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82
82화 10초의 미학
다음날 스튜디오에는 유명인사가 찾아왔다.
사진작가 양승환.
10년 이상 영화 포스터 분야에 있어서는 항상 탑에 올라와 있고, 패션화보나 광고 쪽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분이다. 난 사실 얼굴은 알지 못했지만, 같이 출근한 미선 선배가 ‘승환 오빠’하며 달려가길래 눈치챌 수 있었다.
“넌 언제까지 여기에 있는 거야. 슬슬 독립해야지.”
양승환 씨가 미선 선배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둘 사이에 꽤 친분이 있어 보인다.
“그게 쉽나요. 점점 작아지는 사진 시장에 준비도 없이 무턱대고 나갈 용기가 없어요.”
“ 스틸 컷 잘 봤어. 윤 감독님도 만족해하시더라. 점점 포스터를 스틸 컷으로 대체하니까 이제 나 같은 사람은 먹고 살길이 없어지고 있어.”
“아직 많이 부족해요. 그래도 해볼수록 느는 게 느껴지니까 좋더라고요. 그리고 뭐 승환 오빠는 작년에도 포스터 작업 줄기차게 하셨는데 무슨 엄살이세요. 거대 자본 들어간 건 대부분 오빠 스튜디오로 몰리는 거 다 알아요. 그런데 웬일이세요?”
“빨리도 물어본다. 웬일이긴 저번에 선생님이 부탁한 일 하려고 온 거지. 몇 달 전에는 정말로 시간이 없었거든, 이제야 시간이 좀 나서 온 거야.”
양승환 씨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우리들의 눈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전혀 모르는 눈치구나.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거기 서 있는 친구는 이름이 뭔가?”
양승환 씨가 나를 보며 얘기했다. 난 그의 앞으로 다가가 인사를 했다.
“길승우라고 합니다. 작년에 정 스튜디오에 새로 들어왔고요.”
“아·· 나 너 알아. 네가 포스터 찍었다는 녀석이구나. 생각보다 어려 보이네. 나이가 어떻게 되지?”
미선 선배가 날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우리 스튜디오의 25살 괴물 신인입니다. 오빠 스튜디오에도 이런 막내 어시는 없을걸요.”
양승환 씨가 날 보는 시선을 거두지 않고 웃음을 지었다.
“사진만 보면 나이가 25살인 게 믿기지 않네. 관계자한테 듣자 하니 표절 포스터 때문에 급하게 다시 찍었다고 들었는데 맞아?”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헛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
“그 짧은 시간에 이뤄진 작업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퀄리티였어. 실력 좋더라. 내 일거리 다 뺐길까봐 걱정이 되더라. 다음 결과물도 기대가 돼.”
그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하나도 걱정이 안 된다는 표정인데·· 저 사람의 스타일인지 진심인지 모르겠다. 곧이어 영효 선배와 경훈 선배가 출근했다. 영효 선배도 옛날부터 아는 사이인 것 같았고 경훈 선배도 안면이 있는 듯했다.
“저분 여기 자주 오시나 봐요.”
난 경훈 선배에게 물었다.
“야, 너 몰라? 양승환 작가님 우리 스튜디오 소속이었어. 옛날에 영효 선배랑 미선 선배랑 같이 어시스턴트 했다고 하더라. 초기에는 양승환 작가님만 선생님 밑에 있었데.”
양승환 사진작가님이 스튜디오 선배라는 건 오늘 처음 알았다.
곧 정만종 선생님이 들어오셨고, 선생님은 양승환 씨를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오늘 개인 스케줄을 빼놓으라고 일주일 전쯤 말씀을 하셨는데 저분과 관계가 있어 보인다. 난 꽤 큰 촬영이 있을 줄 알았는데.
“경훈아, 그 전에 사놓은 레드 드래곤 좀 설치해 놔라.”
“네! 알겠습니다.”
레드 드래곤은 몇 달 전에 스튜디오에서 구입한 영화 촬영용 카메라다. 아직까지 난 제대로 만져본 적은 없고, 경훈 선배와 미선 선배가 시험 삼아 이것저것을 찍는 것을 보기는 했다. 오늘 저분이 그 카메라를 가지고 뭔가 하려나 보다.
우리는 선생님의 말씀대로 회의실로 향했다.
“선생님 하나도 안 늙으셨네요. 요즘 활동이 뜸해서 걱정했었는데.”
“활동은 하고 있는데 돈 되는 일을 잘 안 해서 그런가보구나.”
“아, 그거 전시회 곧 열린다는 소식 들었습니다. 저도 꼭 가보겠습니다. 선생님이 바라본 풍경, 정말 궁금하거든요.”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양승환 씨는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 영효 선배에게 물었다.
“영효야 네가 도왔다며, 선생님하고 함께 해 본 경험 어땠어?”
“실력이 너무 높으신 곳에 있으니까 맞춰가기가 힘들더라고요. 아무래도 함께 보게 될 작업물이니까 자꾸 되도 않는 비교를 하게 되고, 좌절감 들어서 방황 좀 하다가 다시 찍어보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일이 다 끝난 시점에 감상은 어때?”
“뭐 힘든 점도 많았지만 여기까지 해온 절 격려해주고 싶네요.”
정만종 선생님은 영효 선배의 말이 끝나자 양승환 씨를 바라보며 말했다.
“영효는 잘해줬다. 너도 작업물 보면 놀랄 거야.”
“아·· 저는 그런 쪽을 평가하기엔 안목이 부족합니다. 뭐 풍경 쪽은 제가 영효보다 많이 부족할지도 몰라요.”
곧 경훈 선배가 준비가 끝났다며 회의실로 들어왔다. 그 말에 양승환 씨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우리보고 말했다.
“아직 설명이 없어서 내가 무슨 일로 온 지 잘 모르는 모양이지? 일단 나는 영상 쪽에 관해서 설명하려고 온 거야.”
영상? 그러고 보니 새로 구입한 카메라가 영상 쪽에 더 특화되어 있다는 사실이 기억이 났다. 영상이라·· 분명 사진과는 아주 다른 차원의 일로 보인다.
“뭐, 국내에서는 감독, 촬영, 조명이 모두 분리되어 있어서 연계가 잘 안 되고 사진을 하는 사람이 영상을 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지. 내가 처음 영상 쪽에 접근하려고 할 때 주위에서 어찌나 말이 많았는지 몰라. 정사진과 영상의 구분은 출발부터 명확하다면서 말이지.”
맞는 말이다. 내 생각에도 이 둘을 병행하는 건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나 가능할 것 같다. 하지만 내 생각을 읽은 듯 양승환 씨는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해외 유명 사진가들은 영상과 사진을 병행하는 게 트렌드야. 그들은 계속 시도하고 있고 또 훌륭한 작품을 만들기도 하지. 지금 당장 이름이 생각나는 사진작가들 홈페이지를 보면 대부분 영상 파트가 따로 있다고. 뭐 교육 시스템이 우리와는 다르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지만 내 생각은 달라.”
김형세 교수님께 들은 적이 있다. 유럽이나 북미에서는 고등학교 때부터 사진을 배우기 때문에 똑같이 사진에서 출발해서 계속 사진으로 남거나 동영상으로 넘어간다고 말이다.
“시대가 변하고 있어. 그게 다 이 조그마한 물건 때문이지.”
그는 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책상에 놓았다.
“이 물건 때문에 신문, 잡지, TV, 라디오를 접하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모든 정보가 여기로 모이고 있어. SNS가 광고시장의 대세가 되어가니까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거야. 미디어가 변하고 있어. 이미 광고주들은 동영상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지. 예전처럼 멋진 사진만을 가지고 콘텐츠를 채우기는 부족한 거야.”
사진만으로 콘텐츠를 채우기 어렵다는 말이 훅 치고 들어온다. 영상이 대세인 건 부정할 수 없지만, 아직 이쪽은 이쪽 나름대로 길이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걸까.
“사실 지금 너희들이 가진 도구만으로도 동영상 작업이 가능해. DSLR로 찍은 영상은 색감이 좋은 데다 초점이 맞는 범위가 얕아서 흐릿한 배경 처리가 용이한 면이 있어. 밝은 렌즈를 촬영에 그대로 사용할 수 있어 조명 없는 자연스러운 화면 연출도 할 수 있고 말이야.”
그렇긴 하다. 그래서 한 때 DSLR로 뮤직비디오를 많이 찍기도 하고 지금도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한때 국내에서도 조용히 영상과 사진을 병행하는 것이 사진가들 사이에서 잠시 거품처럼 일어난 적도 있었어. 지금은 거품이 빠진 상태지. 대부분 그냥 하던 거나 계속해야겠다고 하는 상태야. 소수의 몇몇을 빼고 말이야. 너희는 지금 그 소수의 정점에 오른 사람을 보고 있는 거다. 자 박수!”
난 양승환 씨의 말에 손뼉을 쳤다. 저게 말이 쉽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예상이 됐기 때문이었다. 내가 알기로 영상 포커스를 잡는 일은 아예 사진의 초점을 처음부터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고 들었다.
“내가 비록 이 스튜디오를 떠난 지는 오래됐지만 한 가족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정말 이걸 돈도 안 받고 공짜로 가르쳐주기는 싫지만 가족이란 마음으로 한다. 일단 욕심을 버리라는 말부터 하고 싶다. 10초, 10초 이내로 영상을 찍어보는 것부터 해볼 거야. 이게 말이 쉽지 얼마나 긴 시간인지 너희들은 아직 모를 거다.”
난 그의 말에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영상은 사진하고 완전히 다르다는 말에는 동의합니다. 제가 궁금한 건 자신만이 가진 사진만의 특징 같은 걸 영상으로 재현이 가능한가요?”
“좋은 질문이야. 내가 여러 번 시도 해온 바로는 짧은 시간이면 어느 정도는 담길 수 있다고 바. 하지만 동영상의 시간이 길어지면 커다란 노력이 필요하지. 사진 쪽과는 다른 기술을 이용해야 너만의 색깔이 들어갈 수 있을 거야. 더 이상의 설명은 무의미하고 일단 찍어 보자.”
선생님을 제외한 우리들은 양승환 씨를 따라 카메라가 세팅된 방으로 들어갔다. 양승환 씨는 걸어가며 미선 선배에게 말을 걸었다.
“선생님도 하시면 좋을 텐데. 난 정말 선생님이 어떤 영상을 찍을지 궁금해 죽겠거든. 특별한 영상을 찍을 충분한 자질이 있으신데 왜 안 하신다는 거야.”
“오빠, 선생님이 전에 말씀하신 바에 따르면 아직도 사진의 끝을 모르겠다고 하세요. 그리고 이런 영상카메라를 선생님이 다룬다는 건 상상도 안 가네요.”
“하긴, 선생님처럼 카메라를 별다른 조작 없이 찍으시는 분도 없으시지. 나 어시 때는 상황에 따라 일회용 카메라로도 작업을 하셨다고. 그 작업 현장을 겪고 장비에 대한 욕심이 좀 준 거 같아.”
“그런 거 치고는 카메라가 지나치게 좋아 보이십니다.”
“이건 사진에 대한 욕심 때문에 산 게 아니야. 멋진 물건을 보면 가지고 싶은 욕구 때문에 구입한 거지.”
양승환 씨는 작업실에 도착하자마자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이건 요즘에 나온 거라 사용법은 되게 쉽게 되어 있어 포커스가 맞나 안 맞나보려면 눈에 포커스를 두고 화면에 터치를 하면 돼.”
임시 모델로 경훈 선배가 열심히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양승환 씨는 경훈 선배를 힐끔 보며 시범 촬영을 했다. 우리가 결과물을 확인하자 그는 입을 열었다.
“모델로 배우가 들어서면 이 작업은 더욱 긍정적인 면이 드러나지. 원래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사람들이니까 영화감독처럼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감정을 변화시켜달라고 짤막하게 상황 설정만 주문하면 끝나는 거야. 사진으로 모델을 찍는 시간보다 반의 반 까지 촬영 시간이 단축된다고.”
“와, 그럼 엄청 이득 아니에요? 근데 왜 사진 작업만 고집하는 사람이 많죠?”
경훈 선배가 묻자 양승환 씨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근데 영상을 스틸사진으로 내려서 찾아내는 후반 작업이 엄청나게 시간을 잡아먹어. 이것저것 따지면 영상에서 스틸사진 내리는 게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어. 비용도 배의 배로 들고. 사진만 보고 영상 찍으면 손해 보는 작업이지. 근데 그 단가는 점차 내려갈 거라고 봐.”
한 명씩 실습하고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생각해보니 지금 카메라를 잡은 이후 다른 카메라로 뭔가를 찍어보는 건 처음이다. 지금까지 내가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던 건 모두 이 카메라 덕분인데 다른 카메라를 손에 쥐면 다시 형편없는 나로 돌아갈 것 같아서 걱정됐다.
“뭐해?”
내가 머뭇거리자 양승환 씨가 말을 했다. 난 한숨을 쉬고는 카메라에 손을 댔다.
[링크 기능을 활성화시키겠습니까?]커다란 문구가 내 앞에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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