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58
“당시 선조님께 생기를 빼앗긴 이한제가 노부자마저 두렵게 할 만한 힘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 소식에 향가는 발칵 뒤집혔고 현임 가주와 대장로들은 곧장 동림혈령(東臨血令)을 내렸다.
동림성 향가는 이 수련성의 비밀스러운 지배자로 평소에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때문에 나천성역 대부분의 수련자는 이들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허가 여가 그리고 유가의 3대 가문의 존재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허가는 살신(殺神)을 다수 배출한 것으로 유명했다.
여가는 금제에 매우 뛰어나, 지금 동림성에 드리운 모든 금제를 이들이 배치한 것이었다.
유가는 법보에 대한 연구로 유명했다. 특히 신통술과 법보를 융합하는 술법인 구생혈규술(九生血葵術)은 지금까지 단 한 번만 사용됐다는 소문이 있다. 한데 그 술법이 사용됐을 때 나천성역 동쪽 구역의 모든 생령이 재로 변해 버렸다고 한다.
이 세 가문은 서로 끊임없이 싸우면서 끊임없이 강대해졌다.
허나 사실 나천성역의 소수 강력한 수련자들은 이 세 가문이 사실상 향가의 지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향가는 말하자면 나천성역 전역을 통틀어 상고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가장 강력한 가문이었다. 심지어 뇌선전과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집안이었다. 물론 이는 뇌선전에 노부자를 포함 시키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지만.
어쨌든 향가는 움직였다 하면 나천성역 전역을 뒤흔들 정도로 강력했다. 향운동이 상대적으로 수준이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노부자에게 도술을 전수받을 네 사람 중 하나로 선발된 것 역시 그래서였다.
또한 소수의 강력한 수련자들 사이에서 도는 소문에 의하면 나천성역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원고 시대부터 이어져온 모든 수련자 가문은 향가와 연관이 있다고 했다. 이는 향가가 성씨조차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원고 수련자 가문의 지파라는 의미로 향가도 원고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가문에게는 문지기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원고 시대부터 이어져온 수련자 가문은 선계가 무너져 내렸을 당시에도 매우 오래된 가문이었다. 상고 시대를 경험하고 수만 년간 이어져온 그들의 저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또한 그들은 매우 신비로웠고 지난 수만 년간 모습을 드러낸 적도 없었다. 노부자로 인해 일어난 나천성역과 연맹성역의 전쟁에도 그들은 명령을 하나 내리고 한 사람을 보냈을 뿐이었다.
그 명령에 따라 진선(眞仙)으로 봉해진 사람이 망월의 체내에서 월화를 강탈해간 아홉 번째 장로 일목자였다.
향가의 명령 아래, 동림성 세 가문은 이 수련성에 층층이 방어막을 형성하고 전투를 준비했다.
수만 년간 수많은 이들의 피로 적셔진 대지는 암적색이었다. 땅에서는 짙은 피비린내가 흩어지지 않았다.
이곳의 서쪽 끝에는 연고 없는 무덤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었고 지면에는 수많은 팔과 다리, 그리고 뼈가 썩어가는 살점과 함께 잔뜩 널려 있었다. 하늘을 날던 독수리들이 그 위에 내려 앉아 썩은 살점을 뜯어먹곤 했다.
이곳은 깊이 들어갈수록 지면의 색이 어두워졌고 심지어 생기란 존재 자체가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곳에는 향가 사람이라도 중요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감히 발을 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곳 대지가 생기를 흡수해버리기 때문이었다.
흑의의 노인 두 명이 음침한 얼굴로 서쪽 끝 깊은 곳에 이르렀다.
그중 한 노인이 공손한 얼굴로 검은 대지를 향해 포권을 했다.
“선조님, 분부대로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이한제가 오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노인의 목소리는 대지를 뚫고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한눈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그곳은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로 차 있어 주변보다 훨씬 더 짙은 죽음의 기운으로 뒤덮인 상태였다.
중앙에는 사람들의 머리로 이루어진 탑이 있었고 그 탑 위에는 관이 하나 있었다. 황토색 관 곳곳은 썩어 문드러진 상태로 짙은 노란색 물이 배어 나와 흘러내렸다. 그 물이 아래에 늘어진 사람들의 머리에 닿을 때마다 치직 하는 불길한 소리가 났다.
흑의의 노인의 목소리는 이곳을 채운 죽음의 기운에 한참 약해진 상태로 관으로 스며들었다.
짧은 침묵이 흐르더니 누군가의 거친 목소리가 관에서 흘러나왔다.
“그때 맛본 녀석의 생기는 훌륭했지. 그 맛이 그리웠다. 한데 그때 거의 모든 생기를 잃고도 살아 있다니, 놀랍군. 어쨌든 너희는 물러가 있거라. 노부자가 과장한 것일 뿐, 걱정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관에서 흘러나온 거친 목소리에 두 노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향운동이 가져온 소식에 그만큼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야 마음의 평안을 찾은 그들에게 선조는 향가의 하늘이었다. 그런 선조가 이렇게 말했다면 마음을 놓아도 될 터였다.
하지만 향가의 선조조차 지금 한제가 동림성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저 멀리 진의 빛을 번득이고 있는 동림성과 그 주위를 에워싼 수십 개의 작은 수련성을 보며 한제는 당시를 떠올렸다. 청수와 함께 향운동을 따라 기대를 가득 품고 이곳에 왔었던 그때를.
당시 그는 모완의 부활에 대한 기대로 가득했다. 뇌선에 봉해진 대가로 향가로부터 약속을 받아냈던 그때까지만 해도 한제는 그들과 적대적인 관계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저 모완이 다시 살아나기를 바랐을 뿐이다.
그러나 향운동을 따라 알현한 향가의 선조는 비열하고 악독했다. 모완을 살려주지 않은 것으로도 부족해 한제의 거의 모든 생기를 빨아들이기까지 했다. 만약 적멸지가 아니었다면 한제는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을 터였다.
한제는 이제 수많은 일을 겪으면서 모완의 부활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됐다. 동시에 당시 향가의 선조가 했던 그 모든 약속이 거짓이었음을 상대에게는 모완을 살릴 능력이 애초에 없었음을 깨달았다. 칠석술이 있다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후에서야 알게 됐지만 향가의 선조가 칠석술을 통해 모완에게 주입한 생기는 그녀의 혼이 더욱 망가진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니 향가 선조는 한제의 생기를 앗아갔음은 물론이고 모완까지 소멸시키려 했던 것이다.
모완에게 생기를 주입해야 한다는 한제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만약 정확한 방법으로 생기를 주입했다면 모완의 부활이 지금처럼 요원하고 불가능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러니 향가에 대한 한제의 원한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들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겠지.’
한제는 상대가 대체 왜 그랬는지 알고 싶었다. 왜 자신을 속였는지, 왜 모완을 살려주겠다는 약속을 빌미로 자신의 모든 생기를 빨아들였는지!
당시만 해도 그는 도망치기 바빴다. 이유를 따지기는커녕 저항할 힘조차 없었으니까. 그러니 참고 또 참으며 굴욕감과 원한을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둘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시 동림성을 방문한 오늘은 달랐다.
한제는 살기 어린 눈으로 단숨에 수십만 척을 뛰어넘었고 어느새 동림성과의 거리는 1만 척으로 줄어들었다.
콰르릉!
우주가 진동하면서 층층의 파문이 한제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또한 우렁찬 걸음 소리가 동림성을 진동시키자 주위를 에워싼 수십 개의 작은 수련성에 모여 있던 수련자들은 표정이 급변했다.
자극을 받은 금제가 격렬하게 번득였다.
동림성 밖에 선 한제는 형형한 눈을 번득이며 덤덤하게 외쳤다.
“내가 누군지, 왜 왔는지 알고 있겠지? 당장 나와라!”
지난 1천 년간 묻어온 분노와 원한이 밴 목소리는 하늘을 가를 듯 울려 퍼지며 사방을 뒤흔들었다. 그와 동시에 천둥번개가 줄기줄기 나타나 동림성 근처의 드넓은 구역을 지옥으로 만들어 버렸다.
동림성을 에워싼 작은 수련성들의 금제가 빠르게 번득이는가 싶더니 그중 아홉 개의 수련성이 그대로 무너져 버렸다.
순식간에 산산조각 난 수련성과 피떡처럼 뭉개진 수련자들의 육신과 원신이 떠다녔다.
진의 눈을 차지하고 있던 스물일곱 명의 노인 역시 순식간에 터져 나갔다.
나머지 수련성의 수련자들도 무사하지 못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피를 토해냈다. 금제가 한제의 고함에 저항했지만 그 여파의 영향까지 피할 수 없었기에 심신이 진동했고 두려움마저 차올랐다.
쩌적!
동림성 대지에도 수많은 균열이 일어나면서 수많은 산봉우리가 돌조각으로 무너져 내렸다.
북쪽의 바다에서는 거대한 회오리가 일어났다.
한제의 목소리는 바다에 닿은 순간 해저로 파고들어 바닷물을 휩쓸었고 이에 1만 척 높이의 파도가 육지로 덮쳐들었다.
노부자의 실수
동림성 지하 깊은 곳.
사람들의 머리로 채워진 그 공간에도 한제의 목소리가 닿았다. 그 순간 지면이 진동하는가 싶더니 하나의 거대한 균열이 나타났다. 동시에 한제의 우렁찬 목소리에 지하에 있던 머리의 절반 이상이 터져 나갔고 수만 년간 그곳을 채우고 있던 죽음의 기운이 밖으로 새어나갔다.
그 공간에 있던 황토색 관 역시 바르르 진동했고 뚜껑이 벽으로 날아가 부딪치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크아아아!”
뚜껑이 사라진 관에서는 낮은 포효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비쩍 마른 오른손이 쑥 뻗어 나와 관의 옆쪽을 꽉 붙들었다.
그 무렵, 앞서 관의 주인에게 말을 전하고 돌아가던 두 흑의의 노인 중 한 명은 이미 육신이 사라진 후였다. 남은 노인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두려움에 잠김 얼굴로 곧장 결인을 그려 검은색 옥패를 소환했다.
“진 배치! 남김없이 쏟아부어 저자가 동림성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막아라!”
그러자 줄기줄기의 강력한 기운이 동림성에서 튀어나와 동쪽과 남쪽, 북쪽으로 향했다. 이 기운들은 수만 명의 수련자로 변해 거대한 동림성을 둘러싸고 있었다.
북쪽은 여가의 차지로 이들은 빽빽하게 앉아 거대한 금제를 이루었다. 허공에는 수십 명의 노인이 가부좌를 튼 채 빠르게 결인을 그리고 피를 토해냈다. 그들의 피는 한데 응집해 붉은 인영을 형성했다.
남쪽은 허가였다. 수만 명의 수련자가 폭 1만 척의 거대한 피 연못을 에워싸고 있었다. 붉은 연못에서 살기가 튀어나왔고 수련자들은 매우 신중하게 그 연못으로 한 걸음씩 걸어 들어갔다.
동쪽의 유가는 일곱 명이 한 조를 이루어 거대한 해바라기 모양의 도안을 형성했다. 각 조 옆에는 높이가 수백 척에 달하는 법보가 하나씩 있었는데 모양은 각기 달랐지만 모두 노란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동림성 주위의 작은 수련성들은 금제의 빛이 번득이며 회전해 거대한 회오리를 형성하더니 동림성을 단단히 감쌌다.
한제는 이 모든 광경을 싸늘한 눈빛으로 지켜보았다.
“나오지 않는다면 내가 가서 끌어내주지. 내 앞길을 막는 자 모두 멸하리라!”
한제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딛은 순간, 여가 수련자들이 주문을 외쳤다.
“진화천막(陣化天幕)!”
“금마천선(禁魔天仙)!”
“진금팔방(陣禁八方)!”
각 주문이 터져 나올 때마다 동림성을 에워싼 작은 수련성들에서는 수천 명의 수련자가 일제히 결인을 그렸다. 그러자 빛의 장막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 1천 겹, 1만 겹, 10만 겹, 1백만 겹, 1천만 겹⋯⋯ 총 9999만 겹에 이르렀다.
빛의 장막에서 발산된 빛은 우주를 꿰뚫고 사방으로 퍼져 나가 나천성역 동쪽을 채웠고 자연히 나천성역 전역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수많은 수련자들과 수련자 가문, 이동 중이던 수련자 대군은 이 강력한 빛에 일제히 시선을 돌렸다.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에서라도 그 빛만은 볼 수 있었다.
6백 개 이상의 수련성을 모아 만들어낸 진의 중심 속 회오리에 가부좌를 틀고 있던 노부자도 번득이는 눈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곁에 있는 염뇌자와 혈신자 열운자 역시 얼굴이 창백해졌다.
‘동림성의 진은 상고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왔지. 소문에 의하면 여가는 그 진의 영혼을 수만 년간 먹이고 길러왔기 때문에 활성화되기만 하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한제가 그 진을 꿰뚫는다 해도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터. 나라면 스물을 세기 전에 가능하겠지만 과연 녀석이 진을 처리할 수 있을까?’
한편, 한제는 덤덤한 눈으로 빛의 장막을 바라보았다.
“재미있군. 허나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그는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순간 그의 미간서 일곱 개의 반점이 회전하면서 강력한 도고의 기운을 발산했다. 도고는 고신과 비교해도 훨씬 더 강한 존재였다. 고신도 도고로부터 갈라져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 우주가 뒤틀리면서 수없이 많은 균열이 생겨났다. 우주 자체가 도고의 기운을 견뎌내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동시에 한제 뒤로는 거대한 허상이 하나 나타났다.
이 왼쪽 눈이 없는 머리였는데 허상은 매우 흐릿했다.
거대한 머리의 허상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강력한 위압감을 발산했다. 이 위압감은 곧장 퍼져 나가면서 동쪽 성역 전역에 드리워져 나천성역 모든 수련자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그들은 마치 불가해한 존재를 마주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특히 노부자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저 멀리 나타난 거대한 머리의 허상을 바라보았다.
“저, 저건 대체 뭐지? 고신? 고요? 고마?”
노부자라 해도 도고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하늘을 가리켰던 오른손을 움켜쥐더니 9천만 겹 이상의 빛의 장막을 향해 휘둘렀다. 동시에 수십만 척에 이르는 허상의 주먹도 나타나 돌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