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Repair RAW novel - Chapter 72
72화 범인(犯人)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봉인진이 코앞에 보인다.
저 안에만 들어가면 누구도 나를 어찌할 수 없다.
품속에 고이 들어 있는 옥간의 감촉을 느끼며 굳게 다짐했다.
‘무슨 수를 써서든 봉인진 안으로 들어간다!’
나는 서서히 나에게 접근하고 있는 네 명의 후기지수들에게 외쳤다.
“자, 잠깐!”
“왜? 이제 죽을 때가 된 것 같으니 마지막 발악이라도 해 보려는 것이냐?”
아까부터 모두의 대변인이라도 되는 양 앞장서서 나를 괴롭혀 대는 양굉 놈이 눈에 거슬렸다.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법.
“꼬맹이 넌 좀 닥치고 있어! 어디 어린놈의 새끼가 버르장머리 없이 어른들 앞에서 자꾸 언성을 높이는 것이냐?”
처음 들어 보는 폭언에 양굉의 입이 떡 벌어졌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른 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하나 묻겠다. 지맥이 얼마나 부족하다는 거냐?”
“나도 모른다. 각자가 얻은 지맥의 양을 밝히지 않았으니.”
무엽 놈이 검에 손을 얹은 채 답한다.
나는 놈이 갑작스럽게 백운을 발검할까 싶어 긴장되기 시작했다.
“아무도 밝히지 않았다고? 그럴 수도 있겠지……. 힘이 완성될 것 같은 자를 견제하게 될 테니까. 하지만 너희들은 결국 말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얼마나 많은 지맥이 탈취당했는지 어떻게 알겠나?”
양굉 놈은 팔짱을 낀 채 매의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내 말을 유심히 들으며 허점을 짚어 내려는 듯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나는 거리낄 것이 없었기에 말을 이어 나갔다.
“말을 하지 않았다면, 너희의 말처럼 누군가 지맥을 훔쳤다는 소리도 근거가 없는 것 아닌가?”
그때 내 말을 들은 양굉이 기회를 잡았다는 듯 두 눈을 번뜩이며 외쳤다.
“개소리! 너도 지맥을 얻어 봤다면 알 텐데? 지평선 너머의 광원들이 빠르게 사라지는 것을 보지 못했나? 그것은 우리의 경지론 설명할 수 없는 속도였다!!”
양굉의 말을 들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허목과 천 공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다만, 헌원려는 아까부터 눈빛에 초점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백리영과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했다.
허목의 말에 따르면, 하나의 지맥을 얻기 위해선 3일간 전력을 다해 기운을 흡수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양굉의 말마따나 광원들이 사라지는 속도는 분명 비정상적이었다.
후기지수들보다 더 강한 자.
그런 사람은 한 명뿐이다.
“답이 나왔군.”
“그래! 이제야 인정하는 것이냐? 네놈이 무슨 더러운 수를 써서…….”
끊임없이 나만을 의심하는 양굉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말했다.
“네가 말했지 않느냐. 광원들이 사라지는 속도는 우리의 경지론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그, 그건…….”
“그렇다면 후기지수들 중 가장 강한 사람이 아니고선 불가능한 일이겠지?”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모두가 입을 꾹 다물었다.
힘이 부족한 자는 그러한 이적(異蹟)을 일으킬 수 없다.
이것은 반박할 수 없는 논리 그 자체였다.
후기지수들이 저마다 결론을 내리고 일제히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주춤주춤 거리를 벌리며 상대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곳엔 무엽이 서 있었다.
한순간에 새로운 범인으로 지목되자, 무엽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얕게 웃으며 검을 뽑아 들었다.
“이젠 나를 의심하는군.”
상황이 내 의도와는 조금 다르게 흘러간다.
나는 다급히 끼어들어 후기지수들을 말리려 했으나, 이미 늦은 상태였다.
후기지수들은 볼 것도 없다는 듯 전투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사무정이 혈강시를 포함한 모든 강시를 꺼내 들며 청동 방울을 들었다.
양굉은 멀찍이 거리를 벌리며 스무 구의 괴뢰들을 소환했다.
헌원려는 온몸에 전격(電激)을 일으키며 싸움을 대비한다.
그녀가 가장 선두에 선 것으로 보아 전위(前衛)의 역할을 자처하는 듯했다. 각 종문의 천재들은 말을 하지 않고도 순식간에 최적의 전투 대형을 이루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무엽은 두려움이란 감정을 모르는 사람처럼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좋다. 어차피 모두 다 죽일 생각이었다. 덤벼라. 전부 죽이다 보면 장난질을 친 놈이 누구인지도 알게 될 터.”
이미 내 손을 떠났다.
나는 백리영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싶었으나, 모든 후기지수들은 그녀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연약해 보이는 젊은 여인의 외양 탓일까.
어차피 이놈들은 나와 별다른 인연이 없는 것들이다.
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싸움이 벌어질 것 같은 현장을 벗어나 결계를 향해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나만 아니면 된다.
저벅. 저벅.
“멈춰라. 장철.”
자리를 벗어나 결계의 앞까지 가까워졌을 때, 누군가 나를 불러 세웠다.
뒤를 돌아보니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무엽을 공격하려던 녀석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왜 이렇게 날 선 반응일까 싶었지만 이어지는 말에 곧바로 수긍했다.
“우리를 싸움 붙이고 혼자 지맥을 차지하려는 속셈이냐?”
무엽이 말했다.
의도치 않았지만 나 때문에 범인으로 지목됐기에 기분이 나빴기 때문일까.
하지만 다른 녀석들도 경계 어린 표정이다.
이럴 땐 해명을 하는 것보단 다른 것이 효율적이다.
나는 적반하장의 태도를 취하기로 마음먹었다.
“하! 지맥을 차지한다고?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여기 보는 눈이 몇인데? 나는 저 앞의 결계나 살펴볼 생각이었다. 너희들은 서로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해라.”
나는 손을 휘휘 저으며 관심 없다는 태도를 내보였다.
그러자 다시금 나를 의심하려던 녀석들도 말문이 막혔다.
지맥을 흡수하려면 정신을 집중해 며칠 동안이나 전력을 다해야 한다.
그것은 지금 이 상황에선 불가능한 일.
무엽의 말처럼 모두가 죽은 다음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이곳엔 지법축기를 이루기에 지맥이 부족한 후기지수들이 모두 모여 있다.
서로가 지맥을 원하고, 역으로 상대방은 실패하길 원한다.
지금 상황은 마치 무질서하게 꼬여 있는 실타래를 보는 것 같았다.
다시금 일촉즉발의 상황이 형성되려는 와중, 누군가 입을 열었다.
“백리영은 왜 자리를 비운 거지?”
허목이었다.
그는 이곳으로 온 뒤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항상 그를 답답하게 여기던 양굉이 소리쳤다.
“벌써 까먹은 거야? 장철을 찾으러 간다고 했잖아! 이 멍청한 새끼…….”
허목이 나지막하게 말하며 양굉의 말을 끊었다.
“경지를 돌파하러 간 것은 아니고?”
그 말을 들은 모두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한창 전투를 시작하려던 무엽과 떨거지들.
그리고 결계를 향해 걸어가던 나까지.
어느새 장내엔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
“…….”
“…….”
그토록 머리를 굴리며 상황을 타개해 보려던 나보다 과묵한 허목의 의견이 더 효과적이었다.
이번엔 후기지수들이 헌원려를 바라보았다.
지금껏 백리영과 붙어 다니던 유일한 동료.
그리고 허목과 마찬가지로 중앙 지역에 온 뒤로 한 번도 입을 연 적이 없었다.
“헌원려(軒元麗).”
내가 그녀를 불렀다.
헌원려가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대답이 없다.
나는 다시 한번 그녀를 채근했다.
“말을 해 봐라. 헌원려.”
후기지수들의 시선이 모두 헌원려에게 모였고, 곧 그들 역시 깨달았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녀의 눈빛이 정상이 아니란 것을.
일전에 내가 보았던 헌원려는 저렇게 정숙한 여인이 아니었다. 분명 말광량이 같으면서도 거침없는 구석이 있었다.
“대답을 해라. 헌원려.”
계속해서 몰아붙이자 그녀가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몸을 뒤틀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서, 설마…….”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양굉과 무엽이 동시에 답했다.
“꼭두각시다.”
꼭두각시라는 말에 딴청을 피우고 있던 사무정의 고개가 팩 돌아갔다.
이 와중에도 사무정 놈은 변태 같은 면모를 보였다.
눈을 빛내며 헌원려에게 다가가 이곳저곳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꼭두각시라는 말이 사실이었는지, 헌원려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고개를 삐걱거리고 있었다.
사무정은 그녀에게 다가가 가장 처음으로 몇 마디 말을 건네더니 자세를 낮춰 그녀의 눈동자를 살폈다.
그 와중에도 그녀는 함부로 손을 쓰지 않고 있었다. 마치 주인의 명령이 떨어지지 않아 저러는 것처럼 보였다.
사무정이 그녀의 드러난 피부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술법을 시전한 흔적이 남아 있는지를 확인했다.
다른 후기지수들은 꼭두각시에 대해 사무정만큼 조예가 뛰어난 것은 아니었기에 묵묵히 그의 행동을 지켜볼 뿐이었다.
비록 양굉도 사역마들을 다루긴 했지만, 그것은 아직 생체괴뢰(生體傀儡)의 경지까지 도달하진 못했기에 사무정이 최고 권위자나 마찬가지였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 사무정이 감탄성을 터뜨렸다.
“대단해……! 이렇게 정교한 꼭두각시라니! 이건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절대 알아볼 수 없겠군. 정신을 제압하는 수혼술(搜魂術)을 쓴 것인가? 그것은 최소 결단의 경지는 되어야 가능할 것인데…….”
잠시 고민하던 사무정은 이내 무언가 짚이는 바가 있는 듯했다.
“수혼술이 아니라면… 최상급의 마안법술(魔眼法術)로도 가능하겠군. 흠, 어떻게 한 건지 정말 궁금하구나. 나조차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라니! 하하하!”
역시 저런 분야에 조예가 있는 천재답게 하나하나의 가능성을 짚어 내기 시작한다.
나는 마안법술이란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그 녹광의 마안(魔眼)! 그것을 사용해 헌원려를 꼭두각시로 만들었구나!’
* * *
범인이 밝혀졌다.
누가 뭐라 해도 지금 백리영이 가장 수상한 것은 자명했다.
자리를 비운 것.
일행이 꼭두각시가 되어 있는 것.
더군다나 꼭두각시를 만들어 낸 수법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술법이었다.
‘최소 결단의 경지는 올라야 가능한 것이라니…….’
어느새 모두가 서로에 대한 경계를 푼 채로 저마다의 생각에 잠겨 있었다. 특히 사무정이 언급한 결단(结丹)의 경지라는 말 때문에 모두의 표정이 심각했다.
다만, 탐욕에 물든 인간이기 때문이었을까?
이 지경이 되고서도 누구에게도 지맥을 허용하진 않은 상태였다.
모두의 머릿속엔 같은 의문이 떠올라 있었다.
‘백리영, 도대체 너는 누구냐.’
경지를 돌파한 그녀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이곳의 상황을 살피고자 꼭두각시를 남겨 놓은 것 아닐까.
나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허목과 천 공자 놈을 불러들였다. 이 두 녀석들이 그나마 나와 친분이 있다.
“왜? 무슨 할 말이 있나. 장철.”
천 공자가 불만스러운 어조로 따졌지만 나는 진지한 표정을 보이며 말했다.
“도망쳐라.”
“도망이라니?”
“…….”
한 명은 의문을 품었고 허목은 말이 없다.
나는 이 두 놈이 답답한 마음이 들어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헌원려의 상태를 보지 않았나? 저건 우리의 경지론 불가능한 이적(異蹟)이다! 곧 백리영이 오면 후기지수 대부분이 죽을 수도 있다!”
“걱정 마라. 나는 멸영단이 있으니.”
“이 멍청한 새끼야! 멸영단이 통할지 안 통할지도 모른단 말이다! 그러니 도망을 치든 어딘가 굴을 파고 숨어서라도 남은 시간을 버티란 말이다!”
그제야 천 공자 놈도 심각한 얼굴을 한 채로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허목은 고집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패천종은 도망치지 않는다.”
“어휴…….”
저절로 한숨이 튀어나왔다.
천 공자라면 모를까, 허목을 설득한다는 건 불가능 그 자체다.
일각의 시간이 흐른 뒤, 고민을 마친 천 공자 놈이 내게 와 말했다.
나름대로 고심을 거쳤는지 그 짧은 새 안색이 좋지 못했다.
“네 말대로 하겠다. 지법축기를 이루라고 아버님께서 멸영단을 내주셨지만… 지금 상황처럼 목숨이 위험하다면 이해해 주시겠지. 젠장! 비경에 도착하고 조금 더 빠르게 움직였어야 했는데……. 겨우 5맥을 완성했을 뿐이라 너무도 아쉽구나.”
“잘 생각했다. 천 공자. 일단 살고 보는 게 정답이다. 부모님께서도 네가 무리를 하다 잘못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거야.”
천 공자는 내가 자신을 걱정해 준다고 여겼는지 극비라 할 수 있는 지맥을 얻은 양까지 말해 준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도 바뀌었다.
“장철, 너는 어쩔 것이냐? 나와 같이 도망칠 거냐?”
잠시 말문이 막혔다.
나는 봉인진에 들어가면 나 혼자만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다.
하지만 맹서법보에 의한 맹약 때문에 그것에 대해 발설할 수 없었다.
결단기일지도 모를 백리영에게서 살아남을 방도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득시킬 것인가.
그것을 끼워 맞추기 위해 나는 다른 인물을 언급해야만 했다.
“나는 여기서 해야 할 일이 있다.”
“해야 할 일? 그게 뭐냐.”
“종문, 아니, 노조께서 나에게 시킨 일이 있거든…….”
역시나 천 공자의 미간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노조님이라면, 설마 주 노조님을 말하는 것이냐?!”
주 노조가 언급되자 그의 언성이 저도 모르게 높아진다.
나와 인연이 있는 종문의 노조는 오직 주 노조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미안한 마음을 품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주 노조님께서 나에게 임무를 맡기셨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아 돌아올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해 주셨다.”
“그, 그럼 나도 같이…….”
천 공자가 이를 악물며 떼를 쓰려 하기에 나는 그의 말을 매몰차게 끊었다.
“이건 나 혼자만 가능한 방법이다. 그러니 너는 얼른 떠나라!”
“씨X……! 왜 너에게만……!”
천 공자가 절망에 빠지려는 것 같았기에 나는 작은 위로를 건넸다.
“위험한 일이니 나에게 시켰겠지! 그러니까 허튼 생각 말고 가서 숨어 있기나 해라.”
“그, 그런가……? 하긴, 맞아. 조부님의 손자인 나에겐 임무를 맡기기 부담스러우셨을 거야…….”
놈이 나름대로의 추리를 끝내더니 다시 밝아진 안색으로 길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