리도 날뛰기 마련.
영국 역시도 마찬가지였으나 상황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갔다.
‘기득권의 도움을 받아 단숨에 런던을 장악하려던 게 아니었나? 갑자기 왜 다 죽여버리겠다는 거야?’
‘그러게. 이건 너무 무리수 아닌가!’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던 당원들은 하나둘씩 염려의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의원님. 비록 혁명이 성공리에 진행되고 있다곤 하나 국가 하나를 집어삼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무런 기반도 없이 무작정 머리만 들이밀다가는 큰 낭패를 볼 겁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시스템을 유지할 최소한의 인력은 남겨놓는 게 상식적이잖습니까.”
당원들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무작정 혁명부터 진행한 데에는 미리 보험을 들어두었다는 점도 한몫했으니까.
하지만 제이콥은 그보다 본질적인 것을 꿰뚫어 보았다.
“그러기엔 이미 늦었다. 여왕과 고위 귀족들이 탈출에 성공해버린 이상 우리는 존재 가치를 증명하거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으면 안 돼. 그 사실을 어찌 모른단 말인가!”
“설마 그들이 무리하게 개입하려 들겠습니까?”
“허. 안일한 소리도 정도껏 하거라. 러시아 제국의 도움을 받아 캐나다에서 다시 일어선다면 식민지 총독들은 누구의 편을 들겠느냐? 게다가 개혁파 놈들이 이 상황을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지.”
“그럼 저희 등에 칼이라도 꽂을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당연하지. 먹을 수 없다면 차라리 식탁을 엎어버리는 게 사람의 본성이니까. 이제 영국은 예전의 4토막, 어쩌면 그 이상으로 분열될 가능성이 크다.”
“…..!”
제이콥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혁명만 이뤄낸다면 모든 게 자리를 잡을 줄 알았건만. 그게 순진한 착각에 불과했단 말인가?’
‘개혁파 놈들이 힘을 합치기는커녕 훼방을 놓을 거라니. 앞으로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하는가.’
당원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가운데.
그들의 귓가로 제이콥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이제부터 나를 위원장이라 불러라.”
“그 말씀은 설마……”
“그래. 오늘부로 내가 유일한 지도자가 되어 당을 이끌어나가겠다. 다른 놈들이 뭐라 지껄이든 신경 쓰지 말고 오직 내 명만 따르거라. 내부의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혁명을 완수하는 게 우선이니!”
적어도 이곳에 모인 자들은 어떤 상황에도 데리고 가겠노라!
속뜻을 알아차린 당원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럼 바로 작전을 수행하겠습니다.”
“저들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단번에 쓸어버리겠습니다.”
일반 당원에서 위원장의 측근으로 승격한 그들은 런던 내 모든 왕족과 귀족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그러자 텅텅 비어버린 궁전에 하나둘씩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보게.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커흠. 이거 민망하군,”
개중에는 얼굴을 가리기 위해 가면을 쓰거나 두꺼운 외투로 몸을 감싼 이들이 많았다.
여왕을 따라간다는 최후의 선택지마저 저버리고 국가를 배신한 자들.
그 낙인에서 벗어나기엔 아직 세상이 흉흉했으므로.
다들 쭈뼛거리며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 무렵.
멀찍이서 제이콥의 얼굴이 나타났다.
“어어. 저기 주인공이 납셨군.”
“혁명은 어떻게 됐나? 듣기론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던데?”
이미 소식을 들은 자들은 불안한 목소리로 물음을 던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사방에서 무장한 당원들이 튀어나오자 뻣뻣하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저항하지 마라! 너희들은 죽은 목숨이다!”
“좋게 좋게 가자고. 알겠어?”
장장 이백 명에 달하는 당원은 수십 명에 불과한 그들을 겹겹이 에워싸며 포위망을 형성했다.
난데없이 총칼이 들이밀어지자 왕족과 귀족들은 발악을 시도했다.
“이, 이럴 수가. 이건 약속과 다르잖나!”
“다른 건 몰라도 아내와 아이만은 살려주게. 내가 이렇게 빌겠네. 뭐든 협조할 테니 제발!”
몇몇 귀족들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욕심에 눈이 멀고 혁명의 이상에 휩싸인 당원들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지금껏 너희들이 누려온 것들의 대가라고 생각해라.”
“집을 털러 간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걸 신경 쓰겠느냐. 의식이 돌아올 즈음이면 모든 게 끝나있을 거다.”
당원들은 자살을 막기 위해 개머리판으로 기절시키고 입에 재갈까지 물렸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제이콥은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준비됐나? 그럼 시민들을 만나러 가자.”
“예. 미리 준비해두었습니다.”
런던 중심부의 광장 안.
단두대가 설치되고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린 죄인들이 줄줄이 등장하자 시민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단상에 오른 제이콥은 큰 소리로 외쳤다.
“모두 들으라! 여기 끌려온 죄인들은 나라가 혼란한 틈을 타 러시아 제국과 내통하려던 무리다. 죄다 왕족과 귀족뿐이란 사실만 봐도 얼마나 추악한지 알 수 있지. 이런 잔재를 남겨두고 어찌 새로운 세상을 열겠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가뜩이나 불안한 정국 속.
돌을 던질 표적을 발견한 시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어쩐지 나라 꼴이 말도 아니더니만. 저런 역적들이 있어서 문제였구나.”
“더러운 놈들. 감히 나라를 팔아먹으려 들어?”
시민들의 분노를 한 몸에 받았음에도 그들은 아무런 대꾸조차 할 수 없었다.
약에 취해 비틀비틀 움직이다 하나둘씩 목이 떨어져 나갈 무렵.
측근 중 하나가 물음을 던졌다.
“위원장님. 처형이 끝나고 나선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항구는 이미 러시아 제국의 손아귀에 넘어가 버렸는데요.”
그 말에 제이콥의 눈이 번뜩였다.
“러시아군은 강하다. 어쩌면 우리와 그들 사이에는 영원히 넘지 못할 간격이 존재할지도 모르지. 이대로 싸우게 된다면 간신히 혁명에 성공한 정권은 붕괴할 것이요, 실체를 알게 된 시민들은 또다시 들고 일어서겠지.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
지독하게 현실적이면서도 확실하게 선을 긋는 목소리에 당원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제이콥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에 순응해야 한다면 혁명을 시도한 이유가 없잖느냐! 나는 시민들을 데리고 항구로 향할 것이다. 그곳에서 제대로 담판을 짓겠노라!”
‘시민들을 고기 방패로 세우겠다는 건가?’
‘참으로 놀라운 발상이로다. 이거라면 위기를 극복하는 것을 넘어 단번에 민심을 휘어잡을 수 있겠어,’
당원들의 눈빛이 달라진 것을 확인한 제이콥은 다시 단상 위로 올라갔다.
그러곤 피로 흥건한 처형장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이로써 처형은 모두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지. 지금도 러시아군이 항구를 무단으로 점거하고 악의 축인 여왕을 빼돌렸다고 한다.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게 나라를 위한 일인가? 아니면 진정으로 무서운 게 무엇인지 보여주러 떠나야 하는 것인가!”
지난 세월 동안 세뇌해 온 덕분일까.
어느덧 왕정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차게 된 시민들은 열띤 목소리로 외쳤다.
“와아아아! 우리 힘으로 나라를 지키자!”
“모두 일어납시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제대로 못을 박아둡시다!”
광장에 모인 수만 명의 시민은 이제 항구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대영제국의 영원한 숙적이자 경쟁자였던 러시아군을 쫓아내기 위해!
2.
막심이 이끄는 함대가 전부 철수한 뒤.
바닷바람을 맞던 토마스는 넌지시 물음을 던졌다.
“저희가 예상한 대로 런던에서는 처형이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저희는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이대로 군대를 이끌고 런던을 쓸어버리면 피해는 크더라도 진압하는 데 큰 문제는 없을 듯한데요.”
막심이 남기고 간 정예군과 함선들만 활용하더라도 혁명파에게 지대한 타격을 입힐 수 있으리라.
하지만 세르게이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폐하께서 영국 공산당이 혁명을 일으키게 놔둔 건 저들은 무슨 짓을 해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선례를 남기기 위함이다. 지금보다 더 날뛰게 놔두지 않으면 곤란하지. 게다가 시민들을 데리고 여기까지 오면 어찌 대응할 생각이냐?”
연륜이 쌓여서 그런지 세르게이는 판을 크고 넓게 읽을 줄 알았다.
그에 토마스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부의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외부의 적을 만들겠다니.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로군.’
시민들의 목숨을 권력을 위해 바치는 것은 흔히 있어 온 일이었다.
제이콥의 얼굴에는 난감한 기색이 어렸다.
“만약 군대를 이끌고 시민들과 대치하면 비난의 화살은 제국으로 향하게 될 겁니다. 그렇다고 어떠한 교전도 없이 물러난다면 저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꼴이 되겠지요.”
그러나 세르게이의 얼굴에는 묘한 흥분마저 어렸다.
“지금은 저들이 원하는 대로 해줄 수밖에. 그렇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 나름대로 풀어갈 방법쯤이야 얼마든지 있으니까.”
“풀어갈 방법이라고 하면 서로 다른 세력 사이에 갈등을 유발하겠다는 겁니까?”
“그래. 빅토리아 여왕이 살아남은 이상 왕당파와 개혁파는 자신들의 존재의의를 내세울 수 있게 됐지. 여기에 아일랜드에서 제국에 우호적인 세력을 만들어 네 갈래로 갈라놓으면 폐하께서 구상하신 영국사분지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
제이콥은 순간 머리에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큰 충격을 받았다.
‘아일랜드라. 그래, 이 모든 게 시작된 게 아일랜드였지. 하지만 어디서도 그쪽을 대변하는 자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동안 영국 공산당은 다양한 인종, 이민자들을 포섭해왔다.
그렇다고 해도 당의 중심에서 주요 직책을 맡고 행동해온 자들은 어디까지나 본토 태생의 영국인들뿐이었다.
어느덧 세르게이의 눈빛은 서늘한 기운을 발했다.
“심지어 이번 혁명을 주도한 수뇌부들도 런던을 공략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지 않더냐? 아일랜드에서 시작된 시위는 그저 마중물이었을 뿐, 정작 그들에겐 별달리 주어진 게 없지.”
“허어. 그건 좀 심각하군요. 하긴 나라의 사정을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요.”
영국은 나폴레옹 전쟁 이전부터 대량의 식량을 수입해오던 나라였다.
여기에 감자역병까지 덮친 이상 자급자족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세르게이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폐하께서는 다른 북유럽 국가들의 협조를 받아 미리 식량을 옮겨두셨다. 내가 요청만 한다면 수백만 명이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감자와 밀 따위가 아일랜드에 도착할 것이다. 그걸 본 아일랜드인들은 뭐라 생각하겠느냐?”
혁명이랍시고 말만 번드르르하게 지껄이는 놈들과 진짜 식량을 코앞까지 가져다주는 놈.
“둘 다 미운 놈이라면 당연히 후자를 택하겠군요.”
“아니지. 그냥 미운 놈으로 남으면 곤란하지.”
“그렇다면 설마 그들을 포섭할 계획이십니까?”
“그래. 청나라, 북아메리카, 오스만 제국 등. 지금껏 예행연습은 숱하게 해왔잖느냐?”
세르게이의 입에 걸린 미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진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