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657)
657화. 전쟁의 끝, 그리고 일상 (2)
“매니저. 이제부터는 이곳을 멤버십으로 운영하든가 하세요. 사람을 좀 가려서 받으라 이 말입니다.”
한 눈에 봐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중년의 여성이 명령조로 말했다.
“여기에 처음 오는가 봅니다.”
“하긴, 알면 함부로 저러지 않았겠죠.”
그 뒤에 서 있는 경호원들도 여자의 말에 수긍한다는 듯 한 마디씩 덧붙였다.
전원이 마력을 다룰 줄 아는 이들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꽤나 마력을 잘 다루는 축에 속했다.
‘저 여자가 최근에 귀족이니 뭐니 하면서 말이 많은 놈들 중 하나인가 보네.’
일명 신흥 귀족.
시련의 탑이라는 거대한 보고를 제대로 이용할 줄 아는 이들은 이내 새로운 계급을 만들어냈다.
재벌2세나 3세를 넘어 정부는 물론 길드조차 건드릴 수 없는 새로운 위치에 오른 것이다.
탑에서만 얻을 수 있는 마정석과 색(色)이 있는 성유물의 독점.
그걸 바탕으로 탑 내에 있는 거주자들과 긴밀한 협약을 맺음에 따라 엄청난 부와 명예, 권력을 손에 넣게 되었다.
인류를 구원해야 한다는 명목 하에 정부로부터 외교관 이상의 지위 역시 확보하게 되었고.
호랑이가 없는 굴에 여우가 판을 친다고.
지금 저게 딱 그 꼴이었다.
“제 말, 들었습니까?”
여성이 다시 한 번 다그쳤다.
그러자 매니저가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쩔쩔맸다.
“예. 사모님. 손님들께 주의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는 김에 애완동물도 들여보내지 못하도록 하세요. 저 검은 똥개한테서 어떤 병이 있을 줄 알고 함부로 들여보내는 건가요?”
“모기이이? 모기이이이!!!”
진혁의 발아래에서 마정석을 먹던 고구마가 이빨을 드러냈다.
다른 건 몰라도 이상한 똥개라는 표현은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진혁이 품안에서 파닥이고 있는 고구마를 애써 진정시켰다.
아마도….
기억이 조작되기 전 엘리스 폰 아타락시아를 알던 이들이라면 저런 말을 하진 못했을 거다.
영등포의 재신 에피소드는 재벌들 사이에서도 길이길이 회자된 사건이었으니까.
‘거기 기둥 몇 개가 엘리스 소유였지.’
신의 손이라며 손을 댄 걸 전부다 쓸어담던 엘리스의 모습은 sns에서도 한동안 유명세를 탔었다.
하지만 그건 과거의 이야기고.
지금은 웬 코스프레를 한 소녀들이 기업을 인수하느니 뭐니 하고 있으니… 지켜보는 입장에서 당연히 어이가 없을 수밖에.
로젠베르크 가문의 테레사는 알 법도 한데, 상대는 테레사를 정확히 알아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뭐 보통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적당히 사과하며 물러설 법 하긴 하지만.
문제는….
엘리스에게 있어서 그런 것 따윈 하등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언제나 본인이 세계의 질서이자 법이라 생각하는 고고한 순혈의 진조.
때문에 엘리스에게 있어 거슬리는 건 언제나 치워버려야 할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콧대 높은 여왕님이라는 칭호가 괜히 붙은 게 아니라는 소리다.
특히나 반년이란 세월동안 새롭게 떠오른 신흥귀족이니 뭐니 하는 것들에 대한 반감이 극에 달해있던 터라 얼마 남지 않은 인내심이 한 방에 사라져버렸다.
움찔하고.
엘리스의 손 끝에 마력이 맺히려 했다.
“야!”
진혁이 다급히 소리쳤다.
자칫잘못하다간 호텔 하나가 서울의 지도에서 사라져버리게 생겼다.
“감히 가주께….”
전 데카서스의 일원이었던 오필리아가 송곳니를 드러냈다.
“쯧쯧. 죽고 싶어 환장했나보네. 건드려도 하필 이쪽에 시비를 거냐.”
“껄껄껄. 처음에는 다들 그러는 법이지. 우리도 박물관에서 사장에게 싸움을 걸지 않았는가?”
이유리와 민정우가 불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을 보며 혀를 찼다.
“다행이다. 기억이 지워지지 않아서. 아니었으면 나도 멋 모르고 저런 짓을 했을 거 아냐?”
“동감이에요.”
마인 협회의 멜레나와 트리스탄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들 진혁과 그 멤버들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뼛속까지 새겨두고 있었다.
바로 그때.
엘리스를 대신해서 새로운 멤버들이 칼을 뽑았다.
“형. 이 녀석들 죽여도 돼? 나쁜 놈들 같은데?”
“응응. 잘게 썰어도 될 것 같은 얼굴이야. 특히 저 아줌마는 코랑 귀가 없는 게 더 예쁠 것 같아.”
쾌락 살인마.
케이시와 주드로가 순진한 얼굴로 진혁에게 물었다.
손에는 고기를 자를 때 쓰는 나이프가 쥐어져 있었다.
“이 꼬맹이들이 미쳤나. 어른들 이야기하는데 어딜 애들이 끼어들어?”
경호원이 즉시 마력을 해방했다.
A급에 해당하는 실력자답게 마력이 금세 유형화되었다.
그런데.
“어…?”
눈도 깜빡이지 않았는데, 눈앞에 있던 소녀가 사라졌다.
푸욱.
0.1cm 남짓.
날카로운 무언가가 블레이저를 뚫고 살까지 닿았다.
한 방울의 핏방울이 흘렀다.
케이시가 생글거리며 위를 올려다봤다.
광기에 젖은 눈동자가 남자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다.
소녀의 달콤한 목소리가 귓가에 속삭였다.
“아저씨. 아저씨의 속은 어떻게 생겼어? 남들처럼 빨간 색이야? 아니면 혹시 다른 색일까나?”
다른 색을 가진 사람이 없나 열심히 찾아봤거든. 근데 아직까진 다들 빨간색만 있었어.”
푸우욱!
칼날이 조금 더 깊이 들어왔다.
“자, 잠깐…!”
경호원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본능적으로 죽음의 공포를 느낀 것이다.
“죽여도 되지? 오빠가 나쁜 사람은 죽여도 된다고 했잖아.”
“참아. 여기서 피보면 뒤처리가 힘들어. 목격자도 너무 많고.”
“그럼 다 죽이면?”
“응응. 목격자만 없으면 밀실살인이라고 했어! 아니면 신원파악이 안 되게 조각조각 나눠버려도 되고. 그치?”
주드로도 쾌활하게 거들었다.
살벌한 대화에 경호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쿠웅!
“히이익! 사, 살려줘!”
결국 공포감을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소변까지 지려버렸다.
“큭!”
“이것들이….”
나머지 경호원들이 아공간에서 무기를 꺼내려 했다.
하지만,
서걱!
철컹!
천유성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검의 노래’가 발동되자 아공간에서 반쯤 모습을 드러낸 무기들이 그대로 잘려나갔다.
[성유물 ‘클라우 솔라스’의 특수효과 ‘약육강식(弱肉强食)’이 발동됩니다!] [자신보다 등급이 낮은 아이템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뭐, 뭐야?”
“무슨 짓을 한 거지?”
아이템이 아이템을 베어버릴 수 있다니. 이런 게 있다는 건 듣도보도 못 했다.
무언가 이상한 술수를 부린 게 틀림없다.
그렇게 판단하고 고유능력을 발동하려 할 때.
“능력을 사용하면….”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은 천유성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죽이겠다.”
이건 협박이 아니다. 어설픈 경고 따위는 더더욱 아니었고.
그저 담담히 사실만을 고할 뿐이었다.
쿠쿠쿠쿠쿠쿠!
엄청난 압박감이 호텔 1층 전체를 짓눌렀다.
검성의 기세에 압도된 이들은 손가락 까닥할 수조차 없었다.
유일하게 기가 꺾이지 않은 건 분위기 있는 중년 여자였다.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런 짓을 하는 건가요? 보아하니 이쪽을 잘 모르는 듯 한데, 내가 누구인지 알았다면 이딴 짓을…. 감히 이딴 짓을 할 생각조차 못 했을 거란 말이다 이 천한 것들아!“
여자가 악에 가득 받쳐 고함을 질러댔다. 얼굴까지 시뻘겋게 달아 오른 걸 보자니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다.
예전에는 겁 없이 덤비는 잔챙이들이 없었는데.
기억이 없어진 게 이런 점이 불편하긴 하네.
진혁이 모처럼 새로운 기분을 느끼며 피식 웃었다.
저 신흥 귀족들이란 세력이 꼴갑을 떨어대는 게 짜증나긴 했지만, 나름대로 쓸모 있는 점들도 있었다.
‘자잘한 탑의 층계들을 정리해주는 것도 그렇고.’
마정석을 비롯해 쓸만한 아이템들을 한 자리에 모아주고 있는 것도 그렇다.
개미처럼 땀을 뻘뻘 흘리며 저장해둔 보물과 정보들.
이쪽은 그게 먹음직스럽게 익길 기다린 다음에 적절한 시기가 도래하면 한 번에 집어삼켜버리면 된다.
일일이 탑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는 수고를 덜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아줌마야말로 우리가 누구인지 알았다면… 입을 열고 내뱉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퇴고하면서 했을 거야.”
진혁이 죽어라 노려보고 있는 여성을 뒤로한 채 호텔을 떠났다.
그동안 충분히 쉬면서 앞으로의 일을 위한 계획을 세웠다.
이제는 이 다음 단계를 향해 움직일 시간이다.
* * *
시련의 탑 26층.
언약으로 인해 쑥대밭이 된 각 층계의 복구를 마친 동맹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왔군.”
“오랜만이다. 그동안 별 일은 없었는가?”
“신경 써준 덕분에 괜찮았어요.”
층계도 종족도 가지고 있는 격도 다르다.
허나, 하나의 목적 아래 목숨을 걸며 고군분투했었기에 깊은 유대감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대 덕분에 큰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우리 부족 전부가 살아남을 수 있었어.”
서리칼날 부족의 카라칼이 진혁에게 고개를 숙였다.
“우리 역시 당신과 같은 편에 싸울 수 있어서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국의 그랜드 소드마스터 에브라함과 페시스 역시 진혁을 향해 예를 갖췄다.
“크하하하! 본좌의 제자가 어디가서 맞고 다니진 않지.”
“유성 공자도 고생하셨어요.”
암황과 추혼사영.
그리고 정파에서 온 이들도 보였다.
“천마께서는 괜찮으신 겁니까?”
“으음. 지존께서는 저번 싸움으로 내상을 심하게 입으셨다. 많이 회복하시긴 했지만, 아직 외부 활동을 하실 정도는 아니더구나.”
툴차와 일대일을 한 천마가 무리를 하긴 했다. 홀로 태고의 존재에 맞섰으니 당연히 여파가 있을 수밖에 없겠지.
그 외에도 올림포스와 북유럽 이집트 마계 등 다양한 세력의 주신급들이 모였다.
“전쟁을 하는 게 아니라 관광 겸 친목으로 다른 층계를 가는 건 오랜만이군.”
“웬일로 자린고비 같은 저 인간이 층계 이동 비용을 지불한 게 조금 수상하긴 하다만….”
“너무 그리 안 좋게만 생각하지 말자고. 아무렴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싸워줬는데 뜯어먹을라고만 하겠어?”
신격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늘어놨다.
진혁이 묘한 웃음을 짓고 있는 걸 보지 못한 채.
‘노예가 하나… 노예가 둘… 노예가 셋.’
대관료와 층계이동비 기타 음식과 음료 인건비 및 부가세 등등.
초대장에 0.01mm로 적어둔 각종 비용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납부기한까지 지불하지 않으면 소원을 들어줘야 한다는 독소조항까지도.
릭을 통해서 강제성 있는 초대장을 만들어놨기에 앞으로도 꽤나 재밌는 상황이 펼쳐질 거다.
물론 나한테 있어서만 재밌는 상황이.
그런데 바로 그때.
저벅.
“짓궃으신 건 여전하신가 봅니다.”
낯설면서도 그리운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함께 시련의 탑을 정상까지 오르며 동고동락했던 소중한 시청자.
수리부엉이였다.
“오랜만에 다시 만나뵙는군요.”
수리부엉이가 한 쪽 팔로 인사를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