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478
#477화
쉬쉬쉬쉭!
전후좌우.
사방을 점하며 쏘아지는 네 개의 신형을 알아챈 순간, 변이된 수신룡은 하나밖에 남지 않은 눈동자를 크게 떴다.
– 크륵!
도대체 언제?
비록 [광폭화] 상태에 빠진 수신룡이었지만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분노로 인해 마비된 이성과 크고 아름다운 거체에 깃든 강대한 힘은 이 괴이하고도 끔찍한 악물(惡物)로 하여금 상대를 과소평가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곧이어 들려온 누군가의 외침은,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감지하고 있던 마지막 이성의 끈을 싹둑 잘라 버리기에 충분했다.
“모두가 널 욕해도 난 네가 좋은 놈이라고 믿어. 왜냐하면 ‘모’난 구석이 없거든.”
– 크르르……!
성인 장정과 엇비슷한 크기의 동공에 흉광이 번뜩였다.
저 조그맣고 하찮은 인간이 뭐라 지껄였는지는 상관없다.
지난 수백 년간 자신의 자랑이자 훌륭한 무기요, 영혼의 동반자나 다름없던 수염을 모조리 뽑아 버린 그놈이라는 사실이 중요할 뿐.
죽인다. 저 빌어먹을 인간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일 것이다!
후우우우웅!
필살(必殺)의 의지가 실린 거대한 꼬리가 모든 것을 터트리며 나아갔고, 그 방향의 끝에 있던 한 사람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걸렸다. 개새끼.”
뭐라고?
변이된 수신룡은 찰나지간 전신을 엄습하는 한기를 느꼈지만 이미 한발 늦은 후였다.
엄청난 힘과 속도가 실린 꼬리를 회수하는 것은, 쏘아진 화살을 되돌리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것이었으니까
후우웅, 꽝!
맹렬하게 휘둘려진 꼬리에 모든 것이 으스러졌다.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던 절벽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터져나온 굉음이 모든 소음을 집어삼킨다.
그러나 변이된 수신룡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원수를 압살했다는 짜릿한 기분이 아닌, 불에 탄 듯한 통증이었다.
화륵, 푸푹!
아니, 그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다음 순간 변이된 수신룡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서서히 흩어지는 비바람과 흙먼지 사이, 자신의 크고 아름다운 꼬리를 정확히 관통한 청백색 화염이 깃든 창 한 자루를.
그리고 그 창을 틀어쥔 빌어먹을 인간 놈의 웃음을.
“잡았다.”
– ……!
* * *
우리 어머니는 자식 교육에 관대하신 분이셨다.
꼭 공부가 성공의 왕도라고 생각하지 않으셨고, 고등학교 시절 전 과목 7등급으로 슬롯머신 잭팟을 찍었던 성적표를 보시고도 짤막한 한 마디로 훈계를 마무리 지으셨다.
‘굉장하네, 우리 아들…….’
음. 다시 생각해 보니 이미 반쯤 포기 상태였던 것 같기도 한데.
어쨌건 그런 어머니조차 내가 어릴 적에는 책을 읽게 하셨다.
초등학교 때였나, 내가 영어 학습지로 종이비행기를 만들어 날리는 걸 보시고 이거라도 보라며 책 한 권을 내미셨는데 그 책의 제목이…….
아, 그래.
‘걸리버 여행기.’
공부에는 영 재능이 없던 나도 그런 류의 소설은 재밌게 읽었고, 때로는 소설에서 읽은 인상 깊은 장면들을 하연이에게 적용해 보기도 했다.
이를테면 소인국 사람들이 걸리버를 밧줄로 결박하는 장면이라든가.
‘엄마! 이것 좀 보세요! 제가 하연이를 붙잡았어요! 이제 얌전해요!’
‘으아아아아앙! 엄마아아아!’
‘안 돼! 하연아! 우리 딸!’
물론 호기심의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밧줄 대신 청테이프로 꽁꽁 묶인 어린 딸을 본 어머니는 비명을 질렀고, 효자손으로 불효자가 된 아들의 종아리를 때렸지만 나는 초등학생답지 않은 뚝심으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다만 내 허술함을 반성했다.
‘다음번에는 소리 지르지 못하게 입도 막아야지!’
아, 그리운 추억이여.
세월의 흐름에 따라 청테이프로 한참 어린 여동생을 꽁꽁 묶었던 악랄한 초등학생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지만, 그날의 기억만은 또렷하게 남아 있다.
언젠가는 걸리버를 소설 속 장면처럼 결박해 보겠다는 어린 시절의 야망도 함께.
푸푹!
그래, 바로 지금처럼 말이지.
나는 실현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동심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잡았다.”
– ……!
소인국 사람들이 걸리버를 묶었던 것보다는 잔인한 수법이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나는 놈의 꼬리가 날아오리란 사실을 예측하고 있었고, 크고 흉측한 그것이 몸을 후려치기 직전 피한 뒤 온 힘을 다해 창날을 박아넣었다.
백염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단단하고도 투명한 신병이기는 거대한 못이 되어 괴물의 꼬리와 지면을 동시에 관통했다.
아, 망치?
그야 당연히 내 주먹이지. 그리고 내 수중에 남아 있는 못은 아직도 아주 많다.
‘인벤토리 오픈, 소환.’
푸푸푸푹!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번개처럼 인벤토리에서 소환한 창 다섯 자루를 놈의 꼬리에 박아넣은 나는 망치 대신 주먹을 내리찍었다.
쾅! 쾅! 꽈앙!
고정 작업 완료.
힘차게 내지른 일권이 창대의 끝부분을 후려치자 예리한 창날이 지면 깊숙이 박히며 진동한다.
‘하연아, 보고 있니.’
그 광경을 바라보는 나는 짜릿한 쾌감에 몸을 떨었고, 변이된 수신룡은 고통으로 울부짖었다.
– 그워어어어어!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녀석의 비명은 섣부른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왜냐하면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던 세 사람이 지금 막 전력을 다한 공격을 쏟아부으려는 참이니까.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빠르게 도착한 한 사람이, 놈의 허리를 향해 일검을 휘둘렀다.
쉭-!
유령과도 같은 움직임과 내 눈으로도 완벽히 파악할 수 없는 쾌속함.
희끗희끗한 그림자로부터 튀어나온 눈부신 섬광을 막아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광폭화]로 인해 더욱 단단해진 비늘도, 무쇠처럼 질긴 살과 뼈도 예외는 아니었다.다름 아닌 살성(殺星)의 일검이니까.
서걱!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선명하게 귓가를 파고드는 한 줄기 절삭음.
누구보다 쾌속하고 간결한 일검으로 큰 타격을 입힌 문경의 신형이 잔상을 남기며 사라지고, 폭포수처럼 솟구치는 핏물과 함께 괴성의 아가리에서 고통에 찬 비명이 튀어나왔다.
– 쿠어어억!
비록 몸통을 완전히 절단하지는 못했지만, 단 일격으로 오분의 일에 가까운 두께가 갈려 나갔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다만 놈에게 한 가지 알려 주고 싶은 것은, 이게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아직 두 발 남았다.”
그리고 내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 석양을 닮은 자줏빛 강기가 어둠을 밝히며 쏘아졌다.
쉬쉬쉬쉭!
휘몰아치는 비바람 사이로 수십 송이의 홍매화(紅梅花)가 보이는 것은 결코 착각이 아니다.
화산파의 정수라 불리는 자하신공이 담긴 자줏빛 강기가 그려 내는 궤적은 눈에 익은 것이었다.
‘매화검법(梅花劍法).’
문경의 검이 표적을 일격에 절단시키는 예리한 작두라면, 청풍이 펼치는 매화검법은 수십 번에 걸쳐 베고 가르는 비수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 비수는 매화의 형태로 화하여 갈라진 상흔을 파고들고 있었다.
푸푸푸푹! 서걱!
덩치가 큰 상대를 쓰러트리는 법은 예상외로 간단하다.
뻗지 않고서는 못 배길 정도로 크고 강력한 한 방을 먹이든가. 아니면 때린 곳을 계속해서, 그것도 존나 아프게 때리는 거다.
그리고 변이된 수신룡이 몇 번째인지 모를 괴성을 내지르기도 전에, 그 두 가지를 모두 합친 한 방을 날릴 한 사람이 오고 있었다.
“썩 뒈지지 못하겠느냐, 이 애미애비 없는 악물 새끼야!”
나이는 엿 바꿔 먹은 듯한 걸쭉한 패드립과 함께 전장을 가로지르는 한 줄기 불꽃.
‘화왕(火王).’
구화산의 불법 거주민, 정마대전의 불쟁이. 달마대사 해골물에 버금가는 미친 배분과 더 화끈한 무공으로 무림을 씹어먹는 전국구 깡패.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고 눈앞이 후끈해진다.
‘에이, 시발.’
될 대로 돼라. 이미 말도 깠는데 뭘.
호랑이 등에 올라탄 마당에 더 이상 겁날 것도 없다.
나는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끼며 힘껏 외쳤다.
“가라, 화왕! 멸염신권!”
“이런 개호로……!”
누구한테 하는지 모를 욕설은, 다음 순간 터져 나온 거대한 굉음에 의해 파묻혔다.
화륵, 콰아아아!
주먹 끝에서 솟구친 불꽃이 모든 수분을 증발시키며 쏘아졌다.
초고온의 열기를 머금은 겁화(劫火)가 앞서 두 차례의 공격으로 쩍 벌어진 상흔을 헤집으며 모조리 불태우고, 살라 먹었다.
– 크아아아아아!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이 불에 의한 것이라고.
어느 누구라도 이 광경을 보면 그 말에 십분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불지옥이 연상될 만큼 온 사방에 가득한 열기와 매캐한 살 타는 냄새.
그리고 겁화에 휩싸인 채 몸부림치는 거대한 괴물.
– ……!!
지금껏 들어 본 적 없는 엄청난 괴성에 지면이 흔들리고 동정호의 강물이 밀려 나갔다.
고통으로 인한 몸부림이 얼마나 거센지, 창을 박아 넣고 힘껏 붙잡고 있던 나조차도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정도였다.
푸푹, 투두두둑!
정신을 차린 걸리버가 소인국 사람들이 묶어 놓은 밧줄을 풀었을 때, 몸을 일으키는 거인을 올려다보던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나는 경악하지도, 당황하지도 않았다.
“어쭈.”
어차피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극한의 원딜충, 아니 초절정 고수 셋은 내 지시를 완벽하게 수행했고 변이된 수신룡은 극심한 타격을 입었다.
이제 와서 꼬리에 박혀 있던 창을 뽑아내고, 워터 브레스를 모은다고 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쉬이이익, 탁!
허공섭물(虛空攝物).
다른 창들과 마찬가지로, 꼬리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허공으로 튕겨 나가던 백염이 손아귀에 빨려 들어온다.
나는 검푸른 핏물이 흐르는 백염의 창날을 들어 놈에게 겨누었다.
“지금부터…… 닥치는 대로 썰어.”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목소리는 용암처럼 뜨거웠고, 어느새 익숙해진 지시를 기다리고 있던 세 사람은 목줄이 풀린 맹수처럼 날뛰었다.
파팟!
적천강, 문경, 청풍. 그리고 나까지.
무림 최초이자 최강이라 불릴 만한 레이드 팀은,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괴물의 거대한 동체를 향해 쏘아졌다.
쐐애애액!
네 곳의 방향을 향해 걸음을 내딛는 네 명의 초인.
그리고 미증유의 기운이 실린 네 개의 강기가 있었다.
* * *
쉬쉬쉬쉭! 퍼걱!
화륵, 콰아아아!
동서남북. 상하좌우.
빠져나갈 틈도, 피할 수 있는 방향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다.
작은 산과 같은 거체는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표적이나 마찬가지였고, 너덜거리는 꼬리는 강과 지면을 뒤엎을지언정 섬광처럼 움직이는 신형에게 닿지 못했다.
변이된 수신룡.
수백 년간 몸집을 부풀려 온 이 타락한 존재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지금 이 순간 오히려 가장 큰 약점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 크롸아아아아!
깨트리지 못할 방패도, 열지 못할 문도 없다.
촌각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만큼 짧은 시간 동안 수십 줄기의 강기에 난도질당한 괴물의 육체는 참담할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위험하리만치 아름답던 칠흑빛 비늘은 산산이 부서졌고, 평범한 날붙이로는 흠집조차 낼 수 없는 단단한 살과 뼈는 온통 베이고 으스러진 지 오래.
콰륵, 촤아아악!
상흔으로부터 울컥 터져 나온 검푸른 핏물이 대지를 적셨다.
어느새 쉴 새 없이 내리치던 뇌성벽력도, 폭풍우와 같은 비바람도 서서히 멎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한 존재의 생명 역시.
서걱!
– 크륵…….
또다시 엄습하는 고통.
힘없이 몸부림치던 변이된 수신룡의 동공에 문득 한 존재가 비쳤다.
그건 낯익은 얼굴을 한 젊은 인간이었다.
자신의 원수나 다름없는, 반드시 죽여야 하는!
– 그워어어어어!
그리고 오직 한 사람, 진태경의 존재가 천천히 꺼져 가던 괴물의 마지막 힘을 끌어 올렸다.
고오오오옹-!
마지막 힘을 쏟아부은 일격. 누군가는 워터 브레스라 부르는 거대한 물의 구가 순식간에 완성되려던 바로 그때.
젊은 인간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변이된 수신룡은 착 가라앉은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고생했다.”
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