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only S-class summon RAW novel - Chapter 26
나 혼자 S급 소환수 26화
털보의 의뢰 (3)
살림(殺林)의 주인.
김제하는 과거 꽤나 이름을 떨쳤던 A급 서머너였다.
그런 그에겐 크나큰 상처가 있었으니….
던전 보상에 눈이 먼 서머너들에 의해 크나큰 배신을 당한 것이다.
정을 나눴던 동료들을 잃었고 그 역시 목숨을 잃을 뻔했다.
정치질로 인해 범죄자로 몰렸지만, 그 누구도 사건의 전말을 몰랐다.
소수인 그를 믿어주는 자도 없었다.
억울했던 김제하가 선택했던 것은 바로 복수.
협회 활동을 중단하고 음지로 숨어든다.
그 후, 본격적인 환경 미화에 나서게 된다.
가장 처음 한 일은 뜻 맞는 자를 찾아 살림(殺林)이란 단체를 만드는 거였다.
비슷한 처지의 서머너들과 함께 던전에서 동료를 죽였던 자들은 물론, 사람 목숨을 파리같이 여기는 쓰레기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유명한 사설 수사 집단과의 협업으로 악독한 범죄를 저지르는 간악한 자들만을 선별해서 처리했다.
그는 그것을 의협(義俠)이라 생각했다.
정의를 위한, 억울한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의로움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꽤나 성과가 있었다.
사회가 비교적 깨끗해졌으며, 힘 있는 자도 원한을 사지 않기 위해 조심했다.
살림(殺林)은 그 정도의 힘이 있었고 무엇보다 끈질기며 집요했다.
김제하는 자부심이 있었다.
자신이 하는 행동이 결국은 이 사회를 위한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 뭐…… 그 얘기는 이제 됐고.”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은 진도윤이 귀를 후비적거렸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고, 그가 궁금한 것은 김제하의 과거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자부심 넘쳤던 네가 이런 수준 낮은 도둑질을 결심한 이유가 뭔데?”
“……딸 때문이다.”
“딸?”
“최근 집단 인원들을 꾸려 미등록 던전에 간 적이 있다. A급으로 유명한 ‘악몽의 성전’이었지.”
“아, 대충 짐작이 가네.”
악몽의 성전.
진도윤도 익히 알고 있는 던전이었다.
‘서큐버스가 있는 곳이었지.’
녀석은 한 가지 특징이 있다.
죽기 직전, 자신을 공격했던 자에게 한 가지 끔찍한 저주를 건다는 것.
「대상자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병에 걸린다.」
지독하다면 지독한 저주였다.
본인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야 한다면?
사람에 따라 생살을 뜯는 것보다 심한 괴로움일 수도 있다.
‘나야 뭐, 유리아가 바로 해제해 줬지만.’
그도 미궁에서 수많은 서큐버스를 잡았다.
김제하의 차이점이라면, 그의 옆에는 ‘빛의 성녀’가 있었다는 점.
“수없이 고민했다. 내 가치관과 딸의 생사. 둘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그리고 이것이 내 선택의 결과다.”
김제하가 괴로운 눈빛을 했다.
“결국, 딸을 살리기 위해 도둑질을 한 거라는 거네?”
“……그렇다. 살림(殺林)의 사정으로는 도저히 그것들을 구할 여유가 없더군.”
그제야 진도윤은 모든 것을 이해했다.
녀석은 그저 죽어가는 딸을 살리기 위한 아버지였던 거다.
‘A급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동일한 급수의 해제가 필요하니까.’
처음엔 그 희귀하다는 A급 힐러를 찾아 나섰겠지.
그다음은 A급 엘릭서를 구해보려 했을 거다.
그러나 그게 어디 손쉽게 구해지는 종류던가.
때와 시기가 맞지 않으면 구하고 싶어도 얻을 수 없는 게 바로 엘릭서였다.
‘그러다 털보의 매장을 털었던 거고.’
국내에서 털보만큼 고품격의 아이템을 취급하는 곳도 드무니까.
아마 의료용 물약을 이것저것 뒤지다 그나마 가장 가치가 높아 보이는 B급 엘릭서를 가져갔을 거다.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 테지만, 그만큼 간절했을 테지.
‘후우, 이 새끼 하필…….’
진도윤은 자신이 쥐고 있는 엘릭서를 떠올렸다.
하필 자신의 눈앞에 엘릭서가 필요한 사람이 나타나다니, 이것도 하늘의 운명일까.
‘이거 조온나 비싼 건데…….’
자리가 불편했다.
그냥 무시하고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깊은 내면에 자리 잡은 오지랖은 그런 그를 가만히 두질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 깨끗한 눈빛이 마음에 들었다.
저런 자는 결코 은혜를 원수로 갚지 않는다.
“야, 여기 이거 보이냐?”
결국, 결심한 진도윤은 가방 속에 있던 엘릭서를 꺼내 들었다.
“……그, 그것은……?”
김제하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자신이 그렇게도 찾던 아이템이 진도윤의 손에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저 약 하나면 딸을 살릴 수 있어.’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은 가족.
김제하는 자신의 삶보다 딸이 더 중요했다.
“후우, 너 이게 얼만 줄 아냐?”
한숨을 푹- 내쉰 진도윤이 말을 이었다.
“최소 500억이야, 500억. 거기에 물량도 없어서 경매에 올리면 가격은 더 뛰어오르지. 다 죽어가는 노친네도 이거 한 병이면 회춘한다니, 부르는 게 값일 수밖에.”
“……알고 있다.”
“근데 너는 이게 필요하지만, 돈이 없고. 맞지?”
“그, 그렇다.”
김제하의 낯빛에 기대감이 서리기 시작했다.
줄 생각도 없다면, 굳이 저런 말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뭐, 주는 거야 어렵지 않아. 사실 나는 돈에 그렇게 큰 욕심은 없거든. 근데 내가 처음 보는 널 위해 이걸 선뜻 줘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난 그냥 평범한 서머너지 자선사업가는 아니거든.”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제안을 하나 하지.”
“경청하겠다.”
김제하가 진중한 목소리로 진도윤을 올려다봤다.
어느새 떨림조차 멈춰 있었다.
그로서도 이게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짐작한 것이다.
“살림(殺林)의 정보력이 대단하다 했지?”
“적어도 국내에는 견줄 집단이 없을 거다. 협회만큼 영향력이 있는 것은 아니어도 정보력 하나만큼은 뒤지지 않을 자신 있다.”
“딸을 살리는 대신, 내가 필요할 때 그 공익의 집단을 움직여 줄 수 있을까?”
“……!”
김제하의 눈빛이 격하게 흔들렸다.
진도윤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살림(殺林)은 집단.
아무리 김제하가 수장이라도 그 집단의 목적이 한순간에 바뀔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면 소속되어 있는 수하들이 의문을 표시할 테니.
“집단의 존재 이유를 바꾸라는 것이 아니야. 이것은 네 개인적인 일이지. 그렇기에 나도 너 개인한테 제안하는 거다. 집단은 집단대로 흘러가게 내버려 두고 너만 필요할 때 날 도우면 되는 거야. 단, 네 모든 노력을 다해서.”
진도윤이 던진 제안.
김제하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사실 답은 간단했다.
딸을 살릴 것인가, 죽일 것인가.
그의 뇌의 알고리즘은 어느 순간부터 단순해져 있었다.
“이미 나는 딸을 살리기 위해 수치스러운 범죄를 저질렀다. 나는 딸을 살릴 수만 있다면 목숨도 내놓을 자신이 있다.”
“답은 되었네.”
희미한 미소를 지은 진도윤이 그를 향해 엘릭서를 던졌다.
“헙!”
김제하가 기겁하며 그것을 받아냈다.
잘못하다 바닥에 떨어지면 큰일이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쉽게?’
동시에 진도윤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다.
대범해도 보통 대범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은 살수 집단의 대표.
목표를 달성한 후, 언제든 칼을 뒤집어 꼽을 수 있다.
‘진도윤……. 처음 보지만 대단한 자다.’
컨트롤도 컨트롤이지만, 배포가 남달랐다.
만약 자신이라면, 어떠한 보장도 없이 저렇게 고가치의 아이템을 선뜻 넘길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이 없었다.
“뭐 해, 딸 아프다며. 빨리 가 봐.”
소파에 앉아 손을 휘적휘적 흔드는 그.
순간, 무언가 감동의 물결이 그의 심장을 툭- 건드렸다.
존경심일까?
아니면, 단순한 고마움일까.
알 수 없는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어느새 눈시울도 붉어졌다.
“……오늘의 이 은혜는 죽어서도 잊지 않겠다.”
김제하의 답에 진도윤은 피식 웃었다.
“아서라, 죽으면 무슨 소용이냐. 빚은 살아서 갚는 거다.”
* * *
“형님!”
퇴근했던 털보가 소식을 받고 헐레벌떡 달려 나왔다.
“왜.”
“저, 정말이십니까? 정말 그 유명한 살수 집단의 수장을 혼자 처리하신 겁니까?”
처음에 살림(殺林)이란 말을 들었을 때는 기겁했다.
자신이 장사하면서 뭔가 악덕한 일을 저지른 게 있나 뒤부터 돌아봤다.
게다가 나타난 것이 그 집단의 수장이라 했을 때는 놀라 까무러치는 줄 알았던 털보였다.
‘그런데 그 수장을 밤 까마귀 형님이?’
직원들에게 무용담을 들었을 땐, 장난인 줄 알았다.
그러나 폰으로 보내온 자료 화면을 봤을 땐, 정신이 없었다.
평범한 사람이 아닌 줄은 짐작했지만, 설마 이 정도였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다 들었으면서 뭘 물어봐?”
“그게 믿기지 않아서……. 살림이 어떤 집단인데…….”
“실망인데, 믿어서 의뢰 맡긴 거 아니었냐?”
“그런 말이 아니지 않슴까, 형님!”
“어쨌든, 녀석은 앞으로 다시는 여기 건들 일 없을 거다. 단순한 도적질이나 하고 다닐 놈은 아니야.”
“가, 감사합니다.”
털보가 이제야 안심했다는 듯 환히 웃었다.
“어쨌든, 해결했으니까 이거나 팔아줘.”
진도윤은 두 가지 아이템을 내밀었다.
이혜연과 이충수가 얻었던 A급 장비였다.
“이게 뭡니까?”
“그냥 A급 귀걸이랑 망토. 그렇게 상등품은 아냐.”
“에이, 그래도 붙을 만한 건 붙어 있네요. 알겠습니다, 저 털보의 명예를 걸고 무조건 제값 이상 받아내겠습니다. 형님!”
상황이 해결되니 확실히 다시 예전 모습을 찾았다.
그런 털보의 모습을 보니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100년이란 세월 동안 싸움만 하다 보니, 이런 지인들의 소소한 반응들이 하나하나 다르게 와닿았다.
‘어쨌든 오늘은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어.’
정보 집단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걸 엘릭서 하나로 얻어낸 것은 나름 싸게 먹힌 거다.
아마 딸 일이 무사히 해결되면, 다른 루트로 찾아오겠지.
거기에 털보의 의뢰까지 해결하면서 수수료 문제도 해결했다.
본격적인 던전 탐험에 앞서 대충 기반은 마련한 셈.
“오늘은 좀 쉴까?”
암시장에서 나온 진도윤은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방향은 그가 거주하고 있는 풍운 길드였다.
이미 해가 져서 하늘이 어둑한 상태.
‘그러고 보니, 오늘 새로운 단원들을 뽑는댔지.’
자금이 다시 충당된 만큼, 이혜연이 새 단원을 뽑는다고 했었다.
단원의 수를 늘리는 것은 앞으로의 던전 입찰에도 당첨 확률을 높여주는 좋은 수단이기에 꼭 필요하다.
‘과연 어떤 녀석들이 왔을까.’
비록, 잠깐 머무는 길드였지만 진도윤은 괜스레 궁금했다.
아무래도 그동안 정이 고팠었나 보다.
* * *
“후우.”
풍운 길드 숙소에 도착한 진도윤은 샤워를 마치고 컵라면과 맥주 한 캔을 땄다.
알찬 일과가 끝나고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즐기는 이 휴식은 진도윤에게 굉장히 달콤했다.
그간 누려보지 못했던 거니까.
물론, 그 와중에도 진도윤의 감응력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규웅.”
휴식과 동시에 데몰리션을 통제하는 것이다.
남들은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일이었지만, 진도윤에겐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다.
‘수련은 꾸준히 해줘야지.’
평화 속에서도 소환수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
항상 신들린 컨트롤을 선보이는 진도윤만의 비결이었다.
“자, 그럼…….”
소파에 정 자세로 앉은 진도윤이 핸드폰을 켰다.
“어디 또 다른 던전이 있나 볼까?”
아직 유준태에게는 소식이 없었다.
동료들의 흔적을 찾는 데 꽤 애먹는 것 같았다.
풍운 길드원들도 새로운 단원을 선별하느라 바쁘다.
이제 남은 시간 그가 할 일은 하나.
데몰리션의 레벨업에 집중하는 것.
진도윤은 새로운 던전을 찾기 위해 유준태가 소개해 줬던 「던전 의뢰 커뮤니티」라는 어플을 활성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