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72
현라가 왼손을 휘두르자 거친 기색의 검은 쉭 하고 동부계의 대문을 향해 달려들었다.
용의 몸으로 만들어지고 설산과 거친 검으로 보호를 받게 된 길은 매우 길었지만 그 길을 걷는 이상 환생을 선택한 이들이 위험을 맞닥뜨리게 될 가능성은 대폭 줄어들었다.
“네 번째, 풍마(風魔), 현라의 이름으로 소환한다!”
현라의 준비는 끝이 아니었다. 이번 환생에서는 무엇보다 선강 대륙의 규칙에 저항하는 것이 중요했다.
현라가 혀끝을 깨물어 귀한 정혈을 한 움큼 뿜어내자 붉은 피는 검게 변하며 꿈틀거리다가 대량의 검은 기운을 발산했다.
이 기운 안에서 흐릿하지만 마기가 흘러넘치는 인영이 나타났다.
이 마기는 고마의 기운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악한 의지가 한데 모여 응집된 결과였다.
“난 세 번의 환생을 겪는 동안 36억 명의 사악하고 흉악한 이들에게서 사악한 의지를 모아 이것을 제련했다. 지능까지 갖추게 된 이 녀석은 마령(魔靈)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지.”
마기로 일렁이는 마령은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나의 3대 무기 중 하나이기도 한 이것은 봉인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 환생을 거치는 동안 너희의 기억이 손상되지 않게 보호해줄 터. 누군가가 일깨워주면 그 모든 기억이 떠오르게 될 것이다. 또한 환생을 거쳐 태어난 너희들의 정체를 감춰줄 수 있다. 대천존이 자세히 탐색하지 않는 한 안전하다. 이것까지 갖춰져야 환생을 위한 준비가 완성되는 것이다!”
현라가 손을 가볍게 휘두르자 검은 기운으로 휩싸인 인영은 동부계 대문으로 달려들었다.
그러자 얼음으로 봉인된 문 안쪽의 길이 검은 안개로 뒤덮였다. 이 안개는 착 가라앉아 거울처럼 위쪽의 광경을 비췄다.
연달아 네 개의 강력한 무기를 소환했지만 현라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워낙 수준이 높은 데다가 미리 준비해온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들어 올린 손으로 주먹을 움켜쥐었다가 다시 펼쳤다. 그러자 손바닥에서 붉은 태양 하나가 나타나더니 쩌적 소리와 함께 회전하면서 점차 실체를 갖추어갔다. 이제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움켜쥘 수도 있을 터였다.
“이한제, 이것은 내가 대천존의 힘으로 만들어낸 것으로 네 경지와 신통술을 대폭 강화할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전력을 다해 몽도를 발휘해라! 이를 통해 네 일행들의 모든 기억을 네가 찾아 일깨우기 전까지 꿈속에 봉인하는 것이다! 저들에게 한 번의 환생은 한바탕 꿈이 되는 셈이지.”
주먹만 한 붉은 태양이 앞으로 둥둥 흘러오자 한제는 이를 움켜쥐었다.
그 순간, 한제의 심신은 바르르 진동했다. 이 태양 안에는 한제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하지만 그의 혼을 진동하게 하는 기운이 있었다.
‘이것이 아홉 태양, 대천존의 힘인가!’
한제는 감탄하며 손에 붉은 태양을 쥔 채 잠시 침묵하다가 두 눈을 감고 몽도를 발휘했다.
본래도 강력한 신통술인 몽도가 현라의 법보를 통해 대폭 강화되자 그 결과로 만들어진 꿈은 거의 현실에 가까웠다.
보이지 않는 한 줄기 파문이 한제의 체내에서 발산되어 주위 사람들을 뒤덮었다. 이천매를 포함한 이들은 눈을 감은 채 꿈속에 빠져들었다.
환생을 위해
눈 깜짝할 사이 2각이 지났다. 한제의 미간에는 흐릿한 문양이 나타났고 그와 동시에 눈을 감고 꿈에 빠진 이들의 미간에도 보일 듯 말 듯한 문양이 나타났다.
이 문양은 연계되어 있는 듯 번득였다. 이 연계를 통해 한제는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더라도 그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었다.
쩍!
한제의 손에 들려 있던 붉은 태양이 갈라지더니 흩어져 사라졌다.
태양이 완전히 사라진 순간, 한제와 모든 사람이 눈을 번쩍 떴다. 그들 미간의 문양은 이제 매우 또렷했다.
동시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이 이들의 마음에 피어올랐다. 눈을 감든 뜨든, 이들은 서로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특히나 한제에 대한 느낌은 그중에 강력했다.
“환생을 거쳐 태어나면 너희들 사이의 그 느낌은 약해질 것이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는 이의 존재만큼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터. 자 이제 한 명씩 저 길에 오르도록 해라. 내 너희들을 환생시켜주겠다!”
현라의 위엄 있는 목소리에 한제 곁에 있는 이들의 표정이 무겁게 변했다. 그리고 이내 청림이 긴 한숨을 내뱉으며 가장 먼저 동부계 대문으로 향했다. 그의 딸 청상이 뒤를 따랐다.
다음으로 주일이 얼른 따라나서려 했지만 그때 한 줄기 실낱같은 힘이 그를 에워싸 걸음을 붙들었다.
“주 형은 잠시 기다리시지요. 주 형이 환생을 거쳐 태어나시면 그때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한제의 목소리가 주일의 심신에 울려 퍼졌다.
“이한제, 선강 대륙에서 다시 만나자!”
청림은 해탈한 듯한 모습으로 동부계 대문 밖에 선 채 한제를 향해 포권을 했다. 사방을 둘러보는 그의 눈에서 아쉬움과 미련이 엿보였다.
곧 돌아선 청림은 검은 안개가 거울같이 매끈하게 깔린 길 안으로 들어서더니 사라졌다. 세상 어떤 일에도 변하지 않을 것처럼 차가운 표정의 청상이 뒤이어 그 안으로 발을 들이려다가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려 주일을 한 번 훑어보았다.
“이제 더 이상 날 귀찮게 하지 마라.”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표정만큼이나 서늘하고 냉정했지만 어딘가 의미심장했다.
주일은 쓸쓸한 얼굴로 청상이 사라져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한제가 주일을 알게 된 지도 벌써 2천 년이었다. 한제는 청상에 대한 일도 그녀에 대한 주일의 집착에 가까운 사랑도 잘 알고 있었다.
조용히 한숨을 내쉰 한제는 오른손으로 미간을 문질렀다. 그러자 미간의 문양이 약간 어두워졌다. 뒤이어 한제는 손가락으로 취한 자신의 문양 일부를 주일의 이마에 찍어주었다.
“가세요. 청상의 기억에 찍어둔 봉인을 드렸습니다. 그러니 주 형과 청상이 환생하더라도 분명 연이 닿을 거예요. 어쩌면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르지요.”
주일은 여전히 슬픈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제를 향해 포권을 하고는 사라져갔다.
네 번째로 나선 것은 청수였다. 그는 한제에게 다가와 미소를 지었다.
“사제, 선강 대륙에서 기다리겠네. 만약 내 딸을 먼저 찾는다면 부디 잘 보살펴주게.”
그는 미소를 지으며 자애로운 홍접을 바라보았다.
홍접의 붉어진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그녀는 몇 걸음 다가오며 무슨 말인가 하려다가 결국 입술을 깨문 채 입을 다물었다.
이내 청수가 사라지자 홍접의 눈에서는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어서 그녀도 붉은 나비처럼 동부계 문으로 달려들어 사라졌다.
환생을 택한 이들은 하나둘 한제에게 포권을 하고는 사라져갔다.
십삼은 허공에 꿇어 앉아 절을 올렸다. 그의 눈빛은 결연했다.
“스승님, 제자는 가보겠습니다. 기억이 떠오르지 않더라도 스승님께서 제게 베푸신 친절만큼은 잊지 않을 겁니다. 환생을 통해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더라도 저는 스승님의 제자입니다!”
십삼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그의 의지는 굳건했다. 이 생에서의 기억이 봉인되더라도 그 본능만큼은 그대로 남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본능 중 가장 강력한 부분은 한제와의 관계일 것이었다.
십삼 다음은 사도환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그는 소탈한 미소를 흘리며 동부계 대문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느새 소환했는지 손에 든 술병을 뒤로 휙 내던졌고 이 술병은 한제에게로 날아갔다.
“이 생에는 술을 좋아했으나 다음 생에는 어찌 될지 모르지. 그러니 그 술은 네게 맡겨두마. 나를 찾으면 그때 돌려다오. 난 반드시 왕으로 태어날 것이다! 젠장, 반드시 왕으로 태어날 거야! 하하하!”
사도환은 호탕한 웃음과 함께 동부계 대문 안쪽으로 사라졌다.
“소원을 이루면 좋으련만⋯⋯.”
한제는 사도환이 원하는 대로 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원하는 대로 선강 대륙의 왕으로 태어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나선 것은 이천매였다. 그녀는 많은 말을 하는 대신 그저 미소를 머금은 채 한제를 바라보다가 짧은 몇 마디만 남기고 떠나갔다.
“기다리겠습니다. 만약 저를 찾지 못하신다면 윤회의 굴레에 갇혀 다음 생에라도 그다음 생에라도⋯⋯.”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굳은 결심과 의지가 드러났다. 이천매는 한 번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절대 후회도 원망도 하지 않았다.
우주에 우뚝 선 동부계의 대문 밖에는 이제 한제와 현라만이 남게 됐다.
“모두 갔군. 난 이제 신통술을 발휘해 선강 대륙의 규칙에 대항할 것이다. 너는 언제 들어갈 것이냐?”
현라의 물음에 한제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불쑥 입을 열었다.
“선배님, 몇 사람을 더 보내도 되겠습니까?”
“괜찮다. 난 원래 수백 명은 올 줄 알고 그에 맞춰 준비를 해왔다. 그러니 몇 사람 더 데려온다고 부담될 건 없어.”
현라가 빙그레 웃었다.
“선배님께서 5일만 기다려주십시오.”
그가 지금 데려오려는 이들은 본래 현라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기 싫었던 데다가 자신과는 직접적인 원한이 없었기에 데려오지 않았던 이들이었다. 그러나 후일 동부계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생각을 바꿔야만 했다.
한제는 포권을 한 후 허공에 생겨난 왜곡과 함께 사라졌다.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계내와 계외 사이 거대한 진의 가장자리였다. 두 계를 가르는 이 새로운 진은 한제가 설치한 것이었다.
곧장 진 안으로 뛰어든 한제는 단 1각 만에 진을 통과해 계외 태고 성신에 이르렀다.
‘태고오존 중 남은 이는 셋. 묘음도존, 허신천존, 구천마존… 그들을 이곳에 남겨뒀다가는 후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그들이 약해진 지금 찾아내서 환생을 시켜야겠어!’
한제는 태고 성신에 발을 들인 순간 신식을 사방으로 퍼뜨렸다.
동부계 중심부의 오화팔문을 거치면서 공령기 절정에 이른 수준에다가 도고의 유산까지 모두 차지한 상태였기에 지금 한제는 공현기 후기의 적과도 충분히 맞붙을 수 있었다. 여기에 일곱 개의 본원과 도고의 신통술까지 더한다면 부상을 입은 태고오존 정도는 적수가 되지 못했다.
★ ★ ★
태고 성신 동부, 초승달 모양의 어느 수련성. 불규칙적인 모양의 이 수련성에는 영기가 거의 없어 마치 죽은 수련성 같았다.
땅에는 노란 모래가 가득 깔려 있었고 언제나 어두운 밤만 이어졌다. 그 불완전함에 초목이 자라지 못해 이곳에서는 수많은 돌덩이만이 허공에 둥둥 떠올라 수련성 주위를 선회했다.
초승달처럼 생긴 이 수련성 꼭대기에서는 노란 모래도 허공으로 떠오른 상태로 시커먼 지면이 줄기줄기 균열로 가득 뒤덮인 채 드러나 있었다.
그 균열 정중앙에는 창백한 노인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는데 두 눈을 꼭 감은 채 부상 회복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수시로 검은 피를 토했다. 이 피가 지면에 떨어질 때마다 치직 하는 소리가 났다.
수련성에서 피어오른 줄기줄기 연기 같은 기운이 노인의 호흡에 따라 칠규를 통해 스며들어 부상 회복을 도왔다.
노인, 구천마존은 당시 남몽도존에게 중상을 입어 향불의 세계를 파괴당하고 심신을 다쳐 많지 않은 생기로 힘겹게 살아왔다. 그는 이 수련성에서 발산되는 죽음의 기운으로 향불의 세계를 회복하려는 중이었다. 사방은 적막했고 온 세상은 어두컴컴했다.
한데 그때, 두 눈을 번쩍 뜬 구천마존의 눈동자가 빠르게 졸아들었다.
그와 동시에 새카만 하늘에서는 돌연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 강렬한 빛이 대지를 뒤덮더니 백의의 청년이 그 안에서 걸어 나왔다.
서늘한 표정의 한제를 본 순간, 구천마존은 찬 숨을 헉 들이마시며 곧장 근처 균열로 도망쳤다. 그 균열을 통해 땅속 깊은 곳으로 들어갈 속셈이었다.
허나 한제는 노인을 뒤쫓지도 않고 그저 저 아래 대지를 향해 가볍게 오른손을 뻗었다.
그러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전방의 허공에 거대한 균열이 나타나 대지를 향해 뻗어갔다.
대지는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고 대지의 균열들이 양쪽으로 끊임없이 뻗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