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45
“시체 애호?”
한제가 멍한 얼굴로 되물었다.
“말로 뱉지 말게. 주일이 듣는다면 죽음을 면키 어려울 테니.”
치호는 얼른 말한 뒤 포권을 취하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천우, 난 내려가볼 생각인데 함께하지 않겠나?”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연못 바닥의 동굴로 향했다.
동굴은 깊지 않아, 두 사람은 곧 다른 곳에 이르렀다. 그곳은 검처럼 예리한 하얀색 수정으로 가득 뒤덮인 곳이었다. 왕성한 선계의 영기가 그 수정들로부터 발산되어 사방을 채웠다.
멀리서는 홍접이 호리병을 들고 선계의 영기를 채취하고 있었다.
치호는 희색으로 가득 차 저물대를 두드렸다. 그 안에서는 푸른색의 부대가 튀어나왔는데 치호는 그것을 흔들어가며 대량의 선계의 영기를 채웠다. 동시에 그는 수정 하나를 내리쳤다. 하지만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만 날 뿐, 수정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한제 역시 세령의 나무를 꺼내들고 사방의 영기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한 마디도 없이 영력을 흡수하는 데 집중했다.
허나 한제가 가진 세령의 나무는 치호나 홍접의 법보만큼 뛰어나지 못했고 속도에도 차이가 났다.
한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저 멀리서 우르릉 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주일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늙은이, 너무 달라붙는군! 여기 넘치는 게 선계의 영기이거늘 가서 챙기면 되지 왜 줄곧 날 따라오는 건가?”
“자네의 몸에서 죽음의 기운이 흐르니 자네를 따라다닐 수밖에!”
두 사람의 대화에 이어 두 갈래의 긴 무지개가 쫓고 쫓기며 눈 깜짝할 사이에 한제를 비롯한 세 사람의 코앞까지 접근했다.
주일은 오른손을 들어 뒤쪽을 꽉 움켜쥐었다. 순간, 거대한 소용돌이가 그의 뒤쪽에 나타나면서 거대한 흡인력이 일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방에 가득한 수정에서 쩌적쩌적 소리와 함께 균열이 일었다.
퍽, 퍽, 퍽!
수많은 수정이 잘려나가 그 소용돌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노인은 내심 긴장한 표정으로 빠르게 결인을 그려댔다. 그러자 자홍색의 거대한 관이 나타났다. 그 관을 밟고 선 노인은 겨우 그 소용돌이의 흡인력에 저항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의 법술에 선계의 영기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어령법(御靈法)이라… 네놈은 시체를 사랑한다는 바로 그 주일이로구나. 이제야 네 몸에서 짙은 죽음의 기운이 풍기는 이유를 알겠다!”
노인은 소용돌이를 바라보며 크게 웃었다.
이어서 노인은 밟고 선 관을 두드렸다. 그러자 손톱으로 무언가를 긁는 듯한 소리가 관 안에서 흘러나왔다. 무척 귀에 거슬리는 소리였다. 그와 동시에 검은 기운이 관에서 흘러나와 저승에서 온 거대한 악귀의 손톱과 같은 형상을 이루었다. 그 손톱은 시커먼 빛을 번득이며 소용돌이를 할퀴었다.
펑!
거대한 소리와 함께 이 세 번째 층의 선계의 조각이 진동했다. 대지가 갈라졌고 수많은 수정들이 재가 되어 날아갔다. 하늘에 떠 있던 공간의 균열들이 빽빽한 입처럼 하나하나 벌어지며 대량의 영기가 그 틈을 통해 사라져버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이곳에 있던 선계의 영기가 씻은 듯 사라졌다.
“시음종! 자네는 시음종의 대장로로군. 자네와 내가 서로를 공격한다면 이 선계의 조각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텐데? 이 조각 하나만 무너진다면야 자네와 나는 피할 수 있겠지. 허나 이곳은 총 여섯 개의 조각이 중첩되어 있는 곳이고 하나만 무너져도 나머지 조각 또한 모두 무너질 걸세. 그렇게 되면 문정기(問鼎期) 경지의 수련자가 온다 해도 목숨을 구하기는 힘들겠지.”
주일의 말에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던 노인이 갑자기 사라졌다. 그리고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홍접의 등 뒤였다.
홍접은 화들짝 놀라며 몸을 돌렸다. 노인은 그녀를 향해 씨익 웃어 보였지만 그 웃음에는 음산한 기운이 어려 있었다.
“네 몸을 좀 빌려 써야겠다!”
노인의 얼굴에 있는 일곱 개의 구멍에서 검은 기운이 흘러나오더니 작은 뱀처럼 빠른 속도로 홍접의 얼굴에 있는 일곱 구멍으로 흘러들어가려 했다.
홍접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재빨리 오른손을 들더니 손목에 채워진 옥팔찌를 가리키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선배님, 이게 뭔지 알아보시겠습니까!”
“주작국의 핵심 제자라는 표식, 일원개태(一元開泰) 팔찌로군.”
노인의 시선이 팔찌로 향했다.
이때 그 작은 뱀들은 이미 홍접의 얼굴에 있는 일곱 구멍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홍접은 흑색으로 변해가는 얼굴로 발버둥 치며 말했다.
“선배님, 이 팔찌는 제 원신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만약 제가 죽는다면 이 팔찌는 곧장 폭발해 이 선계의 조각도 붕괴됩니다. 게다가 만약 살아남으신다 해도 주작성은 특수한 방법으로 이 팔찌의 주인을 살해한 자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선배님은 평생 주작성의 표적이 될 겁니다!”
노인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더니 말했다.
“걱정 마라. 널 죽일 생각은 없다.”
말을 마친 노인은 주일을 바라보며 말했다.
“주일, 난 이것의 몸으로 자네와 싸우겠네. 그럼 이 조각의 임계점에 달하는 공격을 할 수는 없겠지. 허니 자네도 한 사람 고르게.”
주일은 그늘진 얼굴로 말했다.
“대체 뭐하자는 건가!”
노인이 냉소하며 말했다.
“자네는 선인의 시체를 가지고 있지 않나? 난 그 시체를 원하네!”
용에게는 거꾸로 난 비늘이라는 역린(逆鱗)이 있는데 그것을 건드리면 용은 분노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주일에게 있어서 그의 역린은 바로 그 여인의 시체였다.
“정아, 누군가 또 널 빼앗아 가려한다. 나는 너를 빼앗아가는 자를 죽일 것이다!”
주일의 두 눈에 기이한 빛이 번득였다. 고개를 들어 노인을 노려보던 그는 오른손으로 치호를 가리켰다.
“너, 이리 와라!”
치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허나 그는 감히 거역하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며 주일에게로 향했다.
곧 주일의 정수리에서 일곱 빛깔의 무지개가 솟아올라 치호의 정수리를 뚫고 들어갔다. 치호의 두 눈이 발악하는 빛을 띠었다.
“잠시 나의 분신이 되어라. 말을 듣는다면 넌 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의 경지도 깨달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주일이 덤덤하게 말했다.
치호는 잠시 망설이다가 저항을 포기했다. 그러자 그의 두 눈은 점점 밝아졌고 그의 기운은 곧장 하늘로 솟아올랐다.
“내가 고른 것은 선천적인 오령(五靈)의 몸이고 네가 고른 것은 거마족 혈통이로군. 너는 쓸모가 없으니 썩 꺼져라!”
노인은 크게 웃으며 한제를 노려보았다.
한제는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주위를 한 번 둘러본 뒤 말없이 몸을 돌렸다. 이 갈등에 끼어들 마음은 전혀 없었으므로 떠날 수 있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서⋯⋯ 선배님. 저자를 죽여주십시오! 그럼 저는 저항을 포기하고 전력을 다해 선배님을 돕겠습니다. 허나 제 안전만은 보장해주셔야 합니다!”
홍접이 악독한 눈빛으로 불쑥 말했다.
노인은 흠, 하더니 한제를 잡아채려는 듯 오른손을 들었다.
한제는 덤덤한 눈빛으로 망가진 금번을 쥔 채 비웃듯 말했다.
“홍접, 이곳을 붕괴하게 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방자하게 굴어보아라!”
“금번?”
노인의 눈이 훤해져서는 한제의 손에 들린 작은 깃발을 보고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하나의 금제가 모자란 금번이구나. 99개 조의 금제를 완성한다면 천벌을 일으킬 것이고 그렇다면 저자의 말대로 되겠지. 이 선계에서의 천벌인 선벌(仙罰)이 갖는 위력은⋯⋯ 그 재난이 미친다면 나는 물론이고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
노인은 경계하는 눈빛으로 얼른 손을 거두었다.
시체를 빼앗다
한제는 다시 이동해 상공의 통로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곳에 멈춰 멀찍이 자리한 네 사람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급할 것 없겠지. 어디 영변기 수련자들은 어떻게 싸우는지 볼까?”
치호의 눈이 갈수록 밝아지더니 결국 큰 비명을 내지르며 벌떡 일어섰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몇 배로 불어난 그의 키는 이미 30척에 이르러 철탑과 같은 거인이 되어 있었다. 푸른 정맥이 그의 몸에서 줄기줄기 꿈틀댔다. 위협적이고 흉악한 모습이었다.
그의 뒤에는 하나의 허상이 나타나 점점 실체화 되어갔다. 바로 주일이었다. 그의 본체는 뒤쪽에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은 채 좌선하고 있었다.
한편 홍접의 얼굴은 이제 보랏빛이 도는 검은색으로 뒤덮여 눈코입도 또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눈이 있을 법한 곳에서 번득이는 붉은색의 어스름한 빛 두 개 뿐이었다.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흩날렸고 죽음의 기운이 그녀의 몸에서부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녀의 뒤에도 허상 하나가 떠올랐는데 노인이 아니라 영민한 남자의 모습이었다. 노인과 생김새가 매우 닮은 남자였다. 노인의 젊었을 때 모습인 듯했다.
노인의 본체는 뒤에 있는 거대한 관 위에서 눈을 감은 채 좌선하고 있었다.
노인을 닮은 남자는 검은 안개에 뒤덮여 있었는데 어렴풋이 보이는 몸 위에는 기이한 그림들이 나타나 있었다. 그 그림은 뿔이 달린 마수의 머리로 상당히 흉측했다.
노인의 허상은 두 손으로 결인을 했다. 동시에 홍접의 두 손 역시 남자의 손을 따라 움직였다. 그녀를 감싼 죽음의 기운이 긴 활 형태를 갖추었다.
치호가 포효하며 튀어나가던 순간, 홍접의 두 눈에서 발하던 어스름한 빛이 밝아지면서 한손으로 긴 활을 들고 곧장 시위를 당겼다.
펑!
당겼던 시위를 놓은 순간, 회색을 띤 죽음의 기운 한 줄기가 화살이 되어 날아가더니 치호의 몸에 부딪혔다.
펑!
대지가 진동했다. 하지만 넓은 범위가 갈라지지는 않았다. 치호와 홍접의 몸을 통해 오가는 힘은 화신기 후기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허나 그 공격이 품고 있는 천지의 법칙은 화신기를 훌쩍 뛰어넘은 상태였다.
치호의 몸은 뒤로 수백 척 물러나서는 몇 번이고 토해냈다. 주일의 허상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두 손으로 결인을 했다. 치호 역시 그 결인을 따라하며 입으로는 기이한 주문을 외웠다.
순간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어딘가에서 공간의 균열이 나타났고 그곳에서 기이한 빛이 흘러나와 치호의 몸 앞에 응집되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진 거대한 구체가 흘러넘치는 듯한 기운을 내뿜었다.
한제의 눈빛이 훤히 밝아졌다. 먼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면을 본 그는 뭔가를 깨달았다. 천지의 힘을 구동하는 것은 그것을 빌려서 내는 힘보다 더욱 교묘했다.
노인의 허상은 눈을 번득이더니 푸른 연기가 되어 홍접의 정수리를 뚫고 들어갔다. 홍접은 무의식적으로 비명을 질러댔고 몸도 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순간, 서로 다른 색의 영체(靈體) 네 줄기가 빠져나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음? 왜 흙의 령이 없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