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112)
112화
필드, 일산 호수 공원에는 한 가지 규칙이 있다.
소란을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사냥할 것.
그 이유인즉슨, 물속에 필드 보스가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필드의 괴물을 모두 정리하고, 만반의 준비를 갖춘다.
그 뒤 소란을 일으켜 필드 보스를 끌어들여 사냥한다.
이게 일산 호수 공원의 정석적인 공략법.
하지만, 일이 틀어져도 너무 틀어졌다.
‘겔릭(Gellic)!’
겔릭은 거대한 두꺼비의 모습을 한 괴물이다.
크기는 약 3미터에 달했으며, 등과 배는 거북처럼 딱딱한 껍질로 둘러싸여 있다.
하지만 이 필드 보스가 가장 까다로운 점은 따로 있었다.
쿵!
육지에 겔릭이 내려앉았다.
당장 눈앞의 괴물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는지, 사냥꾼들을 겔릭을 인식하지도 못했다.
경고하지 않으면 분명 당한다.
김창환은 입을 벌렸다가, 도로 닫았다.
‘아니. 소리를 듣고 나부터 공격하면 어떡해.’
김창환이 경고를 주저하는 사이, 겔릭이 긴 혓바닥을 내밀었다.
긴 혓바닥이 르바의 길드원 하나의 몸을 휘감았다.
“어억!”
“뭐야!”
겔릭이 혓바닥을 회수하자, 길드원의 허리가 확 꺾였다.
힘이 얼마나 센지, 길드원은 공중에 떠서 그대로 끌려갔다.
“흐아아아악!”
겔릭은 그대로 길드원을 집어삼켰다.
길드원은 비명을 지르다가, 이내 침묵했다.
겔릭의 턱을 타고 진한 보라색의 점액이 꿀렁거리며 흘러내렸다.
겔릭이 까다로운 필드 보스로 불리는 이유는 바로 저 점액에 있었다.
소량으로도 코끼리 한 마리를 몇 초 만에 즉사시키는 맹독.
‘시발. 어떡하지?’
특히 사거리가 짧은 무기를 사용하는 헤드들은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싸우다가 자칫 독이라도 뒤집어쓰면 그대로 죽음이다.
하여 원래는 함정을 설치하고, 리어들이 화력을 쏟아 사냥한다.
하지만 지금 리어들은 당장 눈앞의 괴물을 상대하는 데 급급한 상태.
설령 김창환이 개입하더라도, 괴물이 워낙 많아 겔릭을 일점사하는 건 불가능했다.
“필드 보스다!”
겔릭이 사냥꾼 하나를 먹어 치우는 데 정신이 팔린 사이.
김창환이 큰 소리로 경고했다.
그제야 겔릭을 발견한 사냥꾼들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랄!”
“저게 왜 튀어나와!”
김창환은 창을 거꾸로 잡았다.
이목이 쏠린 지금이 타이밍이었다.
일산 호수 공원 공략 자체는 처음이지만.
이 기회를 잘 살리면 뚜렷한 공적 하나를 만들 수 있다.
“비켜!”
소리를 질러 자신과 겔릭 사이에 있는 사냥꾼들을 피하게 한다.
저 독 덩어리에게 가까이 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다행히 놈은 사람을 삼키는 데 집중한 상태.
그대로 창을 던져 넣어 죽인다.
“흐아아아압!”
앞으로 짧게 도움닫기 한다.
뒤로 젖혔던 창을 힘껏 내던진다.
쐐액!
창은 포물선을 그리며 정확히 겔릭을 향해 날아갔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겔릭의 목에 창이 꽂혔다.
“들어갔다!”
사냥꾼들의 눈에서 옅은 희망이 스쳐 지나갔다.
겔릭이 제대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지금의 비등한 전선은 무너진다.
겔릭의 개입으로 와해되는 건 당연하게도 괴물이 아닌 파로스와 르바 연합.
이번 공격으로 끝장을 내야만 했다.
목에 창이 박힌 겔릭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하아, 하아.”
마나와 힘을 과하게 사용한 김창환은 거친 숨을 내뱉었다.
온 신경이 겔릭의 생사에 쏠려 있었다.
겔릭은 죽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고개를 살짝 들어 삼키고 있던 사냥꾼의 다리가 미끄러지듯 겔릭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겔릭은 느리게 고개를 돌려 김창환 쪽을 봤다.
눈이 마주쳤다.
‘안 죽었다고?’
창이 목에 꽂혔음에도, 겔릭은 죽지 않았다.
제대로 보니 채 반도 박히지 않았다.
바위를 부술 수도 있는 김창환의 창이지만.
마나로 둘러싸인 괴물의 가죽은 바위보다 단단했다.
팍!
겔릭이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양서류 특유의 점프력으로 높이 올라간 겔릭이, 김창환의 눈앞에 쿵 내려앉았다.
겔릭의 그림자에 파묻힌 김창환은 저도 모르게 압도되어, 풀썩 주저앉았다.
“허억.”
창은 저 위에 꽂혀 있는 상태.
다른 사냥꾼은 도와줄 여력조차 없었다.
김창환은 처음으로 죽음과 직면했다.
“흐아아아아……!”
목구멍 깊은 곳에서 공포에 찬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겔릭은 빨갛고 까만 눈으로 김창환을 내려다봤다.
김창환은 생각했다.
죽는다.
‘어, 어?’
그때였다.
저 뒤쪽에서, 누군가 보였다.
스펙터의 길드장, 이서준이었다.
‘왜 여기에.’
한 개의 섬을 공략하기엔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저쪽도 괴물들에게 밀려 후퇴한 걸까.
그런 걸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이서준은 창을 든 손을 뒤로 젖혔다.
김창환이 했던 것과 똑같은 투창 자세.
목표는.
‘여기?’
이서준은 그대로 상반신을 튕기며 창을 던졌다.
도움닫기도 없었는데, 안정적인 자세였다.
힘을 그리 준 것 같지도 않았는데.
창이 쏘아졌다.
펑!
김창환은 순간적으로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냥꾼의 동체 시력은 일반인을 아득히 넘어서는 수준이다.
그런데, 김창환은 이서준의 창이 날아가는 걸 보지도 못했다.
과정이 생략되고 결과만 남은 것 같았다.
결과는, 겔릭의 몸이 폭발한 것이었다.
후드득.
겔릭이었던 것이 김창환의 발치로 떨어졌다.
김창환은 뇌가 기능을 멈춘 듯 멍하니 겔릭이 있던 자리를 쳐다봤다.
‘지금, 창으로 필드 보스를 폭발시킨 건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게 실제로 일어났다.
눈을 끔뻑이던 김창환은 그대로 기절했다.
* * *
김창환의 기절로 불리했던 상황이 순식간에 뒤집혔다.
순식간에 섬 하나를 공략하고 합류한 스펙터·까치 연합 덕분이었다.
그중에서도 길드 스펙터는 가히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는 무력을 선보였다.
짧으면 30분, 길게는 1시간까지 잡았던 필드 클리어에 소요된 시간은 불과 5분가량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조유일 길드장님. 기회 되면 다음에 뵙겠습니다.”
이서준은 처음과 똑같이 조유일을 대했다.
조유일은 멋쩍은 듯 악수를 받았다.
그제야 이서준이라는 이름을 기억할 수 있었다.
‘슈퍼 루키.’
소규모 길드인 만큼, 길드원 영입에 적극적으로 움직이진 않고 있지만.
각 라이선스 시험의 동향 정도는 체크하고 있었다.
이서준은 검성이 주목했다던 슈퍼 루키였다.
‘검성이 주목한 데에는 이유가 있구나.’
이서준의 무력은 이런 사냥터에 있을 수준이 아니었다.
한 명만 특출한 게 아니라, 스펙터의 모든 길드원이 그랬다.
아무리 낮게 잡아도, 이미 중견 길드와 엇비슷한 전력을 갖추고 있는 것 같았다.
‘왜 안 떴지?’
각각 개성도 충분할뿐더러, 무력까지 갖추고 있는 신생 길드.
사냥꾼 관련 뉴스나 방송에서 다룰 법도 했는데, 제대로 알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서준은 조유일과 악수하며 깍듯하게 인사했다.
“죄송합니다. 다른 길드랑 같이 공략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 민폐 끼친 것 같네요.”
“어? 예? 아닙니다.”
조유일은 당황했다.
이런 민폐는 언제든지 환영이었다.
사상자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중형 길드인 파로스와 그 대표인 김창환이 미숙한 것이 이유였다.
스펙터·까치 연합에는 사상자는커녕 몸에 흙 묻은 사람도 없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자, 잠시만요. 수익 분배라든지, 하고 가야 할 텐데?”
돌아가려던 이서준은 난색을 표했다.
곤란한지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뒤를 돌아본다.
“하이람 씨. 이거 어떡하죠?”
“그냥 가도 돼. 알아서 처리할게.”
총기를 사용하는 사냥꾼, 하이람이 고개를 까딱였다.
정장을 입은 남자 몇이 기다렸다는 듯 다가왔다.
“저희와 이야기하시죠.”
남자들은 정중하게 명함을 넘겼다.
명함을 받아 든 조유일은 경악했다.
‘하이테크 재무 팀이 왜 여기 있어?’
이서준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가 봐야 해서.”
“아니. 이렇게까지 급할 이유가 있습니까?”
당초 공략에 걸릴 거라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끝났다.
이렇게 사람을 고용하면서까지 어디론가 갈 일이 있단 말인가.
이서준은 지체 없이 차에 오르며 말했다.
“딸이 보고 싶어서요.”
* * *
정확히 한 달 후.
스펙터의 이름이 길드 랭킹에 올라왔다.
은혜는 신기하다는 듯 사냥꾼 협회 사이트에서 랭킹을 확인했다.
“신기하다. 구성원 목록에 내 이름도 있어.”
“그야 있지.”
“길드 마스터 이서준이래.”
은혜는 핸드폰을 보며 놀리듯 큭큭 웃었다.
솔직히 아직도 조금 떠밀린 듯한 감이 있긴 했다.
“왜 내가 길드 마스터일까.”
“그럼 너 말고 누가 하냐?”
“하이람 씨. 대호 형. 많잖아. 희연이나 네가 해도 되고.”
“이람 언니면 몰라도, 나는 진짜 아니다.”
은혜는 손사래를 쳤다.
은근히 센스가 있어서 오더를 맡아도 괜찮을 텐데.
낯가리는 성향 때문에 힘들까.
역시 하이람이 제격이긴 한데.
은근슬쩍 떠밀어 보려고 해도 도통 맡을 생각을 안 했다.
“엄마랑 아빠 이름.”
“여기 있네. 신기하다. 그렇지?”
“엄마랑 아빠가 오백 번째로 센 거예요?”
“국내 실적 순위니까. 전력을 평가한 건 아니긴 하지만.”
현재 스펙터의 길드 랭킹은 딱 500위로, 랭킹 끄트머리에 진입한 상태였다.
하이람과 고희연의 적극적인 활동 지원으로, 꽤 많은 던전과 필드를 오갔다.
그 결과, 제대로 활동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랭킹에 진입할 수 있었다.
누적 실적과 그달의 실적으로 평가하는 걸 생각하면, 정말 열심히 했다 싶었다.
‘새삼 말도 안 되는 일이네.’
이는 말도 안 되는 실적이 맞았다.
실제로 하이람을 통해서 인터뷰 요청이 몇 번 왔다고 한다.
다행히 길드원들과 합의한 끝에 거절하긴 했지만.
유명세를 얻는 것도 참 순식간이구나 싶었다.
조합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긴 했다.
‘옛날의 나였으면 꿈도 못 꿀 일이었는데.’
랭킹 진입은커녕, 라이선스 시험도 통과하지 못했을 때다.
참 그 격차가 크다고 생각됐다.
그 당시에는 나만큼 비참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빠.”
“응.”
“설아 놀아 주세요.”
“잠깐만. 아빠 이것만 하고.”
“흐잉. 언제 다 해요?”
“금방 해. 기다리고 있어.”
“네!”
요즘은 조금 피곤하긴 해도 행복했다.
무엇보다 설아만 보면 피로가 싹 풀리는 느낌이었다.
한 달 동안 ‘다섯 가지 불행’은 일어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던전이나 필드에서 자잘한 나비효과가 일어나긴 했지만,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평화로웠다.
그렇기에. 도리어 불안했다.
‘폭풍 전야 같네.’
폭풍이 오기 전날 밤이 제일 고요한 법이다.
에르제베트가 말한 폭풍이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하면.
언제까지고 평화로운 생활에 안주할 수는 없었다.
애옹.
설아 뒤에 있던 스승님이 책상에 훌쩍 뛰어 올라왔다.
하이람이 보낸 서류를 처리하고 있던 터라, 조금 곤란했다.
고양이가 키보드를 쳤다든지, 종이를 찢었다든지 그런 말들 많지 않은가.
물론 스승님은 얌전한 편이라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지만.
서류가 망가지면 하이람이 노발대발할 게 빤했다.
“잠깐 내려가 줄래?”
스승님은 꼼짝하지 않고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바닥에 내려놓으려고 스승님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이서준.”
스승님이 내게 말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