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dicate the world to my Russia RAW novel - Chapter (93)
037. 워털루에서 제물을 바치다(1)
1.
1815년 3월, 나폴레옹이 파리로 돌아온 이후.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세상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특히나 혼란스러운 정치판 속에서 이득을 취하려는 자들은 나폴레옹을 물고 늘어지며 연신 비난을 퍼부었다.
“평화를 되찾은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건만 다시 소란을 일으키다니. 제대로 된 이유를 대지 못한다면 그대는 옥좌에 앉을 자격이 없소!”
“영원토록 환영받지 못할 찬탈자여! 프랑스를 또다시 잿더미로 만들려는 건가!”
하지만 나폴레옹은 원 역사처럼 헌법을 뜯어고쳐 자유주의자들의 환심을 사지도, 친영파 인사들을 솎아내어 정국을 안정시키지도 않았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오직 전쟁뿐.
그 외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근위대의 호위를 받으며 시내와 파리 주변 지역으로 향한 나폴레옹은 매일같이 유세에 나섰다.
“프랑스 백성들이여, 들으라. 1년 반 전, 대프랑스 동맹에 온 국토가 짓밟힌 뒤. 그들은 부르봉 왕조를 부활시켜 루이 18세라는 머저리를 왕으로 만들었지. 하지만 외압에 의해 세워진 정권이 얼마나 끔찍한지 지난 1년 반 동안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원 역사보다 더 많은 기간을 시달린 탓일까.
루이 18세의 실정으로 지칠 대로 지친 시민들은 그의 말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옳소! 이게 나라냐!”
”삶은 더 궁핍해졌고 자존심은 밑바닥까지 처박혔으니.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지!“
나폴레옹은 사람들의 감정이 격앙되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이제 프랑스 민족은 주권을 가질 자격이 있다는 것조차 증명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나는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하고 다시 위대하게 만들고자 돌아온 것이니! 그 시작은 동맹국의 선봉, 영국과의 전투가 되리라!“
“와아아아! 나서서 싸우자!”
“우리 손으로 프랑스를 지키는 거다!”
의회와 귀족들이 뭐라고 떠들어대든 나폴레옹은 병사를 모으고 사기를 북돋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 모습에 나폴레옹의 오래된 전우, 다부는 눈시울을 붉혔다.
“후우. 못난 우리 때문에 폐하께서 고생하시는구나.”
동맹군에 포로로 붙잡혀 곤욕을 치러야 했던 네 원수도 도저히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크흑! 폐하의 마지막 전투를 함께하겠다. 설령 그곳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야!”
쥐노, 그루시를 비롯해 다시 모인 장군들 역시 투지를 불태웠다.
“간악한 영국 놈들로부터 프랑스를 수호합시다!”
“프랑스가 아직 건재하다는 걸 온 유럽에 보여주는 겁니다!”
그렇게 나폴레옹과 추종자들이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는 동안.
졸지에 영국-네덜란드-벨기에 연합군을 이끌고 전장에 나서게 된 아서 웰즐리 원수는 참담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빌어먹을 놈들! 아무리 프랑스가 위세가 꺾였다고 해도 나폴레옹은 나폴레옹이다. 그런데 우리 보고 단독으로 상대하라고? 이러려고 나를 여기까지 부른 것이냐!”
지난 일 년 반 동안 영국군은 유럽에 주둔하는 병력을 꾸준히 줄여왔다.
여기에는 전쟁 따윈 일어날 리 없다는 캐슬레이의 낙관과 미국과의 전쟁에 정신이 팔린 의회의 결단이 큰 영향을 주었다.
웰즐리의 눈치를 보던 부관들은 억지로 입을 열었다.
“그래도 빈 회의에서 유럽연합이 창설되면 병력을 모으고 부대를 배치하는 데 드는 시간이 배 이상 줄어들 겁니다.”
“더구나 나폴레옹의 지배를 받던 네덜란드, 벨기에 민족도 참전하잖습니까. 기껏 얻은 자유를 잃고 싶진 않을 테니 최선을 다해 싸울 겁니다.”
그들에게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주고 민족주의로 똘똘 뭉치게 한 이유는 전부 프랑스를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웰링턴 역시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이들에게 기대를 걸 수밖에 없나.’
때마침 네덜란드의 지도자, 오라녜 공 빌럼 2세가 찾아와 나폴레옹을 상대할 비책을 내놓았다.
“프랑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벨기에에서 나폴레옹의 진격을 막는 게 어떻겠습니까? 독일 연방과도 붙어있으니 프로이센의 조력을 기대해볼 수 있을 텐데요.”
“좋은 생각이군. 벨기에로 향할 수밖에 없도록 미리 압박해두지.”
웰즐리는 곧바로 파리에 전령을 보내 동맹국의 선전포고를 알렸다.
실제로 프로이센군의 움직임까지 확인되자 그것은 더 이상 위협이 아닌 현실이 되었다.
벨기에 워털루에 사령부를 세운 웰즐리는 주변 지역을 면밀하게 살피며 전투에 적합한 지형을 찾기 위해 고심했다.
“마침 옆으로 쭉 늘어선 언덕이 있군. 주변의 농장들을 요새로 개조하여 프랑스군의 움직임을 방해해도 괜찮겠어.”
그와 동시에 최대한 많은 병력을 끌어모으기 위해 노력했다.
‘나폴레옹에게 수적 우위를 넘겨주는 순간 전투는 훨씬 더 어려워질 테니까.’
벨기에를 포함한 네덜란드 연합왕국에서 징집.
하노버 왕국, 브라운슈마이크 공국, 나사우 공국에서 지원군 합류.
여기에 유럽에 파병된 영국군을 최대한 긁어모으고 외인부대까지 동원하니 간신히 11만 명쯤 되는 군대를 조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역부족이지. 보급로, 영국해협으로 이어지는 퇴로 등 지킬 곳이 너무 많은 데다가 숙련병도 모자라다. 게다가 국적이 다양하니 뜻하는 대로 부리는 것도 힘들겠군.’
수많은 전투를 지휘하며 다국적군의 한계를 여실히 깨달은 웰즐리는 가용 병력을 7만 정도로 추산했다.
반면 프랑스군은 족히 12만 명이 넘었으니.
어떻게든 병력을 분산시킬 방법이 필요했다.
웰즐리는 전령을 불러 지시를 내렸다.
“프로이센군의 사령관 블뤼허에게 전하라. 최대한 신속하게 워털루로 오라고. 그게 어렵다면 하다못해 프랑스 본토라도 치라고 해라!”
하지만 미처 답장을 받기도 전에 프랑스군이 벨기에 땅을 밟았다는 소식이 전해져왔다.
‘부디 늦지 않게 와야 할 텐데.’
심란한 마음을 애써 감춘 웰즐리는 연합군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소리를 질렀다.
“다들 겁먹지 마라! 버티기만 하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
공격적인 전술로 유럽 전체를 휩쓸어버렸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수비적인 전술로 무적의 방어선을 구축해왔던 아서 웰즐리.
창과 방패의 대결이 드디어 막을 올렸다.
2.
1815년 6월 초순, 워털루 근방의 구릉지대에 도착한 나폴레옹은 영국군의 진형을 노려보고 신음을 흘렸다.
“으음. 방어망을 뚫는 게 쉽지 않겠지만 어떻게든 무너트려야 한다. 중간에 자리한 우구몽 농장에서 시선을 끌다 단번에 중앙을 돌파한다면…… 으윽!”
“폐하, 괜찮으십니까!”
“안에서 쉬고 계십시오. 명령만 하시면 저희가 알아서 다 하겠습니다.”
원 역사에서 나폴레옹은 지병인 위경련 때문에 신속, 정확한 지시를 내리는 게 어려웠다.
그래서 수하들에게 역할을 나누어주고 세세한 곳에 신경 쓰지 못한 결과 어처구니없는 사고들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나폴레옹은 극심한 위통으로 식은땀을 흘리는 와중에도 기어이 막사 밖으로 나와 말을 이어 나갔다.
“이건 내 인생에서 마지막 싸움이 될 것이다. 그러니 끝까지 내 손으로 마무리를 지어야 후회가 남지 않겠지.”
“폐하,,,,,,”
장군들은 일제히 감동에 휩싸였으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죄다 한 가지 역할과 단기적인 전략에만 몰두하여 시야가 넓지 못하니. 직접 나서서 하나하나 챙기는 수밖에.’
그나마 만능형 지휘관인 다부를 데리고 나왔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적어도 이번 전투만큼은 상식을 뛰어넘는 지시조차 받아들이게 해야 하니까. 니콜라이 그 녀석이 나를 너무 부려 먹는구나.’
지난 3개월 동안 나폴레옹은 니콜라이의 편지에 담긴 모든 글귀를 끊임없이 곱씹었다.
이건 누가 시킨 것도 아닌, 오직 그의 냉철한 이성에 기반한 행동이었다.
‘대놓고 적어놓진 않았으나 분명 숨겨진 의미가 있을 거다. 최대한 변수를 없애려는 게 녀석의 습관이니 내가 고민하고 주저할 만한 것들은 전부 대비해두었겠지.’
나폴레옹은 니콜라이가 오직 영국군만을 언급했다는 것에 주목했다.
그렇게 심사숙고하여 내린 결론은 바로 이것이었다.
“내일 우리는 영국군을 섬멸한다. 이번 전장에 모든 병력을 투입할 것이니 부대 배치에 특별히 신경 쓰도록.”
그 말에 쥐노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프로이센군이 가까이 다가왔다는 첩보를 입수했습니다. 따로 방비하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그건 미리 손을 써놨으니 신경 쓸 것 없다. 내일 동이 트자마자 포탄을 쏴 적들의 진형을 무너뜨릴 것이니 준비나 제대로 해놓거라.”
만약 나폴레옹이 아닌 다른 지휘관이었다면 곧바로 소란이 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카리스마에 이끌려 전장까지 나오게 된 만큼 감히 뜻을 거스르는 이는 없었다.
‘정말 프로이센은 오지 않는 건가?’
‘중간에 습격이라도 당하면 대참사가 날 텐데.’
처음에는 불안감이 앞섰다.
하지만 다음 날 새벽, 거센 포격으로 산등성이를 쑥대밭으로 만든 뒤.
별다른 저항 없이 우구몽 농장에 도착하자 조금씩 자신감이 붙었다.
“죽어라!”
“빌어먹을 놈들! 반드시 모가지를 따주겠다!”
점점 과열되어가는 분위기 속.
전장에 나타난 그루시 원수가 큰 소리로 외쳤다.
“폐하의 명이시다! 이곳엔 최소한의 인원만 남기고 전부 중앙을 향해 돌격하라!”
나폴레옹은 수시로 전령을 보내 지휘관들의 움직임을 철저히 통제했다.
우구몽 농장에 묶여있던 병력이 신속하게 움직인 것도 전부 그 덕분이었다.
심지어 네 원수가 기병대를 이끌고 무작정 돌격하려들 때는 그의 뺨을 때리며 질책하기까지 했다.
짜악!
“정신 차려라! 적군이 배치한 보병 방진만 족히 10개가 넘는다. 그런데도 말들이 겁먹지 않고 돌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거냐?”
한 차례 일갈을 날린 나폴레옹은 네 원수를 대신하여 명령을 내렸다.
“기병과 보병을 섞어서 돌격하라! 절대로 기병 혼자서 날뛰게 놔둬선 안 된다!”
이런 나폴레옹에 맞서는 웰즐리도 보통내기는 아니었다.
그는 프랑스군이 우구몽 농장을 포기하자마자 재빨리 병력을 중앙에 집중시켰다.
“이곳이 뚫리면 우리 군은 반으로 갈라서 죽을 것이다! 그런 참사만은 어떻게든 피해야 한다!”
하지만 프랑스군의 수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인원으로 몰아쳐 오니 능선을 끼고 있다는 이점도 점점 약해져 갔다.
프로이센의 진군 속도와 워털루까지의 거리를 계산해본 웰즐리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째서 아직도 지원군이 도착하지 않는 게냐! 아니, 그 전에 연락이 가긴 간 게야?’
그 사이 13개나 되는 보병 방진이 하나둘씩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결국 웰즐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최후의 패를 꺼내 들었다.
“좌, 우에 배치해두었던 군대를 불러들여라. 이곳에서 나폴레옹과 끝장을 보겠다!”
3.
웰즐리로부터 연락을 받기 전.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명령을 먼저 접한 블뤼허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 러시아군을 이끌고 니콜라이 황태자가 곧 합류할 것이다. 그러니 그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출발하라.
한시가 급한 마당에 프로이센에서 가만히 대기하고 있으라니.
이건 그냥 전쟁에 참여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잖은가!
‘가뜩이나 니콜라이 그놈도 마음에 들지 않거늘. 나폴레옹을 정면승부로 꺾을 기회를 이대로 포기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뒤이어 웰즐리의 다급한 요청과 함께 상세한 전황을 접하자 블뤼허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병력을 소집해라. 전군 벨기에로 진격한다!”
국방부 장관 샤른호르스트는 이 미친 짓을 막기 위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군! 이러시면 안 됩니다. 국왕 전하의 명을 어기실 셈입니까?”
하지만 블뤼허는 도저히 말을 들어 처먹지 않았다.
“나는 웰즐리 원수의 요청을 먼저 접하고 떠났을 뿐이다. 안타깝게도 전하의 명령은 내게 닿지 못했구나.”
‘허어. 성격이 괴팍한 건 알고 있었다만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고집을 피울 줄이야.’
샤른호르스트는 현실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일이 커지는 걸 가만히 두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사령관의 직속 부대만 데려가십시오.”
“흥. 나중에 후회하지 말아라.”
결국 블뤼허는 13만에 달하는 병력 중 본인을 따르는 3만의 병력만을 이끌고 워털루로 향했다.
하지만 때마침 길목을 가로막는 군대가 있었으니.
바로 3달 전에 파리에서 자취를 감췄던 주프랑스 러시아군이었다.
가장 선두에 나선 쿠투조프는 유들유들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오랜만이로군. 하지만 혼자 그렇게 가면 섭섭하지.”
“네놈들! 감히 동맹군의 행보를 방해하다니. 정녕 미쳤느냐?”
그 말에 쿠투조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대의 국왕에게 명령을 전달받지 못했나? 분명 니콜라이 전하께서 도착할 때까지 움직이지 말라고 했는데.”
이쯤 되면 일이 그르쳤다는 걸 깨닫고 포기하는 게 보통이리라.
그러나 블뤼허는 오히려 고함을 내질렀다.
“나는 그런 명령 따위 받지 못했다. 어서 비키지 않으면 네놈들을 전부 쓸어버리겠다!”
고작 수천에 불과한 병력으로 3만의 군세를 막는다는 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하지만 쿠투조프는 오히려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역시 니콜라이 전하는 대단해. 블뤼허가 이렇게 나올 것까지 예상했을 줄이야.’
“다들 뭣들 하느냐? 속히 나오지 않고!”
쿠투조프의 말에 수풀 속에 숨어있던 바르클레이와 바그라티온의 군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각각 1만은 되어 보이는 규모에 블뤼허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이놈들. 아주 작정하고 왔구나!’
그렇게 프로이센군의 합류가 한없이 지연되는 동안.
영국-네덜란드-벨기에 연합군은 전선이 무너지는 바람에 난전에 휘말리고 말았다.
그리고 워털루로 향하는 길목에서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나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 나폴레옹이여. 내 러시아와 함께할 수 있는 길을 택했구나!”
원 역사처럼 남대서양 한복판의 세인트헬레나섬에 유배당하는 건 너무 외롭고 쓸쓸하겠지?
걱정하지 마라.
네 노후는 내가 책임지고 보장해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