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voice phishing, but it's a life reversal RAW novel - Chapter 227
울리는 벨 소리에 추민재 부장이 강주혁에게 전화를 받으라는 손짓을 던졌고, 주혁이 잠시 복도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
곧 그의 핸드폰에서 익숙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실버’단계의 주인이신 강주혁님 안녕하세요!] [강주혁님의 유료서비스 ‘실버’의 남은 횟수는 총 8번입니다.] [유료 서비스인 ‘실버’단계를 통해 인생역전에 더욱 가까워지길 기원합니다! ] [계속 진행을 원하시면 1번을 눌러주세요. ]평소 그냥 넘어가는 단계에서 주혁이 짧게 한마디를 읊조렸다.
“ 8번. 이제 실버 단계도 8번 남았어. ”
다음 단계는 무엇일지, 어떻게 진행될지야 알 수 없지만, 순간 주혁은 약간의 아쉬움과 기대감이 피어올랐고, 곧 1번을 눌렀다.
-띠익.
[들으실 항목의 키워드를 ‘선택’해주세요! ] [ 1번 ‘회장님 너무 감사해요’, 2번 ‘그리즐리 베어 모습’, 3번 ‘5명 그리고 3명’, 4번 ‘끝없이 막장으로 치닫는’, 5번 ‘영어와 한글이 섞인’, 6번······] [ 다시 듣기는 #버튼을 눌러주세요. ]나열된 키워드를 들은 주혁이 수첩을 꺼내, 키워드들을 메모했고.
“ 흠. 막장이라······ ”
잠시간 고민하던 그가 막장이라는 단어에 호기심이 동했는지, 4번 ‘끝없이 막장으로 치닫는’ 키워드를 선택했다.
-띠익.
-뚝.
가차 없이 끊긴 보이스피싱을 뒤로하고, 핸드폰을 내린 주혁이 짧게 읊조렸다.
“ 아침드라마 시청률 40%. ”
이어 그가 수첩에다 메모하며 방금 들었던 미래정보를 파악했다. 이번 미래정보에는 꽤 여러 가지 정보가 담겨있었다.
“ 시트콤. 결국, 제작 중단되는구나. ”
MBS의 시트콤은 강주혁이 신경 쓰곤 있었지만, 아직 개입하기 전이었다.
“ 그런데 그 시트콤이 꽤 괜찮은 성적을 거둔다는 거고. ”
주혁이 턱을 쓸었다. 어쨌든 MBS는 시트콤 제작 실패 이후, 런칭한 막장 아침드라마가 시청률 40%를 넘기면서 홈런을 친다는 뜻이었고.
“ 그 막장 아침드라마를 쓴 작가가 누구길래······ ”
누구길래 국민 전체가 신선한 충격에 빠진다는 것일까? 당장에는 알 수 없었다.
“ 뭐가 됐든, 꽤 재밌는 정보야. ”
사옥 이사 후, 처음 받는 보이스피싱 정보. 강주혁은 흥미가 넘치는 표정으로 수첩을 속주머니에 넣으며 사장실의 문을 다시 열었다.
잠시 후.
사장님을 기다리기 지루했는지, 추민재 부장이 의자에 앉아 졸고 있었다.
“ 크어- ”
그 모습을 측은하게 바라보던 주혁이 잠시 자게 두자는 뜻에서, 소리죽여 의자를 빼냈다. 하지만 추민재 부장의 잠귀는 밝았다.
“ 크억! 허! 나 잤어? 잔 거냐 방금? ”
“ 그래 보이던데. 오늘은 들어가 쉬어. ”
주혁의 걱정에도 추민재 부장이 고개를 저었다.
“ 됐어 임마. 사장님도 안 가는데, 부장 나부랭이가 가긴 어디 가. ”
말을 마친 추민재 부장이 길쭉하게 기재기를 켜며 입을 쩍 벌렸다. 그 입에서 하품이 쏟아져 나왔다.
“ 크ㅡ아. 어으! 죽갔네. 통화 끝났지? 보고 시작합니다? ”
“ 예-예. ”
애써 정신을 차린 추민재 부장이 다이어리를 펼쳤다.
“ 사장님이 알아보라고 한 시트콤을 얘기하자면 먼저, MBS 이동남 국장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
“ 어어. 그럼 거기부터 시작해. ”
“ 이동남 국장. 나이는 50대 초반에 이력은 평범한데, 방송국 내부에서 공중파 드라마국 국장답지 않게, 굉장히 도전적인 이미지더라고. 방송국 윗선인 노친네들이 엄청 싫어하는 느낌이고. ”
시작된 보고에 주혁이 피식했다.
“ 시트콤을 간다고 한 것부터가 그쪽 노친네들이 딱 싫어할 만하지. ”
“ 방송국 노친네들이야 하던거 하던거 외치니까. 멍청한 늙은이들. 뭐 여튼. 시트콤 얘기는 우리 드라마 ‘없어졌던 남자’ 제작 이전부터 추진했던 모양인데, 이번에 MBS가 참패했잖아? ”
“ 참패? ”
“ 우리 드라마 경매에서. ”
“ 아아. ”
살짝 고개를 갸웃했던 주혁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추민재 부장이 다이어리 다음 장을 넘기며 말을 이었다.
“ 덕분에 MBS 입지가 바닥에 떨어졌어. SBC야 우리를 버리면서 안숙희 작가를 잡았고, KBC는 뭐 알다시피 현재까지는 우리와 관계가 깊지. 건욱이 토크쇼에 쿡방에 이번 우리 드라마까지 잡았으니까. 근데 MBS만. ”
“ 아무것도 못 건졌다? ”
“ 그렇지. 과정이야 어쨌든 결과가 붕 떠버렸잖아. MBS만. 그러니까 이동남 국장 위치가 내부적으로 어떻게 되겠냐? ”
추민재 부장의 물음에 주혁이 짧게 숨을 뱉으며 팔짱을 꼈다.
“ 위쪽 노친네들이 헐뜯겠지. ”
“ 뭐, 당연히 그렇게 되것지. 평소에도 이동남 국장을 좋게 안 봤으니까. MBS 여기저기 약 좀 쳐보니까, 이동남 국장 완벽하게 이빨 빠진 호랑이 취급이더라고. 시사국까지 퍼질 정도면 말 다 했지. ”
“ 그래서. 시트콤은? ”
“ 말해 뭐해. 국장이라는 자리가 그렇잖어? 편성을 꽉 잡고있는 자리라도, 여기저기 노친네들이 귀찮게 개입 들어오면 별수 있나. 엎어야지. 도전하더라도, 그런 집단은 힘이 없으면 개뿔 아무것도 못 하지. ”
이번 전쟁에서 MBS가 완벽히 패하면서 이동남 국장이 설 자리를 잃은 셈.
즉, 파토가 났다는 뜻이었다.
“ 그리고. 그 이동남 국장이라는 양반. 사장님 진짜 기억 안 나? ”
“ 응? ”
펼쳤던 다이어리를 덮으며 추민재 팀장이 재밌는 설화를 전하듯 시시덕거렸다.
“ 그 양반. 너 아역으로 들어갔었던 ‘대왕성장기’ 조연출이었어. ”
“ 아. ”
‘대왕성장기’. 강주혁의 데뷔작 영화 ‘할머니···’다음 아역으로 출연했던 초대박 드라마였다.
몰랐던 곳에서 인연이 이어졌다.
“ 흠. ”
어느새 침음을 뱉은 주혁의 검지가 책상을 때렸고.
-톡, 톡, 톡.
정확히 10초가 지난 시점에 강주혁의 입이 열렸다.
“ 일단. 간을 좀 볼까? ”
사장의 발언에 눈치 빠른 추민재 부장이 슬쩍 웃음 지었고.
“ MBS 이동남 국장에 찌 던져? ”
강주혁이 아까 들었던 보이스피싱을 떠올리며 속으로 읊조렸다.
‘ 시트콤도 시트콤인데. MBS는 40%짜리 초대형 막장 아침드라마도 있어. 언젠지야 확실치 않지만, 살짝 긁어서, 여지만 줘도 지금으로선 충분하겠지. ’
대충 생각을 정리한 주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 찌 던져. 대신에 이번 건 나 혼자 움직일게. ”
“ 하이고~ 사장님아. 같이 움직이자고 해도, 저 바빠서 같이 못 움직여요. ”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추민재 부장에게 주혁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일을 추가했다.
“ 그런 와중에 미안한데. 우리 홍보팀장님이랑 얘기해서, 조촐한 파티 하나 열었으면 싶은데. ”
“ 파티?! 뭔 파티? ”
“ 그냥. 직원 아티스트 할 거 없이 전부 참여하는. 우리 회사 기념일 하나 정할까 해서. ”
그가 말하는 파티란 흔히 중견 이상급의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매년 하는 회사 내부 파티를 말하는 것이었고, 새로운 인물이 대거 합류했으니 어쩌면 필요하기도 했다.
이어 추가로 커피를 내린 주혁이 짧게 말을 이었다.
“ 크게 말고. 조촐~하게. 준비해 봐. ”
다음 날 아침. 태신식품 회의실.
홍혜수 부장이 진급 후, 가장 먼저 처리한 일은 태신식품 측이 강주혁에게 내민 보상을 좀 더 구체화하는 작업이었다.
“ 우리 서아리씨. 5년 전속 계약. 이거 구체적으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보시는 거예요? 내가 이 기획서 보고 이해가 안 가서 직접 왔어요. ”
태신식품 홍보팀에서 보내온 기획서를 흔들며 홍혜수 부장이 약간 언성을 높이자, 홍보팀의 직원이 땀을 뻘뻘 흘렸다.
“ 저, 저희도 너무 갑자기 전달받은 거라. 일단은 우리 전체 상품 중 모델이 빠진 곳에 아리씨가 들어간다고 생각해주시면 되고, 너튜브 채널이나 앞으로 기획되는 프로젝트에도 아리씨가······ ”
확실히 박종설 부사장의 일 처리는 빨랐지만, 빠른 만큼 실무자들의 교통정리는 시간이 좀 걸릴 듯 보였다.
“ 그리고. ‘불제육 볶음면’의 대형광고. 즉, TV광고 같은 경우, 컨셉은 이렇게 갈까 합니다. ”
홍보팀 직원이 홍혜수 부장에게 광고 컨셉이 그려진 콘티판을 내밀었다. 유지석과 김재욱, 말숙이 포함된 콘티.
잠시간 콘티를 보던 홍혜수 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 어차피 1차 러프잖아요? 좀 구체적으로. 감독이나 뭐 제작사 정해지면 다시 보내주세요. ”
“ 아, 알겠습니다. 다음은 메일로도 언급하긴 했었는데, 저희 신제품 건입니다만. ”
“ 불짜장 볶음면 말이죠? ”
신제품 역시, 갑자기 넘어온 모양인지 직원이 흘리는 땀의 양은 많아졌고.
“ 내부적으로는 쿡방 ‘레시피를 내놔’에서 유지석씨나 김재욱, 말숙씨가 창작한 레시피를 저희 쪽에서 개발해서 진행할까 합니다. 물론, 그렇게 해서 개발된 ‘불짜장 볶음면’ 포장지에는 세분의 얼굴이 박혀서. ”
순간, 홍혜수 부장이 결론을 보충했다.
“ 그러니까. 후속 신제품인 ‘불짜장 볶음면’ 마케팀은 세 명을 메인으로 하겠다는 거죠? ”
한편, 보이스프로덕션 삼성동 사옥.
매니지 제1팀은 매우 바빴다. 당연했다. 가수 및 방송인을 전문으로 관리하는 제1팀에 순식간에 헤나를 포함하여 서아리와 마니또가 추가됐기 때문.
“ 이거! 이거 예산안 수정해요! 작년 거잖아 이거!!! ”
“ 예! ”
거기다가 곧 핵폭탄을 터트릴 대규모 합동 콘서트 건으로 제1팀 김수열 팀장부터 직원들 전부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 우리 장소 리스트 어딨어요?! ”
“ 여기 있습니다!! ”
보통 콘서트 기획은 타이틀, 컨셉, 날짜와 장소 섭외, 게스트, 마케팅 등등등 최소 6개월은 걸리지만, 작년 김수열 팀장이 얼추 뼈대는 잡아 놓은 상태였기에 수정만 거치면 되는 상황.
즉, 적어도 두 달 안에는 시작될 수 있었다.
어쨌든 직원이 다급하게 내미는 장소리스트를 보던 김수열 팀장의 고민이 깊어졌다.
“ 흠······ 예산이야 빵빵한데. 이 예산을 담을 장소가 마땅치 않아. ”
문제는 콘서트 장소였다. 예산이야 사장인 강주혁이 스톱없이 뿌리곤 있지만, 그 자금을 바를 장소가 많지 않았다.
“ 마니또야 그렇다 쳐도. 헤나와 서아리 합동이니까. ”
헤나와 서아리의 팬덤만 합쳐도 콘서트 티켓은 5분도 안 돼서, 동날 게 뻔했다. 하지만 지금 김수열 팀장은 적어도 예상치의 두 배는 담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변화된 큰 규모의 콘서트 장소를 인제 와서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콘서트 성수기 철이었기 때문.
“ 큰 곳들은 이미 섭외가 끝났겠지. ”
꽤 큰 문제였다. 그런데.
“ 티, 팀장님!! ”
남자직원 한 명이 전화기 아래쪽을 손으로 막으며 벌떡 일어났다. 덕분에 김수열 팀장의 고개가 돌아갔고.
“ 왜요?! ”
남자직원이 눈을 크게 하며 외쳤다.
“ 오, 올림픽 체조 경기장이라는 데요!! 이번 콘서트 장소 섭외 끝났냐고 물어보는데요?!! ”
올림픽 체조 경기장.
규모 약 14,000석의 올림픽 체조 경기장은 국내 내로라하는 초대형 가수의 콘서트 단골 장소였다.
그곳에서 먼저 전화가 왔다.
순간, 김수열 팀장이 눈을 빛내며 외쳤다.
“ 전화! 내 쪽으로 돌려요!! ”
같은 시각, MBS 드라마국.
아침임에도 국장실 분위기가 무겁다. 나이에 비해 머리숱이 풍성한 이동남 국장을 포함하여 부장, CP 등등이 전부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거기서 침묵을 깬 것은 드라마국 부장이었다.
“ 뭐, 별수 있습니까? 엎어야죠. 지금껏 준비한 게 아깝긴 한데. 윗선들이 저렇게 날이 서서야. ”
그 옆 수염 난 CP도 동조했다.
“ 같은 심정입니다. 애초에 이 시대에 시트콤이라니. 험난해도 너무 험난합니다. ”
“ 후- ”
두 부하직원의 말에 이동남 국장의 한숨이 길게 빠져나왔다.
‘ 아깝다. ’
실로 그랬다. 이동남 국장은 공중파 방송국 국장치고는 굉장히 진취적인 인물. 거기다 이번 시트콤의 세부사항은 비밀리에 진행하던 기획이었다.
아직도 커다란 알맹이는 밝혀지지 않은 상태.
알맹이가 밝혀진다면 전국이 들썩일 테지만, 국장은 그러지 못했다. 약속 때문이었다.
‘ 알맹이만 밝혀지면 대박인데. 후- ’
그러나 알맹이를 보여주지 않고, 그저 시트콤이라는 이름만으로 일을 진행하기는 무리가 따랐다.
‘ 알맹이 쪽은 무조건 비밀을 유지해달라고 하고. 아주 죽겠군. ’
속이 타는지, 이동남 국장이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 모습에 드라마국 부장이 혀를 찼고.
“ 썩을. 솔직히 저 위에 노친네들이 명백하게 선 넘은 것 아닙니까?! 편성권은 오롯이 국장에게 있건만! ”
수염 난 CP 역시, 씩씩거렸다.
“ 이때다 싶었던 거죠. 평소 국장님을 눈엣가시로 보지 않았습니까? 이번 훨훨 날고 있는 보이스프로덕션 왜 못 잡았느냐부터 시작해서, 아주 지랄지랄. ”
반면, 이동남 국장은 침착한 목소리였다.
“ 사실이잖아. 강주혁은 KBC에 뺐겼고, SBC에 안숙희 작가까지 뺏겼으니. 우리만 새됐지. ”
이어 수염 난 CP가 괜한 썽을 냈다.
“ 요즘은 무슨 죄다 강주혁강주혁! 물타기도 이런 물타기가 없잖습니까! 차라리 이럴 때 한번 시원하게 미끄러지면 좋겠. ”
그 순간.
-벌컥!
국장실 문이 열리며 PD 한 명이 뛰어들어왔다. 그 바람에 말이 끊긴 CP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 뭐야?! 지금 회의 중인 거 안 보여?! ”
“ 아니! 그게. 지금 밖에. ”
“ 밖에 뭐! ”
뛰어들어온 PD가 검지로 밖을 찍으며 갑자기 목소리를 죽였다.
“ 밖에 지금 강주혁 왔는데요? ”
끝
ⓒ 장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