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46
홍접의 체내에서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개의 령이 홍접의 몸 앞에 나타나자 치호는 고통스런 표정으로 크게 포효했다. 그의 미간에 있는 도끼 모양의 도안이 끊임없이, 점점 더 빠르게 번쩍였다.
이내 그 도안은 그의 몸을 맹렬히 뚫고 나와 몸 앞에 있는 거대한 구체에 찍혔다. 순간 그 구체는 진동하더니 기이하게 꿈틀거리며 커다란 도끼를 형성했다.
치호 전신의 모공에서 대량의 선혈이 터져나왔다. 온몸이 피로 뒤덮인 그가 한손에 도끼를 쥔 채 홍접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나의 경지는 치(痴)의 경지다. 치호, 나는 네 몸을 이용해 네게 내가 1천 년 동안 펼친 적 없는 경지를 보이려 한다. 죽더라도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다!”
주일의 허상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치호의 몸에서 기이한 경지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치호의 얼굴은 조금의 고통도 느끼지 않는 듯했다. 그보다는 깜짝 놀라서 정신이 나간 모습이었다.
그 두 눈이 점차 견고한 빛을 띠었다. 그의 눈은 홍접이 아니라 손에 든 도끼를 향해 있었고 견고한 빛은 더욱 진해졌다.
치의(痴意)는 때로는 사람이 아니라 물건에 임했다. 치호가 미쳐 있는 것은 바로 그 도끼였다. 그의 도심(道心)도 그 도끼였다. 도끼가 깨어지지 않는 한 전혼(戰魂)은 불멸이었다. 이 견고함은 강력한 전의(戰意)가 되었다.
손에 도끼를 든 치호는 마치 태고의 거인처럼 천지를 개벽시키려 하고 있었다.
“치의(痴意)는 곧 집념이다. 집착의 신념이 바로 주일의 경지로구나. 기이하다! 집착의 신념이 폭발시킨 기운은 화신기 수준인 치호에게는 타격이 클 텐데…”
한제는 그 치의가 포함한 진정한 함의(含意)를 단박에 알아차렸다.
홍접의 눈이 어스름한 빛을 발했다. 그녀는 불쑥 미간을 두드려 장미를 소환했다. 허나 장미는 더 이상 붉은색이 아니라 검은색이었다.
검은 장미 위에 남은 두 개의 꽃술을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뜯어 버렸다. 그리고 꽃잎도 전부 떼어버렸다. 그 꽃술과 꽃잎, 네 개의 령은 하나로 융합되어 거대한 소용돌이를 이루었다.
그와 동시에 홍접의 미간에서 푸른 기운이 피어오르더니 곧 영민한 남자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는 곧장 그 소용돌이 안으로 들어갔고 그러자 소용돌이는 우뚝 멈추어 우르릉 소리를 내며 그 영민한 남자와 하나로 합쳐졌다.
소용돌이와 합쳐진 사내는 꿈틀거리며 마수로 변해 입을 벌리고 소리 없는 포효를 내질렀다.
홍접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영민한 사내가 그녀의 몸을 떠난 뒤, 홍접은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얼굴에 드리웠던 검은 빛은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고 정신을 차린 듯했다. 허나 창백한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치호가 다가오며 도끼를 휘둘렀을 때, 한 줄기의 빛이 하늘을 그었다. 그리고 거대한 마수는 다시 포효하며 그에 맞섰다.
펑!
도끼에 맞서 마수는 무수히 많은 검은색 꽃잎을 뿌렸다.
치호는 다시 도끼를 휘둘렀다.
펑!
마수의 손이 찢기면서 두 갈래의 꽃술이 드러났다.
펑, 펑, 펑!
연이은 세 번의 도끼질에 꽃술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치호의 손에 들린 도끼 또한 포효하며 달려드는 마수에 점점이 빛으로 부서졌다.
그러나 그 마수 역시 허무로 흩어졌고 관 위에서 좌선하고 있던 노인의 몸이 휘청하며 한 움큼 피를 토해냈다. 기력이 잔뜩 쇠해진 그는 어떤 법술도 발휘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치호는 크게 휘청이더니 텅 빈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그의 신념이 곧 이 도끼였고 그의 전의 역시 이 도끼에서 기인했으며, 그의 도심 역시 이 도끼였다.
허나 이제 도끼는 없었다. 주일이 그의 몸에 부착한 치의(痴意) 역시 흩어져 사라진 상태였다.
치호의 두 눈에 맑은 빛이 돌았지만 곧 그는 신음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참기 힘든 극심한 고통이 온몸을 뒤덮었다.
치호는 그대로 쓰러졌다. 창백한 얼굴에 핏기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한제는 멍하니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내려다보며 찬 숨을 들이마셨다.
“나의 도심은 무엇인가?”
홍접과 치호가 원래 상태를 회복하고 있는 동안 허공에 떠 있던 주일의 허상 역시 그의 본체로 돌아가 천천히 스며들었다.
한데 바로 그때, 허공에서 갑자기 거대한 검은색 마수(魔手)가 뻗어왔다. 그 마수와 주일의 거리는 상당히 가까웠다.
육신을 떠난 주일의 원신은 순간 안색이 변해 포효하며 빠르게 육신으로 되돌아가려 했다. 마수가 뻗어온 순간, 원신은 그의 육신으로 돌아가 옆으로 피했지만 그럼에도 마수의 손에 붙잡히고 말았다.
주일의 배에 커다란 상처가 나며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허나 마수의 목표는 주일의 몸이 아니라 그의 저물대였다. 주일의 몸은 마수에게 살짝 훑어진 것에 불과했지만 그의 저물대는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완전히 붕괴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던 수많은 것들이 튀어나왔다. 그중 보탑 하나가 마수의 손에 붙들려서는 빠르게 날아갔다.
“안 돼!”
주일은 시뻘게진 두 눈으로 상처는 돌보지도 않고 애처롭게 소리쳤다. 마치 하늘을 꿰뚫을 듯 서글픈 목소리였다.
그는 망설임 없이 육신을 포기하고 원신만 빠져나와 보탑을 뒤쫓았다.
“정아, 난 절대 다른 사람에게 널 빼앗길 수 없다. 절대!”
원신이 빠져나간 주일의 육신은 선혈을 뿌려대며 한쪽으로 픽 쓰러졌다. 허나 주일은 육신이 죽음을 맞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수천 년간 자신의 동반자와 항상 서로에게 의지했던 장면들이 하나하나 떠오르면서 주일은 미쳐갔다. 정아는 그의 역린이었다.
그의 원신은 번개처럼 빠르게 질주했다. 그때, 관 위에 있던 노인은 눈을 번쩍 뜨고 몸을 날려 주일의 원신 앞에 나타나 하하 웃으며 말했다.
“주일, 자네는 정말 대단하군. 천 년만 더 지나면 문정기에 접어들지도 모르겠어. 허나 자네는 이 시음종의 대장로에게는 세 개의 영혼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군. 자네가 내 영혼 중 하나를 죽인다 해도 날 완전히 소멸시킬 수는 없네!”
웃으며 이야기를 하는 사이, 그의 뒤쪽에서 나타난 마수는 한 청년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역시나 노인과 상당히 닮은 청년의 손에는 주일의 보탑이 들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한제는 눈을 번득이더니 완전히 허약해진 홍접 옆에 착지했다.
이 무렵, 주일의 두 눈은 광기로 번득였다. 노인을 바라보는 그 눈빛은 마치 상대를 통째로 집어삼킬 듯 흉악했다.
“정아를 돌려줘!”
“정아? 주일, 시체에 이름까지 붙여준 것이냐. 하하! 이것은 선인의 시체다. 이 선인이 태어났을 때 넌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노인은 크게 웃었고 그러자 그의 뒤에 있는 청년도 씨익 웃으며 오른손으로 보탑을 두드렸다. 순간 그 안에서 흰색 빛 한 줄기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여인의 시체가 나타났다.
…
눈보다 하얀 옷, 비단 같은 머리칼, 취할 듯 아찔한 향기.
여인의 시체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시음종의 대장로는 넋을 놓고 내려다보았다. 주일에 대한 비웃음도 더 이상은 없었다. 엄청난 마력이 끌어당기는 것만 같았다. 홍접의 아름다움은 이 여인의 시체에 비하면 털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심지어 먼발치에서 언뜻 본 한제도 마음이 흔들리며 그 시체를 빼앗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허나 한제는 재빨리 그런 마음을 떨쳐버렸다. 하지만 온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다. 두려운 마음마저 들었다.
그 무렵, 치호는 멍한 얼굴로 여인의 시체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다가 잠시 후 갈등을 하는 듯하더니 놀란 얼굴로 겨우 정신을 차렸다.
홍접의 눈빛도 크게 흔들렸으나, 여성인 그녀는 금세 정신을 차렸다. 한제는 그런 홍접을 주시했다.
시음종의 노인이 가까스로 시선을 거두었다.
“생전에 선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었을 듯하구나. 내 마음까지 움직이게 만들다니.”
“정아⋯⋯.”
주일의 원신은 혼신의 힘을 다해 앞으로 나아갔다. 시음종의 노인이 그런 주일을 비웃으며 두 손으로 결인을 하자 입에서 한 줄기 보라색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쇠사슬이 되어 주일의 원신을 칭칭 감쌌다.
“이것은 시음종에서도 중히 여기는 법보인 원신을 묶어두는 사슬이다. 넌 절대로 벗어날 수 없어. 이토록 중한 법보를 사용했으니 대신 이 여인의 시체를 가져가겠다.”
노인이 몸을 뒤로 물리자 그의 뒤에 있던 청년이 그 시체를 노인에게 던져준 뒤 한 줄기 검은 빛이 되어 노인의 미간으로 들어갔다.
천우
노인은 뒤로 물러나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관 위로 돌아가 여인의 시체를 안고 위로 솟아올랐다.
“안 돼!”
주일이 고통에 찬 포효를 내질렀다.
펑, 펑!
주일의 원신은 사슬에 맹렬히 몸을 부딪쳤고 그때마다 사슬에서 보라색 빛이 번쩍였다. 주일의 원신은 고통에 경련하면서도 미친 듯이 사슬에 돌진했다. 그리고 그 충격에 하늘이 다시 붕괴할 조짐을 보였고 대지도 갈라지며 균열이 일어났다.
주일의 눈에는 하늘을 뒤덮을 듯한 한이 맺혔고 그 한은 집착으로 집착은 광기로 변해갔다.
“정아를 돌려줘!”
“미친 놈! 지금 육신으로 돌아간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게다. 허나 조금이라도 늦으면 네 육신은 더 버티지 못해! 이 선계에서 죽을 셈이냐?”
시음종의 노인은 핏빛으로 번득이는 주일의 눈을 보며 당황한 듯 더욱 속도를 높여 상공의 입구로 향했다.
주일의 두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는 듯했다. 그의 마음속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오로지 자신에게서 멀어지고 있는 정아의 모습뿐이었다.
정아와 함께 지내던 순간순간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정아를 잃다니⋯⋯. 원신에는 본래 마음이 없지만 지금 그는 마음이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이 통증은 그의 영혼, 그의 원신에서 기인했다.
그리고 그 통증은⋯⋯ 너무나 깊었다.
“안 돼!”
주일의 몸은 맹렬히 타오르기 시작하더니 펑 하고 붕괴되어 버렸다. 그리고는 타오르는 수많은 결정이 되어 쇠사슬 틈으로 빠져나갔다.
“원신이 타오르다니, 이⋯⋯ 이 미친놈!”
노인의 안색이 변했다. 원신을 태우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고 저지르는 일이었다. 주일은 겨우 시체 하나를 위해 죽음을 감수하려 하는 것이다.
영변기 중기의 원신이 타오르면서 주일은 순간적으로 영변기 후기에 가까운 힘을 얻었다. 부서졌던 그의 원신은 다시 하나로 응결되면서 곧장 튀어나갔다.
불에 휩싸인 사람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그는 이미 동굴 입구 가장자리에 이른 노인을 뒤쫓았다.
“정아를 돌려줘!”
비통함이 가득한 절규였다. 주일은 어떤 법술도 쓰지 않고 원신으로 노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오히려 그렇기에 노인은 더욱 두려웠다. 신통한 법술이 아닌 영변기 후기에 달하는 힘으로 사슬을 뚫고 나온 주일의 모습에 노인은 오싹해졌다.
쩌적, 쩌적!
하늘에서 수많은 공간의 균열이 나타났고 대지 또한 곳곳이 움푹움푹 패였다. 조각이 붕괴하기 시작한 것이다.
치호는 씁쓸한 표정으로 몸을 휙 날려 동굴 입구로 향했다. 홍접 역시 그 뒤를 바짝 쫓았다.
노인은 안색이 크게 변하더니 미간을 두드렸다. 순간 젊은 청년의 모습을 한 세 번째 영혼이 튀어나와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이 세 번째 영혼은 나타나자마자 주일의 돌진에 그대로 흩어지고 말았다.
“정아를 돌려줘!”
주일의 몸에서 이글거리는 화염이 한층 더 강렬해졌다. 그의 눈에 드리운 광기는 마치 흉악한 마수 같았다.
“미친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