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99)
99화
“좋은 애 같아요.”
“내가 말했잖아.”
1층.
하정수와 백미경은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주제는 당연하게도 집에 찾아온 이서준이었다.
가만히 있던 백미경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후후. 하이람 씨. 하이라니.”
“유머 센스도 있는 친구야. 당차기도 하고.”
“저보고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이람이 언니 아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백미경은 기분이 좋은지 입을 가리고 웃었다.
아무래도 지위가 지위다 보니, 만나는 사람마다 딱딱한 면이 있었는데.
그런 농담은 진짜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틱.
그 순간, 불이 꺼졌다.
하정수와 백미경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아직 저녁이었지만, 바깥이 밝은 편은 아니라 뭐가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정전인가?”
“그러게요.”
“여기 있어. 내가 확인해 보고 올 테니.”
하정수 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나마 통유리를 통해 빛이 들어왔기에,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건 아니었다.
이상이 생긴 걸 알아차린 건지, 바깥에서 대기하던 경호원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경호원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려는 순간.
“억!”
누군가 경호원을 뒤에서 제압했다.
순식간에 뒤로 접근하더니, 목을 조인 것이다.
뒤를 잡힌 경호원은 버둥거리다가 그대로 축 늘어지고 말았다.
경호원을 제압한 괴한은 복면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하정수 회장은 눈을 크게 떴다.
“당신. 이쪽으로 와.”
“네? 아까는 여기 있으라면서요.”
“잔말 말고. 이상한 놈들이 들어왔어.”
하정수 회장은 인상을 찡그렸다.
경호 팀을 제압한 걸로 볼 때, 철저히 준비한 놈들이다.
한 가지 이점이라고 한다면, 하정수 회장이 먼저 저들을 눈치챘다는 것.
그리고 저들은 들켰다는 사실을 아직 모른다는 거였다.
‘전화선도 끊었을 거야. 핸드폰을 내가 어디에 뒀더라. 2층인가?’
하정수는 침착하게 대처 방법을 찾았다.
현관문 쪽에도 사람 그림자가 보였다.
아무래도 출입구는 이미 전부 막힌 상황.
‘2층으로 올라가서 보안 팀을 부르고 대기한다.’
지하에 있는 하이람이 걱정되긴 했지만.
큰 소리를 내서 경고하기에는 너무 위험했다.
저들이 들켰다는 사실을 몰라야, 천천히 잠행할 것이다.
그 시간을 최대한 이용해야 했다.
“2층으로 가야겠어. 발 조심해.”
“이람이는요?”
“흩어지는 편이 나을 거야.”
“하지만.”
“옆에 그 친구도 있잖나.”
하이람은 어쨌든 간에 사냥꾼이니 일반인인 하정수와 백미경보다 강하다.
옆에 이서준도 붙어 있으니 크게 걱정할 것 없을 것이다.
일단 보안 팀을 부르는 게 우선이었다.
* * *
“뭐야. 정전?”
“하이람 씨가 이상한 소리 하니까 전등도 어이가 없었나 봅니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내가 언제 이상한 소리를 했어.”
“멀쩡한 사람을 두고 고자라느니. 허 참. 어이가 없어서.”
“됐고. 그쪽 벽에 스위치 있으니까 찾아서 켜 봐.”
“불 안 들어오는데요?”
전등 스위치를 껐다 켜 봤지만, 불은 안 들어왔다.
하이람은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뭐가 보이긴 해? 어떻게 그새 찾았어?”
“네. 잘 보입니다.”
“무슨 고양이도 아니고.”
“사람입니다. 한 마리 키우게 되긴 했지만요.”
“근데 어떻게 보는 거야? 난 하나도 안 보이는데.”
“좋은 영약을 먹어서요.”
“나중에 뭔지 알려 줘. 나도 먹게.”
“어떻게 구하시게요?”
“사면 돼.”
아하, 그런 쉬운 방법이.
밤눈깨비가 보상으로 나오는 던전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돈이 있으면 이런 부분에서 참 편하긴 한 것 같았다.
“손전등 같은 건 없습니까?”
“있어. 잠깐만.”
하이람이 소총을 방출했다.
수납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달칵.
총구 옆쪽에 달려 있던 플래시 라이트를 켰다.
막 밝아지진 않았지만, 빛이 아예 없을 때보다는 더 잘 보인다.
“일단 올라가 보죠.”
나는 앞장서서 계단을 올라갔다.
하이람은 계단을 비추며 조심스럽게 나를 따라왔다.
1층으로 통하는 문 앞에 섰다.
‘인기척?’
맞은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하정수 회장과 백미경이겠지만.
나는 일단 하이람을 멈춰 세웠다.
“왜?”
“쉿.”
문에 바짝 귀를 댔다.
희미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느렸고 조심스러운 느낌이었다.
그야 시야가 밝지 않으니 조심스러운 것까지는 이해하겠지만.
‘기척을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는 건가?’
조심조심 간다기보다는 살금살금 가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불이 꺼졌다면 사람을 찾든지 할 텐데.
기묘하리만치 숨을 죽이고 있다.
나는 목소리를 죽인 채 하이람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이람 씨.”
“왜 목소리를 깔아. 징그럽게.”
“누가 들어온 것 같습니다.”
하이람은 인상을 썼다.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똑같이 속삭인다.
“경호원 아니야?”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데요. 잠시 불 좀 꺼 보세요.”
하이람이 플래시 라이트를 껐다.
슬며시 문을 열고 바깥쪽을 확인했다.
거실을 각각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다.
숨을 죽인 채 무언가를 찾고 있는 모양새였다.
다시 소리가 안 나게 조심스레 문을 닫았다.
“경호원이 복면도 씁니까?”
“당연히 안 쓰지.”
자택 바깥쪽은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을 텐데.
말인즉슨, 경비를 뚫고 들어왔다는 건가.
내 예상대로라면 우발적인 범죄는 아니다.
“혹시 원한 산 일 있습니까?”
“원한?”
“네.”
“으음, 글쎄, 없는데.”
하이람은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아주 없어 보이지는 않았다.
“전혀 신뢰가 안 가는군요.”
“아, 짐작 가는 부분이 하나 있긴 해.”
“뭔데요?”
“홍대입구역 그 새끼들 아닐까.”
홍대입구역이라면, 나와 하이람이 처음 만났을 때다.
칼을 들고 하이람을 피습했던 괴한들.
“어떻게 할까요?”
“일단 제압해야지.”
하이람은 직접 놈들을 제압할 생각인 것 같았다.
주저 없이 총을 방출해 손에 쥔다.
테이저건 같았다.
몇 개나 수납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었다.
“거들겠습니다.”
“그러면 좋고.”
내가 아는 한, 하이람의 자택이 습격받은 적은 없다.
물론 보고되지 않고 묻혔을 수도 있지만.
나비효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
내가 하이람을 구했기에 생긴 일일 수도 있다.
즉, 어느 정도 나한테도 책임이 있었다.
“그런데 이거 정당방위로 인정되는 거 맞습니까?”
“당연하지. 무단침입인데.”
“무단침입 해도 선빵 안 맞으면 정당방위 아니라던데요.”
“지랄. 아니라고 하면 내가 법원을 사서라도 정당방위로 만들어 줄게.”
“그거 개든든하네요. 알겠습니다.”
하긴 홍대입구역 사건 때도 그랬다.
경찰에서 내게 수사 협조를 요구할 법도 한데.
그냥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넘어가지 않았는가.
지금 생각해 보면 하이람이 힘을 쓴 것 같았다.
“근데 저는 무기가 없습니다.”
“어따 팔아먹었어?”
“팔아먹은 게 아니라, 타워에서 망가졌습니다.”
원래 그 얘기도 하려고 온 거다.
하이람은 다른 손에 뭔가를 방출했다.
경찰들이 사용하는 삼단봉이었다.
“이거라도 써.”
“그냥 총 주지.”
“쓸 수는 있고?”
“그럼요.”
“그래도 안 될걸. 따로 허가 안 받으면 범죄야.”
“그런가……? 그럼 이거 쓰는 법 좀 알려 주세요. 어떻게 펼치는 겁니까?”
“휘둘러.”
하이람의 말대로 손잡이를 잡고 휘두르니, 봉이 펼쳐졌다.
좀 신기했다.
‘무작정 가는 것도 조금 그렇긴 한데.’
일단 나는 이 집의 구조가 생소하다.
나보다는 하이람의 의견을 묻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고개를 돌리자, 기다렸다는 듯 하이람이 의견을 제시했다.
“나한테 계획이 있어.”
“뭔데요?”
“싹 조지자.”
“그런 걸 두고 보통 계획이 없다고 합니다.”
* * *
하정수 회장은 백미경과 함께 자택 2층으로 올라왔다.
빛 한 점 없는 상태에서 2층까지 올라오는 건 쉽지 않았다.
그나마 집이었기에 어떻게든 올라올 수 있었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달그락.
아래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놈들이 들어온 것 같았다.
하정수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
‘핸드폰. 핸드폰만 찾으면 돼.’
2층에는 더 짙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하정수 회장은 감각에 의존해 땅을 더듬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 다수의 사람이 위로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들도 집 안에 아무도 없자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이리로.”
하정수는 백미경과 함께 옆쪽에 있던 화장실로 숨었다.
백미경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화장실 문을 잠근 채 숨을 죽였다.
“여기도 없어?”
“뒤져 봐.”
괴한들은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하정수는 문 뒤로 바짝 붙었다.
인기척이 가까워졌다.
이윽고, 괴한 하나가 문고리를 잡았다.
덜컥.
문이 잠겨 있다는 건, 안에 누군가 있다는 뜻.
괴한이 문을 부술 기세로 흔들기 시작했다.
덜컥, 덜컥, 덜컥, 덜컥, 덜컥.
문이 앞뒤로 거세게 흔들렸다.
하정수는 세면대에 놓여 있던 컵을 잡았다.
문 흔들리는 게 멈췄다.
잠시간의 침묵.
쿵!
그리고, 괴한들이 문을 부술 기세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놀란 백미경이 몸을 움츠렸다.
하정수는 백미경을 자신의 뒤로 물렸다.
쿵! 쿵! 쿵!
문이 거세게 흔들리는가 싶더니, 기어코 열리고 말았다.
괴한 하나가 먼저 화장실 안쪽으로 들이닥쳤다.
하정수 회장은 들고 있는 컵을 힘껏 내리쳤다.
쨍강!
컵에 뒤통수를 정통으로 맞은 괴한이 앞으로 엎어졌다.
뒤이어 들어온 괴한이 손전등을 비췄다.
“이런 미친! 뭐야!”
“잡어!”
컵이 깨지면서 유리 조각에 손이 찔렸다.
하지만 하정수 회장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손전등을 든 괴한의 얼굴을 후려쳤다.
뻐억!
일격을 얻어맞은 괴한이 손전등을 놓쳤다.
바닥을 미끄러진 손전등은 아무것도 없는 욕조를 비췄다.
하정수는 백미경을 데리고 화장실 문을 돌파했다.
“이런 썅! 아무것도 안 보여!”
“불!”
하정수는 기어코 괴한들의 틈바구니를 뚫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잡았다!”
“꺄악!”
뒤따라오던 백미경이 붙잡혔다.
붙잡은 손을 당겨도, 이쪽으로 올 생각을 안 했다.
하정수는 다른 괴한들을 밀치기 시작했다.
그때, 화장실 안쪽에 있던 놈이 손전등을 잡아 비췄다.
‘아.’
수적 열세.
시야를 차단하기 위해 손전등 든 놈을 때린 거다.
이렇게 시야가 보인 시점에서, 하정수 회장은 이길 수 없었다.
더불어 백미경이 잡힌 상황에서 도망칠 수도 없었다.
퍽!
괴한 하나가 달려들어 하정수 회장을 넘어트렸다.
하정수는 몸부림치며 반항했지만, 여럿이 달려드니 힘쓸 도리가 없었다.
백미경이 소리를 지르려는 순간, 다른 괴한이 백미경의 입을 틀어막았다.
철컥.
백미경은 목 아래로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을 느꼈다.
권총의 총구가 백미경의 턱 밑에 있었다.
“……너희들 뭐야.”
“움직이거나 소리 내면 죽어. 가만히 있어.”
스산한 목소리에, 백미경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아래에서 소란이 들려왔다.
퍽! 쿵!
괴한들이 고개를 돌렸다.
1층과 2층을 잇는 계단.
누군가 올라오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팅.
계단 아래에서 날아온 무언가 괴한들 앞에 떨어졌다.
손전등으로 그 물건을 비췄다.
그 정체를 알아본 하정수 회장은 바로 눈을 질끈 감았다.
괴한 하나가 중얼거렸다.
“섬광탄?”
떨어진 물건의 정체는, 핀이 뽑힌 섬광탄이었다.
괴한들이 채 반응하기도 전에, 섬광탄이 터졌다.
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