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226
226화
삐삐삐.
옆에서 들려온 알람 소리에 한성태가 손을 뻗었다.
운동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알람이다.
한성태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두 달이 넘게 사용한 숙소의 거실에, 한성태의 짐들이 가득했다.
처음 러시아에 왔을 때, 28인치 캐리어 두 개밖에 가져오지 않았는데.
러시아에 살면서 받은 것도 많고 산 것도 많아서.
캐리어가 여덟 개로 늘어났다.
그것조차 중간중간에 미리 한국에 짐을 보내서 이만큼 줄어든 것이었다.
띠리릭.
현관문이 열리면서 정두식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거실을 둘러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짐이 엄청 많네. 정리할 거 더 있어?”
정두식의 말에 한성태가 고개를 저었다.
짐은 이게 끝이다.
“고생했네. 나도 빨리 와서 도와주고 싶었는데.”
“괜찮아요. 형 바쁜 것도 다 아는데요 뭘.”
한성태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귀국을 위해서 정두식이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였다.
“짐, 차에다 옮겨놓을게. 여기서 쉬고 있어.”
“같이 옮겨요.”
“됐어. 매니저가 왜 있는 건데. 가서 너 할 일 해.”
자신을 밀어내는 정두식의 모습을 보며 한성태가 엉거주춤하게 섰다.
‘뭘 하라는 거지?’
한성태는 짐을 옮기는 정두식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영화 촬영이라도 하고 있었으면 대본을 봤겠지만.
영화 촬영도 끝이 나서 한국에 돌아갈 날만 기다리는 그에게, 해야 할 일은 따로 없었다.
아무 대본이나 읽을 수야 있겠지만.
‘너무 많이 봤단 말이지.’
대본을 더 읽는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
한성태가 가만히 멀뚱멀뚱 서 있을 때.
“왜 그러고 서 있어?”
“할 게 없어서요.”
정두식이 미간을 찡그렸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을 들었다는 듯한 얼굴이다.
잠시 고민하는가 하더니, 정두식이 입을 열었다.
“그러면 드라마라도 보는 거 어때?”
“드라마요?”
“어. 여기서도 넷플릭스 볼 수 있잖아. 촬영한다고 보지 못한 거 많을 텐데. 그거라도 봐봐.”
“아. 형, 굿 아이디어.”
한성태는 바로 소파로 달려가 앉았다.
리모컨을 든 그는 순식간에 드라마에 집중했다.
‘하린 씨도 이제 잘하고 계시네.’
그가 지금 보고 있는 서하린이 주연으로 출연한 로맨스 코미디 드라마. ‘별을 쏴줘’였다.
별을 지키는 지구인과 지구를 침략하러 온 외계인의 사랑을 담은 내용인데.
병맛 같은 소재였지만, 그 느낌을 상당히 잘 살려서 오글거리지 않고 재미있었다.
‘연기가 많이 늘었어. 나중에 같이 작품 하나 찍어도 재미있겠다.’
한성태는 서하린의 연기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예전의 어리숙한 모습은 사라지고 어엿한 배우가 된 그녀다.
드라마를 보고 나서 다음에 본 것은 유범산의 액션 영화, ‘바람과 함께’였다.
유범산이 조연으로 나온 영화인데, 비중이 주연에 비슷할 정도로 높았다.
“범산이 형은 날이 갈수록 연기가 느네.”
서하린과 마찬가지로 유범산의 연기도 처음보다 엄청 늘었다.
한성태가 보면서 몇 번이나 감탄할 정도로.
원래부터 재능이 있었던 사람인 만큼, 그 성장 속도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다들 잘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우웅.
지인들의 연기를 보며 감탄하고 있던 그는 진동하는 스마트폰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알 루에노: 한. 내일 한국 간다고 들었네. 가기 전에 오늘 술 한잔 어떤가?
알 루에노에게서 온 문자였다.
한성태는 그 문자를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너무 좋습니다.
―알 루에노: 주소 보내놓을 테니. 그쪽으로 오게.
―네. 옷만 갈아입고 바로 가겠습니다.
한성태는 TV를 끄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두식에게 알 루에노를 만나 술을 마시고 오겠다는 문자를 보내놓고.
그는 옷만 빠르게 갈아입고서는 바로 숙소를 나섰다.
알 루에노가 문자로 보내준 장소에 도착한 한성태가 옷을 정비하고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칵테일 바였다.
상당히 고풍스러운 느낌의 칵테일 바는 1980년대의 술집 같았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감탄하던 한성태는 바텐더 앞에 앉아 있는 알 루에노를 발견했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미소를 감추지 않은 채, 그가 알 루에노에게 다가갔다.
“알.”
“왔는가.”
알 루에노가 그를 반갑게 맞아줬다.
한성태는 바텐더에게 추천 메뉴를 받고는 알 루에노와의 대화에 집중했다.
“몸도 안 좋으신데, 이런 곳에 오셔도 되는 겁니까?”
“안 될 건 또 뭔가.”
알 루에노의 말에 한성태가 술잔을 만지작거렸다.
“그래도 몸을 생각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어차피 망가진 몸이네. 여기서 수명이 하루가 더 줄어든다고 해도 별로 의미가 없지.”
“하지만….”
“내 몸은 내가 잘 아네.”
“….”
“내게는 자네와 마시는 이 술 한 잔이 더 소중해.”
알 루에노가 이렇게까지 말하니, 한성태도 더 뭐라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저, 그의 즐거움을 위해 함께 술잔을 들 뿐이었다.
“영화가 나오기까지 반년이 걸릴 텐데. 계획이 있나?”
“여행을 다녀보려고요.”
“여행?”
“네. 지금까지 연기에만 집중하느라, 가보지 못한 곳이 많아요. 촬영하면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곳도 많고요.”
“여행 좋지. 좋은 생각이야. 사람들은 여행을 단순히 놀러 가는 것이라 말하지만. 나는 다르네.”
“어떻게 다릅니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거든. 그래서 나도 여행을 많이 다녔지.”
알 루에노의 말에 한성태가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천의 얼굴’이 맞는 말이라며, 자신도 여행을 많이 다녔다고 말합니다.] [‘메소드 연기의 선구자’는 자신은 작품을 하나 찍고 나면 꼭 여행을 다녔었다고 중얼거립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좋은 선택이라며, 당신을 바라보며 미소 짓습니다.]신들도 한성태의 의견에 긍정적이었다.
‘이거, 맛있다.’
술을 한 모금 마신 한성태의 눈이 살짝 커졌다.
생각 이상으로 칵테일의 맛이 좋았다.
“괜찮지?”
“네. 좋네요. 원래 술 잘 안 마시는데, 이거라면 하루에 한 잔 마실 것 같은데요?”
“그래서 나도 젊었을 적에 자주 왔었네.”
“아.”
알 루에노의 말에 한성태가 이해할 수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알 루에노였더라도 같은 행동을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맛있었다.
“여행할 때 말이네.”
“네. 알.”
“그때, 러시아에도 한 번 와주게. 내 인생의 마지막 친구가 될 자네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꼭 오겠습니다.”
“부담은 갖지 말게. 어쨌든 자네의 인생이지 않은가.”
한성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여행 일정에 러시아가 추가되었다.
* * *
“도대체 술을 얼마나 마신 거야?”
정두식의 목소리에 한성태가 눈을 떴다.
“…형?”
말을 하는데 입이 텁텁하다.
우욱.
한성태가 상체를 일으키기 무섭게 바로 화장실로 뛰어갔다.
“어휴. 이 화상아.”
정두식이 뒤에서 등을 두드려줬다.
겨우 속을 진정시킨 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제 알 루에노와 대화를 나누다가 분위기에 휩쓸려서 엄청나게 마셔버렸다.
‘많이 마시긴 했네.’
문자로 온 카드내역을 보며 한성태가 씁쓸하게 웃었다.
선배님께 술을 사고 싶었다고 말하며 카드를 긁었는데.
그 금액이 천만 원 조금 안 됐다.
“형… 골든벨이라는 건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되는 거 같아요.”
“그게 무슨 소리야?”
정두식의 물음에 한성태는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 이제 출발해야 해. 비행기 시간 몇 시간 안 남았어.”
“네. 바로 가요.”
옷을 갈아입은 한성태가 정두식을 따라 숙소를 나왔다.
몇 달을 신세 진 숙소를 떠나려고 하니 기분이 조금 뒤숭숭하다.
정두식을 따라 비행기에 올라탄 한성태가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나, 지금 출발한다.
김민석에게 문자를 보냈다.
―김민석: ㅇㅋㅇㅋ. 도착하면 연락 좀.
―알았어.
답장을 보낸 한성태가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덜컹.
비행기가 떠올랐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필요한 게 있으신가요?”
스튜어디스가 다가와 말을 걸었고.
“어…? 한성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한성태가 고개를 돌렸다.
“한성태 맞죠?”
스튜어디스가 놀란 얼굴로 말한다.
그 모습에 한성태가 볼을 긁적였다.
‘한국인이네.’
한성태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저 팬이에요! 백년초 때부터 팬이었어요!”
“감사합니다.”
“저 혹시 사인 가능하실까요?”
“사진도 찍어드릴게요. 대신 다른 분들한테는 비밀로 해주세요.”
“물론이죠!”
한성태의 말에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찰칵.
한성태가 사진을 찍어주자 그녀가 감사하다고 몇 번이나 말하며 떠나갔다.
비밀은 꼭 지키겠다며 주먹을 불끈 쥐는 그녀를 보며 한성태가 웃음을 흘렸다.
“우리 성태, 월드 스타 다 됐네.”
“저분 한국인이에요.”
“그래도 외국에서 알아봤으면 월드 스타지.”
옆에서 낄낄거리며 웃는 정두식의 모습에 한성태가 고개를 흔들었다.
“한국 가면 이틀 뒤에 대표님과 미팅 있거든. 괜찮지?”
“네.”
“그런데 대표님이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말했거든? 그게 뭔지를 모르겠네.”
“좋은 일이요?”
“응. 나한테 축하할 일이 생길 거라고 했어. 뭐, 보너스라도 주시려나?”
기대에 찬 정두식의 모습에 한성태가 웃었다.
“으아. 집에 바로 갈 거지?”
“네.”
“데려다줄게.”
“고마워요. 형.”
정두식의 말에 한성태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따라 움직였다.
차를 타고 집에 도착한 한성태는 짐을 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소파에 누웠다.
장시간 비행기를 타서 그런지 허리도 아프고 몸에 힘이 없다.
툭, 투툭.
손만 겨우 움직인 그가 김민석에게 문자를 보냈다.
―한국 도착했다. 지금 집임.
스마트폰을 소파에 아무렇게나 던진 한성태가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금방이라도 잠이 올 것 같다.
딩동딩동.
“…!”
초인종 소리에 한성태가 벌떡 일어났다.
잔 건가.
띠리릭.
한성태가 시간을 확인하려 스마트폰을 들 때, 현관문이 열리면서 김민석이 안으로 들어왔다.
바스락.
하얀 봉투를 든 김민석이 한성태를 발견하기 무섭게 우렁차게 소리쳤다.
“형님 왔드아!”
귀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한성태가 헛웃음을 흘렸다.
김민석이 한성태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더니 들고 온 봉투의 포장을 풀었다.
“치킨이네.”
“맛있겠지? 내가 맛집이라고 소문난 곳에서 사 온 거임. 먹어보면 기가 막힐걸?”
김민석의 말에 한성태가 웃음을 흘렸다.
친구를 보고 있으니, 집으로 돌아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