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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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천후는 허공을 가르며 나아갔다
대나검종이 있는 곳은 천운성이나 그 주위의 다섯 개 부성(副星) 중 하나가 아니라 능천후가 우주로부터 끌어 온 어느 거대한 별이었다.
이 별은 천운성만큼 크지는 않았지만 다섯 개의 부성에 비하면 몇 배는 컸고 영력도 충만하여 수련자들이 수련을 하기에 좋았다. 능천후는 이 별을 대나성(大羅星)이라 명명했다.
능천후는 대나성을 둘러싼 거친 바람을 뚫고 곧장 대나성 동부로 진입했다. 그가 폐관수련을 하는 장소였다.
“2백 년 동안 선검을 충분히 제련해야겠군. 요령(妖靈)을 만들어 이 선검을 요검(妖劍)으로 만드는 거야. 그럼 영패를 찾으러 가는 여정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배로 높아지겠지.”
능천후는 눈을 번득이며 폐관수련을 하는 곳으로 사라졌다.
한편 천운자는 천운성으로 돌아온 뒤 곧장 세 개의 산봉우리 꼭대기에 있는 일곱 빛깔 색채의 보탑으로 향했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그의 곁에는 옻칠을 한 듯 새카만 마수의 뼈가 몇 개 놓여 있었다. 개중 몇 개는 굉장히 밝게 빛났으며, 사악하고 기이한 기운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한제는 분명 운이 따르는 자로구나. 그 운이 언제까지 따를지는 모르겠지만⋯⋯.”
천운자는 덤덤하게 한 손을 뻗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곁에 있던 마수의 뼈들이 곧장 날아올라 흔들렸다가 흩어지듯 떨어졌다.
흩어진 뼈들을 한참이나 자세히 살피던 천운자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웠다.
산골짜기
동해 요령의 문 안은 혼란스러웠다.
이곳이 얼마나 광대한 곳인지도 알 수 없었다.
요령의 문 안에 들어서자 물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어느덧 눈앞에 거대한 황야가 나타났다.
하늘도 땅도 바다도 있었지만 어떤 수련성은 아니었다.
어디를 살펴도 인적은 없었다. 그저 황야일 뿐이었다.
천운종에서 함께 들어온 아홉 명의 동문들도 이 안으로 들어선 순간 기이한 힘에 의해 흩어졌기 때문에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이곳은 마치… 그냥 일반인들의 세상 같군.”
잠시 고민하던 한제는 신식을 펼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다른 종파 진입자들도 서로 흩어져 각자의 여정을 시작했겠지. 허운산 말대로라면 이곳에서의 시험은 5백 년간 이어진다고 했지.”
한제는 하늘을 날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5백 년 동안 할 일이 많겠군. 우선 살육 선결을 확실히 익혀야겠지. 다행히 이곳에 있으면 탁삼이 자유를 되찾는다 해도 날 찾아낼 수는 없을 테니 적어도 5백 년의 시간을 번 셈이야.”
한제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그는 동해 요령의 문 안에 들어오면 5백 년은 지나야 나갈 수 있다는 허운산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반드시 이곳에 들어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한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자는 고대 신의 땅에 속박되어 있는 탁삼이었다. 이는 한제가 살육 선결을 이용해 생의 낙인을 만드는 법을 익히기로 결심한 이유였다. 어차피 탁삼에게 이길 수는 없을 테니 목숨을 구하는 법을 알아둬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살육 선결을 완벽히 익혀 많은 생의 낙인을 응결시킨다면 탁삼의 공격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5백 년 동안 내 수준을 어디까지 올릴 수 있을지⋯⋯.”
한제는 기이한 눈빛으로 조용히 읊조렸다.
“보탑에 깃든 주일 선배의 경지를 이용한다면 능천후가 주일 선배를 봉인해둔 곳을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겠지. 만약 주일 선배를 구출해낼 수 있다면 선배의 수준에 선검을 배합하여 공격력을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을 거야. 그나저나 요령의 문 밖에서 본 그 큰 검⋯⋯ 당시 내가 가지고 있던 금부와 거의 똑같았는데⋯⋯.”
한제의 눈빛이 한층 진중해졌다.
“만약 그게 정말 금부라면 그 안에 숨겨진 검혼의 기술을 익혀야 해. 그러면 선검의 위력이 지금보다 몇 배는 강해질 거야. 하지만 그런 것들도 그 붉은 빛 속에 숨겨져 있던 영패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 그 영패가 대체 뭐기에 천운자와 능천후 같은 자들의 안색이 대번에 변한 거지?”
잠시 더 고민하던 한제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됐다, 급하게 굴지 말자. 본체는 눈에 띄지 않게 숨겨뒀으니 그 존재가 발각될 일은 없을 거야. 5백 년 안에 최대한 수준을 높여야겠군!”
마음을 다잡은 한제는 어느덧 자신이 한참이나 날아왔음을 알게 됐다. 한데 줄곧 신식을 펼쳐 사방을 훑었는데도 이상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고는 그저 황량한 땅뿐이었다. 심지어 신식이 닿는 범위 안에서는 어떤 생명도 포착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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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천천히 흘러 열흘 정도가 지났다.
이날, 쉬지 않고 하늘을 날던 한제의 표정이 변했다. 이어 그는 번개처럼 번득이는 눈으로 속도를 몇 배나 올렸다.
황량한 평원 바깥쪽에는 녹색 풀숲이 잔뜩 우거진 깊은 산이 있었다.
한데 풀숲 안에는 한 사람이 엎드려 있었다. 옷을 반 정도 벗은 그는 풀과 나무에서 나는 즙으로 온몸이 옅은 녹색으로 물든 상태였다. 게다가 엎드린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심지어 숨조차 조심스레 쉬고 있었으며, 머지않아 모습을 완전히 감추어 일반인이라면 절대 발견할 수 없게 됐다.
잠시 후, 멀리 떨어진 풀숲에서 무언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났다. 그러더니 곧 입 가장자리에 예리한 가시가 달린, 송아지만 한 야수가 나타났다.
언뜻 멧돼지와 비슷해 보였으나 온몸에서 흉험한 기운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야수의 체내에서는 어떤 영력의 파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캬오오!”
야수가 포효하며 풀숲에서 뛰어나오자 줄곧 바닥에 엎드린 채 꼼짝도 않고 있던 사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그의 손에는 검은색의 긴 막대가 들려 있었고 그 끄트머리에는 어스름한 빛을 발산하는 녹슨 칼이 달려 있었다.
야수가 뛰쳐나오던 순간, 사내는 매우 빠른 속도로 손에 든 막대를 힘껏 내던졌다. 야수는 깜짝 놀랐지만 멈추기는커녕 분노한 듯 사내가 던진 막대에게 달려들었다.
쩌적!
야수와 충돌한 막대는 중간 부분부터 쪼개졌다. 그러자 온몸이 녹색으로 물든 사내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막대에 달린 녹슨 칼을 쥐고 몸을 훌쩍 날려 야수의 등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왼손으로 야수의 털을 움켜쥐고 오른손에 쥔 녹슨 칼로 단번에 야수의 목을 찔렀다.
“크오오!”
야수는 고통에 차 더 우렁차게 포효하며 발버둥 쳤다. 그러자 등에 올라탄 사내는 불안하게 마구 흔들렸다.
한제는 이 기이한 장면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사람 하나, 야수 한 마리. 열흘 만에 그가 만난 생명체들이었다.
야수는 두 눈이 새빨개져 씩씩거렸지만 그 등에 올라탄 사내는 시종일관 침착한 눈빛으로 야수의 털을 움켜쥔 채 녀석의 등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그리고 야수의 목을 찌른 칼에 더욱 힘을 주었다.
잠시 후, 야수의 목에 난 상처에서는 더 이상 붉은 피가 아니라 어스름한 빛의 무언가가 쏟아져 나왔고 두 눈은 어두워졌다. 그러다가 결국 풀썩 바닥에 쓰러져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사내는 그제야 한시름 놓은 듯 녹슨 칼을 뽑아들었다. 한데 그때, 갑자기 사내의 표정이 변하더니 맹렬히 몸을 돌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는 경계와 의심의 빛이 가득했다.
한편 한제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사내를 내려다보았다. 허나 내심 놀라기도 했다. 상대의 체내에는 조금의 영력도 없었지만 그 몸에 깃든 영성(靈性)은 놀랄 만했다. 자신의 존재를 어렴풋이나마 알아챈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한제가 천천히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사내는 화들짝 놀랐다. 그러더니 재빨리 죽은 야수의 앞에 서서 오른손에 녹슨 칼을 쥔 채 한제를 주시하며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이놈은 내 거다!”
한제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소리 없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빼앗을 생각 없다!”
사내는 한제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야수의 털을 붙잡고 안간힘을 써가며 풀숲 쪽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러면서도 경계하는 눈길로 연신 한제를 힐끔거렸다.
사내가 풀숲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한제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상대에게 퍽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야수를 끌고 한참 이동하던 사내는 한제가 따라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한시름 놓은 듯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러더니 다시 야수의 털을 움켜쥔 채 숲 안쪽으로 끌고 들어갔다.
태양이 산속으로 숨어들 때까지 이리저리 왔다갔다 움직이던 그는 숲의 골짜기 밖에서 야수를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한 줄기 옅은 파문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이 파문은 너무나 옅었고 순간적으로 지나간 탓에 알아채기가 힘들었다.
사내가 산골짜기 안으로 들어간 뒤에야 모습을 드러낸 한제는 천천히 바닥에 내려섰다. 그리고 유심히 사방을 살폈다.
“이 산골짜기 밖에 누군가가 높은 신통력으로 생기를 숨기는 진을 배치해 두었군. 가까이 접근하기 전까지는 그 안에 있는 존재도 발견할 수 없겠지. 언제 배치된 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수법을 보면 수련 연맹에서 쓰는 것과는 분명히 달라. 상고 시대 수련자들의 수법 같은데⋯⋯.”
한제는 형형한 눈빛을 번득이며 중얼거렸다.
“흥미로운 곳이로군. 이곳은 내가 그동안 다녀본 곳과 여러모로 달라.”
진으로 보호되고 있는 산골짜기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한제는 오른손으로 허공을 두드렸다. 그러자 그의 손가락 끝에서 빛이 한 줄기 튀어나오더니 곧장 산골짜기 안으로 날아들었다.
그러나 그 빛이 진입한 순간 산골짜기 바깥의 진에서 우르릉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푸른 기운이 솟구쳐 그 빛을 집어 삼켰다.
뒤이어 왁자지껄한 소리가 산골짜기 안에서 흘러나왔다.
한제는 곧장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산골짜기 안에서 밝은 빛이 번득이더니 세 사람이 걸어 나왔다. 모두 반쯤 벗은 상태였고 온몸이 초록색으로 물들어 있었으며, 손에는 녹이 슨 무기를 들고 있었다.
산골짜기 밖으로 나온 그들은 잔뜩 경계심이 어린 눈으로 사방을 신중하게 살폈다.
한참 뒤, 그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보다가 다시 산골짜기 안으로 돌아갔다.
그들의 모습이 사라진 순간, 한제는 푸른 연기로 변해 그들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그가 들어서려는 순간, 진은 다시 흔들리면서 푸른 빛을 번득였다. 동시에 강렬한 위기감이 사방에서 엄습해오는 것을 느끼며 한제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그에게 달려들던 푸른 빛은 천천히 사라졌다.
“흥미롭군!”
한제의 눈이 서늘하게 번득였다.
이 진은 산골짜기 안의 모든 것을 보호하는 작용을 하는 듯했다. 외부인들의 접근을 막고 억지로 들어오려 하는 침입자를 죽이는 역할을 했다.
무척 절묘한 진이라 단시간에 풀어낼 수는 없었기에 한제는 말없이 산골짜기 바깥쪽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러자 그를 발견한 산골짜기 안의 사람들은 곧장 불을 밝혔고 네 명이 걸어 나왔다. 그중 셋은 좀 전에 나와서 주변을 살폈던 이들이었다.
나머지 한 사람은 살기 가득한 얼굴에 어스름한 빛이 번득이는 검은 장대를 든 남자였는데 그는 산골짜기 안에서 나오자마자 한제를 향해 손에 든 장대를 내던졌다. 동시에 잔인하게 웃으며 돌진하려는 듯 발을 내딛었다. 그 뒤의 세 사람 역시 포효하며 녹슨 무기들을 든 채 달려들었다.
한제는 덤덤하게 눈만 깜빡였고 그것만으로도 그를 향해 날아들던 장대가 곧장 무너져 내렸다.
가장 앞서 달려들던 남자는 입을 쩍 벌린 채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뒤에서 달려오던 세 사람 역시 우뚝 멈춰 섰다.
한제는 슬쩍 오른손을 뻗어 움켜쥐었다. 그러자 그들은 놀라 비명을 내질렀고 무형의 힘에 옆쪽으로 내던져진 후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영력이 없는 그들이 한제의 힘을 당해낼 리 만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