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45
* * *
메에에-.
메-.
슈브 니구라스를 둘러싼 산양들이 울음을 흘렸다.
그 울음소리는 처음에 비하면 많이 작고, 벽에 가로막혀 바깥으로 더 이상 뻗어 나가지 못했다.
검은 숲의 안쪽.
그 산양들에게 둘러싸인 어미가 입을 열었다.
-진정하거라. 아무 일도 없을 테니.
악마의 뿔을 가진 거대한 염소의 말에도 산양들의 불안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들 모두를 아우르는 어미가 전에 없던 불안감을 보이는데, 그 감정에 동화된 새끼들이야 오죽할까.
아마 그들은 슈브 니구라스가 느끼는 미약한 불안감의 몇 배나 되는 불안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이런 말로는 소용없나.
슈브 니구라스는 눈을 느리게 깜박이며 저 멀리, 검은 숲 어딘가에 있는 유원과 제우스를 바라보았다.
제우스는 분명 자신이 검은 숲의 경계에 가두어 놓았다. 슈브 니구라스가 다스리는 숲은, 제아무리 제우스라 해도 다 헤집어 놓을 수 없을 만큼 넓어, 그녀는 제우스를 전장에서 이탈시키기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그드라실을 다루는 오딘만큼이나 위험한 존재였으니,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저 녀석은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건지…….
슈브 니구라스의 시선이 유원에게로 집중되었다.
제우스와 함께 나타난 걸 보면 아마도 자신의 숲에 들어와 있었을 터. 하지만 그녀는 유원을 자신의 숲에 초대한 기억이 없었다.
그렇다는 건, 유원이 자력으로 숲에 들어갔었다는 뜻.
그건 인간들이 이해할 수 없는 온갖 불가해(不可解)를 알아 온 슈브 니구라스에게도 쉬이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메에에-.
메에-.
그의 등장에 산양들이 불안에 떨고 있었다.
이건 어미인 슈브 니구라스와는 다른 관계가 없는 불안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새끼들의 불안감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작은 산양들이 떨고, 또 울고 있는 이유.
그건 김유원이라는 인간의 몸에서 풍기는 어떤 위협적인 격 때문이었다.
문득, 어리석은 혼돈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유원에 대한 그의 묘사는 꼭.
-우리들의 천적이다 이건가.
묘한 느낌이 들었다.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었다. 유원에게 느껴지는 감각에 검은 숲이 울고 있었으니까.
녀석은 자신들의 천적이었다. 그의 몸에서 흐르는 격이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에야 격이 막 개화한 수준이라지만.
-조금 더 크면 위험할지도 모르는 싹이군.
어리석은 혼돈이 자신을 보낸 데에는 아마 녀석을 처리해 달라는 의도도 있을 터.
과연 머리가 비상한 녀석이었다. 탑 바깥에 녀석을 따르는 무리가 많아지고 있는 것도 이해가 갔다.
다만.
스윽-.
거대한 염소의 눈동자가 유원의 아래에서 돌아다니는 작은 꼬마에게로 향했다.
줄곧 설마 싶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목덜미가 시큰거렸다. 지금은 다 재생되었다지만 아직까지도 통증은 남아 있었다.
벽을 뚫고 들어오던 자신의 목덜미를 물어뜯은 자.
그가, 저기 있는 저 꼬마였다.
-부디 아니었으면 좋겠군.
메에에-.
메에-.
메에에에-!
슈브 니구라스의 불안감 때문일까.
산양들의 울음소리가 더 격렬해졌다. 자신이 실수를 한 걸 깨달은 그녀는 이내 유원과 그 옆의 꼬마아이에게서 신경을 거두었다.
잃어버린 양들이 너무 많았다.
어서 빨리 그 빈자리를 채워야 했다.
-조금만 기다리거라.
슈브 니구라스가 산양들을 다독였다.
-곧, 너희 형제들을 다시 채워 줄 테니.
* * *
슈브 니구라스의 침묵으로 전장이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전장에서 랭커들과 싸우던 산양들은 어느샌가 숲 곳곳으로 흩어져 버렸다. 지친 랭커들은 그들의 뒤를 쫓는 걸 포기했고, 그들을 이끌던 미카엘과 이랑진군 역시 그들의 피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턱-.
이랑진군이 언월도로 바닥을 짚었다. 이내 그는 체력이 남아 있는 랭커들을 시켜 싸움 도중 쓰러뜨린 산양들의 시체를 확인했다.
“오백…… 정도인가.”
시체가 확인된 산양들의 숫자가 그 정도였다. 아마 시체의 흔적조차 남지 않은 산양들의 숫자까지 더하면 더 많을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네 개의 팔로 칼과 금강저를 휘두르는 아수라의 손에 찢겨진 산양들은 시체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으니까.
“이상하게도 쉬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스윽-.
이랑진군의 옆으로 미카엘이 다가왔다.
그는 간 크게도 이랑진군의 옆에 있던 산양의 시체를 깔고 앉았다. 그는 주위에 펼쳐진 검은 숲을 둘러보고 있었다.
“몸은 쉬어도 정신은 계속 피로하니 말이네.”
“갑자기 왜 물러났을까요?”
“글쎄. 숨고르기를 하는 건가.”
“우리가 열세였을 텐데요.”
미카엘의 말에 이랑진군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끄럽게도 그들은 산양들을 다 막아 낼 수 없었다. 이랑진군이나 미카엘과 같은 하이랭커들이나 상대가 어렵지 않다지만, 일반 랭커나 상위 층계의 플레이어들에게 산양 한 마리 한 마리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수십 명의 랭커들이 포지션을 이루어 한참을 싸워야 겨우 상대가 될 정도. 그나마 아수라가 경이로운 실력을 내보이며 전장을 휩쓴 덕분에 겨우겨우 버티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거겠지.”
“저쪽이 꽤 잘해 주고 있나 봅니다.”
“그러길 바라야지.”
고개를 끄덕인 이랑진군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친 동료들의 모습이 보였다. 천계의 장수들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 역시 잔뜩 지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중.
이랑진군은 지친 발키리들을 치료하고 있는 브룬힐데에게 다가갔다.
“발키리들은 괜찮나?”
“괜찮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브룬힐데가 돌연 참을 수 없다는 듯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만, 피해가 큽니다.”
“발키리들은 가장 먼저 저들과 싸웠으니까. 그들의 희생을 모두가 기억할 걸세.”
“……영광스러운 죽음이 되었기를 바랄 뿐입니다.”
브룬힐데의 상심에 이랑진군은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 싸움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건 누가 뭐라고 해도 아스가르드였다. 오딘은 오늘의 일을 미리 알고, 화합의 날을 계획해 모두를 끌어들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싸움의 전장을 아스가르드의 심장이나 다름없는 발할라로 정했다.
‘만약 다른 곳이었다면 아스가르드에 대한 반발도 적잖이 있었을 터.’
오딘은 아스가르드를 내던졌다.
또한, 그 자신의 몸조차도 내던져 슈브 니구라스와의 싸움을 계획했다.
이랑진군 그 역시 오래 된 고대의 하이랭커였지만.
‘존경하지 않을 수 없군.’
그렇게 잠시 이랑진군이 브룬힐데의 어깨를 두드려 준 후.
저벅-.
지쳐 쓰러진 동료들 가운데, 유난히 가벼운 걸음 하나가 나타났다.
“이랑진군인가?”
앳된 소년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기척에 막 몸을 돌리려던 이랑진군은 어느새 목소리가 지척까지 다가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제?’
치익-.
오싹함에 저절로 뒷걸음질이 쳐졌다. 손에 쥔 언월도를 급히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겨누자,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녹색 머리를 한 어린 외모의 청년이었다. 흔치 않은 밝은 녹색 머리에 이랑진군은 그를 비슈누와 착각했다.
하지만 비슈누보다 훨씬 앳된 얼굴에 검은 눈동자는 그가 비슈누가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
“왜 그렇게 경계하지?”
“경계하지 않을 수가 있나.”
“그런가? 하긴. 많이 놀랐을지도 모르겠네.”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는 남자.
그는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걸 확인시키기라도 하듯 양손을 위로 들어 보였다.
“내가 길을 잘못 들었나 싶어서.”
“길?”
“어. 찾는 녀석이 있거든.”
남자는 고개를 휙휙 돌리며 검은 숲을 둘러보았다.
소리 한 점 없이 고요한 숲 속 가운데.
“슈브 니구라스는 어디지?”
그는, 발할라에 나타난 괴물의 이름을 내뱉었다.
* * *
바스락-.
말라비틀어진 잎사귀들이 걸음걸음에 부서져 바닥에 쏟아졌다.
주위는 고요했다.
조용히 몸을 웅크리고 있는 맹수 우리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어느샌가 많이들 흩어진 모양이군.”
유원의 뒤를 따라 숲으로 들어가던 제우스가 꺼낸 말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는 뜻이 담긴 질문에 오딘이 답했다.
“이 숲이 등장하면서부터다.”
“숲이 등장한 것과 무슨 관계지?”
“공간의 위치가 바뀌었다. 마치 따로따로 떨어진 블록처럼.”
“신기한 일이군.”
“이 탑에서 불가능한 일은 없지. 하물며 저 바깥에서 온 녀석이야 오죽하겠나.”
“하긴.”
제우스는 그럴듯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두 사람이 짧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바스락-.
유원의 앞으로 무언가 기척이 느껴졌다.
수분기 없이 말라비틀어진 검은 나뭇잎들을 헤치는 손길. 오딘은 그 기척을 향해 궁니르의 창끝을 겨누었다.
그러자.
“그럴 필요 없다.”
제우스가 그런 오딘을 만류했다.
앞장서 가던 유원도 경계를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길은 어떻게 찾아온 거냐?”
유원의 질문에 수풀을 헤치며 오딘의 머리통만 한 손바닥이 나타났다.
바스락-.
“제대로 찾아오긴 했군.”
얼굴에 잔뜩 검은 재가 묻은 헤라클레스가 눈앞에 나타났다. 분명 검은 숲의 등장으로 다 뿔뿔이 흩어졌을 터인데, 대체 어찌 찾아온 건지.
“잘도 찾아왔네. 방향을 잡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그냥 알 수 있었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지만.”
“아마 벼락 덕분일 거다.”
제우스의 말에 헤라클레스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예. 벼락 ‘덕분’이죠.”
어딘가 화가 난 듯한 얼굴과 말투. 중간에서 부딪치는 두 사람의 눈빛에 유원은 잠시 무슨 일인가 싶더니 고개를 저었다.
‘또 싸우는군.’
둘의 관계가 좋지 않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헤라클레스가 벼락의 힘을 얻었다는 건 유원도 놀란 일이었다.
제우스가 말한 보험이라는 게 아무래도 헤라클레스였던 모양.
‘얼마나 더 세졌으려나.’
가진 게 무식한 힘뿐이었던 헤라클레스에게 벼락의 힘이 깃들었다. 그것도 대체 어찌 된 일인지 꽤 완숙한 수준의 힘이.
아마도 이게 바로 슈브 니구라스에게 대항하기 위한 제우스의 안배였을 터.
‘기대되네.’
유원은 헤라클레스가 싸우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가 벼락을 몸에 두르며, 저 단단한 주먹으로 그 힘을 마음껏 뽐내는 모습이 꽤 궁금했다.
메에에에-.
메에-.
소리가 들려온 건 헤라클레스가 합류한 직후였다.
그가 팔로 헤집어 나온 숲 너머. 막 그곳에서 걸어 나온 헤라클레스가 고개를 돌렸다.
“또 시끄러운 녀석들이 왔군.”
“새끼들뿐이군.”
파지지-.
제우스가 손안에 벼락을 만들었다. 헤라클레스 역시 조금씩 손안에 벼락의 힘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몇 분만 쉬어라.”
저벅-.
대뜸 유원이 산양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쉬고 있으라니?”
말도 안 된다는 듯 헤라클레스가 고개를 저었다.
제우스 역시 유원의 행동이 언짢기는 마찬가지였다.
“숫자가 꽤 많다.”
“잠깐이면 된다.”
눈동자에 수풀 너머에 무리 지어 모여 있는 산양들이 보였다.
슈브 니구라스의 새끼들.
[‘이계의 대적자’가 ‘검은 숲의 산양’을 향해 이빨을 드러냅니다.]포식자를 처음 다루었을 때가 떠오르는 메시지.
혹시나 싶은 마음에 유원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산양들을 바라보았다.
“……잠시 확인할 게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