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15
1415회. 출세하니까 눈에 뵈는 게 없지?
조정의 실세답게 남옥 대장군부는 넓었다.
정문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는 동안 지나친 전각만 십여 채.
고진 총관의 걸음은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조금씩 빨라졌다.
뒤따르는 사람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걸음걸이다.
자연히 연적하와 고진의 거리도 미세하게 벌어졌다.
월동문을 지나 안쪽 마당에 이르자 고진은 아예 대놓고 뛰었다.
결국 안쪽 마당에 연적하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빤한 노림수에도 연적하는 서두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걸음을 늦추기까지 했다.
순간 앞쪽과 좌우편 전각 지붕에 은신하고 있던 병사들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정면의 병사들이 조총을 든 반면, 좌우편 병사들은 석궁을 들고 있었다.
타앙―!
누군가 방아쇠를 당기자 이십여 개의 조총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타타타탕! 타앙―!
거의 동시에 석궁병들도 화살을 발사했다.
쉬쉬쉬쉭―!
그러나 탄알과 화살은 연적하의 몸에 닿지 않았다.
마치 철벽에라도 부딪힌 듯 뒤쪽이나 사선으로 튕겨 났다.
투두두둑! 투둑―!
수십 개의 탄알과 화살이 얼어붙은 땅 위에 떨어져 내렸다.
공격 당사자들은 흠칫했지만 이내 다시 장전에 들어갔다.
연적하는 피하지도 않고 아예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장전을 마친 조총병과 석궁병 들이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동시에 연적하의 손이 허공을 움켜잡았다.
탕! 타타타탕―!
쉬쉬쉬쉭―! 쉬쉭―!
이번에는 탄알과 화살이 밖으로 튕겨 나지 않았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탄알과 화살은 연적하의 몸 주변 허공에 떠 있었다.
조총병과 석궁병 들은 홀린 듯한 얼굴로 그 기괴한 광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실책이었다.
연적하가 말아 쥐었던 손을 펼치자, 탄알과 화살이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퍼퍼퍼퍽―!
짧은 비명과 함께 조총병들과 석궁병들이 주저앉았다.
어떤 이들은 직격당한 충격에 지붕에서 굴러떨어지기도 했다.
단번에 조총병과 석궁병 들을 쓰러뜨린 연적하는 총관이 사라진 방향으로 걸어갔다.
월동문 뒤에 숨어 마당을 보던 고진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그는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진 일들이 믿어지지 않았다.
사람이 어찌 맨몸으로 조총과 석궁을 막아 낼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손짓 한 번으로 총탄과 화살을 튕겨 내다니?
그건 ‘무림 고수가 한 걸음에 십 장(약 30미터)을 가더라’는 허튼소리보다 더한 것이었다.
고진은 연적하가 다가오자 급히 몸을 돌려 달아나려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마치 거미줄에라도 걸린 것처럼 손가락 하나 까딱일 수 없었다.
아무리 용을 써도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어찌나 놀라고 당황했는지 심장 쿵쾅거리는 소리가 귀를 울렸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고진에게 다가간 연적하가 말했다.
“어이, 형씨. 안으로 모시겠다면서 왜 혼자 가? 내가 걷는 속도에 맞춰 줘야지. 지금 나더러 당신처럼 뛰라는 거야? 나 내일모레면 오십이야.”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마음이 급해서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이 사람 솔직하지 못하네. 마음이 급했어? 마음 두 번 급하면 금군도 불러오겠네. 아주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사는구나. 형씨를 보니 재승이가 어떤 놈인지 안 봐도 알겠다. 에혀! 빨리 앞장서.”
말과 함께 연적하가 발로 고진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그제야 굳어 있던 몸이 풀린 고진은 허둥지둥 안채로 걸어갔다.
잠시 후 고진은 충허전(充虛殿)이라는 편액이 걸린 전각 앞에서 멈춰 섰다.
“대장군님, 남천 대협을 모시고 왔습니다.”
고진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남옥 대장군 양재승이 문을 열고 마루로 나왔다.
양재승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슬쩍 월동문과 근처 지붕을 살폈다.
그러나 근 오십여 명의 군사를 배치했는데 단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뒤이어 그의 시선이 연적하를 향했다.
방금 집을 나선 사람처럼 차림새가 단정하고 깨끗하다.
조총 소리가 그토록 요란했는데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게다가 저 뻣뻣한 총관이 ‘남천 대협’이라니?
이해할 수 없는 일투성이지만 양재승은 내색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어서 오시오. 처음 뵙는구려. 내가 남옥 대장군 양재승이외다.”
이십 년 전 명위장군에 제수된 이래 청년에게 양재승이 먼저 인사를 건넨 적은 없다.
게다가 정중하기까지 하다.
조정의 대신들이 봤다면 오래도록 회자될 광경이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상대의 반응이 더 놀라웠다.
“양재승이. 출세하니까 눈에 뵈는 게 없지? 죽고 싶냐?”
“…….”
시장통 건달들이나 사용할 법한 협박에 양재승은 한순간 말을 잃었다.
무과를 준비하던 소년 시절에도 듣지 못한 폭언을 대장군이 되어서 듣다니!
그렇지 않아도 난마(亂麻)처럼 얽혀 있던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졌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양재승이 버럭 소리쳤다.
“너 이놈! 무엄하구나! 네놈이야말로 어리석은 사람들이 무림의 고수라고 떠받들어 주니 눈에 뵈는 게 없느냐! 정녕 죽고 싶은 것이냐!”
‘어리석은 사람들이 떠받들어 주는 것’은 양재승이 무림인을 보는 눈이었다.
양재승의 일갈에 연적하는 잠시 눈만 끔뻑거렸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딱 그랬다.
너무 기가 막혀서 화도 나지 않았다.
연적하가 속으로 ‘저걸 어떻게 하지?’ 생각할 때 고진이 나섰다.
“대장군님! 말씀을 삼가하십시오! 남천 대협은 대장군님이 생각하는 그런 부류의 무림인이 아니십니다!”
당돌한 직언과 함께 고진은 머리를 격하게 흔들었다.
‘안 됩니다! 그러다 진짜 다 죽습니다!’
양재승이 황당한 눈으로 고진을 보았다.
평소 자신만큼이나 무림인들을 경원시하는 고진이었다.
그런 고진이 미친 개에게 물린 사람처럼 나대니 머리가 멍해졌다.
바로 그때다.
돌연 연적하가 유령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양재승과 고진이 눈을 끔뻑일 때 어느새 연적하는 양재승의 옆에 나타났다.
곧이어 양재승의 뒷덜미를 잡고 마당으로 내려오더니, 이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이 모두가 눈 한 번 깜짝일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으아아악―!”
양재승의 비명이 겨울의 차가운 하늘에 울려 퍼졌다.
어기충소의 신법으로 근 오십여 장(약 150미터)이나 올라간 연적하가 양재승에게 물었다.
“눈에 뵈는 게 없다고 했냐?”
“사, 살려 주시오!”
양재승은 연적하의 팔을 잡으려고 버둥거렸지만 손이 닿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격렬한 움직임에 그만 옷이 찢어지고 말았다.
“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떨어져 내리던 양재승의 몸이 어딘가에 덜컥 걸렸다.
연적하가 이형환위의 신법으로 내려와 그의 허리를 잡아챈 것이다.
지면에서 불과 삼 장(약 9미터) 정도 위의 위치였다.
목이 쉬었는지 양재승은 꺽꺽거리기만 할 뿐 말을 하지 못했다.
연적하는 그런 양재승을 옆에 끼고 지상으로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강호에 전설처럼 전해지는 허공답보(虛空踏步)다.
고진은 뜨악한 얼굴로 연적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무림인들의 허풍이나 과장이라 생각했던 일들이 눈앞에서 일어났다.
총탄과 화살을 막은 것은 비교할 게 아니었다.
사람이 새처럼 하늘을 날아오르고, 허공을 걷기까지 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알던 세상의 상식과 너무도 달랐다.
지상에 내려온 연적하는 양재승을 마치 짐처럼 마당에 휙 내던졌다.
철퍼덕!
찰진 소리에 고진이 자세히 보니 양재승의 하체가 축축하게 젖어 있다?
깜짝 놀란 고진은 재빨리 다가가 자신의 겉옷을 벗어 양재승의 하체를 가렸다.
이윽고 양재승이 고진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이미 오줌까지 지린 마당이라 더는 뻣뻣하게 굴지 않았다.
그사이 마루 위로 올라간 연적하는 의자 하나를 꺼내 와 앉았다.
양재승과 고진은 마치 현령 앞에 끌려 나온 양민처럼 어깨를 움츠리고 섰다.
“양재승.”
“……예.”
양재승이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답하자 연적하가 눈을 찌푸렸다.
“목소리 봐라. 한 번 더 올라가고 싶냐?”
“아닙니다!”
깜짝 놀란 양재승이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우리 재승이, 벼슬이 올라가니까 눈에 뵈는 게 없지?”
오랜만에 연적하는 녹림에서 하듯 했다.
“아닙니다!”
양재승은 체통도 잊고 크게 외쳤다.
두 번 다시 하늘로는 끌려 올라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운이 좋아 살았지 연적하가 조금만 늦게 잡았어도 자신은 죽은 목숨이었다.
연적하라는 인간이 자신의 생사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알았으니 무조건 땅바닥에 붙어 있어야 했다.
“그런데 왜 나한테는 그런 편지를 보냈을까? 뭐? 역모는 중죄라 사사로이 놓아줄 수 없다고? 너도 주둥이가 있으면 말해 봐. 그게 지금 나한테 할 소리야?”
“……역모가 중죄인 것은 사실입니다.”
말을 하고도 양재승은 불안한지 연적하의 눈치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연적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야 이 개새끼야! 내 매제 진우생이 역모를 꾀해? 내 손가락 하나로 황궁은 물론 너희 벼슬아치들까지 싹 다 가루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데, 그걸 아는 진우생이 퍽도 다른 사람과 역모를 꾀했겠다.”
말과 함께 연적하가 검결지를 세웠다.
순간 무지막지한 공기의 파동과 함께 고막이 울렸다.
고오오오―!
남옥 대장군부의 하늘 위에 태양을 가릴 정도로 거대한 검이 나타났다.
양재승과 고진이 입을 쩍 벌릴 때다.
연적하가 검결지를 아래로 내리긋자 거대한 검이 남옥 대장군부에 뚝 떨어졌다.
콰드드드득―!
남옥 대장군부의 절반이 칼로 자른듯 잘려 나갔다.
검에 직격당한 십여 채의 전각들이 무너져 내렸고, 얼어붙은 땅까지 일 장(약 3미터) 깊이로 움푹 꺼졌다.
남옥 대장군부를 가른 칼은 이내 빛을 내며 사라졌다.
“네놈 말대로 정말 진우생이 역모를 꾀했다면 나부터 찾아왔을 거다. 그런데도 계속 역모 운운할 테냐?”
“소, 송구합니다!”
연적하의 신위에 놀란 양재승은 머리를 땅에 처박았다.
고진 역시 제 주인을 따라 머리를 땅에 박고 ‘송구합니다’ 외쳤다.
“이번 일이 네놈의 장난질이라는 걸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느냐?”
“…….”
양재승은 감히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도 문제요, 아니라고 해도 문제인 까닭이다.
“인마. 내가 녹림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야. 내 앞에서 잔대가리 굴리다가 골로 간 놈들이 한둘인 줄 알아?”
사실 녹림만큼 모략과 궤계가 난무한 곳도 없다.
그야말로 눈 뜨고 코 베이는 곳이 녹림이다.
그런 곳에서 총순찰까지 지낸 연적하에게 인간 불신은 당연했다.
“양재승이.”
“예!”
“우리 매제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 네놈들 모략질에 이용당해 고통받으면 되겠어? 내가 황제를 위해서 칼춤 한번 춰 줄까?”
“아, 아닙니다! 당장 무죄 방면하겠습니다!”
양재승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연적하가 황제에게 붙는 것보다 끔찍한 일도 없기 때문이다.
“나 화나게 하지 마. 내가 이십 년 전에는 ‘황제의 숨겨진 칼’이라고 불리던 사람이야.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모두가 저의 불찰입니다! 진우생의 일은 제가 바로잡겠습니다.”
고고하던 양재승은 땀을 뻘뻘 흘리며 연적하의 비위를 맞췄다.
연적하가 차가운 눈으로 양재승을 노려보며 말했다.
“기회를 주지. 날 풀리기 전에 모두 원래대로 돌려놔. 안 그러면 너희들 어깨 위에 달린 걸 내려놔야 할 거야.”
기회를 준다는 말에 양재승의 얼굴이 살아났다.
“믿고 맡겨 주십시오!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