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56
56. 21세기 로빈 후드 (10) >
***
하은성은 망연자실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레드 스타가 왜!=
믿고 싶은 것을 믿으려 했다.
그러면서 외면했던 진실.
“그 놈들은 네가 생각하는 정의의 사도가 아니야.”
적당한 구호를 펼치며 빈민들 지지를 얻는다. 하지만 완전히 넘어온 사람들을 소비하는 방식은 차갑고 잔혹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부자들 재산을 평등하게 나눠준다고? 10을 빼앗은 다음 1을 투자하는 것도 재분배라면 재분배겠지.”
=?!=
레드 스타의 모든 활동을 회계적, 세무적으로 추적할 수는 없다.
다만 드러난 부분을 최대한 조사한 경찰 보고서 말미에는 이런 결론이 나와 있었다.
그들이 주장하는 바와는 달리 레드 스타가 약탈하고 버는 부에 비해 공공을 위해 재투자되는 비율은 지나치게 낮다.
그렇다면 그들이 쥔 막대한 돈은 다 어디로 흘러가는가?
“레드 스타도 결국에는 이익 집단에 불과하다는 거다.”
진정한 목적이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보호 대상인 빈민들을 가차 없이 밟고 올라가는 이익 집단.
하은성은 자괴감 속에서 머리를 움켜쥐었다.
=병신··· 병신 새끼!=
정의로운 의적 흉내를 내다가 동생들을 위험에 빠뜨린 꼴이다.
민준의 이야기에 따르면, 조직에 소속된 이능력자조차 가차없이 희생시키는 것이 레드 스타의 민낯이었다.
그렇다면 인질로 잡힌 동생들은?
=젠장!=
놀랍고도 두려운 이야기였지만 상대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경험한 바에 따르면 그는 자신을 제압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일 터. 굳이 이런 이야기를 지어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령이 괴로워하는 사이 민준은 그의 영체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저 칼, 대체 뭐지?’
기억이 흐릿했다. 평범하지 않은 물건임은 분명한데 구멍이 난 것처럼 인식이 불완전하다. 수형자가 되기 전 지식과 관련된 것이 틀림없다.
목에 박힌 손잡이에는 기묘할 정도로 공들인 장식이 음각되어 있었다. 반투명한 영체를 관통해 파고든 칼날 각도가 그대로 보였다. 하은성의 사인(死因)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칼의 끝에는···.
민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칼 끝이 영혼을 살짝 건드렸군.’
저 칼 또한 영체의 일부이기에 제거가 쉽지 않을 터. 억지로 분리한다고 해도 손상을 입힐 것이 분명했다.
‘흡수된 게 맞다면 달란트는 어디에 있는 거지?’
그가 생각에 빠진 사이 자괴감에 몸부림치던 하은성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울상이 된 얼굴.
=저··· 저는 어떡하죠?=
“간단해.”
민준은 일종의 사법거래를 제안했다.
유령은 법률로 보호받지 못하며 형벌의 대상도 못 된다. 회사에게도 법인이라는 이름 하에 주어지는 권리와 의무가 정작 죽은 자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것.
그러나, 법률적 권리 주체가 아닌 동물을 국가가 포획할 수 있는 것처럼 유령도 국가의 대행자인 민준의 행정권 집행 대상이 된다.
그는 범죄에 가담했을 뿐만 아니라 결계로 구속 불가능한 하은성을 ‘위험물’로 분류하여 다른 차원에 던져버리는 대신 적절한 보호 관리 하에 두겠다고 약속했다.
그 대신 전적으로 협력하라는 것이다.
“당분간 레드 스타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척해.”
동생들의 안전도 걸려있었다.
“당장 네 동생들을 데려갈 수는 없어. 바로 눈치챌 테니까. 대신 모든 일이 끝나고 안전 가옥에서 보호받을 수 있도록 조치해 주지.”
그가 우려하는 것은 이 유령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냥 도망쳐버리는 경우다.
예를 들어, 하은성이 대기권 밖으로 숨어 버린다면? 절대 찾을 수 없다. 그러면 100만 달란트를 회수할 방법도 미궁에 빠지는 것이다.
또한, 만약의 경우 창천에게 백만 달란트를 찾아 줄 수 없다면 원흉이라도 잡아서 탈탈 털어야 했다. 그래야 도난액 15%까지는 아니더라도 노력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을 테니.
하은성은 수락했다. 사실 다른 방법도 없었다.
“좋아, 내가 궁금한 건 놈들이 왜 거짓말까지 해 가면서 이런 짓을 시켰냐는 거야.”
단서는 레드 스타의 고위 간부로 추정되는 여자와 하은성 사이에 오간 대화였다.
유령은 시간 순서대로 진술했다.
“창천은행 본점 금고의 내부 구조?”
=네, 아주 자세하게 물어봤어요.=
레드 스타가 달란트를 노린 것은 아니다. 고위 간부인 여자조차 하은성의 경험을 단순한 사고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보냈는가?
지구 화폐는 만 원 한 장 들고 나올 수 없는 유령에게 염탐을 시킬 이유는 뻔하다. 나중에 거길 털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일종의 사전조사.
“그런데, 거긴 창천이 직접 결계를 펼쳐 놓은 곳인데.”
민준은 모순을 발견한다.
“그걸 뚫을 수 있다면 왜 진작에 안 털었지? 그 방어막을 파훼할 수 있다면 내부 구조도 네 도움 없이 파악할 텐데.”
=그건 잘···.=
제일 중요한 건 결계를 뚫을 방법이다.
어떻게 그 난관을 극복하려는 걸까?
그 의문에 대한 실마리는 이어지는 진술 때문에 해결되었다.
“창천의 레어에서 뭘 봤다고?! 다시 말 해봐. 착각한 거 아니야?”
=아, 아니에요! 진짜 봤어요! 드래곤 망령이요.=
“유령이 아니라 망령이라고?! 마법진 속에 갇혀 있었어?”
=네, 제가 그걸 헷갈릴 리는···.=
그리고 망령이 절규와 함께 내뱉은 말을 전해 들은 순간.
“!”
민준의 머릿속에서 퍼즐이 완성되었다.
“레드 스타 그 새끼들, 정말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
그리고, 비밀을 숨기고 있었던 또 한 명의 존재.
그는 이를 갈았다.
“창천, 이 미친 할망구도 진짜!”
급격한 반응에 위축된 유령이 눈치를 보는 사이 민준은 바로 젠킨슨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누군가 그에게 마법 통신으로 접촉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
하은성과 접촉했던 레드 스타의 고위 간부, 지선경은 학교에서 발생한 사고 때문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경찰도 건드리지 못한 병력양성의 요람을 습격당했고, 그곳 간부들은 거의 다 죽거나 국가에 인도되었다. 그녀가 뇌물을 먹여 놓은 경찰 고위층을 통해 이번 일에 이민국이 연관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인력 손실이 상당했지만 지선경은 이 일을 치명적인 타격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좀 아플 뿐이다.
‘어쩜, 나라가 부리는 사냥개보다 용이 부리는 사냥개 이빨이 더 아프네.’
그녀는 이민국을 국가 기관이라기보다는 용의 사병으로 간주했다. 그런 부문을 일반 기업에 아웃소싱했다는 것 자체가 행정력 행사의 포기로 간주되므로.
미쳐버린 나라다.
미쳐버린 사회다.
지선경은 자신이 이 잘못된 흐름을 되돌리는 데에 일조한다고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다소의 희생은 감수해야 할 터.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봐!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사무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나이가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늙은 오크가 다급하게 사무실로 들어왔다. 상대를 확인한 지선경의 눈매가 살짝 차가워졌다가 금방 본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고저가 미미한 목소리로 반긴다.
“어서 오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그는 한국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주름이 자글자글한 오크였다. 그 종족에게 연금을 빨리 지급하는 것을 반대하는 인간들이 반길 산 증거다.
그처럼 부유한 오크가 80세가 넘도록 장수한다는 사실은, 대다수의 오크가 일찍 죽는 이유가 위험하고 더럽게 살기 때문이라는 방증이 될 수 있다.
가난한 인간에게도 연금을 빨리 주지 않을 거면 오크에게도 그러면 안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 줄 이 남자의 이름은 김광우다.
“앉으시죠.”
사람들은 레드 스타와 김광우가 서로를 적대시한다고 여긴다. 빈민가 없이는 세력을 유지하고 성장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 때문에 실제로 둘은 사이가 매우 나쁜 편이었다.
얼마 전까지는 말이다.
“학교가 털렸다면서. 드래곤 짓이야? 설마, 눈치챈 건가?”
목소리에 동요가 묻어 나왔다. 이 나라에서 가장 큰 오크 갱단을 발 아래에 둔 자 답지 않은 태도. 지선경은 그런 상대를 경멸하면서도 이해했다.
그들은 그럴 만한 적을 상대하려고 하고 있었다.
드래곤.
“움직인 것은 젠킨슨 쪽이에요.”
“뭐? 거기서 갑자기 왜?”
“아무래도 저희 타겟이 젠킨슨과 손을 잡은 것 같습니다.”
오크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둘은 원수 사이잖아! 만약 관계가 회복된 거라면 우리 계획이 수포로···.”
“그럴 것 같지는 않아요.”
지선경은 어디까지나 기브 앤 테이크 식의 거래가 두 고룡 사이에 오간 것 같다는 추측을 풀어 놓았다.
“필요해서 잠시 손을 잡았지만 수가 틀리면 얼마든지 서로를 물어 뜯을 수 있는 관계에요. 그 괴물들이 품고 있는 탐욕을 생각하면요.”
여유롭게 덧붙인다.
“그리고 학교는 걱정 마세요. 거긴 버릴 겁니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꽤 큰 타격이겠군.”
“괜찮아요.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대체할 병력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으니까요.”
지선경과 김광우는 확신한다.
빈곤은 사라지지 않는다. 자신이 소외받는다고 여기는 자들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빈민들이 존재하는 한 레드 스타도 오크 갱단도 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을 리는 없다.
오크 커뮤니티에 세력의 근본을 둔 이 두 집단은 그 부분에서는 여태 교묘한 균형을 맞춰오고 있었다. 아슬아슬한 평화.
이 밸런스를 깨뜨릴 ‘생태계 교란종’이 개입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레어는?”
지선경은 웃었다. 저 오크가 기다리던 희소식을 전달할 순간이다.
“드래곤의 망령을 발견했습니다. 정신파 내용을 분석하면 창천의 전남편이 확실해요.”
오크의 표정이 그제서야 펴졌다. 서류를 넘겨 받고는 빠르게 살핀다. 두 눈동자에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총기가 넘쳤다.
“됐어! 이 정도면 충분 해! 이렇게 자세하게 기록된 문서라면··· 그 레드 드래곤이 믿을 수밖에 없을 거다!”
사이가 나빠야 할 두 조직이 잠시라도 같은 배를 탈 이유는 많지 않다.
창천이 오크 커뮤니티에서 빈민 구제활동을 시작했을 때 레드 스타와 오크 갱단은 섬뜩한 위협을 느꼈다.
이곳 주민들에게 있어서 의식주만큼이나 간절한 것은 의료 지원이다. 마찬가지로 생명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 따라서 레드 스타가 거리에 뿌리는 구호 물품에는 의료품이 빠지지 않았고, 오크 갱단 역시 병든 부모나 형제 자식의 병원비를 대신 내 주는 식으로 오크들의 인심을 사고 끌어 들였다.
그런데 그 역할을 창천이 대신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닥이 있는가 의심스러울 정도의 자금력을 뿌려 대면서. 이대로면 미래 사업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상황이었지만 상대는 드래곤이었다.
그리고 창천이 지금까지는 파일럿 단계였다며 땅주인인 김광우 회장을 소환했을 때, 그는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순순히 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 ‘알현’은 창천의 레어에서 이루어졌다.
오크 커뮤니티 주변 공터에 대학 병원 수준의 의원을 건립하겠다면서 드래곤은 그에게 임대를 요구했다. 오크는 그저 고개를 조아리며 순종적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 하겠습니다.’
드래곤의 협박 속에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순간이었다.
=······려줘!=
김광우는 희미한 정신파를 들었다. 아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그는 영체감응력자였다. 귀신이라면 지긋지긋해서 사무실과 차량에 퇴마진으로 도배를 하고 다니므로 귀신들조차 잘 모르지만 그의 능력은 매우 뛰어났다.
창천은 그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설사 알아도 알현한 장소까지는 귀신의 정신파가 전달되지 않는다고 확신했을 터.
그녀가 예상하지 못한 것은 회장의 지나치게 뛰어난 능력이었다.
‘창천? 그 여자 전남편이··· 아마 불타 죽었다지? 그런데 더러운 소문이 있기는 해. 그 여자가 고의로 죽였다는 이야기가 파다했지.’
김광우 회장에게도 뒷배 드래곤은 있었다. 나이가 100살도 되지 않은 용이었으므로 고룡의 방패막이가 되어줄 수는 없었지만 용족 사이에 도는 소문을 들려주는 건 가능했다.
여기까지 파악한 회장은 위험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드래곤은 평범한 오크가 절대로 엮여서는 안 될 위험종이다. 하지만, 그 맹수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면?
이대로 밀려서 죽어 없어져야 하는가?
김광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죽어도 최대한 발악을 하고 죽어야 할 터다. 그에게는 일궈낸 제국을 물려줄 자식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돌아갈 유산을 드래곤이 망가뜨리는 것을 관망할 수는 없다.
그리고 김광우는 평범한 오크가 아니었다.
다만, 혼자 힘으로는 고룡을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뒷배 드래곤에게 계획을 공유하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따라서 그는 과거의 경쟁자와 손을 잡기로 했다. 마찬가지로 빈민가에 손길을 뻗어 오는 창천을 적대시해야 할 동기가 충분한 자들.
레드 스타.
그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볼 때 옳았다. 대체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드래곤을 주적으로 삼는 그들은 김광우가 만족할 만한 솔루션을 제공했다.
“애초에, 드래곤씩이나 되면서 이런 똥통 안의 일엔 신경 껐어야지. 돈을 풀어도 너무 많이 풀었어. 몸 멀쩡한 놈들까지 우르르 달려 들어서 삼시세끼 받아 처먹고 뒹굴거리는 꼴이라니···.”
빈곤은 사라져서는 안된다.
자신이 소외받는다고 여기는 자들도 사라져서는 안 된다.
그들의 분노와 고통을 양식으로 지금까지 유지된 두 조직이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요즘 그 의료원 안에서 벌어지는 일도 심상치 않아. 심어 놓은 프락치도 벌써 몇 명이나 날아갔다니까?”
그들이 제거되기 전 보고한 내용 역시 놀라웠다.
“입원했던 놈들이 가끔씩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는 거야. 몸 멀쩡한 애들 위주로. 뻔하지 않나? 다른 곳으로 빼돌렸겠지. 계약 때문에 대놓고 군사 조직을 만들 수 없으니 뒤에서 몰래 수를 쓰는 거야. 그런 속셈 없이 갑자기 빈민 구제 같은 것을 왜 하겠나?”
이런 창천의 비밀을 모조리 누설한다면 분노에 눈이 뒤집힐 고룡을 김광우는 알고 있다.
“그럼, 바로 젠킨슨 회장과 약속을 잡겠네.”
용을 살해하고, 그 망령을 붙잡아 고문하는 일은 드래곤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다.
한국은 젠킨슨의 영지며, 그 뜻은 이곳에 레어를 만들기 위해 그의 허락이 필요하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에 사는 용족이 드래고닉 코드를 심각하게 위반할 경우 젠킨슨이 직접 처단할 수 있다.
창천은 제거될 것이다.
그녀와 같은 고룡의 손에 의해서.
오크가 웃었다.
“창천의 사업체를 다 합하면 가치가 얼마나 되지?”
지선경도 살포시 웃었다.
“대외적인 것만 해도 100조는 훌쩍 넘죠. 법적 상속자는 없는 것으로 보여요. 사유 재산은 함부로 못 건드리겠지만··· 사업체만 고려해도 꽤나 먹음직스럽지 않나요?”
“젠킨슨 그 드래곤이 전부 먹어 치우진 않을 거야. 싸움이 벌어질 거고, 지저분하고 더러운 것들은 용들도 손을 안 대겠지. 우리가 싸게 낚아 챌 수 있을 거다.”
용이 입을 대지 않을 썩은 고기와 분변이 묻은 내장은 그들이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서 뜯어먹을 속셈이었다.
계획이 성사되면 일석이조다. 빈민가에서의 위치를 굳건히 지킬 뿐만 아니라 창천이 파멸하면서 뿌릴 콩고물도 챙길 수 있다.
오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자를 격려하듯 오른손을 내민다.
“약조한 대로 그쪽과 나눠 먹을 테니 걱정 말라고. 지금까지 정말 잘 해 주었어. 고맙네. 좋은 소식을 기다리게.”
회장은 악수를 청했고 지선경은 그 손을 잡았다.
“네, 감사합니다. 회장님.”
젠킨슨과 독대하여 밀고하는 역할은 김광우 회장이 맡을 것이었다. 레드 스타가 주적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살펴가십시오.”
김광우 회장이 문을 닫고 나가자.
“······.”
지선경의 입가에 머금던 따스한 미소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슥!
서랍을 열고 방향제를 꺼낸다.
치이익!
아마도 다시 볼 일이 없을 오크의 체취를 지우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저 오크가 정말로 레드 스타와 무언가를 나눠 먹을 것이라고 결심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레드 스타 입장에서는 그럴 계획이 없다.
‘지금은, 망상에 푹 젖어서 행복을 누리라지.’
고룡이 제거되자 마자 창천은행 본점은 강도를 당할 것이다.
갑작스럽게 기능이 정지된 결계 대신 비상용 아티팩트가 가동될 것이지만 이미 내부 설계를 모두 파악한 그들로서는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녀는 이미 증발한 달란트에는 관심이 없었다. 레드 스타가 원하는 것은 그 안에 쌓여 있을 지구화폐와 귀금속, 아티팩트 등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오로지 조직을 위해 사용될 것이다. 탐욕스러운 오크의 곳간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대의를 위해서.
방을 인공적인 향기로 가득 채운 뒤 지선경은 화장실로 갔다. 그리고 오크의 손을 잡았던 오른손을 찬물로 빡빡 씻었다. 피부가 벗겨질까 걱정될 정도로 힘을 주어서. 강렬하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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