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04
* * *
순간 시간이 다 멈춘 것 같았다.
지척까지 다가와 있는 도깨비왕. 그런 도깨비왕에 맞서, 유원은 거인화를 최대치까지 끌어올렸다.
거인화는 초근접전, 과장돼 말하면 개싸움에서 가장 효율적인 스킬이었으니까.
하지만.
스으으-.
눈앞에 나타난 붉은 악마의 형상.
유원은 흐릿하게 떠오른 형상을 보며 눈동자를 키웠다.
‘수르트?’
쩌엉-!
순간적으로 앞으로 내지른 주먹에 도깨비왕의 몸이 뒤로 죽 밀려 나갔다.
놀란 건 도깨비왕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도깨비왕은 나올 게 나왔다는 듯 얻어맞은 배 부근을 한 손으로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시작이군.”
그때 그 느낌이었다.
시술이 끝난 직후. 유원에게서 느껴지던 정체 모를 힘의 느낌.
마치, 유원의 뒤에 누군가 한 명이 더 있는 듯한 기분.
스으으-.
유원은 눈앞에 떠오른 붉은 악마의 형상을 바라보았다.
일그러지고 다시 또렷해지기를 반복하는 그것은 크기는 훨씬 작지만 유원이 알고 있는 누군가와 비슷해 보였다.
‘수르트다.’
크기도 훨씬 작고, 형태도 알던 것과는 달랐지만 분명하게 느껴졌다.
이 힘은 분명 수르트의 것이었다.
게다가 워낙 급한 중에 들려온 메시지였지만 분명하게 들었다.
거인과 악마의 불꽃.
그것은 시약을 통해 수르트의 특성을 얻을 때 들었던 메시지와 같았다.
‘수르트의 특성이 거인화와 반응한 건가?’
그럴듯한 일이었다.
애초에 거인화란 헤라클레스가 수백만에 달하는 거인들을 학살한 끝에 획득한 히든피스였으니까.
물론 유원은 튜토리얼을 통해 그 스킬을 보다 수월하게 얻었지만, 덕분에 스킬의 효력이 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수르트.
거인들의 정점에 다다른, 랭킹 4위의 하이랭커의 심장을 통해 추출된 힘이라면.
그 수백만에 달하는 거인들의 몫을 대신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꽈아악-.
‘시험해 볼까.’
츠츠츠-.
몸안에 충만하게 차오르는 힘.
거인왕의 재현이라는 거창한 이름만큼, 유원은 거인화를 한 번 믿어 보기로 했다.
지금 이 협소한 공간에서 도깨비왕을 상대할 방법은 그것뿐이었으니까.
“정리는 대충된 건가.”
도깨비왕은 유원의 눈에 떠오른 이채를 보며 다시 다가오기 시작했다.
밀려져 나가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한순간일 뿐.
다시 자세를 잡고 방망이를 들어 올린 도깨비왕은 처음보다 더 무서운 기세를 뿜어냈다.
“이제 진짜 기대를 해도 되겠지?”
방망이를 들어 올리는 도깨비왕.
스아앗-.
그런 도깨비왕의 허리춤으로 유원의 검이 날아들었다.
쩌어엉-!
“……!”
저릿, 저릿-.
검을 막아 낸 도깨비왕의 눈동자가 커졌다.
지금까지와 다르게 손아귀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힘과 힘의 싸움에서 이 정도로 충격을 받은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며칠 전, 우마왕과의 싸움 때였고.
“아마 그럴 것 같다.”
카가각-.
이번에는 유원이었다.
“크음…….”
침음을 흘리며 도깨비왕이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 무식하기 짝이 없는 힘이었다.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된다.
도깨비왕은 눈앞에 있는 상대가 더 이상 이제 막 랭커가 된 뉴비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소문으로 듣던 헤라클레스라는 놈이 이런 느낌이려나.’
이야기는 들었다.
그 무지막지한 거인족을 상대로 홀로 전장을 누비고 수백만의 거인들을 학살한 끝에 ‘거인 학살자’라는 칭호를 얻은, 대단한 녀석이라고 말이다.
녀석은 꽤 흥미가 있는 랭커 중 한 명이었다. 도깨비왕 역시 힘에서라면 꽤 자신이 있었기에 더 그랬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눈앞에 있는 유원의 얼굴 위로 소문으로만 듣던 헤라클레스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꽝, 꽈앙-!
쩌어엉-!
방망이로 검을 막아 내고, 주먹과 주먹이 부딪쳤다.
유원의 공세를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검과 주먹을 막아 내던 도깨비왕의 손가락이 허공에 글자를 새겼다.
묵직-.
도깨비왕의 어깨를 베어 가던 유원의 검이 아래로 흘러내렸다.
갑작스레 수천, 수만 근처럼 무거워진 검.
순간적으로 검의 무게가 변했다. 못 들 만큼 무겁지는 않아도 순간 자세를 잃기엔 충분한 변화였다.
쩌어-!
“……!”
배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충격에 유원이 이를 악물었다.
조금이라도 충격을 버텨 내기 위한 몸부림.
그와 동시에 손에 차고 있는 우라노스가 푸른빛을 발했다,
[‘바다의 가호’가 몸에 깃듭니다.] [‘바다의 가호’가 파훼됩니다.]꽈아악-.
두 다리가 단단히 땅에 고정되었다.
도깨비왕은 흡사 움직이지 않는 산이라도 때린 것 같은 느낌에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 주먹이 제대로 들어갔건만.
유원의 몸은 한 걸음도 뒤로 물러서지 않은 채였다.
콱-.
유원의 손이 도깨비왕의 손목을 붙잡았다.
통나무처럼 두꺼운 팔뚝. 잡는 것조차 고작인 것으로 보이는 그 자세에서 유원은 손목을 악력으로 움켜쥐고는 도깨비왕의 몸을 뒤집었다.
부우우웅-.
콰아앙-!
도깨비왕이 떨어지자 그대로 뒤집어지는 땅.
만약 주술로 인해 주위가 보호되지 않았다면 주위의 대나무숲이 통째로 날아갔을 정도의 충격이었다.
자욱한 연기가 일어났다. 유원은 화안금정으로 땅속에 내던져진 도깨비왕을 내려다보며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바다의 가호가 깨졌다.’
우라노스의 심장에 깃들어 있는 스킬.
바다의 가호는 유원에게 치명적인 공격이 들어올 때 자동으로 발동되었다.
때문에 지속력이 짧고, 그만큼 방어력이 강한 스킬이었다. 그런데 도깨비왕의 주먹은 그런 바다의 가호를 한 방에 깨뜨렸다.
물론 그렇다 한들.
저 주먹을 버텨 낸 건 어디까지나 유원의 몸이 버텨 준 덕분이었다.
[‘거인왕의 재현’을 70% 달성하였습니다.]두근, 두근-.
온몸에 흐르는 근육의 혈관이 심장 박동을 따라 빠르게 뛰는 게 느껴졌다.
오래 쓸 만한 힘이 아니라는 건 확실히 느껴졌다.
‘이게 정말 수르트의 힘이라면-.’
수르트.
역대 최강의 거인이자, 오딘의 오랜 라이벌이었던 거인.
그리고 악마족의 힘을 가진 무스펠하임의 우두머리.
‘지금 가진 스탯으로도 턱도 없지.’
헤라클레스 역시 힘에서는 따라갈 자가 없을 정도의 랭커였다.
하지만 수르트는 애초에 규격 외의 존재였다.
단순히 힘 하나만 놓고 본다면 헤라클레스가 위일지 몰라도, 덩치에서부터 뿜어지는 위력은 설령 헤라클레스라 할지라도 상대하기 버거울 정도였다.
거기다 무스펠하임을 온통 불꽃으로 뒤덮을 정도의 거대한 불꽃까지 지녔으니.
“가끔 아쉽긴 하단 말이지.”
수르트를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하이랭커 중 하나.
직접 그의 심장에 궁니르를 꽂아 넣었던 오딘은 몇 번이나 아쉬움을 토로했다.
“수르트, 그 녀석이 우리 편이었다면 좋았을 건데.”
“하긴. 그 녀석이라면 슈브 니구라스도 조금은 막아 낼 수 있었을 테니까.”
과연 신격을 얻은 수르트는 어떤 존재가 될까.
그것은 오딘의 오래 된 관심사였다.
무스펠하임의 왕으로서 최초로 거인과 악마들의 왕이 된 자. 궁니르를 맞고도 버텨 낼 정도의 맷집과 오래전, 헤라클레스에 버금가는 힘을 지녔던 존재.
그런 존재가 바로 수르트였다.
“포기할 건 포기해야 된다. 다른 녀석이면 몰라도 수르트, 그 녀석을 갱생시키는 건 불가능해.”
“그건 나도 안다. 녀석의 문제는 특정한 사건이나 계기가 아닌, 선천적인 기질이니까.”
“그래도 다른 방법은 있지.”
“불의 심장 말이냐?”
“아니. 그거 말고.”
이야기를 나누던 헤라클레스는 고개를 돌려 이매탈을 바라보았다.
“그 시술이란 거 말이다.”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유원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정말이었다.
“어쩌면 그 녀석의 심장이 ‘완전 거인화’의 재료가 될지도 모르지.”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었다.
시술을 받는 시기보다 앞서 라그나로크를 끝내고 수르트의 심장을 얻어야 한다는 것.
적잖이 어려운 과제였다. 시술을 늦추는 것도 문제였고, 준비되지 않은 라그나로크를 일으키자니 그것도 위험 부담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거인왕의 재현’이 완료되었습니다.] [거인왕의 육체와 심장을 획득하였습니다.] [‘칭호 : 거인왕’을 획득하였습니다.]꾸득, 꾸드득-.
몸안의 근육이 팽창하며 단단해지는 게 느껴졌다.
수르트의 심장을 통해 얻은 특성은 이제 시작이었다.
[‘거인화’가 ‘완전 거인화’로 진화합니다.] [‘완전 거인화’를 획득하였습니다.]헤라클레스가 수백만에 달하는 거인들을 학살한 끝에 터득한 스킬.
[‘완전 거인화’의 지속 시간이 3분 남았습니다.] [2 : 59] [2 : 58]…….
예지안과 마찬가지로 숙련도 탓일까.
어쩐지 몸에 가해지는 부하가 적잖이 있다 싶더라니, 지속 시간이 짧았다.
3분.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래도-.’
쿵-.
유원은 땅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는 도깨비왕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 시간이면 충분하다.’
완전 거인화가 이루어졌다.
이제 이 3분 동안, 짧은 거리는 유원에게 더 유리한 고지를 선사하였다.
* * *
팟-.
위로 뛰어오른 유원의 주먹이 도깨비왕의 머리를 강타했다.
쾅-!
도깨비왕의 머리가 옆으로 돌아갔다.
순간 시야가 사라지며, 의식이 희미해졌다. 하나……
주먹은 반사적으로 나갔다.
콰앙-!
도깨비왕의 주먹은 또다시 유원의 머리를 후려 갈겼다.
바다의 가호는 없었다.
이미 깨어진 스킬이기에, 복원되는 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유원은 그 주먹을 맞고도 밀려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꽈앙-!
“웁……!”
유원은 그걸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도깨비왕의 복부를 향해 주먹을 꽂았다.
쾅, 쾅, 쾅-!
주먹과 주먹이 교환되었다. 유원은 손에 쥐고 있던 검을 버리고, 도깨비왕은 방망이를 버렸다.
난타전.
말 그대로 개싸움이었다.
쾅-!
치익-.
도깨비왕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몸이 흔들리며 서서히 힘에 압도되어 갔다. 계속해서 유원과 눈을 마주치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유원은 예지안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즉.
‘육탄전에서 내가 밀린다.’
시작은 저 정체불명의 힘이 개화한 이후부터였다.
조금씩 힘이 비슷해지더니, 갑작스레 폭발하기 시작한 힘은 어느새 자신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힘 대 힘의 싸움으로 이끌어간 건 자신이었지만.
이제는 한 수 접어야 할 때였다.
‘힘으로 안 된다면…….’
이제 남은 수는 하나뿐.
슥, 스슥-.
도깨비왕의 손끝에서 허공에 글자가 새겨졌다. 두고 보지 않겠다는 듯, 유원은 도깨비왕을 향해 달려들었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완전 거인화의 지속 시간은 앞으로 1분 남짓뿐.
유원은 서둘러 끝을 봐야 하는 입장이었다.
쾅-!
유원의 주먹이 도깨비왕의 가슴에 꽂혔다.
분명 적잖은 타격이 들어갔을 터.
꽈아악-.
하지만 도깨비왕은 유원의 팔을 붙들고 늘어졌다.
바로 방금 전, 그가 만들어 낸 주술을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주술이란 곧, 영혼을 부리는 힘이지.”
스스, 스스스-.
유원의 몸에 스며들기 시작하는 글자들.
그것을 매개체 삼아, 도깨비왕은 보이지 않던 유원의 영혼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영혼을 흔들어 놓으면 육체란 건 자연스레 힘을…….”
그리고 그 순간.
쩌억-.
“힘을…….”
도깨비왕을 향해 벌어지는 거대한 입.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존재의 등장에 도깨비왕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뭐냐, 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