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46
00746 168. 큰 숲 =========================
산군들은 사교적인 면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면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종족이 강하긴 하지만 그 강함이란 것이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잘 인지하고 있었고, 수가 많은 다른 종족들 속에서 단순한 궁핍한 은둔을 선택하기를 거부했다. 절대적이지는 않아도 그들의 강함을 적절히 활용하면 충분한 도락을 즐기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그들의 사고방식은 충분히 효과적이었고,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그들의 터전과 맞물려 다른 종족들로 하여금 경외심을 얻어낼 수 있었다. 산군이라는 이름처럼, 그들은 대륙 중심부의 거대한 산을 지배하는 영험한 종족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 뜻하지 않은 일이 찾아왔다. 그들 종족을 창조한 어머니, 포트니아 테론의 부름이 당도한 것이다. 그들로서는 이러한 부름을 거부할 방법이 없었고, 결국 모든 세계의 환수들이 모여드는 이 장소로 터전을 옮겨올 수밖에 없었다.
거부할 수 없는 명령에 따라 터전을 옮기기는 했지만 산군들로서는 그리 만족스러운 결과가 아니었다. 거대한 산을 호령하던 지위는 물론이고 수천년을 이어 내려오던 터전 역시 간 데 없었다. 힘들게 초막을 짓기는 했지만, 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그곳에서 잠을 청할 때면 자신들이 살아가던 아름다운 전각들이 눈에 아른 거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만을 표할 수는 없었다. 포트니아 테론의 뜻은 그만큼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포트니아 테론이 굳이 형진을 이곳으로 데리고 와서 그들을 보살피게 한 뜻도 결국 이런 부분을 감안했기 때문이다. 누리던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의 말에 따라 터전을 옮긴 그들에 대한 미안함을 보상하는 의미라고나 할까.
형진이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이것 저것을 베푸는 것도 결국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한번 바닥까지 떨어진 자들에게 있어 그가 베푸는 달콤한 과실들은 그만큼 더 향기롭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형진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산군들은 자신에게 새롭게 주어진 모든 것들에 더 크게 감동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대표자격인 산군 아가씨 규설도 마찬가지였다.
흑요호들의 경우엔 이미 둘이나 형진의 반려가 되어 아이까지 열둘이나 나은 상황이니 그들을 제치고 들어가기는 어렵다. 하지만 흑요호들은 사교적인 면이나 정치적인 면이 현격하게 부족했고, 그런 그들의 특성은 다른 환수들을 이끌어 가기에는 여러모로 제한적인 부분이 많았다.
규설이 파고든 것은 바로 그러한 부분이었다. 흑요호가 할 수 없는, 산군이기에 가능한 부분이 있음을 그녀는 파악했고, 때문에 마을이 지어지는 것을 보고는 곧바로 산군들을 이끌고 형진을 찾아나서는 일을 벌였던 것이다.
급하게 다른 환수들에게 사절을 보내어 대표자들을 불러들인 것도 같은 이유다. 불려온 이들은 어디까지나 손님이고, 그들을 불러들인 산군은 주인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것은 은연중에 형진으로 하여금 산군이 자신을 대신해 이들을 이끌어 가는데 부족함이 없음을 피력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형진이 만들어 놓은 음식들을 모조리 베풀어 대표자들의 마음을 풀어 놓은 것도 그런 맥락에서 행해진 일인 셈이다.
하지만 여기서 예상외의 일이 벌어졌다. 홍예의 대표자인 소야가 느닷없이 형진의 제자를 청하고 나선 것이다.
제자. 그 말을 듣는 순간 규설은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흑요호처럼 직접 살을 부대끼는 가족까지는 아니어도, 그에 준하는 위치가 아직 남아 있었음을 간과했음을 소야의 말을 듣는 순간 깨달아 버린 것이다.
이대로 그냥 방관하고 있으면, 모처럼 길을 닦아놓은 일이 모조리 수포로 돌아가고 산군을 대신해 홍예가 흑요호 다음 가는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 규설이 뒤늦게나마 급히 소야를 따라 제자가 되기를 청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제자… 입니까.”
형진이 쓴웃음을 지으며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붉은 눈썹의 건장한 사내 역시 뒷머리를 긁적이며 소야와 규설 옆으로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괜찮으시면… 저도 제자라는거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만.”
“이름이…”
“쿠라고 합니다. 종족은 나티입니다.”
나티가 뭔지 형진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여자만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남자도 적당히 섞여 있는 것이 다른 사람들의 미심쩍어하는 시선에서 벗어나기도 편하다. 솔직히, 형진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그의 주위엔 여자가 너무 많았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형진은 빙긋 웃었다.
“이유가 있습니까?”
“에… 그냥, 저도 이런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볼 수 없을까 해서요. 직접 만들 수 있다면, 더 많이 먹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하하…”
충동적이긴 하지만 소야처럼 맹목적이지도 않고, 규설처럼 다른 의도가 섞인 것도 아니다. 헐렁하기는 하지만 목적 자체는 어쩌면 가장 순수한 쪽인지도 모르겠다.
“알겠습니다. 갑작스럽긴 하지만, 여러분의 뜻이 그렇다면 거절할 수는 없는 일이겠죠.”
그 말에 소야가 번쩍 고개를 들며 말했다.
“그럼, 제자로 받아들여 주시는 겁니까?”
“네.”
형진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손가락을 딱 하고 튕기며 누군가를 불러냈다.
“림.”
그러자, 공간이 열리며 메이드복을 입은 작은 요정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넵! 부르셨어요? 스승님.
“이들이 내 새로운 제자가 되고 싶다는 구나. 후배들이니 인사해라.”
-오오!
림은 반색하며 소야와 규설, 그리고 쿠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허리에 손을 척 얹은 상태로 특유의 잘난 척 하는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저는 스승님의 수제자인 림이라고 해요! 만나서 반가워요!
“바, 반갑… 습니다.”
“반… 가워요.”
“허허, 이거 참. 귀여운 선배님이 계셨군요. 쿠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규설은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소야의 돌출 행동에 놀라 얼른 제자가 되기를 청하기는 했지만, 이미 형진이 제자를 거느리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한 탓이다.
망했다. 이렇게 되면 여러 제자 가운데 하나로 존재가 매몰되어 버릴 수도 있다. 대신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존재감이 퇴색되어 버리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스승님! 후배들을 데려가서 제가 제자로서의 마음가짐이라든가 이것저것 가르쳐 줘도 될까요?
림은 요정이다. 그리고 요정들은 중2병이라는 이름의 불치병을 앓고 있는 종족들이다. 가만 놔둬도 흑염룡 타령이 절로 입에서 나오는 판에, 후배라는 이름의 그럴 듯한 존재들이 덧붙여졌으니 어떤 식의 반응이 일어날지는 뻔한 일이다.
“상관없지만, 아직 할 일이 있으니 그것부터 해결해야겠다.”
-넵. 스승님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후배들이 생긴 것이 기쁜지, 오늘따라 림의 제자 행세가 더욱 강도를 더해가는 느낌이다.
“홍예라고 했습니까.”
“네.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스승님.”
공적인 자리에서 다른 호구들에게도 늘 그러했듯이 모든 환수들에게 말을 높이고 있던 형진이지만, 스승과 제자라는 입장이 된 상태에서도 그렇게 할 필요는 느끼지 못한다.
“알겠다. 그렇게 하지.”
“감사합니다.”
“그래. 홍예라는 종족은 어떤 자들이지?”
형진의 물음에 소야는 조심스럽게 답했다.
“저희들은 무지개와 같은 이들입니다.”
“무지개?”
“그렇습니다.”
“잘 이해가 안 되는군.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부탁해도 될까.”
“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저희들은 무지개로 대변되는 일곱 가지 속성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습니다. 빛을 통한 어떠한 공격도 저희들에게는 통하지 않으며, 환상을 꿰뚫어보는 힘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호오.”
포트니아 테론이 창조한 환수들은 신보다 한 단계 낮은 등급의 생명체들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사람들이 신을 만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이들은 사실상 인간들이 마주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생명체인지도 몰랐다.
소야는 홍예의 능력을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했지만, 실제로 그들은 빛의 마술사라는 이명으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강력함을 지니게 된다. 특히 나이를 먹어 빛의 이치를 깨달은 홍예는 강력한 힘을 지닌 반신도 가볍게 여길 수 없을 정도의 위력을 보이게 된다.
물론 홍예가 아무리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한들, 신을 넘어설 수는 없다. 다시 말해 환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힘이 있다한들 허세와 망상이 만들어낸 환상은 예외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일반적인, 신이 직접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마법이나 권능을 빌어 만들어낸 환상 정도가 한계다. 물론, 당연한 일이지만 홍예들 간의 능력에도 개인차가 있으니 인간의 마법으로 만들어낸 환상을 무조건 꿰뚫어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가능하다는 것일 뿐,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아니다.
하지만 빛을 통한 직접적인 공격은 얘기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최근 미 해군에서 방어용으로 채용된 30kw급 레이저 같은 것이 직격해도 그들은 입고 있던 옷이 타버린 것에 대해 분노할 뿐이다. 빛에 의한 간접적인 피해, 이를테면 열 같은 것에도 높은 저항력이 있기 때문에 태양 같은 장소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활동할 수 있는 사기적인 종족이 바로 홍예이다. 실제로도 불사조와 같은 형태의 전승들 대부분은 홍예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흑요호도 그랬지만, 홍예도 절대로 간단하게 볼 수 없는 환수들인 셈이다.
형진이 이런 부분까지 단숨에 꿰뚫어 본 것은 아니지만, 빛을 다루는 환수라면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것이 사실이라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많은 도움을 받게 될 것 같군. 이렇게 좋은 인연을 맺게 되어 반갑다.”
“저야말로 분에 넘치는 영광입니다.”
형진의 시선은 옆에 선 쿠에게로 넘어갔다.
“나티라는 종족에 대해서도 알고 싶군.”
그 말에 쿠는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저희는 힘이 셉니다.”
“그렇군. 어떤 힘이?”
형진의 물음에 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떤… 힘이라뇨?”
“힘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 않은가.”
그 말에 쿠는 맹렬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힘은 오직 하나, 바로 이것 뿐입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팔을 들어 알통을 만들어 보인다. 그러자 팔뚝의 부풀어 오르며 어지간한 여자 허리 정도 두께는 되어 보일 정도로 근육이 불어난다. 그란웰의 아줌마들이 보면 바로 까무러칠 정도의 우람하다 못해 괴물같은 팔뚝이다.
“저희들의 힘은 산을 부수고 강을 메우며 호수를 만듭니다. 그 무엇도 진정한 힘 앞에서는 의미가 없는 법이죠.”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는 모습을 보니 어쩐지 왕성 한 곳에서 빈둥거리며 놀고 있는 할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녀석도 사실은 나티라는 종족으로부터 피를 물려받았던 건 아닐까. 나중에 슬며시 한 번 물어봐야 할 것 같다.
“혹시… 본신이 곰과 비슷한 형태 아닌가?”
혹시나 하고 묻자, 쿠는 놀랍다는 듯이 얼른 답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맞습니다. 나티는 크고 붉은 곰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아, 그랬군.”
역시 머슴은 힘이 좋아야 하는 법이지. 사실 일반적인 경우 힘 좋은 머슴은 함부로 들이지 않는 법이지만, 이미 그의 왕성에는 더 힘 좋고 오래가는 머슴이 있다. 바로 형진 본인이 그 주인공이다. 게다가 그는 힘 뿐만이 아니라 기술에 있어서도 실로 따를 자가 없을 정도. 눈앞의 이 붉은 눈썹 사내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음하하하.
형진은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스스로의 모습을 깨닫고는 쓴웃음을 짓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말했다.
“잘 알았다. 일단 이리 와서 나에게 문양을 받은 후 림과 함께 가서 기본적인 것들을 익히도록. 이쪽의 일을 마무리 지은 뒤 가겠다.”
“네!”
“그것이 스승님의 뜻이라면, 따르겠습니다.”
“…”
홍예와 나티에 대한 것을 물었으니 다음은 산군에 대한 것을 물으리라는 생각에 할 말을 떠올리고 있던 규설은 자신의 차례를 건너뛰자 울상이 되었다. 하지만 이미 형진의 말은 떨어졌고, 듬직한 후배들이 생겼다는 사실에 기세등등해진 림이 그런 그들을 재촉하고 있었다. 이제와서 자기도 말하게 해달라고 해봐야 모양만 빠질 뿐이다.
그런 규설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림은 새로운 후배들을 재촉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자! 우선 가서 메이드복부터 맞추죠. 음… 쿠님은 집사복으로 해야 하나. 아무튼, 어서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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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편.
밥 묵으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