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228
227화 이어지는 이야기(1)
“나는 지금부터 네게 1만 년 전 예언의 뒷부분을 알려줄 거야. 지금까지 너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정보지.”
“허락되지… 않은 정보라고요?”
“그래.”
재현이 그녀의 말에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그게 대체 무슨….”
“일단은 자리를 옮기자!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기도 하고…. 미드가르드로 향하는 포탈을 열어야 하니 어차피 지금 바로 돌아갈 수도 없어!”
이둔은 조금 전의 진지한 모습은 온데간데없다는 듯, 어느새 천진한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헬라는 간만에 신 구실 하는가 싶더니… 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재현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예언의 이어질 뒷부분이라. 이건 안 듣는 게 무조건 손해겠지.
어차피 빠르게 돌아갈 수 없다면, 그로서도 몸을 회복하며 조금 쉬어주는 게 좋았다.
지난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치러진 시련은 매우 밀도 있었다. 지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알겠습니다. 차에는 큰 취미가 없지만 어울려 드릴게요.”
재현의 말에 이둔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응!”
* * *
잠시 후.
재현은 이둔을 따라 정원 테라스로 향했다. 그는 하얀 목제 의자에 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역시 정원은 정원이구나.’
처음 막 도착했을 때는 정신이 없어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었다. 뭐, 시련을 마친 지금에야 주변을 둘러볼 얼마간의 여유가 생겼지만.
재현은 각종 원예 도구들이 질서정연하게 나열된 선반을 바라보았다.
가지를 치기 위한 거대한 날붙이와 비료가 쌓여 있는 포대. 그리고 죽 늘어서 있는 화분들.
이둔은 허술한 신이지만 식물을 키우는 것까지 허술하지는 않았다.
여러모로 그로서는 다행인 일이었다.
“이건 미드가르드에서는 자라지 않는 특별한 허브를 달여 만든 차인데, 분명 맛이 좋을 거야. 몸도 조금 녹을 테고.”
이둔이 신이 난 듯 설명하며 말했다.
재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적당히 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이야기가 길어지는 게 귀찮았던 탓이었다.
“아, 예… 감사합니다.”
이둔이 건넨 차는 아무래도 니플헤임의 냉기에 저항하는 속성을 지닌, 특수한 허브를 달인 차인 듯했다.
한 모금 마셨을 뿐인데 얼었던 몸이 녹기 시작하고,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뿐만 아니라.
‘황금 사과랑 다르게 맛이 나쁘지 않은데. 향도 뛰어나고.’
어떻게 하면 농사를 그런 식으로 지을 수 있는지 의문이 생길 정도였다.
‘뭐… 황금 사과도 효과는 굉장하긴 했지만.’
재현은 실없는 생각을 하며 계속해 차를 홀짝였다.
이둔은 턱을 괸 채, 흐뭇하게 그를 지켜보며 헤실헤실 웃었다.
재현은 자신을 뚫어지라 바라보는 이둔의 태도에 약간 불편한 기색으로 말했다.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습니까?”
“아니! 간만에 손님이 찾아온 거라 약간 들떠서.”
어딘가 슬픈 이야기였다.
달칵.
재현이 손에 든 찻잔을 접시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운을 떼며 물었다.
“그나저나 헬라가 당신을 ‘에시르의 도망자’라고 부르던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물론 들어야 할 예언에 관한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재현은 그리 급하지는 않다고 판단했다.
어차피 이둔에게 포털을 여는 데까지 이틀이 더 소요된다는 답을 받았다.
아무리 예언에 관한 이야기가 길어진다고 해도, 이틀 내내 할 정도는 아니겠지.
“음….”
이둔은 검지와 엄지로 턱을 쓸며 재현을 흘깃 바라보았다.
재현이 차분히 이었다.
“곤란한 걸 물었다면 굳이 대답해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별다른 의미는 없으니까요.”
이둔의 사정이 궁금하긴 했지만, 억지로 듣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지금 그녀에게 이명에 관한 질문을 한 이유는 그저 호기심에 지나지 않으니까.
그게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면 굳이 들쑤실 이유는 없었다.
“…아냐. 말해 줄게.”
그때, 이둔이 결심을 내린 듯 입을 열었다.
오밀조밀하게 난 선홍빛 입술로부터 서서히, 그녀의 이명에 관한 진실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에시르의 도망자.
그것은 재현이 전혀 생각지 못한 경위로 얻게 된 이름이었다.
* * *
처음에 나는 청춘의 신으로서 에시르 신좌에 소속된 자였어.
오딘은 아스가르드에 황금사과를 재배할 수 있는 넓은 땅과 씨앗. 그리고 여러 사람을 내게 붙여 주었지.
나는 인간들의 도움을 받아 온갖 식물을 재배한 끝에 황금사과를 키워냈어.
너도 알 거야.
황금사과에는 노화를 막는 힘이 있어서, 수많은 종족이 탐을 내고 이를 가지려 했다는 것을.
하지만 오딘은 탐욕이 강했어.
자신과 에시르 신을 제외한 누구에게도 황금 사과를 나눠주지 않았거든.
그는 강했고, 무력으로 아래에 있는 자들을 모두 깔아뭉갰지.
당시에는 로키를 제외한 모두가 그게 옳다고 여겼어.
나 역시도 말이야.
하지만 그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어.
오딘은 첫 번째 라그나로크를 일으켰고, 다른 종족들을 모두 배척해버렸거든.
그는 내가 재배한 황금사과를 독점해 이를 무기로 사용했어.
전쟁 초기에는 에시르와 반 에시르 세력이 거의 비등하게 싸웠지만… 전쟁이 차츰 길어짐에 따라 오딘에게 유리하게 전세가 기울었지.
바로 내가 재배한 황금 사과 때문이었어.
노화하지 않는 신과 군대. 이는 아무리 반 에시르 세력이 강하다 해도 막을 수 없는 수준이었거든.
전쟁의 말미에서, 결국 로키는 오딘에게 패배하고 말았어.
그게 첫 번째 라그나로크.
종말의 결과였고.
물론 다른 요인도 있었겠지만, 내가 키운 사과가 전쟁의 참혹을 더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야.
전쟁은 수많은 종족을 멸망으로 몰아갔지.
드래곤, 드워프, 거인….
모두 그 수가 1/5 수준으로 줄어들었고, 지금은 겨우 대만 유지하는 상황이 됐어.
나는 전쟁이 종료된 후. 죄책감을 느꼈어.
연민.
그것은 오딘의 의견이 맹목적으로 옳다고 생각했던 내게, 전혀 다른 선택을 하게 만들었어.
그건 바로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종족들에게 나의 사과를, 불로불사의 사과를 나눠주는 거였지.
허나, 나는 알지 못했어.
내 선택이 결과적으로 더 많은 이들의 죽음을 몰고 올 거라는 것을.
* * *
“더 많은 죽음?”
재현은 이제 차에는 입도 대지 못하고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이둔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었다.
“그래. 오딘, 그는 내가 다른 종족들에게 사과를 나눠준다는 걸 알게 되었고… 계속해 나를 협박했어. 다른 이들에게 사과를 나누어준다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이야.
하지만 나는 그의 명령을 거부했고, 계속 전쟁의 피해 종족들에게 황금 사과를 나눠주었지.”
그게 재앙의 시작이었어.
이둔은 그렇게 중얼거린 뒤,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불안함을 느낀 재현이 그녀를 보며 되물었다.
“그래서. 오딘은 어떻게 했습니까?”
“모두 죽였어. 내가 준 사과를 먹은 이들을 모두…….”
재현은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사과를 나누어준 이둔은 죽이지 않았고, 되려 이를 먹은 사람들을 처벌했다.
오딘은 이둔에게 경고한 것이다.
감히 내 결정에 반하지 말라고.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빼앗고 그녀를 보다 괴롭게 하는 선택을 내린 것이다.
또한,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이둔. 황금 사과를 재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녀뿐이다.
자신의 대의를 위해서라도 오딘은 그녀를 이용해야만 했다.
그래서 죽이지 않은 거겠지.
재현은 역겨움을 느꼈다.
오딘은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죄를 저질러왔고, 개인의 삶을 망가뜨리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자신도, 티알피도, 주원도, 이둔도…
그는 무수히 많은 이들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조종하려 하고 있었다.
재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라그나로크.
그가 전쟁을 통해 얻으려는 것은 대체 뭘까.
도대체 무엇이, 그를 움직이고 있는 걸까.
“그때, 내게 손을 내밀어 준 건 로키였어. 나와 함께 이곳을 벗어나 도망치자고 말해주었지.
오딘의 손아귀에서 그만 빠져나오라고 말이야.”
“그래서 도망쳤군요?”
“그래. 더는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볼 수 없었으니까.
이후 오딘은 나를 찾기 위해 수많은 에시르 신들을 시켜 곳곳을 이 잡듯 뒤졌어. 로키와 헬은 나를 숨겨주기 위해 이곳. 니플헤임을 선택했지.”
니플헤임.
재현은 정원이 왜 이런 추운 곳에 있는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이둔을 확실히 숨기기 위해서.
아무리 에시르의 신들이라 해도, 이런 얼음과 죄수밖에 없는 곳에 이둔을 숨겨놓았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까.
처음부터 로키는 그들로부터 이둔을 보호하기 위해, 이곳에 아공간을 만들고 인공 태양을 띄운 것이다.
‘로키… 언젠가는 만나야 하는 존재다. 반 에시르 연합의 수장이자, 니드호그가 인정했던 자신을 압도하는 유일무이한 실력자.’
재현은 그가 어떤 존재일지 짐작해 보았다.
신화 속 그는 장난기 많은 신으로서 묘사되며, 온갖 사건 사고의 원흉이었다.
하지만 이둔도 그렇고, 니드호그도 그렇고. 많은 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 재현은 그가 신화와는 다른 면을 갖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키는 조만간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낼 거다. 에시르의 움직임이 한 층 거세지고 있으니까.’
지금 로키는 아스가르드의 지하 감옥에 수감돼 있는 상태였다.
허나, 라그나로크가 시작된다면 모든 세상의 굴레와 속박이 사라진다.
자연히 로키를 압박하는 사슬 역시 모두 끊어지게 되겠지.
재현은 직감했다.
로키와의 만남이,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예정돼 있으리라는 것을.
그런 생각을 하는데. 별안간 이둔이 재현을 보며 물었다.
“자,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야. 내가 에시르의 도망자라는 이명을 얻기까지의 과정. 어때, 네가 원하는 대답이 됐어?”
“네.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재현은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어떻게 생각해도 그녀의 삶은 정상이 아니었다.
이둔은 그 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고민했을까.
전쟁을 일으킨 것은 오딘과 그 하위 신들이지만, 그 피해는 온전히 다른 이들이 감당하고 있었다.
‘많이 힘들었겠지. 언뜻 보기에는 밝아 보이지만… 그 속은 썩어 문드러졌을 거야.’
재현은 저도 모르게 어두워진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측은함을 느낀 탓에 표정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어쩌면 동질감을 느꼈는지도 몰랐다.
재현의 삶 역시 그리 평탄하지는 않았다고 자부할 수 있었으니까.
툭.
그때, 재현을 바라보던 이둔이 그에게로 다가오며 그의 이마를 가볍게 밀었다.
그녀는 어느새 밝아진 표정이었다.
“아직 어리구나?”
“…네?”
재현이 뜬금없는 말에 반문하자 이둔이 밝게 웃었다.
“원래 상대의 슬픈 이야기를 들어줄 때는 웃어야 하는 거야.”
그렇게 말하는 이둔은 분명 미소 짓고 있었으나, 어째서인지 사무치게 슬퍼 보였다.
재현은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그게 이둔의 선택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평온한 얼굴을 되찾은 재현을 보며 이둔이 허리춤에 손을 얹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이제부터는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예언에 관한 이야기입니까?”
“맞아. 슬슬 시작하려고. 1만 년 전의 예언, 그 두 번째 이야기를 말이야.”
재현은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예언의 이어지는 내용.
대체 그것에는 어떤 진실이 담겨 있는 걸까?
그리고 어째서 이둔은 저토록 밝으면서도 짙은 어둠이 어린, 여러 감정이 혼재된 표정을 짓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