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254
제255화
끼익….
문을 열고 공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솔직한 마음이 제멋대로 튀어나왔다.
“이 모습은 영 익숙해지지가 않는걸….”
수정 공방은 깔끔했다.
가산 디지털 단지에 있던 공방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판매하는 포션들이 판매대에 오와 열을 맞춰 나열돼있고, 판매대 끝에는 무인 계산대가 준비돼 있다.
또 판매대 중간중간 ‘아이템 감정(A등급 감정 스킬 보유!)도 해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그야말로 정상적으로 영업하는 공방의 모습이었다.
내가 수정 공방에서 이런 감상을 느끼는 날이 오게 될 줄은 몰랐다.
정상적인, 이라니….
“안녕하십니까! 수정 공방입니다!”
계산대에는 서 있던 공방 아르바이트 ‘최상윤’이 활기차게 인사를 건네왔다.
바로 그가 이곳 수정 공방을 정상적인 영업장으로 바꾼 장본인이었다.
홍수정은 나 때문에 작업할 일이 너무 많아져 본인 대신 판매를 담당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채용 사이트에 알바 구인 광고를 올렸고, 그 광고를 보고 가장 먼저 연락해온 사람이 최상윤이었다.
그는 포션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어차피 홍수정은 판매대에 서 있어줄 사람을 원했으므로 첫 번째로 연락해온 그를 채용했다.
물론 유재이와 함께 면접은 봤다고 한다.
눈썰미가 좋으니 도움이 되었겠지.
“네, 안녕하세요. 잘 지냈죠?”
“그럼요. 저는 잘 지냈- 헉!”
얼굴도 보지 않고 인사했던 최상윤이 날 보고는 숨을 들이켰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내 이름을 더듬거리며 부른다.
“백, 백도운…!”
“네. 그게 바로 내 이름이죠.”
“허억! 죄송합니다!”
최상윤이 바로 상체를 푹 숙이며 사과를 전했다.
팔 자를 그린 눈썹과 늘어진 어깨에서는 송구스러움이 내비쳤다.
남의 이름을 함부로 불렀으니 미안할 만도 하지.
저 모습을 보면 그가 출근 첫날 공방을 지금 같은 모습으로 바꾼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알바 치고는 너무 유능한 거 아닌가?
능력을 보면 매니저로 대해도 될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게끔 하는 사람이었는데, 날 대하는 것만 보면 아이돌을 앞에 둔 팬 같아 보인다.
뭐….
“괜찮아요. 익숙한 일이고.”
A+급 헌터가 된 이후로 종종 있던 일이었다.
날 알아본 사람들이 숨을 크게 들이키며 놀라곤 했다.
개중에는 싸인을 요청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방금 최상윤이 그랬던 것처럼 자기도 모르게 내 이름을 중얼거린 사람들도 있었다.
상체를 숙이고 있던 그가 다시 한번 사과를 전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괜찮다니까요. 그보다 수정 씨 있나요?”
“네, 안쪽에 계세요! 불러드릴까요?”
“그래 주면 고맙죠.”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최상윤은 바로 공방 안쪽으로 들어갔다.
문이 살짝 열렸을 때, 옛날 수정 공방의 어지럽고 지저분한 모습이 보였다.
안쪽은 바깥과 달리 청소하지 못했나 보다.
예상컨대 홍수정이 청소하지 못하게 막지 않았을까 싶다.
그 어지러움 속에 본인만의 규칙이 있다는 말로.
어떻게 아냐니.
뻔한 거 아니겠어?
내 방을 청소하려는 도희한테 내뱉곤 하던 말이니까 알 수밖에.
[…….]새싹이가 줄임표를 보내왔다.
그 메시지창에서 새싹이의 황당함이 느껴졌다.
“꺄악!”
“조심, 조심하세요! 사장님!”
안쪽에서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홍수정이 다급하게 뛰어나오는 소리였는데, 지금까지의 행적을 생각해 보면 그녀는 방금 뛰어오는 동안 책 몇 권쯤 쏟아냈을 거다.
뭐 저렇게 급하게 나오려고 한담?
벌컥!
문이 활짝 열리며 홍수정과 최상윤이 나왔다.
그녀는 해맑은 얼굴로 인사하다가,
“어서 오…! 아….”
날 보고는 맥이 풀린 사람처럼 어깨를 늘어뜨렸다.
시무룩한 얼굴로 텅 비어 있는 내 목을 바라본다.
왜 급하게 나오나 싶더니만, 무기를 보고 싶어서였구만?
홍수정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오세요, 도운 씨….”
“안녕하세요.”
“또 오셨네요….”
혼자서.
-라는 뒷말이 들린 것 같다.
단순한 착각…은 아마 아닐 거다.
그녀는 입으로 내뱉지는 않았어도 속으로는 분명 그리 말했을 거다.
얼굴에 묻어나고 있는 실망감이 바로 그 증거다.
너무하네.
“…텐션이 너무 달라지는 거 아닙니까?”
“네…? 제가요…?”
“그렇게 차별하면 아무리 나라도 상처받아요?”
“흥…. 도운 씨도 저와 있을 때랑 재이와 같이 있을 때랑 텐션 다르시잖아요….”
“어, 내가요?”
“…….”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것이 오히려 대답이 되었다.
홍수정이랑 있을 때랑 유재이랑 있을 때랑 텐션이 다르다고?
내가 정말 그랬나?
[…….]새싹이가 아까와 똑같은 메시지창을 보내왔다.
황당함이 느껴지는 메시지다.
그걸 보니 정말 다르긴 한 모양이다.
똑같이 대했던 거 같았는데….
“무기님은….”
“자고 있어요.”
“아직도요?”
“원래 자는 거 좋아해요.”
“그렇군요….”
“…오해할까 봐 말하는 건데, 절대로 수정 씨 피하는 거 아니에요.”
“정말요…?”
“네. 적맥주 덕분인지 수정 씨 보는 시선부터가 달라졌거든요.”
“……!”
그녀의 얼굴에 문을 열 때와 같은 활기가 차올랐다.
아까까지만 해도 실망만이 담겨 있던 게 맞나 싶을 정도였다.
지금은 굴뚝으로 몰래 침입하는 배불뚝이 노인에게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보인다.
“역시 친해지는 데는 선물이 최고죠?”
“그러게요! 다음 선물도 준비해야겠어요! 다음엔 뭘 드려야 좋아하실까요?”
“글쎄요? 무기가 뭘 좋아할지는 잘 몰라서요.
“아이, 참! 그게 친구분이 하실 말씀이에요? 좋은 생각 좀 떠올려보세요!”
“저, 사장님.”
“네? 아! 맞다.”
홍수정은 제 머리를 콩 때렸다.
최상윤의 부름에 지금 상황을 다시금 깨달은 것이다.
그녀는 날 바라봤다.
“용건이 있어서 오신 거죠?”
“네, 맞아요.”
대답하며 최상윤을 바라봤다.
그렇게 바라보고 있길 5초.
이내 내 시선의 뜻을 알아차린 홍수정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안쪽…으로 들어가서 말씀 나눌까요?”
“그래도 될까요?”
“그럼요! 따라오세요!”
홍수정이 그리 말하자마자 최상윤이 문을 열었다.
그도 내가 빤히 바라보던 이유를 알아차린 것이다.
역시 유능한걸.
그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 몇 걸음 옮겼을 때, 문이 탁 닫혔다.
문이 닫히고 몇 발자국 더 걷고 나서 그녀가 나를 쳐다봤다.
“…도운 씨 이런 거 엄청 잘하시네요?”
“잘하긴요. 다들 이렇게 해요. 수정 씨가 이상한 거지.”
“하지만…. 자리를 비켜달라고 하면 왠지 따돌리는 것 같단 말이에요….”
“그런 생각으로 자리를 비우는 게 더 따돌려지는 기분이 들 걸요.”
“앗….”
“생각도 못 한 얼굴이네요.”
“네, 못했어요.”
사람이 착한 건지 순진한 건지….
사실, 그녀가 무기에게 적맥주를 선물하던 날 J.Y. 대장간에 모였던 건 그 때문이었다.
자리를 비켜달라고 하는 게 따돌리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다나 뭐라나.
“이쪽이에요.”
홍수정이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따라 들어간 방에는 테이블과 소파가 놓여 있었다.
또 벽 쪽엔 그녀가 제조한 위드 시리즈들이 담긴 냉장고도 있었다.
상담실도 제법 그럴듯한걸?
정말 공방의 건물주로서 보람을 느끼는구만.
상담실은커녕 의자도 없어서 두꺼운 책을 깔고 앉아서 대화를 나눴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녀가 소파를 가리키며 물었다.
“오늘은 어쩐 일 때문에 오신 거예요? 포션 때문이라면 아직 제조 중이에요.”
“포션 때문이긴 한데, 작업을 확인하려고 온 건 아니에요.”
“그럼요?”
“이걸 구해서요.”
“……?”
그녀가 가리킨 소파에 앉으며 왼손을 뻗었다.
그러자마자 손바닥 위로 우담화가 튀어나왔다.
새싹이가 센스 있게 꺼내준 것이다.
총 여덟 장의 우담화가 튀어나와 손바닥 위로 차곡차곡 쌓였다.
상태가 별로 좋지 못한 꼴이라서 그런가?
물이라도 뿌려주고 싶었다.
뿌리가 없으니 그래 봐야 별 소용도 없겠지만….
“이, 이거! 설마, 홍유릉 게이트의…?”
“네, 그거 맞아요. 우담화.”
“꺄아아아악!”
홍수정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녀의 얼굴에 기쁨이 묻어났기에 즐거운 비명이란 걸 알 수 있었지만….
얼굴을 보지 못한 사람이 듣고 나면 범죄에 관련된 일이라도 벌어진 줄로 착각할 것 같다.
“사, 사장님? 괜찮으세요?”
문 앞까지 우당탕 달려와 걱정스럽게 묻는 최상윤처럼.
홍수정이 다급히 입을 가렸다.
자신이 비명을 질렀다는 걸 그제야 깨달은 듯했다.
“사장님? 괜찮으신 거예요?”
“네, 네! 괜찮아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정말요? 저번처럼 쥐나 바퀴벌레가 나온-”
“아니야!”
홍수정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는 내 눈치를 살폈다.
나왔었네, 나왔었어.
쥐랑 바퀴벌레….
“앗…. 고객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현재 수정 공방은 새로 태어나 예전과 달리 위생 관리에 철저히 힘쓰고 있사오니-”
“시, 시끄러워…!”
홍수정이 소파에 놓인 쿠션을 냅다 던졌다.
콩…!
기세 좋게 던진 것과 달리 쿠션은 별다른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문에 다다른 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였다.
그나저나 “예전과 달리”라는 말을 유독 강조한 것 같은데, 착각인가?
“실례했습니다. 물러나 보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최상윤은 떠나갔다.
떠나는 발소리가 잦아들자 상담실에는 내가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는 소리만이 울렸다.
톡톡 톡톡톡….
“나도 그리 깔끔한 편은 아닙니다만.”
“네?”
“건물주로서 깨끗하게 사용해주기 바랍니다. 바퀴벌레는 그렇다 쳐도 쥐는 좀 아니지 않아요?”
“윽! 죄, 죄송해요….”
홍수정은 고개를 푹 숙였다.
진심이 담긴 사과였지만, 난 청소에 관해서라면 그녀를 믿지 않는다.
청소하기 싫어서 의뢰비로 대청소를 제안한 인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
그녀를 믿느니 차라리 이제 겨우 두 번째로 본 최상윤을 믿겠다.
“앞으로 조심해주세요.”
“네….”
“쥐는 안 되죠, 쥐는.”
“네에….”
“…….”
나갈 때 최상윤에게 신경 좀 써달라고 해야겠다.
그녀는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도운 씨. 이제 우담화를….”
“…….”
그럼 그렇지.
그녀의 관심사는 지금 청소니 위생이니 하는 것보다 우담화였다.
예상했던 바였으니까 아무래도 상관없었지만….
손을 앞으로 내민다.
그녀는 내 손바닥에 놓인 우담화를 빠르게 훑었다.
“어째서 우담화가 줄기부터…. 뿌리까지 있어야 효능을 100%로 뽑아낼 수 있는데…!”
홍수정은 우담화를 보자마자 안타까워했다.
나도 아까운데 전문가인 그녀는 오죽할까.
이어 그녀는 우담화를 보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내용을 들어보니, 홍유릉 게이트에서 내가 했던 말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거야. 도운 씨가 A+급 헌터라고 해도 우담화를 뽑을 수 있을 리 없으니…. 뿌리가 없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A+등급 영약. 분명 다른 것들보다 쓸모가 있을… 앗.”
그녀는 중얼거리는 것을 멈추고 날 바라봤다.
뭐지?
그녀가 물었다.
“도운 씨 우연후랑 아는 사이잖아요?”
“네. 그런데요?”
“아깝다!”
“뭐가요?”
“우연후는 우담화 뽑을 수 있는 사람을 알아요!”
“그래요…?”
“몰랐어요? 절맥증을 앓았던 우채연이 우담화를 먹고 나았었잖아요!”
와, 정말이지 새로운 정보인걸.
너무 놀라서 말이 안 나오네.
내가 그 뽑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여태 몰랐어?
홍수정은 손을 들어 둥근 안경을 올리며 말을 이어 나갔다.
“가면을 쓰고 있어서 정체는 아무도 모르지만요. 이름이 지온이었던가?”
“헤, 그렇군요.”
“정말…. 홍유릉 게이트에 가실 거면 말씀을 하시지! 그럼 제가 말씀해드렸을 텐데! 우담화도 뿌리째 뽑아서 갖고 올 수 있었을 거구요.”
“그럴까요? 정체를 모른다면서요.”
“도운 씨가 부탁하면 들어줬을 거예요! 정체를 숨겼다 한들 A+급 헌터와 인맥은 쌓고 싶을 테니까!”
“그렇군요…. 뭐, 다음에 기회가 있겠죠.”
“우연후한테 가서 소개받아요. 알았죠?”
“그럴게요.”
“꼭이에요! 꼭!”
“알겠다니까요. 자. 우연후한테 꼭 소개를 받겠습니다.”
선서하듯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홍수정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소개 같은 거 받을 생각은 없었다.
그 지온이라는 놈이 난데 무슨 소개를 받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