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600
* * *
“나, 전부 기억났어.”
“…….”
“…….”
방 안에 침묵이 흘렀다.
유원과 판도라가 츠쿠요미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표정을 보니 정말인 듯했다.
[야, 상황 재밌어졌네.]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키트에서 흘러나왔다.
손오공이.
아니, 헤라클레스도 웃고 있었다.
“……일단 끊어 봐.”
[야, 야! 어딘지는 알려 주고-.]뚝-.
전화를 끊은 유원은 키트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츠쿠요미는 어느새 유원의 맞은편으로 와 앉았다.
판도라의 눈이 그녀를 노려보았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얼굴이었다.
“뭐가 기억났다는 거지?”
“네가 누구인지. 아까 말했잖아? 김유원.”
이름을 다시 한번 언급하는 걸 보니 진짜인 모양.
하긴.
그녀와는 너무 자주 마주쳤다.
더군다나 이번, 스사노오를 만난 건 꽤 충격을 받을 만한 일이었다.
‘기억날 때가 되긴 했지.’
가능하면 당분간은 관리자들의 눈을 피해 숨고 싶었던 유원으로서는 썩 반가운 상황은 아니었지만.
‘어디 가서 떠벌릴 녀석도 아니고. 떠벌린다고 될 것도 아니니.’
나쁘게 생각할 필요 없었다.
이자나기를 지닌 츠쿠요미의 협력을 이끌어내려면 오히려 이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내가 누구든, 사실 별로 중요한 건 아닐 테고…….”
“어물쩍 넘어가려 하지 마.”
어림도 없다는 듯, 츠쿠요미는 고개를 저었다.
“네가 어떤 녀석인데 다들 그걸 잊었지? 그냥 까먹은 것도 아니고, 얼굴을 보고도 기억을 못 하다니…….”
한 번 기억이 나고 나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김유원을 잊다니.
“나도 그래. 아마테라스는 네 손에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 그런데 어떻게 널 잊었지?”
자연적인 현상은 아니었다.
뭔가가 개입되었다. 그건 확실했다.
그리고 츠쿠요미는 그게, 유원의 의도일 거라 여겼다.
그런데.
“그러게. 다들 까먹었더라고.”
“뭐?”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을 짓는 츠쿠요미.
그런 츠쿠요미에게 유원은 뻔뻔히 말을 이었다.
“서운하더라고. 아무도 기억을 못 해 주니까. 그 바보 같은 손오공도 날 기억하는데 말이지.”
그리 말하며 힐끗, 츠쿠요미를 바라본다.
마치 손오공도 기억하는 걸, 너는 왜 못했냐는 듯이 말이다.
“너, 너…….”
그런 유원의 말에 담긴 속뜻을 알아차린 츠쿠요미의 표정이 붉어졌다.
다른 건 몰라도, 손오공과 비교당하다니.
그건 제천대성의 바보 같은 면을 아는 모두에게는 실로 모욕적인 말이었다.
그렇게 츠쿠요미를 놀리는 것으 로 말을 돌린 유원은 힐끗, 판도라를 바라보았다.
화가 난 츠쿠요미를 보며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판도라.
구태여 설명하지 않은 이유는 따로 있지 않았다.
‘설명하기 귀찮아. 설명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자신이 왜 잊혔는지, 그걸 이해시키기는 너무 어려웠다.
가능하다면 바루나처럼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 주는 게 최고였다.
무엇보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왜’가 아니었다.
스스스-.
그 순간, 유원의 뒤로 나타나는 스사노오.
무어라 유원에게 더 이유를 캐물으려던 츠쿠요미가 멈칫했다.
-자주 불러 주는군. 막 잠에 들었는데 말이지.
“싫으면 다시 들어가던가.”
-아니. 환영이다.
서둘러 대답하는 스사노오.
이런 모습을 처음 본 츠쿠요미는 잠시 낯선 눈으로 스사노오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상대가 유원이라면 스사노오가 그를 인정한 것도 이해가 됐다.
제아무리 삼귀자가 대단하다 한들, 유원이 이룬 업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 음…….
잠시 말을 머뭇거리는 스사노오.
-결국 만들었네.
만들었다.
삼귀자가 찾던 보물인 삼신기.
그걸 합친 아이템, 이자나기를 말하는 거였다.
“너희 덕분이지.”
그 말과 함께 츠쿠요미의 시선이 스사노오와 유원을 한 번씩 훑었다.
오로치를 잡고 쿠사나기를 발견한 스사노오.
야타의 거울을 찾아낸 유원.
그리고 팔척경곡옥을 가지고 있던 아마테라스.
사실, 츠쿠요미가 모은 건 삼신기 중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잘했다.
그 말에 츠쿠요미의 입꼬리가 살짝 을라갔다.
제일 처음 스사노오가 죽고.
그 다음으로 아마테라스가 죽고 난 후.
자신이 이루어 낸 걸 아무도 알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도 한 명.
살아 있는 건 아니지만, 자신이 이룬 걸 알아주는 사람이 생겼다.
‘이런 면도 있었네.’
유원은 제대로 츠쿠요미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스사노오를 바라보았다.
살인귀라 불리던 그였다.
사람의 목숨을 파리와 같이 여기던 스사노오는, 삼귀자의 악명을 탑에 떨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결국 유원의 눈에는 스사노오나 그런 스사노오를 좋아하는 츠쿠요미나 그게 그거였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좋아하는 건 확실해 보였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잠시 두 사람이 어색하게 대화를 나누는 걸 지켜보던 유원이 입을 열었다.
“이자나기를 통제하려면 시간이 걸릴 거다.”
그 말을 시작으로 유원은 스사노오를 돌아보았다.
“스사노오, 네가 츠쿠요미 옆에 붙어 있어. 당분간은 계속 밖에 나와 있어도 된다.”
-정말…… 이냐?
“정말이야?”
화들짝 놀라는 두 사람.
그만큼 유원의 말은 파격적이었다.
자신의 소환수로 종속된 스사노오에게 잠시나마 자유를 허락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고…… 맙다.”
어렵사리 감사를 전하는 스사노오.
하지만 유원은 그의 오해를 오랫동안 내버려 두지 않았다.
“잠깐만.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유원은 고개를 저었다.
“츠쿠요미, 네가 붙어 있어야 하는 거다. 거리가 너무 떨어지면 내가 피곤해서.”
“내가?”
“이자나기가 익숙해질 때까지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너도 날 좀 도와줬으면 하는데.”
이자나기의 눈은 쓸모가 있었다.
저 능력은 전투보다는 다른 보조적인 능력에서 완벽에 가까운 효용성을 보여 주었다.
유원의 입장에서는 저만한 조력자도 없었다.
“돕다니? 뭘 하려는 건데?”
“찾아야 할 게 있어서.”
“뭔데?”
“단풍이.”
“……?”
가을에 떨어질 것 같은 이름에 츠쿠요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뭐냐는 듯 스사노오의 표정을 확인했지만, 그는 표정을 굳힌 채 입을 다물었다.
더 물어볼 필요가 없겠다 생각한 츠쿠요미는 어깨를 으쏙였다.
자세한 건 앞으로 천천히 알아보면 될 테고, 사실 그녀는 뭘 찾고 말고는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당분간 스사노오와 동행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반가운 제안이었다.
“그래.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도울게. 어차피 할 것도 없고.”
“고맙다.”
“목적지는 어딘데? 설마 나한테 방향까지 정해 달라는 건 아니겠지?”
“갈 곳은 이미 정했어.”
아난타 때문에 늦어지긴 했지만.
움직여야 할 목적지는 정해져 있었다.
“바깥으로 갈 거다.”
* * *
아난타와의 싸움에 참여한 올림포스와 아스가르드의 랭커들 모두가.
슈브 니구라스의 새끼들의 등장에 혼란에 빠졌다.
올림포스와 아스가르드 측의 랭커들 사이에서는 소문이 돌았다.
“아직 그것들이 남아 있는 모양이야.”
“그 산양들, 내가 똑똑히 기억해. 잊을 수가 없다니까?”
“아우터가…… 다시 움직이는 건가?”
10년 전의 전쟁에서 승리해, 모두 사라졌다고 생각한 존재들.
그들이 다시 등장했다는 소식에 탑이 떠들썩해지고 있을 때.
“잘된 일입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하늘을 향해 창을 던지고 있던 제우스는 자신을 찾아온 하데스와 대화를 나눴다.
“잘됐다고?”
“예. 덕분에 요 며칠, 관리자들이 조용하지 않습니까?”
제우스가 손짓하자 기다리던 시종이 땀을 닦을 수건을 들고 왔다.
“아우터들을 의식하고 있다는 거냐?”
“그게 아니라면 굳이, 이런 때에 그들이 움직이지도 않았겠지 요.”
“그렇긴 하지만…….”
스윽-.
하데스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난 역시, 그놈들이 더 두렵다.”
제우스가 창을 던진 하늘.
지금은 맑고 푸르지만, 언젠가 저 하늘은 보라색이었던 적이 있었다.
언제나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듯 하던 보라색의 하늘.
그것을 떠올릴 때면, 하데스는 종종 지금까지도 두려움을 느꼈다.
“실제로도 그럴 겁니다.”
“그럼 이렇게 쉴 때가 아니지 않으냐? 다시 한번 그날처럼 화합을-.”
“그럴 필요가 없어서 그럽니다.”
“없다고?”
하데스는 영문 모를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과거 어리석은 혼돈과 제우스가 어떤 관계였는지, 그리고 제우스가 아우터라는 존재들을 얼마나 경계했는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일에 다른 누구보다도 더 민감하게 반응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는 어느 때보다도 태연한 반응이었다.
‘무슨 까닭인진 모르겠지만…….’
꿀꺽-.
수건과 함께 준비된 음료를 마시는 제우스.
그런 제우스의 반응을 보며 하데스는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
‘얘기할 거면 진작 했겠지.’
그렇다고 이런 제우스의 반응이 불안하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형제로서, 그리고 형으로서 오랜 시간 그를 지켜봐 왔지만 지금껏 제우스가 자신을 실망시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안일함? 그런 것 따위는 제우스의 앞에 붙을 수 없는 말이다.
제우스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
그리고 그 이유는 하나였다.
‘지금 설명해 봤자 못 알아들을 테고…….’
빈 음료잔을 내려놓으며 하데스를 힐끔거리는 제우스.
‘덕분에 시간을 벌었다.’
후우-.
쿠르릉-!
길게 숨을 뱉으며, 다시 손에 창을 만들어 쥔다.
그의 머릿속에는 아난타와의 싸움이 재생되었다.
첫 번째 아스트라페가 막혔을 때의 충격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날 이후.
제우스는 매일같이 이곳에 와서 창을 던졌다.
‘창끝이 무뎌진 게야.’
투창 자세를 취하며.
제우스는 황금색 눈동자를 빛내, 구름을 향해 창을 던졌다.
‘다시 날카롭게 갈 때가 왔어.’
콰릉-!
* * *
판도라와 츠쿠요미.
그리고 츠쿠요미와 함께하는 동안은 계속 밖에 있기로 한 스사노오까지.
도합 네 명의 일행이 1층으로 내려왔다.
저벅-.
하늘 끝까지 솟아나 있는, 거대한 검은 벽.
탑과 바깥을 나누는 경계에 도착한 츠쿠요미가 물었다.
“진짜 여길 나간다고?”
“그래.”
“그게 가능해?”
너무 대답이 쉽게 나왔기 때문일까.
츠쿠요미는 아직까지도 탑 밖으로 나간다는 게 상상이 되질 않았다.
벽에 균열이 생기고.
저 밖에서 슈브 니구라스라는 존재가 탑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부터.
영영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벽을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은 밝혀졌었다.
하지만 아우터가 안으로 들어온다면 모를까, 이너가 밖으로 나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가능하다고 해도, 나갈 사람이 있을 리도 없고 말이야.’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
아우터.
탑의 하이랭커들조차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존재들.
그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에 발을 들이고 싶은 사람이 대체 어디에 있겠는가.
그건, 츠쿠요미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단풍이라는 자가, 저 밖에 있다는 건가?’
유원이 슈브 니구라스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건 츠쿠요미도 처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과, 유원이 찾고 있는 단풍이 어떤 관계인지는 알 수 없었다.
저벅-.
유원이 벽을 향해 다가갔다.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저 밖으로 나가 본 적은 없지만, 왜인지 기분은 익숙했다.
‘가 보는 건가.’
아자토스의 기억 속에 있던. 탑 바깥의 세상.
그 세상을 향해.
스윽-.
유원이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