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
“너는 내가 본 6번째 아이로구나. 허나 몰골은 그중 가장 처참하군. 온몸에 안 까진 곳이 없고 옷이 이미 피로 젖었구나.”
중년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한제에게 물었다.
“얘야, 네 이름이 무엇이더냐?”
그러나 한제는 오직 산 정상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에 몰두하느라 중년인의 질문을 듣지 못한 채 계속해서 돌계단을 올라갔다.
중년인은 그런 한제의 뒷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듯 고개를 저었다.
“쯧쯧, 끈기는 가히 최고라 할 수 있으나 자질이 너무나 평범하구나. 인연이 없어, 인연이…”
그는 잠시 더 한제를 보고 있다가 이내 돌계단을 내려갔다.
둘째 날 밤, 한제는 이미 손바닥도 벗겨져 피 아래로 흰 살이 드러나 있었다. 기어오르듯 계단을 오른 탓이다. 한제가 지나간 자리에는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3일째 되던 날 아침, 드디어 돌계단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청천벽력과 같은 목소리가 정상에서 울려 퍼졌다.
“시간이 되었다! 합격자는 오직 세 사람뿐이다!”
충격을 받은 한제는 허탈한 웃음을 남기고는 돌계단 위로 쓰러져버렸다.
돌아가는 길
대산파의 제자 몇 명이 아직 돌계단에 남아 있는 아이들을 정상으로 데려오더니 음식을 먹이고 약을 발라주었다.
“사형, 39명의 시험자 중 25명이 포기했고 3명이 합격했으며, 11명이 남았습니다.”
한 여 제자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중년 남자는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은 11명의 소년들을 매서운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무덤덤하게 말했다.
“합격한 세 사람은 잡무처로 이동하여 이후의 할 일에 대해 배우도록 한다. 여기 11명은 검령각(劍靈閣)으로 보내, 검령과 인연이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그곳에서도 연이 없다면 집으로 보내겠다.”
★ ★ ★
3일 후, 검령각에는 한제를 포함한 11명의 소년이 창백한 얼굴로 서 있었다.
“이것이 마지막 시험으로 이 방에 들어갈 수 있는 자는 합격이다.”
검은 옷을 입은 중년 남자는 온데간데없고 처음 보는 하얀 도복의 청년이 아이들을 이끌었다.
한제는 눈을 돌려 방 내부를 살펴보았다. 방에는 길이가 다른 검들이 놓여 있었다.
아이들은 차례대로 방으로 들어갔다.
첫 번째로 들어간 소년이 대략 5장 정도 들어갔을 무렵, 갑자기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불합격! 다음 사람!”
청년이 매정한 어투로 말했다.
한제는 7번째였다. 한제의 앞에 있던 6명은 모두 5장도 들어가지 못하고 그대로 튕겨져 나왔다.
한제는 더 이상 기대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씁쓸하게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앞서 아이들이 튕겨져 나온 바로 그곳에 발을 디뎠다.
그 자리에서 한제는 잔뜩 긴장한 듯 눈을 질끈 감았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다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망설이지 말고 계속해서 앞으로 가도록! 검령의 인정을 받는 자는 앞선 두 번의 시험에서 떨어졌을지라도 제자가 될 수 있다!”
3장쯤 더 들어갔을 때, 한제는 갑자기 몰려오는 엄청난 기운에 그대로 뒤로 날아가고 말았다. 마지막 남은 희망의 불꽃이 무자비하게 꺼져버리는 듯했다.
청년은 씁쓸하게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불합격! 다음 사람!”
★ ★ ★
남은 11명 중 단 한 명도 검령각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시험이 끝나자 아이들은 맨 처음 도착한 곳에 모였다. 이들은 곧 집으로 돌려보내질 것이다.
한제를 집으로 돌려보낼 사람은 그를 이곳으로 데려온 장 씨 성을 가진 청년이었다. 그의 곁에는 이산과 이현이 함께 서 있었다.
“이산 사제, 도허상선의 제자가 된 것을 축하드리오.”
장 씨 청년이 웃으며 포권을 취했다. 이산이 웃으며 거만하게 말했다.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다. 사부님께서 이번에 집안일을 모두 처리하고 돌아오면 바로 선인술을 전수해준다고 하셨습니다.”
이현이 옆에서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흥, 어려서부터 네놈의 그 표정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단 말이지. 뭐 대단한 게 있다고 그리 우쭐대는 거야? 난 연단도 만들 줄 안다고!”
이산은 경멸이 가득한 눈으로 이현을 한 번 훑고는 눈길을 한제에게로 돌렸다. 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때? 내가 저번에 말하지 않았나? 너에겐 연이 없을 거라고 말이야. 네 아비와 네놈 모두 믿지 않더니, 이제야 그 결과를 보게 됐구나.”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이산을 힐끔 쳐다보더니 옆에 있던 청년에게 말했다.
“선인이시여. 부모님께서 애타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서 저를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이산은 한제가 자신을 무시하자 또다시 비웃었다.
“촌놈아, 평생 촌구석에서 아비처럼 목수질이나 해라.”
청년은 말없이 소매를 휘둘렀고 그러자 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돌아오는 길은 멀지 않았다. 여전히 매서운 바람이 불어 눈을 뜰 수 없었다. 그러나 이곳에 올 때 가득했던 기대는 이미 큰 절망으로 변해 있었다.
이 씨 저택에선 한참 잔치를 준비하는 듯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한제의 아버지가 준비했던 잔치보다 몇 배나 더 화려했다.
잔치의 주인공은 한제의 아버지인 이상재와 그의 형님, 그리고 그의 동생이었다. 그 외에도 세 사람의 경사를 축하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모였다.
“둘째 형님, 만약 한제가 붙게 된다면 더 이상 목수 일을 하지 않으셔도 되겠네요.”
이상재의 여섯째 동생이 말했다.
“둘째야, 내가 좋은 일이 있을 거라 말했지 않았더냐? 하하하.”
이상재는 일가친척들에게 둘러싸인 채 바쁘게 술잔을 기울였다.
“형수, 한제 같은 아들을 두셔서 정말 행복하시겠어요.”
“벌써 이 마을 근처에만 해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니까요.”
한제의 어머니 역시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음식을 먹고 있었다.
저택 내부는 잔치로 시끌벅적했다.
그때, 갑자기 구름이 일렁이더니 빛이 번쩍하며 네 사람이 마당에 나타났다. 사방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그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대산파의 청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이 대산파의 제자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 자신의 가족들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잔치를 즐겼었다.
청년은 고개를 돌려 한제를 돌아보았다. 그는 이 소년이 앞으로 어른조차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마주치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쯧쯧.”
청년은 고개를 젓고는 또 다시 빛을 뿜으며 사라졌다.
“수행자는 세속된 삶을 살아서는 안 되는 법. 각자 알아서 처리하도록. 3일 후 다시 데리러 오도록 하겠다.”
멀리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선인이 떠나자 이산의 아버지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아들에게 물었다.
“도허상선께서 제자로 받아주셨더냐?”
이산이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당연하지요. 사부님께서 10년 내에 대산파 제자들 중 으뜸으로 만들어주겠다 하셨습니다.”
이산의 아버지는 아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호탕하게 웃었다.
“좋다, 좋아! 이제 우리 이 씨 집안에도 선인이 나오게 생겼구나! 하하하.”
반면 이현의 아버지는 어두운 표정으로 말없이 아들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가 입을 열려 하자 이현이 하품을 하며 말했다.
“아휴, 아버지. 물으실 것도 없어요. 아들도 대산파의 제자가 됐으니까요.”
이현의 아버지는 그제야 환하게 웃었다. 그러자 옆에서 이산이 비꼬듯 말했다.
“셋째 작은아버지, 참 좋은 아들 두셨네요. 그 많은 사람 앞에서 선인에게 아부를 떨고 뇌물까지 바쳐서 겨우 선단 만드는 조수 자격이나 얻다니요.”
이현이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