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106
105화 재회와 복수(2)
마도구에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실금이 생기더니 이내 박살 나 버렸다.
김석기는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진 상황에,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하나, 재현은 어째서 김석기의 마도구가 부서졌는지 잘 알고 있었다.
‘선생님은 억제 장치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농축된 마나를 흘려보낸 거야. 그래서 장치가 견디지 못하고 박살 난 거지.
어디까지나 이론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재현은 그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지 알고 있었다.
마력 억제 장치가 감당할 수 없는 마력을 흘려보내 장치를 부순다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최소 S급 중에서도 마력 운용치가 상위권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리어 제 마력을 다 빼앗겨버리고 말 테니까.
하지만 유성은은 일개 마법사가 아니었다.
전 세계에서도 수위급 레이더. 아무리 복잡한 식과 마력의 운용이라고 해도 그녀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가진 건 그게 다야?”
유성은의 낮게 깔린 목소리에 김석기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게 유일한 수라고 생각했던 그로서는 더는 방법이 없었다.
“어째서 다른 생도들을 죽였어? 배후에 누가 있지?”
“말할 성싶으냐……!”
“구자인이겠지. 아, 물론 대답해 줄 거라 생각하고 물은 건 아니야. 진실을 말하게 해주는 포션이라도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건 세상에 없으니까.”
“하고 싶은 말이 뭐냐!”
바닥에 주저앉은 김석기가 으르렁거리자 유성은이 비웃으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너는 여기서 죽는다는 이야기지.”
멈칫.
유성은의 말과 동시에 김석기의 온몸이 마비된 듯 굳었다.
숨 막히는 마력의 파장이 일며 김석기의 머리 위에 작은 구름이 떠올랐다. 그 아래로 서서히 모여드는 반딧불이와 같은 빛.
가로등처럼 점멸하며 쏟아지는 빛이 재현의 뇌리에 선명히 박혔다.
‘저 마법은…….’
액티브 스킬 《콜 라이트닝》.
무려 A급의 스킬로 사용자의 등급에 따라 적을 단번에 소멸시켜 버릴 수도 있는 뇌 속성 마법이었다.
재현이 자주 사용하는 전격의 사슬 역시 이와 같은 뇌 속성.
허나, 격의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순식간에 모여든 전격이 아래로 쏟아지며 김석기의 온몸을 덮쳤다.
몸의 혈도가 뒤틀리고, 역류하며. 동시에 무릎이 굽혀진다.
재현은 생경한 그 광경에 넋을 잃고 유성은과 김석기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유성은. 대한민국의 성녀로 추앙받는 자이자, 유일의 S급 힐러.
하지만 지금 그녀가 보여 주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징벌자의 그것이었다.
손속에는 자비가 없었으며, 냉정하게 적을 찢고 또 찢어발긴다.
“으아아아아악!”
김석기의 긴 비명은 《사일런스》에 의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았다.
주도면밀하다.
유성은은 뒤를 남기지 않았다.
김석기의 몸은 어느새 마력의 거센 파랑에 먹혀 사라졌다.
그가 남긴 거라고는 벤츠 E클래스의 차 한 대. 조금 전 깨져 파편만 덩그러니 남은 마도구 뿐이었다.
재현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그는 옆에 선 유성은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 내 뒤에 있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었지. 전국에서도 단연 첫손에 꼽히는 S급 레이더. 아직 갈 길이 멀어.’
재현은 유성은을 따라잡아야만 했다. 아직 치러야 할 싸움도, 둘러싼 운명도 다 해결하지 못했다.
이제 모든 것은 시작이었다.
구자인. 이번에는 비록 유성은에게 김석기의 처분을 양도했지만, 재현은 구자인을 빼앗길 생각은 없었다.
죽은 생도들의 얼굴이 잠시 재현을 스쳐 지나갔다. 재현은 가볍게 주먹을 쥐어 마력을 흘려 넣었다.
앞으로 머지않은 시일 내. 구자인과의 악연을 모두 끊어낼 생각이었다.
* * *
조금 전.
집으로 돌아온 서이나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던 창을 가볍게 파훼하던 재현의 모습을 떠올렸다.
‘…지켜 줬구나. 재현이가. …나를.’
그녀는 재현의 마법사로서의 센스와 반응속도에 큰 충격을 받는 동시에 짙은 무력감, 호승심을 동시에 느꼈다.
‘재현이는 그 짧은 찰나에 연산식을 거꾸로 뒤집어 마법을 역산한 거야.’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서이나는 조금 전 재현의 움직임을 직접 보았다.
그는 궤적을 알 수 없게 마력을 실어 쏘아진 창을 빠르게 역산해 부숴 버렸다.
하지만 생도들에게 이는 어디까지나 이론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마법은 기본적으로 발동하는 것보다 역산하는 것이 몇 배는 더 어렵다.
적이 어떤 마법을 사용했는지 정확히 모르거니와, 안다고 해도 모두 같은 연산식을 사용해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결단코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적에 따라서는 같은 《파이어 볼》이라도 《빅》을 결합해 크기를 키우거나, 《레비테이트》과 조합해 구체를 공중에 띄워낼 수도 있다.
이처럼 마법이란 무릇, 하나의 완성된 체계가 아니기 때문에 무섭다.
적이 어떤 식으로 연산식을 짜 공격해 올지 모르니까.
‘그런데… 재현이는 1초가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적이 어떤 마법을 사용했는지, 어떤 식을 사용했는지를 모두 깨닫고 마법을 역산한 거야.’
물론 서이나의 생각은 반 정도만 맞았지만 이를 정정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재현이 《오딘의 잃어버린 눈》 덕분에 《절대 연산》이라는 스킬을 갖게 되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오직 본인뿐이니까.
덕분에 서이나의 오해는 계속 쌓여만 갔다. 자신의 자책은 덤이었다.
‘…아직 난 한참 멀었어.’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치고, 그녀의 입가엔 미소가 번져 있었다.
어째서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재현이 자신을 구해줬다는 게 기뻤다. 모의 던전 사태 이후 제대로 둘이서 대화를 나눠 본 적도 없었으니까.
“…나중에 꼭 고맙다고 인사해야지.”
스마트폰으로 연락할까 하다가, 역시 그만뒀다.
역시 이런 인사는 직접 만나서 해야지.
서이나는 고리타분한 생각을 하며 이불속에 몸을 파묻었다.
* * *
사건이 일단락된 후 이틀.
밀레스 아카데미에는 기자가 쫙 깔려 당분간 외부인 출입이 엄금되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대외적으로 밀레스 아카데미 내에서 사고가 일어났고, 이들이 체험하러 갔던 케인 길드가 구자인의 투자를 받아 만들어진 곳이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마 항간에서는 구자인이 유령 길드를 만들어 생도들을 버린 것이라는 추측까지 떠돌기 시작했다.
이사장실에 앉아 머리를 싸매던 구자인이 신경질적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이번 일을 맡은 김석기 교관은 연락이 되지 않았고, 박 의원으로부터 걸려 온 질책하는 전화는 넌덜머리가 났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지?’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구자인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
‘내 계획을 알고 있는 자가 존재한다. 밀레스 내부에 배신자가 있어. 그것도 날 아주 잘 아는 놈.’
구자인은 주먹을 쥔 손을 부들거리며 떨었다.
자신은 평소 보안에 각별히 신경을 쓰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런 중대한 사안에서 정보가 새어나간다고?
사건의 전말과 그 실마리를 알고 있을 김석기와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
‘아마 김석기 교관은 죽었을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물욕이 많은 녀석이 내게 연락 한 통 하지 않을 리 없어.’
차분하게 결론을 내렸다.
구자인은 지금까지 수많은 이들을 짓밟으며 현재의 자리에 올라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건 이런 난해한 상황을 타개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 역시 잘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구자인은 스마트폰을 들어 박 의원의 걸려오는 전화를 끊은 뒤, 다른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상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중저음의 음색을 지닌 남자였다.
“접니다. 구자인.”
[무슨 일입니까…라고 뭐 물어볼 필요도 없겠군요. 국내가 난리니까요.]“사건의 수습을 의뢰하고 싶습니다. 돈은 최대한 원하는 대로 맞춰 드리죠.”
구자인의 말에 전화기 너머의 상대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역시 구자인 이사장님은 통이 크십니다. 걱정 마십시오. 이 정도 사건 따윈 금방 덮어 드릴 테니. 이사장님은 발 닦고 잠이나 주무시면 됩니다.]“그것참 반가운 소리군요.”
구자인은 이를 드러내며 웃은 뒤 전화를 끊었다.
지금부터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전쟁을 시작할 생각이었다.
언론전. 기자와 언론을 장악해 버리면 상대가 얼마나 강하던 구자인을 이길 수 없을 터였다.
“뭐 연화 길드 정도쯤 되지 않고서야 그런 일은 불가능하지.”
구자인은 자신의 계획이 성공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와인 셀러로 가 와인 한 병을 꺼냈다.
* * *
사건 이후 3일. 등굣길.
생도들은 다시 학원에 나오기 시작했고, 구자인의 언론전 역시 시작되었다.
하지만 재현과 유성은은 처음부터 구자인이 이렇게 나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 정도 뒷배 없이 그가 생도들을 죽이고 다닐 거라는 생각 따윈 둘 모두 추호도 하지 않은 것이다.
덕분에 연화 길드 측도 후속 기사를 준비하고 있다가 거의 동시에 터뜨리며 맞불 작전을 펼쳤다.
애초 계획대로 연화가 이 사건에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모두 숨기는 건 어려웠다. 사건의 규모가 너무 컸고, 무려 네 명의 사망자가 나온 이벤트였기 때문이다.
구자은 이를 갈며 날뛰었다.
연화 길드는 조금 더 몸을 사려야 하는 처치가 됐다.
대한민국에서 구자인을 적으로 돌린 이들은 많지 않다. 심지어 거기서 이 정도 언론전을 펼칠 수 있는 이들은 단 하나. 연화 길드뿐.
아마 구자인 역시 이를 알고 있을 것이고, 연화 길드가 이번 길드 체험 사건과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할 터였다.
이제부터는 적극적으로 구자인의 움직임을 견제할 수 없다.
조금만 수가 틀리면 구자인 역시 연화 길드를 견제하려 들 테니까.
재현은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세 걸음쯤 앞서 걷고 있던 한 생도의 옆구리를 슬쩍 찔렀다.
“으헉!”
“이야. 이제 건강해 보이네?”
“난 또. 재현이였구나?”
잿빛 머리칼에 수려한 외모를 지닌 소년. 안호연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옆구리를 쓸며 말했다.
“다 너랑 대표님 덕분이지. 두 사람 아니었으면 난 진작에 죽었어.”
“왜 그런 거냐?”
재현은 안호연과 나란히 걸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물었다.
안호연은 잠시 입술을 다물었다. 질문의 의도는 명확했다.
어째서 안호연은 그때 동료를 위해 목숨을 버리려 했는가?
안호연은 대체 어떤 대답을 내놓아야 할지 잘 몰랐다.
아니, 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재현처럼 되고 싶었다.
오글거려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지만, 자신이 본 재현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TV 속 돈만을 쫓아 하급 던전을 쓸고 다니는 이들이 아닌, 정말 영웅처럼 보였다.
그래서 따라 한 것뿐이다.
재현이 자신을 구했던 것처럼.
모의 던전에서 서이나와 팀원들을, 그리고 이번에 생도들을 구하기 위해 홀로 보스룸으로 향했던 것처럼.
하지만 낯간지러운 이야기이기도 했다.
겉으로 표현하기 힘든 말.
차마 입을 떼지 못하며 어물쩍거리는데, 재현이 무던히 말했다.
“그래. 넌 계속 그런 마음가짐으로 하면 돼.”
“…뭐?”
“이유 같은 건 뒤에 갖다 붙여도 되니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고. 어차피 내가 말 안 해도 그렇게 할 거잖아.”
재현은 덤덤한 얼굴을 한 채, 밀레스 아카데미 제1 강의실 앞에 섰다. 안호연과는 여기서 갈라진다. 그는 무투계 강의를 들으러 가야 하니까.
재현은 그와 헤어지기 전에 마지막 한 마디를 덧붙였다.
“뭐 그래도 적당히 몸은 사려라. 다른 애들 걱정하니까.”
“…그래.”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헤어지려던 바로 그 순간.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나타났다.
김유정과 서이나였다.
“야~ 너희 거기서 뭐 하냐? 일 있어서 오전 수업 취소된 거 몰라?”
“어?”
“진짜?”
“…응. 조금 전에 단톡방에 공지 왔어.”
재현과 안호연은 뒤늦게 공지를 확인했다. 두 사람 말대로 오전 수업은 취소였다.
“아 귀찮게. 괜히 나왔잖아 그럼.”
재현이 짜증 섞인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자, 김유정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전형적인 장난치기 좋아하는 사람의 그것이었다.
김유정은 심각한 얼굴로 운을 뗐다.
“야 근데. 너희 그거 아냐?”
“응? 뭘?”
“…뭔데?”
안호연이 순진무구한 얼굴을 한 채 되물었다. 서이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재현은 어쩐지 이유를 알 것 같았으나, 일행의 멘탈을 위해 따로 말을 꺼내지 않았다. 원래 이런 나쁜 역할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김유정은 일행의 어깨에 양팔을 두르더니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다음 주부터 중간고사야.”
그 말에 재현과 김유정을 제외한 일행 전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럴 만도 했다.
안호연, 서이나.
재현이 기억하기로 두 사람은 실기 성적은 최고였지만 필기는 엉망이었으니까.
‘아마 첫 번째 시험에서 낙제점을 받아 재시험을 세 번이나 쳤다고 했던가…….’
두 사람은 이제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을 한 채 재현과 김유정에게 매달렸다.
“서, 선생님! 공부를… 가르쳐주십시오!”
“…저, 저도…요.”
다급하게 매달리는 두 사람의 얼굴을 보던 김유정과 재현이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