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37)
137화. ‘서리 칼날’ 부족 (3)
“너…… 지금 뭐라고? 쓰, 쓰레기? 날 보고 쓰레기라고!”
장은석이 기함했다.
손에 쥐고 있던 단검에 힘이 들어갔다.
트롤의 목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던 핏줄기가 더욱 거세졌다.
“……!”
카라칼이 움찔했지만, 잠시 뿐이었다.
오히려 진혁이 태연하게 앞으로 걷는 것을 보며, 동공이 미미하게 떨렸다.
자신들을 위해 나서 주는 인간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를 느낀 것이다.
저벅.
진혁이 조금 더 앞으로 걸었다.
“거기까지! 더 이상 다가오지 마라! 만약 그랬다간…….”
“그랬다간 뭐? 그 애를 죽이기라도 하겠다고?”
“왜? 내가 그럴 배짱도 없어 보이나? 마음만 먹으면 이딴 꼬맹이 하나는 얼마든지……!”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 애를 죽이고 나서 그 다음엔 어쩔 생각인지. 그게 궁금해서 말해 본 거야.”
단군 길드의 플레이어들은 모조리 전투 불능 상황에 빠졌다.
크고 작은 부상으로 인해 몸을 가누는 것마저 힘든 상황.
유일한 인질을 죽여 버린다면 장은석이 과연 살아서 이곳에서 나갈 수 있을까?
글쎄…….
그건 힘들 거라고 본다.
“그, 그렇다면 이 녀석과 함께 이곳을 빠져나가겠다. 그래! 나를 무사히 이곳에서 내보내 준다면, 그때 이 녀석을 풀어 주겠다.”
“공대원들은 어쩌고?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이는데, 과연 전부 다 빠져나갈 수 있을까?”
“안 됐지만 어쩔 수 없지. 살 사람이라도 살아야 하는 거 아니겠어? 적어도 나 혼자만이라면 얼마든지 탈출할 수 있을 거다.”
과연, 혼자서만 도망칠 생각이었던 건가.
그러나.
“아니, 그것도 이미 늦었어.”
진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타고난 탱커의 역할도.
제법 쓸 만한 딜러의 역할도 모두 수행할 수 있는 다중형 플레이어.
장은석은 언제 써도 평타는 칠 수 있는 카드였다.
‘허나 결정적으로 자존심 강한 성격과 이성을 쉽게 잃는 단점이 있지.’
본래라면 절대 공대장을 맡겨서는 안 되는 인물이다.
아무리 위급한 상황에서라도 냉정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자리가 바로 공대장이었으니까.
물론, 장은석이 이런 중요한 자리를 맡은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바로 단군 길드의 주력이라 할 수 있는 ‘진짜’ 공격대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공략 중이었던 것이다.
훨씬 위험도가 높은. 그리고 아는 사람이 극소수에 불과한 유적을.
일종의 히든 루트라고 할까?
나름대로 고인물들이 모인 집단답게 단군에서도 7층을 공략하기 위한 또 다른 방법을 찾아냈다.
‘공식적으로는 장은석한테 단군의 미래를 짊어진 듯 치켜세워 줬지만, 실상은 다른 길드들의 눈을 속이는 가림막에 불과한 셈이지.’
당연한 이야기지만, 녀석들이 아무리 기를 쓰고 감추려 해도 소용없다.
진혁은 이미 그 수까지 훤히 읽고 있었으니까.
‘단군 길드의 메인 공격대야 뭐 천천히 생각해도 충분하고…….’
지금 당장은 이 녀석을 처리하는 게 우선이다.
진혁이 천천히 왼손을 앞으로 뻗었다.
검지와 엄지가 맞붙었다.
그에 맞춰 장은석이 자세를 잔뜩 낮췄다.
진혁이 무얼 하려는 건지는 모르지만, 트롤을 방패막이로 삼으면 안전할 거다. 장은석은 그렇게 확신했다.
바로 그때.
따악!
손가락에서 경쾌한 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고유 능력은커녕 스킬이 발동되는 기미조차도 없었다.
“하…… 되도 않는 허세였냐?”
장은석의 입에서 안도와 비웃음이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찰나.
트롤들 틈에서 무언가 아장아장 다가왔다.
네 개의 다리와 통통한 꼬리가 좌우로 흔들렸다.
검은색 비늘에 노란 눈동자를 지닌 파충류.
고구마였다.
진혁의 신호를 기다렸다는 듯 순간, 고구마의 몸에서 엄청난 마력이 방출되었다.
“모기!!”
쩌렁쩌렁 울리는 대기.
고대종의 ‘피어’가 공간 전체를 장악해 버렸다.
대형 몬스터들을 사냥하며 담수호를 차지한 트롤들은 물론, 그들을 이끌었던 카라칼조차도 일말의 공포를 느꼈을 진데.
감히 장은석 따위가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단검에서 힘이 빠진 게 보였다.
툭!
진혁이 움직였다.
가볍게. 그러면서 빠르게.
눈 위를 스치고 지나간 몸이 장은석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헉!”
장은석이 한 발 늦게 반응했으나, 이미 늦었다.
늦어도 너무 늦었지.
“네가 이런 짓거리만 하지 않았어도 이렇게까진 되지 않았을 거야.”
이건 진심이다.
선을 넘지만 않았다면 적당히 굴리는 선에서 마무리했을 테니.
그 말을 끝으로.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뽑아든 쌍룡검이 횡으로 가로질렀다.
길고 긴 핏줄기와 함께 잘려 나간 오른팔이 허공에서 빙그르르 회전했다.
“끄아아아악! 내, 내 팔! 내 팔이 시이이발!”
장은석이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상처 부위를 움켜쥔 채 눈 위를 뒹굴었지만, 일말의 동정심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부상당한 공대원들을 모두 내팽개치고 혼자서만 살아 가려고 했던 겁쟁이.
살기 위해서라면 그 누구라도 희생할 수 있다고 여기는 쓰레기.
그렇기에, 오히려 팔 하나는 인과응보의 대가치곤 싸게 먹힌 셈이다.
‘굳이 마무리할 필요는 없겠지.’
자신들의 새끼를 협박한 이상. 어차피 아이스 트롤들이 가만히 있진 않을 테니까.
***
“……놀랍군.”
카라칼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처음 명예를 저버린 채 다수로 공격을 해 왔을 때만 해도 전형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더럽고 야비하기만 한, 그런 인간이라고.
그러나 완벽하게 인간들을 통솔하며, 압박해 오는 모습엔 카라칼 또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방금 전 보여 줬던 움직임.
‘……거리를 좁히는 속도도 놀랍지만, 검을 휘두르는 속도는 아예 차원이 다르다.’
절대 장은석이라 불린 인간이 약한 게 아니었다.
행동이 비겁하긴 했어도, 순식간에 전사들을 돌파해 그 뒤에 있는 인질을 잡는 건 그만큼 실력이 뒷받침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만만찮은 놈을 단 한 번에 제압하다니.
보면서도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너무도 깔끔한 발도술이 아직까지 눈에 밟혔다.
만약…….
저기 서 있던 상대가 자신이었다고 한들, 저 공격에 반응할 수 있었을까?
막은 다음에 반격까지 할 확률은……?
생각이 거기까지 이어지자 카라칼의 심장이 조금씩 빠르게 고동치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두근!
저토록 강한 인간이라면…….
어쩌면 가능할 지도 모른다.
일족을 착취하고. 명예를 짓밟은 놈들에게…… 어쩌면 한 방 먹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쿠쿠쿠쿠쿠쿠!
카라칼이 마력을 해방했다.
***
카라칼의 인정을 받으려면 어떤 식으로든 녀석이 전력으로 부딪치게 만들어야 한다.
그게 무를 숭상하는 서리 칼날 부족이 다른 종족을 인정하는 방식이었다.
‘예상대로군.’
진혁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원래는 장은석을 베어 버리는 게 아닌 다른 방식을 이용하려고 했는데…….
결과론적으로 보니 이편이 더 그럴듯한 무대가 되었다.
‘교감’ 능력을 사용해 상대의 경계를 완화시킨 것도 이런 판을 짜는 데 톡톡히 제 역할을 다 했으리라.
그럼, 다음은…….
진혁이 ‘탐식의 눈’을 사용했다.
종족: 아이스 트롤
나이: ?(알 수 없는 이유로 해금되지 않았습니다.)
레벨: 82
힘 30 민첩 28 체력 30 마력 35 영웅 45
고유 능력: ‘하얀 맹수’
스킬: Lv14 ‘왕의 길’, Lv13 ‘가속’, Lv13 ‘굳건한 심장’, Lv12 ‘뛰어난 재생’
특징: 카라칼은 ‘서리 칼날’ 부족의 역대 최강이라 평가받는 족장입니다. 탑의 강자들에 의해 이용당하며 핍박받는 종족 트롤. 카라칼은 그 굴레를 끊기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명예와 긍지를 아는 종족이기에, 한 번 은원 관계를 맺으면 결코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
[복사 조건]트롤들의 인정을 받으려면 두 가지 조건을 통과해야 합니다.
1. 카라칼과의 대결에서 승리하십시오.
2. 서리 칼날 부족과의 술자리에서 마지막까지 정신을 잃지 마십시오.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달성할 경우, 카라칼이 보유하고 있는 고유 능력과 스킬 중 하나를 선택하여 복사할 수 있게 됩니다.
이번에도 상식을 벗어난 게 은근슬쩍 섞여 있었다.
‘그래, 뭐 이제는 익숙하지.’
오히려 식상하게 1번 조건만 나왔다면 실망했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진혁은 이미 시스템의 정신 나간 요구에 적응이 된 상태였다.
이제 복사 조건까지 확인한 이상 거리낄 건 없다.
“일기토라면 나도 제법 좋아해.”
솔직히 말해. 아까 전처럼 다수를 이끌고 레이드를 벌이는 건 취향에 맞지 않는다.
역시나 전투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단 둘이서 치고받는 게 제일이지.
진혁 또한 상대에 맞춰 마력을 해방했다.
[고유 능력 ‘검의 무덤’이 발현됩니다!]검신을 타고.
화르르륵!
검붉은 기운이 하나의 형을 이뤘다.
“과연!”
카라칼의 입가에 함박웃음이 나타났다.
이 기운.
이 느낌……!
틀림없다. 강진혁이라 불린 인간은 강하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서로가 서로를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콰콰콰콰콰콰!
바닥에 쌓여 있는 눈들이 모조리 비산했다. 물리 법칙을 비틀어 버리는 능력을 지닌 창이 눈보라 사이를 꿰뚫었다.
모든 걸 사각(死角)으로 만드는 자연환경.
그럼에도.
진혁은 눈송이가 미묘하게 흔들리는 걸 통해 궤도를 예측했다.
부우웅!
창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창날이 진혁의 목 바로 옆으로 스치고 지나갔다.
“방어를 무시하는 창이라…… 확실히 꽤 흥미로워.”
진혁이 살며시 창날에 뺨을 갖다 댔다.
이야. 감촉이 서늘하긴 하다.
하지만.
방어를 무시하는 능력을 지니든, 스치기라도 하면 전신에 독이 퍼지는 능력이 있든 간에.
전부 다. 모조리 피해 버리면 그뿐이다.
실제로 몇몇 고인물들은 아예 방어구마저 내팽개친 채 벌거벗고 다니기도 했으니까.
“재밌구나! 하지만, 나 또한 밑천을 전부 드러낸 건 아니다!”
그 말과 함께. 카라칼의 창이 고속으로 진동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웅!
마치, 수십 개의 창이 하나로 겹쳐진 것만 같은 착시 현상이 일어났다.
드디어 그걸 사용하려는 건가.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동시에.
[카라칼이 고유 능력 ‘하얀 맹수’를 발동합니다!]바닥에 깔린 눈 위로 한 줄기 바람이 일어났다.
시작이다.
푹!
진혁이 옆으로 몸을 날리는 것과 맞물려.
눈으로 만든 가시가 바닥에서 솟구쳤다.
만약 아주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발과 함께 몸이 통째로 꼬챙이에 꿰뚫렸을 것이다.
푹! 푹! 푹!
순식간에 가시가 연이어 솟구쳤다.
진혁이 날다람쥐처럼 몸을 날렸다.
“하아압!”
거기에 진혁이 마지막으로 발을 디딜 곳을 예상한 카라칼이 창을 던졌지만, 진혁은 그마저도 피해 버렸다.
눈 속에 반쯤 꽂힌 창이 부르르 떨렸다.
“이것까지 여유롭게 반응하다니. 정말로…… 다시 봐도 놀랍군. 그래. 이래야 내가 기대하는 인간답지.”
카라칼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보통이라면 방금 이 기습에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당했을 것이다.
심지어 처음 데카서스가의 혈족들과 상대했을 당시에도 베르티온과 오필리아. 두 혈족 또한 이 공격을 허용했었다.
비록…….
‘마지막, 그 녀석에겐 통하지 않았더라고 하더라도.’
기대치가 점점 더 높아진다.
적어도 그 괴물과 비슷한 실력을 갖고 있을 확률이 높았으니까.
아니, 어쩌면…….
그때.
진혁의 입가에 빙그레 미소가 그러졌다.
“나도야.”
“뭐?”
“이 정도도 못 하면 실망할 뻔했는데, 아슬아슬하게 합격점은 줄 수 있겠어.”
장기 말로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전력이다.
그러니 슬슬 조건에 대해 말해도 괜찮겠지.
진혁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그, 그걸 대체 어떻게?”
카라칼에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진혁이 말한 내용은 일족이 아닌 외부인은 결코 알 수 없는 내용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