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88
1088회. ‘그만해 개자식아!’라고 우리 부단장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오가 놀리듯 말하자 파비안이 억울하다는 얼굴로 변명했다.
“누가 술집을 돌아다녔다고 그러십니까? 중대장 취임하던 날 소위들과 회식하러 왔다가 알게 된 가겝니다.”
“그런 것치고는 주문이 너무 자연스럽던데?”
“그 뒤로 기수와 한 번 더 왔습니다.”
“다섯 번쯤 왔다는 소리네?”
“두 번 온 게 전부라니까요?”
“응, 그렇게 말하고 싶겠지.”
엘리오가 주장을 꺾지 않자 파비안이 졌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솔직히 세 번 왔습니다.”
파비안의 표정을 본 엘리오는 더 이상 다섯 번을 밀어붙이지 않았다.
“이 집 비싸지 않냐? 무려 석조 건물이잖아. 술도 제도에서 유행하는 거라면서?”
“맥주요? 그건 쌉니다. 안주가 비싼데, 비싼 값을 합니다.”
“맛있냐?”
“제도 사람들 입맛에 맞게 개량한 요리라는데 전체적으로 끝내줍니다.”
“그래서 얼만데?”
“맥주 두 잔과 닭 한 마리가 1실버 40코퍼입니다. 맥주가 20코퍼, 닭 요리가 1실버.”
“와, 닭 한 마리가 얼만데 1실버를 받아?”
“닭 한 마리는 20코퍼쯤 하죠. 비싼 것 같지만 맛을 보면 그런 생각 안 하실 겁니다.”
엘리오의 입이 쩍 벌어졌다.
100코퍼가 1실버니 닭 한 마리 값의 다섯 배를 받는 셈이다.
닭 요리가 얼마나 대단하기에 그렇게 비싼지 놀라울 뿐이다.
호기심에 주변 탁자 위를 살펴보니 훈제부터 구이에 튀김까지 온갖 요리가 가득했다.
“너 월급 얼마 받냐?”
“50실버요. 기사단에서는 얼마 받으십니까?”
“1골드.”
“와우! 엄청 받으시네요?”
파비안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1골드가 100실버니 자신이 받는 월급의 두 배나 됐기 때문이다.
“거기다 후작가에서 품위 유지하라고 50실버 추가로 더 주더라.”
“그럼 1골드 50실버예요?”
“어.”
“부럽습니다. 매일 여기 와서 맥주와 안주를 먹어도 되겠네요.”
“먹어 보고 그런 말 하자. 내 입맛이 좀 까다롭다는 것만 알아 둬라.”
“이런 좋은 데를 왜 이제 알려 줬냐고 화내지나 마십쇼.”
“얼씨구?”
“맥주와 안주보다 더 좋은 것도 있습니다. 사실 그것 때문에 여기 오는 기사들도 많습니다.”
“더 좋은 게 뭔데?”
“미녀 바르도스가 나오는데 진짜 끝내줍니다.”
“바르도스?”
“시를 노래하는 사람[吟遊詩人]인데 요즘 제국에서 가장 인기가 있답니다.”
“아, 술집에서 악기 연주하고 노래하는 거?”
엘리오는 기루에서 노래하던 예인들을 떠올렸다.
확실히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한 것 같다.
“맞습니다. 보신 적이 있습니까?”
“고향에 있을 때 자주 봤다.”
“와아! 야인 부락에도 바르도스가 있다는 건 몰랐네요! 충격이다. 나는 여기 와서 처음 봤는데. 내가 부단장님보다 더 미개한 생활을 했네요.”
파비안이 놀란 눈으로 엘리오 부단장을 보았다.
바르도스가 제국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야인 부족에까지 퍼져 있었다니!
“뭘 그렇게 놀라? 칼춤 추면서 노래하는 사람까지 보면 뒤집어지겠네.”
“악기 연주가 아니라 칼춤을 추면서 노래를 한다고요?”
“어. 장난 아냐. 칼날이 눈앞에서 번득거린다고 생각해 봐.”
“심장이 쫄깃해지네요. 그래서 부단장님 검술이 그렇게 대단했구나.”
파비안은 엘리오가 살았던 부족이 상당히 호전적이라 생각했다.
얼마나 호전적이면 비파 대신에 칼을 휘두르며 노래를 할까!
파비안이 감탄의 눈으로 엘리오 부단장을 볼 때 술과 요리가 나왔다.
맥주와 닭 요리를 놓고 돌아가려는 여점원에게 파비안이 물었다.
“아가씨. 오늘 공연은 언제 하나?”
“곧 시작할 거예요.”
“오늘 나오는 바르도스가 누군지 혹시 알 수 있을까?”
“에리카 양이예요.”
“오오! 미성의 에리카?”
“네, 자주 오셨나 봐요? 몰라봬서 죄송해요.”
엘리오가 한마디 툭 던졌다.
“다섯 번 왔답니다.”
“…….”
웬일인지 파비안은 부인하지 않았다.
다섯 번 왔다는 말에 공손하던 여점원의 태도가 더욱 상냥해졌다.
“단골이셨네요. 다음에 뵈면 꼭 인사드릴게요.”
젊은 여점원이 파비안에게 생긋 웃어 보이고 종종걸음으로 돌아갔다.
엘리오가 그런 파비안을 보며 말했다.
“세 번 왔다면서?”
“부단장님 모시고 한번 왔으니까 앞으로 한 번만 더 오면 다섯 번 채워집니다.”
“진짜 단골 되려고?”
“오늘 나오는 바르도스를 보면 부단장님도 푹 빠질 겁니다.”
“세라 양은 어쩌고? 둘이 잘되는 거 아니었어?”
“여기서 왜 세라 양의 이름이 나옵니까? 에리카 양의 노래를 들으면 부단장님도 단골 되실 겁니다.”
“세라 양하고 같이 에리카 양의 노래를 들은 적은 없지?”
“당연하죠.”
“너 진짜 뻔뻔하구나.”
“문화생활을 즐기는 거뿐입니다.”
두 사람이 노닥거리며 맥주 반 잔을 비울 즈음 이십 대 초반의 미녀가 비파를 안고 나왔다.
“와아아!”
“휘익!”
“에리카! 사랑한다!”
일 층 곳곳에 자리 잡고 있던 기사들이 환호성과 함께 휘파람을 불어 댔다.
무대 중앙의 의자에 앉은 에리카가 비파를 무릎에 올리고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디리링―.
아름다운 비파의 선율이 술집 안에 울려 퍼졌다.
이윽고 그녀의 노래가 시작됐다.
고요해진 술집 안에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떠다녔다.
엘리오는 뚱한 얼굴로 노래를 들었다.
곡조가 강호와 너무 달라 처음에는 ‘이게 뭐지?’ 싶었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제 대륙 공용어가 어느 정도 귀에 들어와서 그런지 가사까지도 가슴을 후려쳤다.
당신은 어디에 있나요?
힘들고 지쳐 모든 걸 놓아 버리고 싶을 때 당신을 생각합니다.
봄이면 온다더니 벌써 겨울이네요.
푸르르던 나뭇잎도 모두 떨어지고 이제 얼어붙은 가지만 남았습니다.
당신은 어디에 있나요?
반복되는 노랫말을 듣던 엘리오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하아…….”
가사가 마치 자신의 신세를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번 그렇게 생각하니 그 뒤로 바르도스의 음성만 들어도 콧잔등이 찡했다.
‘울컥’해진 엘리오가 감정을 추스를 동안 서정적인 노래가 끝났다.
기사들이 열렬히 박수를 치며 ‘와아아!’ 환호성을 내질렀다.
연이어 기사를 찬양하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기사들이 바르도스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걸 보면 제법 유명한 노래 같았다.
파비안까지도 흥얼거리자 엘리오가 물었다.
“아는 노래냐?”
“알죠. 기사 아카데미에 가면 제일 먼저 배우는 노랩니다. 제국의 기사 하네스 크나우프 대공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진 노래거든요.”
“제국의 기사면 왕국의 원수 아냐?”
“기사도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마음도 넓네. 다 너처럼 하네스 크나우프 대공에게 관대해?”
“거의 대부분 그렇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 하네스 크나우프 대공을 국빈으로 초대한 왕국도 많습니다. 그분이 대륙 기사들의 최고봉이었으니까요.”
“관대하네.”
“모두가 그런 건 아닙니다.”
파비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손님 중 하나가 소리를 버럭 내질렀다.
“더는 못 들어 주겠군! 북부에서 제국의 전쟁광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다니 미친 거냐! 그만 하라고! 씨발!”
“…….”
노래가 멈췄다.
노래를 따라 부르던 기사들이 화가 난 얼굴로 소리친 사람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에리카도 놀란 눈으로 손님들을 살폈다.
탈린 왕국 레이지 기사단의 부단장 한스 홀트 자작이 흥분한 기사단장을 대신해 한마디 했다.
“에리카 양. 우리 백작님이 제국이라면 치를 떠니 다른 노래로 부탁하지.”
에리카는 어쩌다 그런 경우도 있는 터라 얼른 노래를 바꾸었다.
아름다운 목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졌다.
기사들은 다시 술을 홀짝이며 그녀의 노래에 빠져들었지만 엘리오는 그러지 못했다.
백작의 호통에 한번 식은 흥취는 좀처럼 되살아나지 않았다.
몽롱한 얼굴로 듣던 파비안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노래 정말 좋지 않습니까?”
“좋긴 하네.”
“히르헤라에 배치받았을 때 다 때려치우고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했는데……. 끝까지 버티길 잘한 것 같습니다. 고향에 있었으면 이런 노래도 못 들었을 거 아닙니까.”
“너도 바르도스를 하지 그래?”
“저는 노래가 안 됩니다.”
“아까 흥얼거리는 거 들으니 그렇기는 하더라.”
잠시 후 노래가 끝났다.
노래를 마친 에리카는 무대에서 내려가 호통을 쳤던 손님들 자리로 걸어갔다.
그런 그녀를 보며 파비안이 말했다.
“매너도 좋네요. 손님이 기분 나빠 하는 것 같으니 사과를 하러 가는가 봅니다. 왕국의 기사 아카데미에서 가르치는 노래를 부른 것뿐인데……. 에혀! 사람 마음이 다 같은 건 아닌가 봅니다.”
“크나우프 대공에게 원한이 깊으면 그럴 수도 있지.”
“뭐, 그럴 수도 있겠네요. 백작이라니……. 선친이나 조부가 크나우프 대공과 싸우다 전사를 했을지도. 대단한 검사 가문인가 봅니다.”
사실 평범한 기사들은 하네스 크나우프 대공과 검을 마주할 일도 없다.
어쩌면 그래서 왕국의 기사들이 그를 흠모하는지도 모른다.
직접적인 원한이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저 백작의 가문이 검술의 명가일 가능성이 짙었다.
파비안이 백작의 가문을 추측하며 주절거릴 때, 돌연 뾰족한 여자의 비명이 들려왔다.
“악!”
기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소리를 향했다.
탈린 왕국 레이지 기사단 단장 빅토르 케른 백작이 에리카의 손을 움켜잡고 윽박질렀다.
“누구 앞이라고 감히 소리를 지르느냐! 누가 너를 잡아먹기라도 한다더냐? 잠시 옆에 앉아 술 한잔 따르라면 따르지 뭐가 그렇게 안 되는 게 많아!”
“바르도스는 노래만 부른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알아! 무대에서 내려왔으면 더 이상 바르도스도 아니잖느냐. 너는 침대 위에서도 바르도스니 노래만 부르겠다고 할 셈이냐?”
“크크큭!”
기사단장의 말에 부단장 한스 홀트 자작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저는 백작님의 시녀가 아니에요. 놓아주세요.”
“시녀였으면 바락바락 대들지도 못했겠지. 네가 진심으로 잘못했다고 생각한다면 술이나 한잔 따르라니까.”
“어느 왕국의 백작님이신지 모르겠지만 부디 체통을 지켜 주세요.”
순간 자존심이 상한 빅토르 케른 백작은 여자를 확 잡아당겨 무릎 위에 앉혔다.
“아악! 놔요!”
에리카가 버둥거렸지만 빅토르 케른 백작은 오히려 껄껄 웃으며 그녀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불콰하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니 꽤나 취한 것 같았다.
주변의 기사들은 불편한 눈으로 쏘아보았지만 감히 나서지 못했다.
미녀 바르도스에게 주사를 부리는 상대가 무려 백작인 탓이다.
비단 작위의 높음만이 문제가 아니다.
만약 작위를 세습받은 게 아니라면 그의 검술은 최소한 소드 익스퍼트.
평범한 기사들에게 소드 익스퍼트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악몽과도 같았다.
그때 파비안이 들고 있던 맥주잔을 거칠게 내려놓으며 소리쳤다.
“그만해! 개자식아!”
그의 호통에 술렁이던 술집은 한순간 숨소리도 나지 않을 정도로 조용해졌다.
기사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파비안은 얼른 말을 이어 나갔다.
“라고 우리 부단장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오가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내가 언제?”
“‘너에게 바르도스는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다’라고도 하셨지요.”
“내가?”
“예, 똑똑히 들었습니다.”
“미친 거 아냐?”
“아닙니다. 백작을 보는 부단장님의 눈빛은 분명히 그랬습니다.”
“아닌데? 나는 그냥 ‘저 병신은 뭐지?’ 그러면서 봤는데?”
순간 기사들의 시선이 빅토르 케른 백작에게 향했다.
졸지에 병신이 된 빅토르 케른 백작은 잡고 있던 여자를 풀어 주고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