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89
“반드시 저자를 포섭해야 한다!”
자양종의 중년 수련자도 잔뜩 격앙된 표정으로 눈앞의 거울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만약 저자를 끌어들인다면 분명 대천존께 큰 도움이 될 것이야!”
움직이기 귀찮다는 듯 여전히 나른한 모습으로 자리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던 중주 제산의 구제 대천존은 한제가 열 번째 궁전을 통과한 순간 눈을 번쩍 떴다.
“통과했나? 허나 그래봐야 열 번째 궁전일 뿐이지. 아직 재미 존이나 명도 존에 비할 바는 아니야. 휴, 당시 선황은 대체 명도 존에게 무엇을 약속했기에⋯⋯.”
작게 한숨을 내쉬던 노인은 명도 존을 포섭하지 못한 것에 대해 두고두고 아쉬워하고 있었다.
한편, 중주 황성의 아무도 없는 궁전에서는 누군가의 혼잣말이 중얼중얼 흘러나왔다.
“명도 어찌 생각하느냐?”
순간 궁전에 파문이 일더니 그 안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준수한 외모였으나 서늘한 느낌의 흑의 청년은 허상의 장막을 힐끗 쳐다보았다.
“저자를 죽이는 데에는 한 호흡도 걸리지 않을 겁니다!”
★ ★ ★
열한 번째 궁전 안에 들어간 한제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여태까지의 궁전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우주였다. 다만 이 우주에는 수련성이 없었다. 대신 안개가 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매우 짙어 흩어버릴 수도 없는 안개가 사방을 에워싸고 있었다.
“도란 무엇인가!”
매우 엄숙한 목소리가 돌연 이 우주에 울려 퍼지며 메아리쳤다. 메아리는 한제의 심신과 귓가에서도 끊임없이 맴돌았다.
“도란 무엇인가!”
“도란 무엇인가!”
점점 격렬해지는 목소리는 혼잣말에서 포효로 바뀌면서 한제의 온몸을 두들기고 그의 영혼까지 흩어버리려 했다.
안색이 약간 창백해진 한제는 두 눈을 형형하게 빛냈다. 도에 대한 그의 이해는 세 개 허상의 본원으로 응결된 상태로 도에 대한 깨달음만 놓고 본다면 선강 대륙에서도 발군이었다. 심지어는 약천존 중에도 몇몇은 도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만으로는 한제의 아래일 터였다.
도에 대한 깨달음, 그것은 말하자면 사상의 승화였다.
“삶과 죽음을 줄로 보는 것, 그것이 도다!”
한제가 말했다.
순간, 근 3천 년 동안 하나하나 얻어왔던 삶과 죽음에 대한 깨달음이 삶과 죽음의 본원이 되어 그의 온몸을 뒤덮었다. 그와 동시에 엄숙한 목소리는 흩어져 사라졌다.
눈앞을 가리고 있던 짙은 안개도 꾸물거리며 하나의 줄로 응집되더니 주위를 맴돌며 사방으로 확산됐고 이에 따라 안개 아래 가려져 있던 우주가 드러났다.
별이 총총한 우주에는 금색 도포를 입고 왕관을 쓴 인영이 있었다.
인영 앞에는 거대한 전갈이 한 마리 있었다. 몸길이가 10만 척에 달할 정도로 거대한 전갈은 음산한 기운을 발산하며 날카롭게 포효했다.
눈앞이 이지러졌다가 또렷해지는가 싶더니 한제는 어느덧 금색 인영이 있던 자리에 나타났고 그대로 거대한 전갈과 맞서게 됐다.
“녹색 마갈!”
한제는 망설임 없이 혼개를 착용했다.
★ ★ ★
호흡 한두 번에 하나의 관문을 통과했던 이전과 달리 벌써 1각이나 지났음에도 한제는 여전히 열한 번째 궁전을 통과하지 못한 상태였다.
‘실패하더라도 천존열은 용기만으로 될 곳이 아니라는 깨달음은 얻게 되겠지.’
설우 약천존은 열한 번째 궁전을 올려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자신이 재미 존이나 명도 존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 모양이지? 난 당시 도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아주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겨우 답했고 이어서 천외 흉수의 혼과 연달아 일곱 번을 싸웠지. 정말 힘든 일이었어.’
자망 약천존이 눈을 번득이며 냉소했다.
한데 그때였다. 돌연 자망 약천존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몸을 바르르 떨었다. 놀랍게도 안개와 구름에 휩싸인 열한 번째 궁전에서 금빛이 뿜어져 나온 것이다.
“말도 안 돼!”
자망 약천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금빛을 뿜어내는 열한 번째 궁전에서 나타난 한제의 안색은 창백했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가부좌를 튼 그의 머릿속에서는 방금 전의 일들이 떠올랐다.
녹색 마갈은 첫 번째로 등장한 흉수의 영혼에 불과했다. 이후 무려 여덟 개의 영혼이 더 나타나 쉴 새 없이 몰아쳤다. 만약 혼개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다면 통과하지 못했을 터였다. 특히 수련성 정도로 거대했던 마지막 영혼은 그 크기만큼이나 위력도 막강했다.
한제는 그 아홉 흉수의 영혼이 모두 허상에 불과하고 그 위력은 실제 흉수에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약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각 흉수들은 가장 강력한 천존에 비할 정도로 막강했고 특히 마지막 네 개의 영혼은 거의 약천존에 비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혼개를 착용할 수 있는 시간적 제한 때문에 한제는 열한 번째 궁전에서의 교전을 마치자마자 곧장 벗어버렸다. 그리고 열한 번째 궁전에서 걸어 나온 순간, 한제는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온 금빛을 통해 머릿속에 엄숙한 목소리가 또 한 번 울려 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사람으로서는 들을 수 없는, 오직 그에게만 들리는 목소리였다.
“나 연운결, 천존열에서 얻은 깨달음과 평생에 걸쳐 손에 넣은 신통술을 응집해 만들어낸 팔극도를 이곳에 남겨두겠다. 후손 중 누구든 행운이 따르는 자는 이곳 천존열에서 그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시험을 통과했으니 네게는 극화도를 주도록 하겠다! 신통술도 본원도 법술도 아닌 이것은 내가 창조해낸 것도 아닌, 태고 신경에서 전승받은 것이다.”
한제는 어떤 화면을 볼 수 있었다. 화면 속에서는 손바닥이 하나 나타났는데 화염의 힘은 전혀 품지 않았음에도 손가락 끝에서는 푸른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연기는 주위를 아홉 번 맴돌면서 점점 커지더니 아홉 개의 푸른 연기 고리가 되어 무시무시한 기운을 발산했다.
열한 번째 궁전에서 발산된 금빛 속에 가부좌를 튼 한제는 눈을 감은 채 머릿속에 나타난 화면과 목소리에 집중했다. 그는 이 술법을 본 적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허무에 남겨둔 분신의 힘을 빌려 약간이나마 발휘해본 적도 있었다.
한데 지금, 분신의 힘도 빌리지 않은 상태인데도 무의식중에 들어 올린 그의 오른손에서는 한 줄기 푸른 연기가 피어올라 손가락 주위를 네 바퀴 돌았다.
열한 번째 궁전까지 통과한 한제는 이미 천존에서 완전히 탈피한 상태였다. 천존열에 모인 천존들은 심지어 금빛에 휩싸인 한제의 오른손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푸른 연기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약천존들은 달랐다. 그들은 푸른 연기를 똑똑히 볼 수 있었고 복잡한 표정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거의 넋을 잃고 말았다.
“단번에 열한 번째 궁전을 통과했어. 그리고 저 신통술은 일찍이 재미 존으로부터 본 적이 있어. 분명 선조의 팔극도 중 극화도야!”
“나는 저자가 우리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열한 번째 궁전을 통과하다니⋯⋯. 각 관문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거늘!”
세 사람은 입을 다문 채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들보다는 홀로 떨어져 앉은 자망 약천존의 표정이 가장 극심하게 변했다. 그는 금빛에 잠긴 한제를 음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난 한참을 들인 끝에 겨우 통과하고도 당시 아무것도 얻지 못했는데⋯⋯ 한데 저자는 단숨에 통과한 데다가 선조의 신통술까지 얻다니!’
자망은 깊은 질투와 시기심을 느꼈다.
한편, 한제는 한참 뒤에야 눈을 뜨더니 손가락 끝에서 피어오르는 푸른 연기를 바라보았다. 이내 푸른 연기를 흩어버린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열두 번째 궁전을 올려다보았다.
‘열한 번째 궁전부터는 각 난관을 통과할 때마다 행운을 얻을 수 있다더니 과연 그렇군. 한데 팔극도는 선조가 스스로 창조해낸 것이 아니라 태고 신경에서 전승받은 거였어! 태고 신경은 과연 어떤 곳일까? 수많은 단서에 따르면 천역주 역시 그곳에서 왔을 터. 대천존에 등극하는 것도 그곳에 이르러야만 가능한 것 같고⋯⋯. 그곳에 대체 무엇이 있기에…?’
생각에 잠겨 있던 한제는 왠지 심장이 두근거렸다.
‘연운결⋯⋯ 선조의 이름은 연운결이었어.’
이내 숨을 깊게 들이마신 그는 몸을 훌쩍 날려 열두 번째 궁전을 향해 돌진했다.
‘열한 번째 궁전만으로는 부족하다. 명도 존 다음간다는 재미 존이 당시 열두 번째 궁전에서 도전을 멈췄다고? 허나 나는 명도 존까지 뛰어넘을 것이다. 그래야만 모두에게 진정한 충격을 안겨줄 수 있을 테니까. 게다가 이 막대한 행운을 얻은 이상 벌써 포기할 수는 없지!’
“열두 번째 궁전에 도전하다니, 미쳤군!”
“참새가 어찌 홍곡의 뜻을 알겠냐더니, 이제야 그 뜻을 알겠군. 우리는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없어. 그는 성공할 걸세.”
“설우, 자네는 저자가 열두 번째 궁전을 통과할 수 있을 거라 보는가?”
“물론! 비록 그와 만난 것은 처음이지만 절대 확신 없는 짓을 하는 자가 아님은 분명하네. 열두 번째 궁전에 도전을 했다는 것은 자신이 있다는 뜻이지.”
“글쎄, 난 잘 모르겠군.”
“명도 존이 열두 번째 궁전을 통과했을 때, 대천존들이 친히 이곳에 찾아와 지켜봤다지. 또한 그를 포섭하기 위해 엄청난 조건들을 제시했어. 결국 명도 존은 선황을 택했지만.”
설우를 비롯한 세 약천존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그때, 돌연 저 멀리서 전송진이 격렬하게 번득였다. 그리고 이내 여러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모든 천존 수련자들이 경탄을 금치 못했다.
“천염 약천존이다!”
“진범 약천존과 쇄몽 약천존도 있어!”
“저건 한단 약천존 아닌가!”
천존들은 속속 천존열에 이른 약천존들의 정체를 빠르게 알아차렸다.
뜻밖의 충격 (6)
어느새 이곳에 모여든 약천존의 수는 서른 명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들은 도착하자마자 진지한 표정으로 하늘을 살폈다.
천존열 시험장에 이토록 많은 천존과 약천존이 모여든 것은 수만 년 만의 일로 명도 존이 약천존에 등극한 이래 처음이었다. 심지어 재미 존조차 이렇게까지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허나 천존들의 경탄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내 다시 번득인 오래된 전송진에서 거대한 인영이 걸어 나온 것이다.
그 순간, 천존이건 약천존이건 그곳의 모든 이가 벌떡 일어나 인영을 향해 절을 올렸다.
“무봉 대천존을 뵙습니다!”
그는 선족의 다섯 대천존 중 하나인 무봉 대천존이었다.
무봉은 덤덤한 얼굴로 허공에 뜬 채 열두 번째 궁전 밖에서 고민하고 있는 한제를 바라보았다.
“이한제, 네가 열두 번째 궁전을 통과하든 그러지 못하든 만약 나를 따르기로 한다면 네가 원하는 어떤 조건이라도 충족시켜 줄 것이다!”
무봉 대천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천존열과 한제의 심신에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이에 한제는 멈칫하더니 포권을 했다.
“감사합니다. 허나 그 일은 천존열 시험장 도전을 마무리한 후에 다시 이야기해도 괜찮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