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72
“…….”
유원의 질문에 제우스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왜 제대로 싸우지 않느냐며 질책하려던 자가 되려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제우스의 말문이 막히다니. 상상으로도 떠올리기 힘든 장면을 보고 있었다.
“정곡이 찔렸나?”
“난 멀쩡하다.”
“대답이 늦는데?”
눈썹이 꿈틀거린다.
표정을 저리 못 숨기다니. 확실히 아무 일도 없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순간.
유원의 머릿속에 오딘의 이야기가 스쳐 지나갔다.
“거래를 했다더군. 이름 모를 로브인과.”
거래.
1년 전에 있던, 슈브 니구라스와의 싸움.
그 싸움에서 어리석은 혼돈이 움직였던 게 떠올랐다.
“너도 그 녀석과 거래를 했나?”
“귀신이군.”
나지막한 감탄.
부정이 아닌 긍정이었다. 미미르와는 달리 혹시나 하던 게 사실이라니, 이번에는 유원도 적잖이 놀랐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이라면.
“대체 무슨 거래를 한 거냐?”
지식의 저주에 갇혀 언제 깰지 모를 잠에 든 미미르와는 달리, 제우스에게는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별것 아니었다. 그 염소를 처치하는 데 돕는 대신, 몸속에 씨앗 하나를 심는 거였지.”
“씨앗?”
제우스는 고개를 들어 하늘에 낀 구름을 올려다보았다.
1년 전의 일을 회상하듯, 그는 곧이어 많은 게 생략된 이야기를 이어 갔다.
“작은 약병이었다. 난 거래를 받아들이고, 그 속에 있던 걸 마셨다.”
“그걸 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었지. 그 안에 담긴 게 무엇이든지.”
자만과 오만, 그로 인해 벌어진 결과였다.
후회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만약이더라도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어떤 싸움이든, 무조건 이길 수 있는 싸움은 없는 법이었다. 게다가 제우스는 이미 한 번, 유원에게 패한 적이 있었다.
“시간이 많지 않다.”
제우스는 소매를 걷어 자신의 손을 앞으로 내밀어 보였다.
흐릿해진 손.
어쩐지 고작 이거 싸우고 벌써 지쳐 보인다더니만, 이유가 있었다.
스윽-.
손을 내 보이는 것도 잠시.
제우스는 곧 다시 소매를 내려 자신의 손을 감췄다. 마치,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건 여기까지라는 듯이 말이다.
“뭘 기다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넌 네 일을 해라. 난 나대로 싸울 테니. 단.”
제우스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그의 뒤쪽으로는 눈이 부르는 노래에 다시 부활한 아우터들이 몰려 들어오고 있었다.
“똑바로 하거라. 실망은 한 번이면 족하니.”
그렇게 말하고는 휙, 몸을 돌린다.
이내, 시간 아깝다는 듯이 마력을 아끼지 않으며 몸에 전격을 둘렀다. 그냥 서 있는 것도 위태로워 보였건만, 그는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콰릉-!
제우스와 아우터들의 무리가 충돌하자, 그들의 몸이 까맣게 타들어 가며 하늘로 튕겨져 날아갔다.
분명 강하지만.
‘불태우고 있는 거였군.’
제우스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위태로워 보였다.
‘어리석은 혼돈은 저 녀석과 무슨 거래를 한 거지?’
그렇게 생각이 깊어질 즈음이었다.
화아아아-!
땅을 뒤덮는 까만 어둠이 부활한 아우터들을 휩쓸었다.
제우스의 전격처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그 어둠에 휩쓸린 아우터들은 하나같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갔다.
어둠 속성의 마력은 희귀한 편에 속했다.
그중에서도 이만한 위력의 어둠 속성의 힘을 다룰 수 있는 건 아마, 이 탑에 한 명 정도.
“이 아래층까지 무슨 일인가 했더니만.”
츠츠츠-.
몰려 온 어둠 속에서 긴 옷을 펄럭이며 장신의 남자가 나타났다.
“역시 이러고 있었군.”
하데스.
유원이 기다리고 있던 카드였다.
11층은 올림포스가 다스리는 층인 만큼 그가 움직일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이렇게 빨리 도착할 줄이야.
“제우스를 따라온 겁니까?”
“그랬지. 그런데 결국 네 녀석을 따라온 꼴이구나. 저 녀석은 널 따라온 걸 테니 말이야.”
“누굴 따라왔든 무슨 상관입니까? 지금 하데스 님이 여기 계시는 게 중요하지.”
“뭐?”
예상외의 격한 환영에 하데스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유원의 시선이 위의 눈으로 향했다.
활짝 열려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눈동자.
멸방을 가져오는 밤의 별.
저 눈을 처리했던 건, 유원이나 제우스가 아니었다.
“당신도 이 싸움에 끼셔야겠습니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다.”
“저 눈을 맡아 주십시오.”
유원이 하늘의 눈을 가리켰다.
“제우스는 혼자 저거 못 잡습니다.”
“제우스가 잡지 못하는 거라면 내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텐데?”
“될 겁니다.”
유원이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한다는 뜻의 악수일까? 아니면 포인트를 교환하기 위한 제스처일까?
“뭐 합니까? 안 잡으시고.”
뭐 하는 건가 싶었지만 건네는 손을 계손 무안하게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데스는 앞으로 내민 유원의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죽은 자들의 왕’이 주인을 판별합니다.] [‘죽은 자들의 왕’이 적합성을 판별합니다.]하데스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뒤바뀌었다.
“……!”
깊은 바닷속.
몸이 그 속에 부유해 떠다니며, 온갖 영혼들이 보였다.
죽은 자들의 바다.
그 속에 헤엄치는 존재들의 시선이 일제히 하데스에게로 향했다.
* * *
초점이 사라진 하데스.
그런 하데스의 반응에 유원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아깝긴 하지만…… 이편이 낫겠지.’
죽은 자들의 왕은 본래 하데스의 칭호였다.
그는 흑신석을 이용해 만든 퀴네에를 얻고, 스사노오가 가지고 있던 죽은 자들의 왕 칭호를 얻어 랭킹을 올렸다.
심지어 전성기 시절, 하데스는 그 많은 신격을 얻은 하이랭커들을 제치고 30위대의 랭킹에 진입할 정도였다.
애초에 죽은 자들의 왕은 하데스를 위한 칭호였다. 그것은 유원처럼 스사노오의 던전에서 보상으로 얻은 것이 아닌, 스스로 칭호가 주인을 선택한 경우였다.
다른 무엇보다도.
‘저 녀석은 하데스의 몫이니 말이야.’
지금 자신이 상대할 녀석은 저 녀석이 아니다. ‘멸망을 가져오는 밤의 별’도 제법 큰 이름이긴 하나, 자신은 조금 더 멀리 봐야 했다.
우웅-.
손에 쥔 칼끝이 떨렸다.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그럼…….’
유원의 고개가 위로 향했다.
칼이 우는 걸 달래 주기 위해서라도, 이젠 서둘러야 할 것 같았다.
콰드득-.
[거인의 힘이 다리에 깃듭니다.]두 다리에 깃드는 거인의 힘.
그 힘대로 있는 힘껏, 구름 위까지 뛰어오른다.
꿈틀-.
멸망을 가져오는 밤의 별.
그로스라는 진명을 지닌 눈이 유원을 바라본다.
감히 어딜 오르느냐는, 그 눈빛.
유원의 앞을 가로막으려 하던 것일까. 붉은 눈동자에서 꿈틀, 작은 사람의 인영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것의 앞으로.
콰릉-!
제우스가 나타나, 붉은 인영의 목을 움켜잡는다.
“살고 싶거든 거기 계속 찌그러져 있거라.”
힐끗-, 제우스의 시선이 어느새 더 위로 향한 유원에게로 향했다.
아주 잠시 틈을 벌어 준 거면 됐다.
이제 남은 건.
“물론.”
콰르릉-!
“아무것도 안 해도 죽일 거지만.”
번쩍-!
붉은 눈동자를 황금빛의 전격이 휘감는다. 아래에서 터지는 요란한 천둥소리와 빛무리에도 유원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구름 위.
보라색 ‘하늘’로 보이던 곳에 도달하자.
투확-!
구름을 뚫고 오른 세상 위에서, 유원은 자신을 기다리던 자를 만났다.
“기어이 왔군.”
구름 아래를 내려다보며 상황을 관전하던 어리석은 혼돈이 유원을 바라보았다.
이번이 대체 몇 번째 만남일까.
숫자로 다 세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중 처음, 유원은 어리석은 혼돈의 앞에서 칼을 뽑아 들고 있었다.
“올 줄은 알았고?”
척-.
구름은 단단했다.
밟고 설 수 있을 만큼.
덕분에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밟기 위해 쓸데없이 마력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유원은 어리석은 혼돈을 향해 다가갔다.
“알고는 있었다. 지금이든, 나중이든 말이야.”
“그럼 도망갔어야지.”
“도망쳐 봤자 결국 따라올 테니 말이야. 그런데 뭔가 오해하는 것 같은데.”
“뭘?”
“이건 내가 한 게 아니다. 난 그냥 구경하고 있었을 뿐이지.”
“상관없다. 그래도 이 녀석들은 널 지킬 테니까.”
꿈틀-.
쏴아아아-.
어리석은 혼돈의 주위를 감싸는 촉수와 안개. 그 위로 펼쳐지는 이름의 향연들.
무리의 대장을 지키는 습성은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그것은 오래전부터 저들과 싸우며 알아 둔 상태였다.
“날 도발용으로 쓰겠다는 건가.”
어리석은 혼돈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섞였다.
“어디 마음대로 해 보거라. 어차피 나야 손해 볼 것 없으니.”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다른 아우터들의 뒤에 숨는다.
유원은 의아한 눈으로 그런 어리석은 혼돈을 바라보았다.
아직 본체가 넘어온 건 아니라지만 그래도 녀석은 슈브 니구라스의 이름을 얻었다.
이 정도면 그래도 싸움을 걸어올 거라 생각했건만.
‘그리 쉽게 넘어가지는 않겠다는 건가. 아니면-.’
여기서는 싸울 이유가 없다는 뜻일까.
아무래도 상관은 없었다.
싸울 이유가 없다면 싸울 수밖에 없도록 만들면 될 테니.
힐끗-.
유원의 시선이 손에 쥔 칼끝으로 향했다.
[‘?(미완성)’이 이계의 존재를 대적합니다.] [‘?(미완성)’이 당신의 선택을 기다립니다.]마음을 담자 검이 반응했다.
꽈악-.
유원은 이 검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알았다.
이계검은 헤파이스토스의 망치를 녹여 그의 주먹을 망치 삼아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건, 그런 이계검을 녹여 현재의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검이었다.
검이 만들어진 목적은 단 하나.
눈앞에 있는 이계의 존재들을 베기 위함이었다.
화르륵-.
죽음과 부패의 불꽃. 성화라 알고 있던 그 이름의 힘이 발현되었다.
유원의 주위로 불꽃이 번져나갔다. 이름의 힘이 칼에 휘감겨 춤을 추며, 어서 자신을 써 달라 소리쳤다.
생소한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성화를 다루었을 때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
이 생소한 감각의 이유는 하나였다.
‘이름 때문인가.’
성화.
죽음과 부패의 불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불꽃.
그 이름은 본래 둘이며 하나였다. 불꽃과 춤추는 무희의 불꽃은 즉, 죽음과 부패의 불꽃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 두 개의 이름이 하나로 모인 지금, 불꽃은 비로소 완벽하게 타올랐다.
화르륵-!
유원은 그렇게 칼끝에 불꽃을 휘감고.
‘휘둘러 볼까.’
칼끝으로 원을 그렸다.
화아악-!
아우터와 함께, 11층의 하늘에 낀 보라색의 구름을 베어 낸다.
화륵, 화아아아-!
투화아악-!
수백, 수천.
수만 갈래로 갈라지는 하나의 검격.
아우터들의 몸이 갈기갈기 베어지며 불꽃에 몸이 까만 재가 되어 타들어 갔다. 불꽃은 폭풍을 일으키고, 검격은 멈추지 않았다.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유원은 다시 검을 휘둘렀다.
[‘불꽃과 춤추는 무희’가 ‘죽음과 부패의 불꽃’을 다스립니다.]투화악-!
다시 한 칼.
화르르륵-.
그리고 또다시 한 칼.
불꽃을 휘감은 칼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한 명의 무희처럼 춤을 추던 유원의 칼끝은 어느 순간.
화아아악-!
마치 이 싸움과 자신은 상관없다는 듯 앉아 있던 어리석은 혼돈에게로 향하고 이내.
펄럭-.
그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로브를 벗겨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