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260
교랑의경 260화
“이 사람들이!”
금가아와 반근이 울분에 찬 얼굴로 시종들을 노려보았지만, 시녀가 둘을 말리며 시종들을 쓱 훑어보았다.
“됐어. 제 발등 제가 찍는 거야. 죽고 싶으면 뭔 짓인들 못 할까.”
시녀가 금가아와 반근의 등을 떠밀며 걸음을 옮겼다.
“누가 죽고 싶은 건지 모르겠네. 저런 것들이 우리 가문에 들어오잖아? 사흘도 못 버티고 쫓겨날걸?”
시종이 혀를 차면서 헛웃음을 터트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어서 가자. 도련님만 기쁘게 해드리면, 우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
다른 시종은 남을 흉보는 데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듯 걸음을 재촉했다. 그들은 인파 사이를 빠르게 비집어 가며 서쪽으로 향했다.
높은 하늘에 수놓아지는 불꽃과 곳곳에 세워진 등산, 강물에 둥둥 떠다니는 연등들이 모여 천상천하의 절경을 만들어 냈다.
등을 구경하기에 제일 좋은 자리는 바로 강가 근처였다. 강가 근처는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리는 곳이기도 해서, 이미 부잣집이나 권문세가의 천막들로 길 양쪽이 가득 메워져 있었다. 강가 양쪽에 자리를 잡은 찻집과 주점들은 좋은 입지 덕에 많은 손님을 끌어들였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은 단연 덕승루였다.
“어때, 이쪽에서 보는 게 더 예쁘지?”
인파 속에 간신히 자리를 잡은 왕십칠이 덕승루 앞의 등산을 득의양양하게 가리키며 말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등산에는 온갖 주마등과 유리 같은 것들이 가득 걸려 있어서 언뜻 보아도 거금을 들인 티가 났다. 정교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앞의 등산을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드디어 원하는 곳에 오게 된 왕십칠은 한껏 기분이 좋아져 이것저것 가리키면서 정교랑에게 알려 주었다.
“이게 다가 아니야. 덕승루 안에서 보면 더 예뻐. 그쪽은 강가 바로 옆이니까, 강가에 떠다니는 연등을 볼 수 있어.”
왕십칠이 말하면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내가 예약도 해 놨어. 이맘때에 덕승루를 예약하는 건 보통 힘든 게 아니야.”
정교랑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왕십칠이 정교랑과 함께 덕승루에 들어서서 막 층계를 오르려던 찰나, 갑자기 주위가 시끌벅적해졌다.
“화괴(花魁) 주 낭자가 나왔어!”
“화괴 주 낭자가 나왔어!”
층계를 오르고 있던 모든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 한쪽으로 몰려가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화괴가 뭐야?”
금가아가 물었다.
“교방사의 관기야. 주점마다 기생을 둬서 술자리의 흥을 돋우는 데에 쓰거든. 화괴는 교방사 관기 중에서도 최고의 명기라는 뜻이야.”
대답해 주던 시녀가 잠시 멈칫하고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주 낭자라, 왠지 귀에 익은데.”
시녀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반대편의 회랑 다리에서 한 무리의 여인들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가장 앞서 걸어오고 있던 여인은 주홍색 치마를 두르고, 진주 보석으로 만든 머리 장식을 하고 있었다. 화려한 치맛자락이 바닥에 끌리면서 여인의 걸음에 따라 흔들리자, 살랑대는 비단잉어의 꼬리처럼 보였다. 하늘과 땅의 경계 없이 눈부시게 번진 등불 사이로 천천히 걸어오는 여인의 모습은 선녀보다 아름다웠다.
“진짜 예쁘다.”
반근이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금가아는 벌써 넋이 나간 채로 서 있었다. 시끌벅적하게 움직이던 사람들도 일제히 제자리에 멈춰 서서 회랑 다리를 쳐다보았다.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낼 때, 오직 화괴만이 이런 대우를 받을 수 있고, 화괴를 따라다니는 시종만이 이런 대우를 받을 수 있으리라.
비파를 품에 안은 춘령은 주 낭자의 뒤를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걷고 있었다. 부러움과 흠모가 가득 담긴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한 게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지만, 춘령은 이유와는 상관없이 지금 자신도 똑같은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춘령은 앞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각양각색의 등롱으로 화려하게 반짝이는 덕승루 내부에 눈이 부셨지만, 춘령은 눈을 찌푸리기는커녕 더욱 크게 뜨며 인파 속에서 누군가를 찾으려 애썼다.
밀려 들어오는 인파에서 시선을 거두고 반대편을 쳐다보던 춘령은 일순간 온몸이 굳은 듯 숨이 멎었다.
반대편 층계에도 남녀노소가 뒤섞여 가득 몰려 있었다. 하지만 춘령은 자신이 찾고 있던 사람을 단번에 찾아낼 수 있었다.
소년 공자가 흥분한 얼굴로 춘령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물론 춘령은 저 공자가 자신을 쳐다보는 게 아님을 알고 있었다. 저 공자 또한 자신이 찾던 사람은 아니었다.
춘령의 시선이 향한 곳은 왕십칠의 어깨 뒤로 보이는 사람이었다. 군계일학과도 같은 모습으로 고고하게 서 있는 소녀였다.
가녀리고 마른 체형의 소녀는 검붉은 빛의 치마를 입고 있어서 화려한 등불 사이에서 더욱 눈에 띄었다. 층계 위에 단정한 자세로 선 그녀는 회랑 다리를 향해 살짝 몸을 돌려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실내로 들어온 탓에 머리에 쓴 너울의 가리개를 양쪽으로 들어 올려 소녀의 용모가 드러났다.
역시 저 얼굴이었어. 역시 아직도 저 얼굴이야.
– 아씨, 아씨. 저희가 잘못한 게 있다면 벌을 주시고 내쫓지만 말아 주세요. 저희를 내쫓지 마세요.
나무 그늘 밑의 한 여인이 두 아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두 아이는 쉼 없이 이마를 땅에 찧으며 제발 내쫓지만 말아 달라고 빌었지만, 여인은 개미를 대하듯 손을 슬쩍 올리고 그들을 짓눌러 버렸다.
– 언니, 나 죽기 싫어.
– 묘령, 정신 차려. 내가 의원을 불러올게.
– 언니, 나 죽을 거 같아. 언니, 앞으로 혼자여도 무서워하지 마.
산속의 낡은 묘당 안에 한 아이가 왜소한 몸을 덜덜 떨며 누워 있었다. 큰 소나기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된 아이였다.
– 언니, 앞으로 혼자여도 무서워하지 마. 난 어머니랑 아버지 만나러 먼저 갈게.
이제 세상에 묘춘, 묘령 두 자매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춘령만이 있었다. 춘령 한 사람만이.
“춘령.”
시끌벅적한 주위의 소란 속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자, 춘령은 화들짝 놀랐다.
“겁먹지 마. 아씨 뒤를 잘 따라가기만 하면 돼.”
춘령의 뒤에 있던 시녀가 조용히 말했다.
“작년 이맘때에는 지금보다 더 사람이 많았어. 차차 적응될 거야.”
시녀의 걱정 어린 말에 춘령은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응, 하고 대답했다. 춘령은 뭐라 말을 덧붙이지 않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앞서가던 주 낭자는 이미 층계를 내려가고 있었다. 몸종 몇 명이 주 낭자의 긴 치맛자락을 한쪽씩 들고 천천히 내려가자, 층계 위로 오색찬란한 구름이 떠다니는 듯했다.
“주 낭자가 꽃배를 타러 간다!”
주 낭자의 동선에 익숙한 사람들은 그 외침을 듣자마자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바깥으로 우르르 몰려나갔다.
춘령은 반대편 층계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춘령은 그 여인의 곁에 서 있던 왕십칠이 얼마나 열광하고 얼마나 환호하면서 사람들을 따라 밖으로 나가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다.
왕십칠뿐만 아니라 층계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앞다투어 밖으로 몰려나간지라 층계에는 정교랑과 그녀의 하인들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정혼자가 다른 여인을 보면서 열광하고, 이 좋은 중추절에 너만 버려두고 간 심정이 어떤지 맛 좀 봐. 이건, 시작에 불과해.
춘령은 계속 비파로 얼굴을 가린 채 주 낭자를 따라 밖으로 걸어 나갔다. 비파를 슬며시 아래로 내리자, 웃음이 만개한 춘령의 얼굴이 드러났다.
사람들이 순식간에 밖으로 몰려나간 탓에 덕승루는 한결 조용해졌다. 층계 위에 덩그러니 남겨진 정교랑 일행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직 깨닫지 못한 듯했다.
감히 우리를 버리고 가? 초대받아 온 사람을 여기에 내팽개치고 달려갔단 말이야?
왕십칠이 밖으로 나가면 그의 시종들은 당연히 윗전을 따라야 했기에 정교랑과 세 사람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정말 해도 너무하네!”
시녀가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화를 냈다.
“아님 우리 먼저 방에 들어가 있자.”
반근이 말했다.
많은 사람이 우르르 밖으로 몰려가긴 했지만, 그래도 덕승루 안에는 사람들이 꽤 남아 있었다. 하지만 층계 위에 멀뚱히 서 있는 사람은 정교랑 일행뿐이었기에 그들은 유난히 눈에 띄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지. 시녀는 성이 난 얼굴로 점원 하나를 불렀다.
“왕씨 가문 공자님이 예약한 방이요?”
점원이 정교랑 일행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여인 혼자서 덕승루를 찾게 된다면, 직접 방을 예약했거나 남이 방을 잡아 주었을 텐데. 직접 예약했다면 굳이 이렇게 물어볼 리 없을 테고, 남이 예약한 거라면 누군가가 마중을 나와야지.
이런 식으로 이름만 대고 방을 몰라 점원을 붙잡고 물어보는 모양새를 보니 영 골칫거리를 만들려는 여인네처럼 보인단 말이야.
“화괴 구경하러 죄다 밖으로 나갔으니 우리는 방에서 기다려야겠다고요!”
점원의 생각을 읽었는지, 시녀가 더욱 목청을 높여서 외쳤다.
아, 그럴 수도 있겠군. 점원이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점원은 시녀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아씨, 죄송하지만 왕십칠 공자님 이름으로 예약된 방은 없습니다.”
점원은 이상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 대답했다.
없다고? 이 썩을 놈이! 아씨를 데리고 지금 장난하자는 거야?
시녀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없으면 됐어. 나가서 봐도 똑같아.”
정교랑이 말했다. 시녀는 몹시 분했지만 당장은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점원 몇 명이 정교랑 일행을 쳐다보면서 이상하다는 듯 속닥거렸다. 그 모습을 보던 시녀는 얼굴이 터질 듯이 창피하고 화가 났다.
내 이런 수모는 태어나서 처음 당해 봐! 저 무례한 놈, 아니 저 쓸모없는 놈한테 이렇게 당하다니!
그런 시녀의 모습과는 다르게, 정교랑은 차분한 표정으로 층계를 천천히 내려갔다. 몇 계단 내려가지도 않았는데, 어디선가 엇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낭자도 여기 왔네요?”
누군가가 웃으며 말을 건넸다.
걸음을 멈춘 정교랑이 소리를 따라 시선을 옮기자, 사환을 데려온 진십삼이 덕승루 안으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진십삼은 정교랑을 보자 더욱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정교랑이 미소를 머금고 가볍게 예를 표했다.
“벌써 돌아가려고요?”
예기치 못한 만남에 놀란 진십삼이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천가를 벗어난 뒤, 늘 함께 어울려 다니던 주육낭도 없자 진십삼은 조용한 곳을 찾아 여유나 즐길까 하고 덕승루에 온 터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정교랑과 마주칠 줄이야.
진십삼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이런 게 바로 인연인가?
“아니요. 나가서 보려고요.”
정교랑이 대답했다.
나가서 본다고?
“왕 공자는요?”
진십삼은 정교랑의 주위를 조심스럽게 둘러보고는 물었다.
“갔어요.”
정교랑이 짧게 대답했다.
갔다고?
진십삼은 살짝 놀랐다. 정교랑은 항상 같은 표정이라, 그녀의 얼굴에서 희로애락과 같은 감정을 찾아보기란 어려웠다. 대신 그녀 옆에 있던 시녀의 표정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었다.
갔어? 제 주제도 모르는 멍청한 놈이 감히! 이 여인을 보려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줄을 섰는데, 선약을 잡아 놓고도 감히 여기에 내팽개치고 갔단 말이야?
진십삼은 이걸 행운이라고 말해야 할지, 불운이라고 말해야 할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약속하고 만나는 것보다, 우연히 만나는 것이 더 기쁘네요. 나도 여긴 처음입니다. 덕승루가 물 위의 연등을 구경하기에 딱 좋은 곳이라고 하더군요. 낭자, 나와 같이 꽃등 놀이를 하는 건 어떻습니까?”
진십삼이 미소지으면서 물었다.
“좋아요.”
정교랑이 대답했다.
굳이 이리저리 둘러대며 체면 차리지 않고, 원하는 대로 말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