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touch it, it'd all be profit RAW novel - Chapter (46)
“그 불여시 같이 생긴 애 부친이······ 미친개야, 미친개.”
김목정은 주위 눈치를 보면서 입을 가리고 소곤댔지만, 구도혁은 굳이 웃음을 참지 않았다.
“미친개? 큭.”
“웃을 일이 아니야, 이 녀석아.”
“미친개면 뭔데? 사모펀드? 검사?”
“그냥 검사면 다행이지. 대검 반부패 수사부였나, 강력부였나, 거기 부장이야.”
“대검?”
뭔소리인지 몰라 구도혁이 다시 물으려는 찰나, 구명진이 테이블을 탁 쳤다.
“크흠······ 입 닫고, 고기나 썰어.”
구명진은 생각했다.
‘쓰읍.’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 부장검사.
정치인, 기업인 가리지 않고 부패범죄 수사를 진두지휘하는 자리. 또한, 검찰총장의 핵심참모.
최근 그 자리에 임명된 자가 민대건이었다.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놈. 일명 미친개.
예전부터 그룹 기획실에서 요주의 인물이자 핵심로비 타깃으로 삼고, 프로필을 공유해왔던 인물이기도 했다.
‘그쪽 처가도 여간내기들이 아니고.’
구명진 입장에서는 천만다행이었다.
일전에 김목정이 그 딸내미를 동네에서 만났다길래 유심히 봐두길 잘했다.
‘여편네가 안 말해줬으면 놓칠 뻔했네.’
그는 냉수를 거칠게 들이켰다.
안 그래도 온갖 이슈로 바람잘 날이 없었다.
KJ홈푸드 식품에 유해성분이 들었다는 둥, 타사를 허위 비방했다는 둥, 대리점에 갑질을 한다는 둥.
게다가 KJ그룹 경영권 승계 문제까지 안팎이 모두 시끄러운 이때.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미친개한테 물리면, 출혈이나 감염 때문에 죽는 게 아니다.
미친개한테 물렸다는 소문 때문에 죽는다.
[ 오늘 주례로 수고해 주실 김진수 교수님은 신랑 최정현 군의 대학 시절······ ]구명진은 막내딸, 구지현을 불렀다.
“지현아.”
“네.”
그리고 신유원이 앉아있는 테이블을 턱으로 가리켰다.
“쟤네 둘, 무슨 관계라고? 동아리 친구?”
“사회인 모임 같은 데서 만난 사람일 걸? 나도 잘은 몰라.”
“깊은 관계는 아니고?”
“나도 몰라. 묻지 마.”
관심없다는 듯 대답했지만, 구지현의 눈알은 이미 신유원을 향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의식하지 않는 척.
도도하게 즐기는 척.
힐끗힐끗.
일종의 소유욕, 그리고 오기였다.
나 갖기는 싫지만 남 주기도 싫은.
그래서일까.
민채연과 신유원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면 툭, 툭, 짜증이 올라왔다.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헤퍼가지고는.’
게다가 신유원이라면.
자신이 알고 있던 신유원이라면.
저렇게 하하호호 떠들 형편이 아니었다.
‘나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었잖아?’
자신을 이렇게 우연히 만나게 되면 겉으로는 웃어도, 꽤나 절박하게 매달릴 줄 알았다.
그런데 신유원은 자신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것 같았다.
단 한 번도 자신을 쳐다보지 않았으니까.
[ 신부 입장! ]지금도 그랬다.
드레스를 길게 늘어뜨리며 신부가 들어오자 신유원은 환하게 웃으며 물개 박수를 칠 뿐이었다.
‘······신났네, 아주?’
그 태연한 모습이 그냥 꼴보기가 싫었다.
구지현은 휙, 고개를 돌리고 와인을 머금었다.
테이블에서는 세상 심각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냥 건들지를 마.”
“아버지, 뭔 일 있겠어요? 대한민국 검사가 바봅니까? 저런 쥐뿔도 없는 새끼한테 딸을 맡기게?”
“뭐든 조심해서 나쁠 거 하나 없다. 너희 형 지금 어디 가있어? 그거 보고 배운 것도 없어?”
“하, 씨.”
“이 자식이······.”
구지현에겐 관심 없는 이야기뿐이었다.
혼인서약이고, 주례사고, 뭐고.
가수가 와서 축가를 부르든 말든.
구지현은 그냥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더워 죽겠는데 뭔 야외 결혼이야.’
폰을 꺼내서 시간만 죽였다.
아무 페이지나 열어놓고 스크롤을 막 넘기면서 이것저것 보다보니 식이 슬슬 끝나갔다.
구명진은 벗어둔 재킷을 걸치며 일어섰고, 구지현은 짧게 물었다.
“우린 안 나가도 되죠?”
구명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신부 측 하객.
박소정의 직장동료들 다음으로, 신유원을 포함한 일행이 우루루 걸어나왔다.
구지현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스타일들 하고는 진짜, 수준 떨어지게.’
그렇지만.
그 하객들 사이로 자연스레 비집고 들어간 시선에는 또 신유원이 있었다.
‘······.’
구지현은 재빨리 엄지를 놀렸다.
[ 구지현: 그 옷들은 무슨 돈으로 산 거야? ]그리고 즉시 반응을 살폈다.
신유원은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일별하더니 도로 집어넣었다.
‘씹어? 주제에?’
구지현은 연거푸 머리를 쓸어넘기다가 신유원이 자리로 돌아가는 걸 확인하고는 다시 톡을 보냈다.
[ 구지현: 센 척하지 마 ] [ 구지현: 다 티 나니까 ]신유원은 다시 폰을 꺼내 보았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그대로 올려두었다.
구지현은 어이가 없어 절로 입이 벌어졌다.
결혼식은 끝을 향해 달려갔다.
[ 곧 신랑신부가 한 분, 한 분 뵙고 감사의 인사를 드릴 예정입니다. 하객 여러분께서는 자유롭게 피로연을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안내 멘트가 끝나기도 전에 구지현은 그대로 자리를 박찼다.
“이제 가도 되지?”
그러나 구명진은 아까와 달리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최 대표 올 거야. 앉아. 왔으면 얼굴 도장까지 제대로 찍고 가야지.”
구지현은 인상을 팍 찌푸리고는 답했다.
“그럼 화장실만 다녀올게요.”
그리고 그때.
지이잉─
폰이 울렸고.
구지현은 득달같이 톡 창을 열었다.
[ 신유원: 별채 뒤, 연못가 ]잇새로 웃음이 새어나왔다.
‘처음부터 그렇게 나올 거였으면서, 센 척은.’
구지현은 코를 오똑히 세우고는 느긋이 걸음을 옮겼다.
*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신유원은 짧은 인사도, 약간의 쿠션도, 조금의 웃음기도 없이 말했다.
“이거.”
구지현에게 내민 봉투 하나.
“······이게 뭔데?”
“5500.”
구지현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이거 주려고 부른 거야?”
“그럼?”
“이깟 5500, 나한테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냥 가지라니까?”
“나도 필요 없어.”
신유원의 무심하기만 한 반응에, 구지현의 목소리도 딱딱하게 굳어갔다.
“내가 피해를 준 건 맞잖아. 그러니까 내가 보상하겠다고.”
진짜 이유야 누구도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명분은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 일종의 위자료라는 이야기였다.
신유원은 물끄러미 구지현을 바라보기만 하더니 뚜벅뚜벅 다가가 구지현의 손을 붙잡았다.
“······뭐하는 거야, 지금?”
그리고 억지로 봉투를 쥐여주고는 말했다.
“그런 거라면 더더욱 받을 이유가 없지.”
“뭐?”
“그날부터, 넌 나한테 아무것도 아니었거든. 아무것도 아닌 사람한테 왜 피해보상을 받고, 왜 위자료를 받아야 되지?”
“······뭐라고?”
신유원은 그대로 구지현을 지나쳤다.
등 뒤에서 뭐라 뭐라, 악에 받친 소리가 들려왔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도리어 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오늘 이 만남으로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앞으로 살아갈 하루하루에 저 여자는 조금의 영향도 주지 못할 거란 사실을.
‘······나도 신기할 정도야.’
예전엔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는데.
콧잔등을 스쳐 지나가는 선선한 바람.
묵은 감정, 묵은 기억들도 거기에 모조리 실어 내보냈다.
“후우······.”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을 때.
──축하합니다!
새파란 시야를 가득 메운 건,
그에게도 낯선 메시지였다.
──《찬란한 30대: 튜토리얼의 끝》 클리어 조건 중 《4.관계》를 충족하였습니다.
──아직 충족되지 않은 클리어 조건은 《1.재■》, 《2.■■성》, 《3.유■》입니다.
──모든 클리어 조건을 충족하면 《찬란한 30대》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가동됩니다.
──튜토리얼의 끝에서, 선물 보따리를 들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신유원의 갈색 눈동자에 반짝, 하고 이채가 감돌았다.
어떻게 첫술에 배부르겠어
돌담길을 따라걸으며 자문했다.
튜토리얼의 끝?
네 번째 클리어 조건, 《관계》?
다른 클리어 조건이 3개가 더 있다고?
처음 문자열을 읽었을 땐 의문 투성이였지만, 이제는 그 의미를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방금 한 행동이 튜토리얼 클리어랑 이어졌다는 거지?’
그렇다면 아마도 《관계》 클리어 조건은, 구지현에게 빚을 갚는 것.
마음의 빚 따위야 처음부터 없었고.
5500만 원이라는 금전적 빚을 갚아서 《관계》가 클리어된 거 아닐까.
아니면 내 마음상태 때문일지도 몰랐다.
파혼이라는 내 인생 최악의 사건을 방금 종결시켰으니까.
그럼 나머지 셋은 뭘까.
알쏭달쏭하게 블록으로 가려놓은 키워드들.
《1.재■》
《2.■■성》
《3.유■》
1번은 재활?
튜토리얼이 시작될 당시에 내가 좀 많이 피폐해진 상태긴 했으니까.
그래도 그보다는 찬란한 30대와 관련이 많은 키워드일 것 같았다.
아마도 재력······?
──축하합니다!
──《찬란한 30대: 튜토리얼의 끝》 클리어 조건 《1.재력》이 해금되었습니다.
오오오, 대박.
진짜 재력이었어?
그런데 《재력》 클리어 조건은 무슨 짓을 해야 만족시킬 수 있을까.
돈을 더 벌어야 할까?
얼마나?
일단 2번부터 해금 시켜보자.
‘생각해!’
사업성, 인간성, 창의성······
참을성, 안정성, 가능성······
모래성, 자금성······
옆에서 코코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왜 안 돼?’
이거 나 혼자 생각해서는 답이 안 나오고, 나중에 국어사전을 뒤져봐야겠다.
‘가려놓은 거 그냥 지우개로 다 지워버리고 싶네.’
어쨌든 저 조건들을 전부 만족시키면 튜토리얼이 끝나고, 《찬란한 30대》가 가동된다는 거지?
지금도 이미 너무 좋은데 더 좋아진다는 거지?
······미쳤다.
‘탐! 코코!’
정원 가로수를 따라 날벌레처럼 파라라라락 날아다니는 둘을 보며 생각했다.
너희 덕분에 인생이 너무 재미지다고.
진짜 고맙다고.
*
돌아온 테이블.
커피모임 멤버들은 최정현과 박소정을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강태준은 멤버들에게 자기 카페 자랑을 하느라 바빴다. 그래서 그런지 평소보다 훨씬 신난 얼굴이었다.
“지금은 일 매출 50 정도 나오고 있지.”
“일 매출 50이면 한 달에 1500? 대박.”
“대박? 으하하! 그래봤자 이것저것 떼면 순수익 700, 800밖에 안 돼.”
“그것도 엄청 많이 버는 거잖아요!”
“에이, 그냥 용돈 수준이지.”
이야기를 들으며 자리에 앉았더니 강태준이 내게 물었다.
“유원이도 카페 연다며? 위치가 어딘데?”
저는 본진 배럭 하나에 전진 배럭 하나, 합쳐서 점포가 2개라 어딜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일단은 본진부터.
“신촌역 근처 골목길에 있어요.”
“골목길? 월세도 싸겠다?”
“그쵸.”
오늘 강태준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뭔가 대화패턴이 정상적이다 했는데.
“이야······ 골목길이면 손님들 별로 오지도 않을 거 아냐. 거기는 일 매출 30 정도만 나와도 선방이겠다?”
역시는 역시였다.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죠.”
“저번에 3년 내 폐업률이 50프로인가 그렇다며? 그런 불상사만 막아 봐. 열심히 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꺼들먹거리는 강태준.
저 뱀의 혓바닥을 「양질 전환」 해버릴라, 고민하고 있는 와중에.
“아유, 오래 기다렸지?”
“다들 오랜만입니다!”
최정현과 박소정, 오늘의 주인공이 등장했다.
“하이고, 최 대표님 오셨습니까? 두 분의 결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강태준은 최정현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인사했다.
최정현의 정체를 모르고 만났던 때와는 180도 달라진 태도.
그땐 작은 사업체 운영하시냐, 그 정도면 사업이 아니라 장사 아니냐, 하면서 막 무시했으면서.
“하하, 감사합니다.”
그럼에도 최정현은 정중하게 인사를 받고는 빈 의자를 당겨와 앉았다.
“아이구, 대표님 이럴 시간 되십니까?”
“그럼요. 다들 이렇게 먼 곳까지 힘들게 걸음 해주셨는데 감사인사도 진득하게 드려야죠.”
최정현이 빼준 의자에 박소정까지 앉고 나니 멤버들의 축하가 이어졌다.
“축하합니다! 소정 언니, 축하해!”
“오늘 결혼식 진짜 대박! 개멋졌어.”
“허니문은 어디로 가요? 너무 좋겠다, 진짜.”
다들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박소정이 신나게 입에 모터를 가동시키는 사이.
최정현이 내 쪽으로 슬쩍 의자를 당겨 앉았다.
“아, 대표님.”
“유원 씨, 식사는 맛있게 하셨습니까?”
“맛있었어요! 덕분에 너무 잘 먹었습니다.”
“하하, 그나저나 오늘 유원 씨 멋있네요.”
칭찬이긴 했지만 으으, 민망했다.
사업 해보겠다고 이제 막 카페 오픈하는 사람이 이렇게 명품으로 치장하고 다니면, 아무래도 좀 보기 그렇잖나.
“앜, 아닙니다. 이 모습은 잊어주십쇼. 내일부터는 앞치마로 무장하고 카페 무쌍을 찍어볼까 생각 중입니다.”
“하하, 그게 아니라······.”
최정현은 주변을 슥 살피더니 이어 말했다.
“그 파혼한 집안이랑 마주칠까 봐 참석하지 않겠다, 하셨으면 겁쟁이라고 생각할 뻔했습니다. 조금은.”
······아아, 그 얘기였나.
“아뇨, 제가 실례했습니다. 예식 시작도 안 했는데 제가 난리를 치는 바람에.”
“전혀요. 유원 씨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저도 소정이한테 다 들었습니다. 그 정도에서 끝난 게 양반이죠.”
양반은 당신입니다, 최 대표님.
따흐흑.
마음 속으로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 최정현이 작게 덧붙였다.
“무엇보다, 재밌었습니다. 역시 제3자 입장에서는 싸움 구경이 최고죠, 하하.”
아, 맞다. 이 사람도 30대였지.
사람이 예의바른 것 같으면서도 이럴 땐 패기가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