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212
#211화
나는 난데없이 차를 가로막은 남자를 가만히 응시했다.
‘분명히 헌터가 맞는데.’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음에도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그의 화려한 외관 때문이다.
복잡한 무늬가 들어간 세미 정장을 시작으로 온갖 명품으로 온몸을 칭칭 감았다.
거기에 잡티 하나 없이 매끈하고 팽팽한 피부와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새하얀 이빨까지.
아무리 봐도 헌터보다는 연예인에 가까운 이미지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이상하게 낯이 익었다.
‘최 팀장보다 더하네.’
명품 좋아하는 건 매한가지지만 눈앞의 남자는 좀 과한 편이었다.
오늘처럼 우중충한 날씨에 커다란 선글라스를 낀 것도 그렇고.
“안 들려요? 이거 소음 마법이라도 걸려 있나.”
남자의 중얼거림에 최 팀장이 창문을 내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 들리는구나. 그럼 왜 대답을 안 하셨대.”
“시간이 없습니다. 따로 하실 말씀 없으시면 비켜 주시죠.”
“많이 바쁘신가 봐요?”
“예. 상당히.”
차분하게 대답하는 최 팀장을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남자가 내게 고개를 돌렸다.
“진태경 씨 맞죠? 이렇게 실물로 보니까 화면보다 더 잘생겼네. 여초 커뮤니티들 난리 난 이유가 있다니까.”
“헐, 진짜요……가 아니라, 그런데 누구세요?”
“눈치챘겠지만 인터뷰 따려는 기자는 아니고. 인천에서 길드 하나 운영하고 있어요.”
“아.”
어떤 목적으로 왔는지는 굳이 들어 보지 않아도 대충 알 것 같았다.
‘또 영입 제의겠지.’
이미 익숙한 일이다.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이후로 접근해 온 길드가 한두 곳이 아니었다.
단신으로 오우거 무리를 때려잡았으니 실력은 입증된 셈이고, 각종 매스컴에 노출된 터라 화제성도 충분하다.
나라는 존재는 그들에게 있어 여러모로 탐나는 ‘상품’이었던 셈이다.
“자, 이건 내 명함.”
이제는 거절하는 것도 도가 텄다.
명함을 건네받은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웃어 보였다.
“죄송하지만 제가 아직은 이직할 생각이 없어서요.”
“응? 그래요?”
“네. 현재 소속된 길드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손을 내밀어 주시기도 했고요.”
망설임 없는 대답에 백미러 속, 최 팀장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그런 최 팀장과 나를 번갈아 보던 남자가 턱을 문질렀다.
“그거 아쉽네.”
“다음에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도 같이 커피 한잔하는 것 정도는 괜찮죠? 팬인데.”
“예?”
“30분. 아니 15분 정도면 돼요. 나도 바쁜 몸이라 자주는 못 오거든.”
이 인간이 지금 뭐라는 거야.
최 팀장 앞에서 영입 제의하는 것도 상당한 무례한 일인데, 이제는 순 제멋대로다.
‘선 넘네.’
이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그런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던 그때였다.
“이상하네. 내가 인터뷰를 잘못 읽었나?”
“……?”
“주간 헌터즈에서 그렇게 인터뷰했던데. 제일 좋아하는 헌터가 나라고.”
나는 눈을 깜빡였다. 이제야 남자의 정체를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왜 낯익다고 생각했는지도.
“호, 혹시?”
내 반응에 남자가 씩 웃었다.
“서운하네, 기껏 명함 줬더니 제대로 보지도 않고.”
나는 황급히 명함으로 시선을 떨궜다.
도금 처리를 했는지 황금빛으로 번쩍거리는 금속 명함에는 선명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스타 길드 CEO 원명훈]“어, 어어!”
벙어리 삼룡이처럼 어버버 거리는 나를 본 남자, 아니 A급 헌터 원명훈이 반쯤 열린 창문 안으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만나서 반가워. 태경 씨.”
* * *
원명훈.
나이는 올해 서른아홉이며 생일은 4월 1일. 키 185cm, 몸무게 80kg의 균형 잡힌 몸매의 소유자다.
체대 입시생이던 그는 스무 살 생일에 A급 헌터로 각성, 뛰어난 실력과 외모로 인생의 승리자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뿐인 줄 아세요? 인성도 엄청 좋아요. 기부도 자주 하고 미담도 엄청 많아요. 장학 재단도 운영…….”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최 팀장이 기가 찬 얼굴로 물었다.
“아니, 어떻게 그걸 다 아는 겁니까? 무슨 신체 조건에 생일까지 외우고 있어요?”
“말했잖아요. 제일 좋아하는 헌터라고.”
인터뷰마다 꼭 한 번씩 하는 말이다. 존경하는 사람은 부모님. 가장 좋아하는 헌터는 원명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정도면 거의 사랑하는 거 아닙니까?”
“무슨 끔찍한 말씀을. 일종의 워너비 같은 거죠. 원명훈 신드롬. 못 들어 보셨어요?”
“못 들어 봤는데요.”
“저런…….”
“뭡니까, 그 측은하다는 표정은?”
그야 원명훈의 멋짐을 모르는 당신이 너무 불쌍해서 그렇지.
지금이야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내 학창 시절까지만 해도 원명훈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A급 헌터라는 신분으로도 엄청난데 스타성까지 있어서 TV만 틀었다 하면 원명훈의 얼굴이 나왔지.
당시의 그는 말 그대로 만능 엔터테이너였다.
“영화, 드라마, 광고. 거기다가 가창력도 좋아서 앨범도 냈었는데.”
“가수도 했었다는 말입니까? 헌터가?”
“팀장님도 들어 보면 아실걸요. 가지, 쫄보, 헌터를 몰라, 탈주…… 명곡들 많아요. 일본 유니콘 차트도 박살 내 버렸었는데.”
수많은 헌터 지망생들의 워너비이자 군대 위문 공연에서 환영받는 몇 안 되는 남자 가수이기도 하다.
내가 시범 삼아 몇 소절을 흥얼거리자 최 팀장도 아는 척을 했다.
“아, 헌터를 몰라는 들어본 것 같긴 합니다만.”
“그렇죠? 그거 지금도 노래방 인기 차트에 있어요. 아무튼 명훈이 형이 그 정도예요. 대한민국 남자 중에 원명훈 모르면 간첩이거나 몬스터라는 말도 있는데.”
“아니, 해외에서 오래 산 게 죕니까? 몬스터 소리까지 들을 이야기예요?”
“누가 팀장님 보고 몬스터래요? 과민 반응하시네.”
“후우.”
절레절레 고개를 저은 최 팀장이 문득 의문을 표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감안해도 원명훈이라는 이름은 너무 낯선데요.”
“팀장님은 한국에 언제 돌아오셨어요?”
“3년 전입니다.”
“아, 그럼 팀장님은 그 사건 모르실 수도 있겠네요. 좀 충격이 컸던 사건이라 방송에서도 다들 쉬쉬하거든요.”
“사건이요?”
“네. 하긴 벌써 8년이나 지난 일이니까. 그때 무슨 일이 있었냐면…….”
말을 이으려던 그때, 화장실이 급해 잠시 자리를 비웠던 원명훈이 저 멀리서 손을 흔들며 걸어왔다.
“팀장님. 명훈이 형이 저 불러요. 이만 가 볼게요.”
“……다녀오십시오. 어차피 30분 정도 시간이 있으니까, 저는 근처 백화점에서 옷이나 보고 있겠습니다.”
“네, 네.”
나는 대충 대답하고 원명훈을 향해 뛰어갔다.
그런 내 모습에 그가 피식 웃었다. 이제 몇 달 후면 마흔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어 보이는 웃음이었다.
“팀장님은요?”
“볼일 보러 가셨어요. 그보다 형, 말씀 편하게 하세요.”
“형? 그러기에는 나이 차이가 너무 나는데.”
“어후, 무슨 그런 말씀을. 요즘 세상에 열두 살이면 거의 동년배죠.”
“그럼 그럴까?”
“넵.”
“하하, 나도 태경이 같은 좋은 동생 생겨서 기분이 좋네.”
“……!”
나는 감격에 몸을 떨었다.
세상에, 내가 바로 그 원명훈이랑 형 동생 사이가 되다니.
원명훈 팬카페 매니저까지 했던 전력이 있는 진호 형이 이 사실을 알면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릴 거다. 자기까지 끼워서 세 명이 도원결의 맺자고.
‘턱도 없는 소리지.’
절로 흐뭇한 웃음이 지어진다.
나는 행복감에 젖어 원명훈을 따라 근처 카페로 들어갔다. 카운터에서 책을 보고 있던 20대 초반의 남자 알바생이 기계적인 영업용 미소와 함께 고개를 들었다.
“손님. 주문 도와…….”
그리고 이어진 짧은 침묵.
이내 알바생의 입에서 헉,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럼 그렇지.’
이 사람도 원명훈 빠돌이구나. 나는 팔꿈치로 옆에 서 있던 원명훈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속삭였다.
“역시 명훈이 형. 아직도 잘나가신다니까.”
“하하, 이거 참. 사인은 오랜만인데.”
멋쩍게 웃는 원명훈이다.
괜히 나까지 뿌듯해지는 기분에 가슴을 쭉 편 그 순간이었다.
“진태경, 진태경 씨 맞죠?”
“……어?”
“그, 얼마 전에 외곽순환도로! B급 게이트!”
“마, 맞긴 한데요.”
“와. 개쩐다.”
감탄사를 중얼거린 알바생이 허겁지겁 종이와 펜을 꺼내 내밀었다.
“사인 좀 해 주세요!”
아니,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명훈이 형이 아니라…… 나?’
얼떨떨해하며 고개를 돌린 내 시선에 원명훈의 얼굴이 들어온다. 건조한 눈빛과 딱딱하게 굳은 표정.
지금껏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그의 낯선 모습은 다음 순간 따뜻한 목소리와 함께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뭐 해? 사인해 드려야지.”
“네? 아, 네.”
……카페 조명이 너무 밝아서 잘못 본 거겠지.
나는 묘한 기시감과 함께 펜을 잡았다.
“뭐라고 써 드릴까요?”
알바생이 설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혜경 씨, 진우 씨와 예쁜 사랑 하세요. 라고 써 주세요.”
“…….”
이런 시벌.
* * *
처음의 어색한 공기도 잠시,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장장 이십여 분간 열정적으로 팬심을 어필했다.
“형도 아시다시피 A급 헌터 중에서는 창 쓰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잖아요.”
“음. 그렇지. 창으로 시작해도 나중에 검으로 바꾸는 사람들도 꽤 많았고.”
창은 다루기 쉬워 보여도 상당히 까다로운 무기다.
무기의 사거리에서 우위를 점하면 유리하겠지만 늘 그럴 수 없으니 문제.
중, 하급 게이트에서는 창으로 재미를 쏠쏠하게 보겠지만 상급 게이트는 생각지도 못한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다.
나만 해도 한 손 검에 방패를 낄까 고민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형은 뚝심 있게 쭉 밀고 가셨잖아요. 따로 교본도 만드시고.”
“오래전 얘기네. 그게 벌써…… 10년은 된 것 같은데.”
“네. 딱 10년 전이요. 저 고등학교 1학년 때였고 형은 랭커(Ranker)셨으니까.”
절정 고수 사이에도 실력 차가 있는 것처럼, A급 헌터도 마찬가지다.
국내에 존재하는 10만여 명의 헌터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난 100명을 지칭하는 단어가 바로 랭커다.
“그 교본, 나중에 훈련소에서 많이 참고했어요.”
“그래? 도움이 됐을지 모르겠다.”
“당연히 엄청나게 도움 됐죠.”
“그랬다면 다행이고.”
물론 그 교본이 먹힌 건 딱 하급 게이트까지였다.
현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무공이 발달한 무림에서야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당시에는 상당히 도움이 됐었지.’
하수의 눈높이에 맞춰서 제작됐다고 하면 설명하기 쉽다. 개미에게 호랑이의 움직임을 가르칠 수는 없는 법이니까.
한바탕 찬양 일색이 끝나자 원명훈이 미지근하게 식은 커피잔을 기울였다.
“다 지난 얘기지.”
“아직 짱짱한 현역이신데요, 뭘.”
“아냐. 랭커 자격 박탈된 지도 오래됐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많이 잊혀졌어.”
“……음.”
아까 그 일 때문인가?
안타깝긴 하지만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지난 8년간 원명훈을 대체할 만한, 혹은 그 이상의 스타 헌터들은 무수히 많이 배출되었고, 대중들은 더 화려한 불빛을 향해 환호했다.
“작년이 되어서야 겨우 다시 시작할 생각을 했어. 마침 은퇴를 앞둔 지인한테 길드도 하나 인수했고.”
“스타 길드요?”
안 그래도 아까 슬쩍 검색해 봤다.
스타 길드는 원명훈이 인수하며 변경한 이름이고, 그전의 이름은 인천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상당 규모의 중견 길드였다.
“그래, 기사 몇 줄 나긴 했는데 그게 끝이더라. 혹시 넌 알고 있었어?”
“작년이면…… 죄송해요. 그때는 제가 좀 바빠서.”
그때만 바쁜 게 아니라 지난 몇 년 동안 늘 똑같은 하루를 반복했다. 레이드, 고시원, 레이드. 하루가 끝나면 와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다시 몬스터와 싸우러 나갔다.
들었어도 금세 잊었을 것이다. 이미 내게 있어 원명훈이라는 존재는 좋은 추억이지 현재가 아니었으니까.
“죄송하긴 뭘.”
씁쓸하게 웃은 원명훈이 말을 이었다.
“나 같은 반짝스타가 한둘도 아니고. 그냥 내 한계가 딱 이 정도였던 거지.”
반짝스타라.
활동 기간이 짧았으니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틀린 말이기도 하다.
‘스타라니.’
몇 편의 영화와 드라마, 광고를 찍고 앨범을 낸다 해도 원명훈의 근본은 헌터다.
매우 희박한 확률을 뚫고 각성자가 되는 행운을 얻었고 덕분에 엄청난 부와 명예를 움켜쥐었다.
비록 안 좋은 사건을 겪긴 했지만…….
‘어쩌면 지금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게 아닌가?’
나는 내심 찝찝한 마음과는 달리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건 생각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구태여 말을 꺼내서 분위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군요.”
“그러던 중에 네 소식을 들었지. 대단하더라. 내 옛날 모습을 보는 것 같았어.”
“제, 제가요?”
“응. 인터뷰도 찾아서 읽었어. 내 열성 팬이라길래 반갑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랬지. 덕분에 몇 군데에서 방송 출연 제의도 왔고.”
“아아.”
내 인터뷰가 원명훈에게는 도움이 된 셈인가?
멋쩍은 웃음과 함께 턱을 긁적이던 그때였다.
덥석.
“태경아. 제안 하나만 해도 될까?”
“……형?”
내 손을 꽉 움켜잡은 원명훈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 길드로 옮겨라. 내가 책임지고 태경이 너, 스타 헌터로 만들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