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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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데뷔
그렇게 호구스러움을 만방에 과시하던 보호와 균형은 문득 한 가지 생각을 떠올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참. 얘는 특히 노래를 굉장히 잘해요. 저도 얼마 전에 처음 들었는데 깜짝 놀랐다니까요.
-정말요?
-한번 들어보고 싶지만…
아무리 허물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다 해도 여신은 여신인지라 함부로 불러달라는 말을 꺼낼 엄두를 내지 못한다. 보호와 균형처럼 나름 친숙해진 사이라면 몰라도, 꽃과 바람은 이제 막 처음 만난 사이가 아닌가. 괜히 신경을 건드려서 천벌이라도 내려지면 큰일이다.
하지만 꽃과 바람도 그렇게 눈치가 나쁜 여신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챈 것이다. 꽃과 바람은 갑자기 노래에 대한 얘기를 꺼낸 보호와 균형을 속으로 조금 원망하면서도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노래… 불러볼게요.
-헉! 정말요?
-감사히 듣겠습니다!
-모두 조용히! 조용히!
왁자하게 떠들던 사람들은 일제히 숨을 죽였고, 그렇게 조용해진 상태에서 마침내 꽃과 바람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너의 이름은 꽃.
평화를 간직한 꽃.
꿈을 간직한 꽃…
-아…
-…
처음 몇몇 사람이 작게 탄성을 터뜨리는가 싶더니 그것조차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이내 꽃과 바람이 부르는 작은 노래 소리만이 흘러넘친다.
그녀의 노래는 그 자체로 하나의 꽃이 되어 피어났다. 불어오는 바람에 그 꽃망울이 터지는 순간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애달픈 심정을 느끼며 눈물을 글썽거렸고, 그 기쁨과 환희에 젖은 채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기대했던 사람들도,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이 순간 만큼은 모두 숨을 죽인 채 그녀의 노래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던 그 존재가 틀림없는 여신이라는 사실을. 이것이야 말로 여신의 노래라는 사실을.
그리고 마침내 꽃과 바람의 노래가 끝났을 때, 사람들은 멈추고 있던 숨을 길게 몰아쉬며 꿈에서 깨듯 현실로 돌아왔다.
-하아…
-이건…
-후우우우…
어설프게 그냥 대충 잘부르는 수준이었다면 여신의 이름을 연호하며 환호성을 질렀겠지만, 지금은 그런 식으로 소리를 지르는 것조차 불경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그래서 대신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처음 한두 명이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이내 다른 이들도 뒤따라 박수를 치기 시작한다. 여신과 연결된 정신 속에서도, 신상에 기다리고 있는 현실에서도.
갑자기 신상에서 기원을 드리고 있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근처의 사람들은 이게 뭔 일인가 하는 표정으로 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이들의 시선이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것을 알면서도 박수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열렬하게 손바닥을 마주치고 있었다.
사람들이 가만히 한숨을 내쉬기만 할 뿐,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꽃과 바람은 자신의 노래가 좋지 않았던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실망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온 세상이 떠내려가는 듯한 우렁찬 박수소리가 이어짐과 동시에 그녀의 내면에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형상화된 힘이 빠른 속도로 차오르기 시작하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
꽃과 바람은 그 뿌듯한 기분에 그만 울컥 눈물을 쏟고 말았다.
“여신님?”
가만히 보호와 균형의 손을 잡고 있던 꽃과 바람이 왈칵 눈물을 쏟기 시작하자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카트린이 놀라 얼른 눈물을 닦아 주었다. 하지만 꽃과 바람은 북받쳐 오르는 감격을 주체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욱더 서럽게 펑펑 울기 시작했다.
“흐에에에… 흐엉엉…”
“…”
성물이 생겼다고 좋아하던 여신이 갑자기 펑펑 울기 시작하니 영문을 모르는 다른 이들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형진은 역시나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보호와 균형에게 넌지시 이유를 물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그게…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더니 이렇게…”
“그렇군요.”
적어도 서럽다거나 슬퍼서가 아니라, 너무 기뻐서 웃는 울음이라면 굳이 위로하거나 할 필요는 없는 일이다. 그제서야 다른 사람들도 안심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여전히 보호와 균형의 당혹스러워 하는 표정은 변하지 않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꽃과 바람의 노래가 끝나고 한동안 열렬하게 박수를 치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보호와 균형에게 넌지시 이런 말을 건네기 시작한 것이다.
-아아… 이렇게 여신님의 노래가 좋았다니 미처 몰랐어요.
-그러게. 어떤 여신님은 한 번도 불러주신 적이 없었는데.
-으음… 여러분이 생각하는 여신님이 제가 생각하는 그분 맞는 건가요?
-아마도.
-역시나.
-그럴지도.
직접적으로 압박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듯한 그런 느낌. 하지만 보호와 균형이 아무리 바보라도 그런 그들의 내심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꽃과 바람에게 노래를 시킨 것 까지는 좋았는데, 그만 자신에게도 화살이 돌아와 버리고 만 것이다.
어떻게 보면 무례한 일일수도 있다. 감히 인간이 신에게 무언가를 강제하다니. 하지만 보호와 균형은 당황하기는 해도 그런 걸 가지고 노여워 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자신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기… 전 쟤처럼 그렇게 노래를 잘 하지는 못 해요.
더듬거리며 그렇게 말하자 사람들은 기회다 싶었는지 벌떼처럼 달려들어 말하기 시작한다.
-괜찮습니다. 허허.
-맞아요.
-그냥… 살아 생전에 여신님의 노래 소리를 한번 들어보는 것이 그저 소원이랄까. 어이구, 허리야.
-저 오늘 군대 가요. 그냥 그렇다고요.
-전 내일부터 탄광 들어갑니다. 그냥 그렇습니다.
-전 시집가요. 조금 먼데로 가기 때문에 당분간은 참배하러 오기 힘들 거에요.
-부럽다.
-난 언제쯤 장가가지?
그 동안 어디 숨어있었나 싶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말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물론 개중에는 어쩐지 삼천포로 빠지는 듯한 느낌의 말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실력은 상관 없으니 그냥 한 번 들어보기만 해도 좋겠다는 염원이 가득 담겨 있었다.
“으으…”
잠시 우왕좌왕하며 동공지진까지 일으키며 어쩔 줄을 몰라하던 보호와 균형은 결국 결단을 내렸다.
-아, 알았어요. 불러줄게요. 대신… 못 부른다고 그러기 없기에요.
-물론이죠!
-당연합니다! 누가 감히!
-그러는 놈 있기만 해봐. 내가 그냥 콱!
결국 보호와 균형은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 듯한 느낌으로 노래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메에에, 메에에, 어린 양이 울어요.
메에에, 메에에. 엄마 양이 울어요.
메에에, 메에에. 아빠 양이…
-…
-…
침묵이 감돈다. 하지만 이건 꽃과 바람이 노래를 불렀을 때와는 명백하게 다른 의미의 침묵이다. 누군가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열심히 억누르고 있었고, 누군가는 역시나 이래야 우리 여신님이지 하는 듯한 부드러운 미소를 억누르고 있었으며, 또한 극소수의 누군가는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끓어오르는 감격의 눈물을 억누르고 있었다.
어쩔 수 없다. 솔직히 말해서 보호와 균형이 아는 노래라고는 카트린이 회합장에서 아이들과 부르던 노래 정도 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즐겁게 부르는 동요나 성가 같은 것은 꽤 흥겨워서 여신도 함께 따라부르곤 했는데, 그것이 입에 배어 가끔 형진과 사냥할 때 콧노래로 흥얼거리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방금 꽃과 바람이 불렀던 노래를 따라했다가는 곧바로 비교가 되어 버릴 테고, 그 외에 아는 노래라고는 이런 동요 같은 것 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이전에 추종자를 가져본 적이 없었던 차이가 이런 부분에서 여실하게 드러나 버렸다고나 할까.
얼굴이 화끈거리는 기분을 만끽하며 어쨌든 노래를 끝내자, 신도들은 열광적인 환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여신님, 만세!
-노래 잘 하시는데요. 뭘. 허허.
-군대에 가서도 오늘을 잊지 않겠습니다.
-시집 가서 아이를 낳으면 꼭 이 노래를 알려 줄게요.
-유언장에 남기겠습니다. 제 기일에는 꼭 이 노래를 부르라고.
-…
놀리는 거라면 차라리 화라도 내겠는데, 정말로 기뻐하고 있으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물론 그 중에 몇몇은 웃음 가득한 목소리로 일부러 과하게 환호를 보내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여신이 너무 귀여워 미칠 것 같아서 그 감정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꽃과 바람과는 다르다. 보호와 균형은 그런 신이다. 처음부터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는, 자신들과 너무나도 친숙한 그런 여신이다. 너무 귀여워서 얘기를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되는 그런 여신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신도들의 그런 진심까지는 보호와 균형에게 전달되지 않고 있었다.
“끙…”
보호와 균형 역시 자신의 내면에 신앙이라는 이름의 힘이 주욱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꽃과 바람처럼 감격하거나 할 수가 없다. 어쩐지 해서는 안될 짓을 해버린 것 같은 복잡한 기분이 느껴진달까. 이런 걸로 신앙심이 이렇게 충만해져도 되는 건가 싶은 기분마저 느껴질 정도다.
그나마 다행이다. 만약 형진이 이 리사이틀 장면을 목격했다면 녹화든 뭐든 해서 보호와 균형의 신도들에게 역사로 길이 남기자고 했었을 테니까. 그런 점에서 보자면, 형진 모르게 이 일이 지나가 버린 것만큼은 적어도 여신에게는 무엇보다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누군가에게는 감격스러운, 하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장차 흑역사로 기억될 지도 모르는 순간이 그렇게 끝났다.
형진은 꽃과 바람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힘이 꽤 많이 모였습니다. 이걸로 일단 조향사들이 자신에게 부여된 권능을 임의로 끄고 켤 수 있도록 하고 싶은데 어떻겠습니까.”
“진님의 뜻대로 하세요.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진 않을 거에요. 잔향이라고 해야 하나. 이미 일깨워진 각자의 향기는 권능과는 무관한 영역의 일이라.”
“아… 그런 문제가 있군요.”
호구신의 사제들이 지닌 매료의 능력과는 이런 점이 또 다르다. 역시 원조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완전히 향기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는 해도, 역시 그냥 무작정 향기를 흩뿌리고 다니는 것보다는 나은 일이라 일단 기능의 추가는 생각한 대로 진행했다.
[꽃과 바람의 권능을 임의로 끄고 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향기의 경우 꽃의 권능을 발현시키지 않는 상황이라도 잔향이 남을 수 있으니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어?”
잠에서 깨어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하며 책을 들여다보고 있던 수빈은 눈앞에 메시지 하나가 나타나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느닷없이 게임에서나 보던 메시지가 예고도 없이 현실에 툭 하고 튀어나왔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메시지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조향사 메뉴가 신설되었습니다. 이 기능을 사용하시면 언제든 여신님과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헐?”
마치 지금 겪고 있는 모든 일이 꿈이 아니라는 듯이 나타난 그 메시지에 수빈은 잠시 우왕좌왕하다가 이내 조심스럽게 메뉴를 실행했다.
[저기… 계세요?] [네. 혹시 수빈님이세요?] [아…]된다. 정말로 된다. 세상에. 이게 도대체 무슨!
[…] […]하지만 대화는 거기서 끊기고 말았다. 꽃과 바람은 보호와 균형처럼 재잘거리면서 자신의 추종자에게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다 해대는 신이 아니었고, 수빈 역시 그리 수다스럽다고 할 수 없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향사 메뉴를 실행시켜 놓고 서로 멀뚱멀뚱 거리고 있기를 얼마나 했을까. 문득 수빈은 승희에게 오늘 놀러오라고 했던 일을 떠올렸다.
진이라는 남자가 자신에게 길드성의 시설들을 원하는 대로 써도 좋다고 하긴 했지만, 그것이 외부의 다른 사람을 들여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어제는 정신이 없어서 미처 생각지 못했다가 아침에 일어나서야 비로소 그 사실을 깨달은 수빈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렇지 않아도 고민하던 중이었다.
[저, 여신님.] [네. 수빈님.] [저기… 제가요. 친구를 오늘 초대하려고 하는데… 괜찮을까 싶어서요.] [잠시만요.]꽃과 바람은 잠시 말이 없더니 이내 이렇게 대답했다. 자신이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일이라고 판단해 형진에게 의견을 물을 것이다.
[진님이 괜찮다고 하시네요. 그런데 혹시 그분도 요리사인가요?] [네. 장인 등급이 된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요.]수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렇게 답했다. 그 대답을 들은 형진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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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에 꽃과 바람 움짤 넣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