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44
44화. 너 미쳤어?
사람마다 특색이 있듯이 흑도도 다양하다.
그렇지만 수하들을 이렇게 죽여대는 흑도는 나도 많이 보지 못했다.
한 명만 살려준다는 말에 난장판처럼 얽히듯이 시작된 싸움은 독고생이 자신의 수하들을 전부 죽인 다음에 끝이 났다. 놈이 뱃머리에서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다 죽였다. 약속대로 나는 살려주나?”
이놈은 끝까지 날 믿지 못했다. 상황을 재다가 강물에라도 뛰어내릴 놈이랄까.
내게도 독고생의 정신세계는 인상적이었다.
“너는 살려주마.”
독고생은 그제야 갑판에 털썩 주저앉더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후우.”
“요새 흑선보 분위기는 어떠냐.”
독고생이 여전히 날 선 어조로 대꾸했다.
“뭘 어때. 병신들 가득하지. 나 지금 도망가도 되냐? 아니면 계속 네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냐.”
“안내하라고 살려둔 건데 어딜 가.”
“알았다. 저 뱃사람들은?”
독고생이 피 묻은 칼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선원들을 가리켰다. 저놈들도 다 죽이냐는 물음이었다.
당연하게도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일하는 자들은 함부로 죽이지 말고.”
독고생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휴식이 끝났다는 것처럼 일어나서 죽은 수하들을 강물에 던졌다.
풍덩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나는 독고생의 괴이한 대처에 한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육백 명이나 있다며? 내가 흑선보에 가서도 살아남으리라 예상했나?”
독고생이 시체를 강물에 던지면서 대꾸했다.
“그걸 내가 어찌 알아. 그냥 보자마자 네가 미친놈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를 다 죽일 거라 예상했지. 그 뒷일은 모른다.”
과연, 뒷일은 모르는 사내의 대답이었다.
잠시 후 흑사고성(黑砂古城) 근처에 배가 정박하고, 독고생과 나만 배에서 내린 다음에 흑선보로 향했다.
흑선보의 본진은 소수민족이 외세에 대항하기 위해서 만들었던 기다란 성벽 안쪽에 집성촌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의 옛 뱃사람과 어부들은 풍랑이 거친 날에 삼삼오오 모여서 도박으로 시간을 보냈다는데, 놀랍게도 흑선보 세력은 그 자그마한 도박판에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흑선보의 초대 보주가 어민들을 보호하겠다고 조직한 다음에 실제로는 도박 사업에 집중했다.
어민들을 보호하겠다는 의도 자체는 내가 하오문을 만들었던 이유와 비슷하다.
하지만 도박판에서 시작된 사업은 어느새 경매, 도박, 일부 수로를 장악해서 통행세를 받을 정도로 커졌다. 그래서 흑선보는 흑도이면서 동시에 수적이기도 하다.
힘없는 자들을 갈취하는 세력의 시작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이들도 본래 힘없는 자들이었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독고생은 다 허물어져 가는 성문을 지키고 있는 수하에게 칼을 내밀었다.
“보주께서 찾는 이자하를 데려왔다. 문 열어라.”
성문의 문지기라는 놈이 한마디의 대꾸도 없이 급히 문을 열었다. 독고생이 흑선보 내에서도 막 나가는 모양이다.
흑선보의 경내에 진입한 독고생이 내게 물었다.
“나는 언제까지 수행해야 하나. 미리 좀 빠지고 싶은데.”
“너는 내가 흑선보를 떠날 때까지 수행해.”
인상을 잔뜩 찌푸린 독고생이 대꾸했다.
“알았다.”
독고생이 특이한 점은 이렇게 나를 두려워하면서도 절대 존댓말을 하지 않으며, 제 입으로 내뱉은 말은 무조건 지키겠다는 태도를 유지한다는 점이었다.
몇 차례 누군가가 말을 걸거나 내 정체를 묻는 자가 나타나면 독고생은 피 묻은 칼부터 내밀었다.
“바쁘니까 면상 들이대지 말아라. 얼굴에 칼질하기 전에 비켜, 비켜, 비켜!”
독고생은 관우가 오관을 돌파하듯이 나를 수행하면서 흑선보의 경내를 일직선으로 뚫었다.
흑선보 내부에는 인원이 확실히 많았다.
누구냐며 묻는 놈도 있었고, 멈추라는 놈들도 간혹 있었는데 독고생은 우직하게 칼을 내밀고 욕지거리를 쏟아내면서 사람들을 물러나게 만들었다.
육백 명이라는 셈이 맞긴 하나, 이들이 전부 강호인이라 할 수는 없었다. 육백 명 모두가 강호인이라면 흑선보는 중원의 흑도 세력 중에서도 손꼽히는 세력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죽은 놈이 말한 육백 명은 경내에서 생업을 가진 자들까지 모두 포함한 수였다.
독고생이 드디어 전방에 보이는 건물을 가리키면서 내게 말했다.
“먼저 가서 고할 테니, 천천히 와라. 내가 도망치는 일은 없다. 약속했듯이 네가 살아남아서 흑선보를 빠져나간다면 나는 살려줘야 한다.”
지독한 생존력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미친놈의 기행이라고 해야 할까.
독고생의 걸음이 빨라졌다. 내가 왔다는 소식을 미리 알리고 자신은 근처에 빠져 있을 생각을 하고 있을 터였다.
본진의 입구를 지키는 자가 독고생에게 말했다.
“독고 조장, 무슨 일이야?”
“이자하를 데려왔다. 보주님께 전해.”
“이자하가 누구야?”
“위 조장 죽인 놈.”
“아!”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경내에서 가장 큰 건물에 들어섰다. 도박으로 돈을 버는 놈들이라 그런지, 허름한 성벽 안에 있는 건물의 분위기는 예상보다 휘황찬란했다.
아무래도 보주의 체면을 살리고자 과도하게 지은 것 같은 분위기랄까.
그러나 본진의 대청은 전쟁터에 마련된 막사 내부를 보는 것처럼 휑했다. 총대장이 앉는 상석이 마련되어 있고, 좌우에 의자가 줄지어 놓여 있었는데 좌측 벽 쪽에는 온갖 병장기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이제 막 회의가 끝났는지, 흑선보의 간부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내부를 대충 둘러보다가 말했다.
“늙은이 새끼들이 많네.”
통상적인 간부들이 아니라 원로들이 모여 있는 분위기랄까. 보고를 받은 한 간부가 수하에게 말했다.
“보주님께 다시 나오셔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려라.”
“예.”
잠시 소란스러웠던 분위기가 빠르게 정리되더니, 다들 입을 다문 채로 의자에 앉거나, 벽으로 이동해서 경비병처럼 대기했다.
나는 의자를 찾다가 말석에 앉아 있는 간부에게 말했다.
“의자 좀 줘라.”
나는 말 없이 올려다보는 놈의 따귀를 후려쳐서 의자 바깥으로 날려 보냈다. 우당탕 소리와 함께 사내가 바닥을 구르더니 벌떡 일어났다. 내가 의자를 가지고 중앙으로 이동하는 사이에 상석 근처에 있는 사내가 입을 열었다.
“뒤에서 대기해.”
의자를 뺏긴 놈이 순순히 벽으로 이동하더니 말없이 나를 노려봤다.
의자에 앉아서 둘러보니, 독고생도 벽에 기댄 채로 삐딱하게 서 있었다.
얼마 되지 않아서 흑선보주가 걸어 나왔다.
나이는 육십 살이 넘어 보였는데 피부는 거뭇하고 눈썹은 하얀 사내였다.
간부들도 일제히 나를 바라보고, 흑선보주도 상석에 앉으면서 나를 주시했다.
“이자하, 오느라 고생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꾸했다.
“다음에 오겠다고 했는데 수하들이 굳이 데려오더군.”
“누가 데려왔는가?”
벽에 기대어 있는 독고생이 대꾸했다.
“접니다. 보주님.”
흑선보주가 독고생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독고생이 고생했구나. 수고했다.”
놀랍게도 독고생이 이렇게 대꾸했다.
“뭐 그런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하십니까.”
독고생이 막말을 내뱉자, 다른 간부들이 일제히 욕을 퍼부었다.
“저 싸가지없는 놈은 끝내 입을 찢어야 정신을 차리려나.”
흑선보주가 손을 들더니 소란을 잠재웠다.
“일양현의 이자하가 여기 왔는데 어찌할 것인지 의견을 내보시오.”
흑선보주의 물음에 갑자기 다들 입을 다물었다.
“의견이 없으면 내가 알아서 하리다.”
“그러시지요.”
“이자하, 그대는 흑선보 사람 셋을 죽였다. 들어보니 집을 불태워서 그랬다던데 맞나?”
“아마 맞을 거야.”
나도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크게 중요한 일은 아니어서 기억을 곱씹진 않았다.
흑선보주가 말했다.
“원인 제공은 우리 사람들이 먼저 했으니 손가락 세 개만 자르고 떠나라.”
이건 또 무슨 괴상한 판결이란 말인가?
나는 손가락 세 개를 펼치면서 대꾸했다.
“부모가 물려준 신체를 함부로 자를 순 없다. 거절.”
흑선보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손가락 하나에 금자 백 개로 갈음해라. 이자하는 앞으로 흑선보의 감시를 받으면서 손해액을 변제하도록. 이상.”
흑선보주는 왕처럼 살았던 모양이다.
판결이 끝났으니 꺼지라는 것처럼 손을 몇 번 내저었다.
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강호 동도 여러분, 세상에 미친놈이 이렇게 많습니다.
다른 간부들도 작은 재판이 큰 무리 없이 끝났다는 것처럼 흑선보주의 판결을 받아들였다.
“수고하셨습니다.”
나는 한숨을 내쉬다가 말했다.
“그런 돈은 내게 없다. 있어도 갚지 않을 것이고.”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고 있었던 간부들이 다시 앉아서 나를 노려봤다.
이번에는 흑선보주도 불쾌한 낯빛으로 나를 노려봤다.
“이자하, 그대는 여기가 어떤 곳인지 모르고 들어왔나?”
“모르니까 배 타고 들어왔지.”
“흑선보는 어떻게든 돈을 받아내는 곳이다. 네 가족이 변제액을 감당해야 할 것인데 괜찮겠나.”
“가족이 없다. 오늘도 그립군. 국수 맛도 그립고.”
“가족이 없으면 일양현에 있는 자들이 변제를 강요받을 것이다. 괜찮겠나.”
“쯧.”
나는 벽에 기대고 있는 독고생을 불렀다.
“독고생, 이 개새끼야 이리와.”
독고생이 인상을 찌푸리면서 대꾸했다.
“왜 나한테 지랄이냐.”
나는 독고생의 칼을 향해 손을 뻗으면서 말했다.
“줘.”
독고생이 성큼성큼 걸어와서 내게 칼을 건네더니, 투덜대면서 다시 벽으로 돌아갔다.
나는 독고생의 칼을 꼬나쥔 채로 흑선보주에게 말했다.
“영감탱이, 너 미쳤어?”
“…….”
전생의 광마였던 내가 살짝 당황스러울 정도로 이놈들은 미쳤다. 나는 간부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이거 완전 단체로 미친놈들이네.”
흑선보주는 그 와중에도 침착하게 말했다.
“간부들과 내가 직접 피를 보지 않은 지도 십 년이 넘었다.”
한 간부가 끼어들었다.
“전 아닙니다.”
“닥쳐라. 그러나 단 한 번도 이런 싸움을 피한 적은 없었지. 다른 해결방식을 제안하지 않고. 끝내 이렇게 마무리하자는 것이냐?”
그러고 보니 간부 의자에 앉은 자들은 전부 마흔이 훌쩍 넘어 보였고. 벽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는 놈들은 대부분 젊었다.
철저하게 노인을 공경하는 흑도인가? 외부를 철저히 차단하고, 저희끼리 지켜야 할 법을 많이 만들어 둔 모양이다.
내가 물었다.
“간부는 전부 몇 놈이냐.”
독고생이 바로 대꾸했다.
“보주님 포함해서 스물한 명.”
나는 칼을 쥔 채로 일어나서 흑선보주에게 말했다.
“영감탱이, 너 여기까지 무릎으로 다가와서 내 발을 핥든가. 아니면 스물한 명 다 죽든가. 선택해라.”
나는 갑자기 전생의 일이 가물가물해서 속이 답답했다. 한창 무공을 배우던 시기에 흑선보가 어떤 고수에게 몰살을 당했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새삼스럽게 그게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아니다. 나는 그때 문제 많은 인물에게 무공을 배운답시고 끌려다니던 시기였다.
이놈들은 몰살당할 만한 세력이었다.
이렇게 특이하니 이들의 조상들도 강 근처에 성벽을 세워서 외세의 침입을 막았던 것이리라.
외부인에게 아주 자연스럽게 판결과 형벌을 내리는 이놈들의 태도는 흑도 세력이 아니라 자그마한 독재 국가라 봐도 무방했다.
미친놈들이 가득한 왕국에 유람을 온 기분이다.
흑선보주가 일어나자, 대기하고 있는 수하 두 명이 다가와서 박도 한 자루씩 내밀었다.
흑선보주가 양손에 박도를 쥔 다음에 혀를 찼다.
“젊은이, 꼭 그렇게 피를 봐야겠어?”
나머지 원로들도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무기가 진열된 곳으로 가서 각기 병기를 하나씩 꼬나쥐었다. 나는 넋이 나간 채로 원로들이 붙잡고 있는 병기들을 구경했다.
삼첨도, 환도, 직도, 장검, 판관필, 철곤, 낭아봉, 구겸창…….
그리고 대부분이 이름도 모를 쇠꼬챙이를 하나씩 붙잡은 채로 돌아섰다. 저것은 아마도 작살인 것 같았다.
독고생이 말했다.
“아니, 좁아터졌는데 왜 여기서 싸우십니까.”
이때 쇠꼬챙이를 들고 있는 원로 한 명이 독고생의 이마를 향해 쇠꼬챙이를 냅다 집어 던졌다. 독고생이 고갯짓으로 피하자 푹― 소리와 함께 꼬챙이가 벽에 박혔다.
독고생이 눈을 부릅뜨면서 말했다.
“이 염병할 늙은이가.”
꼬챙이를 던진 원로가 침착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닥치고 있어라. 너부터 죽이기 전에.”
이때, 독고생이 귀에 쏙 들어오는 말을 꺼냈다.
“죽여보든가. 손가락이 이제 일곱 개밖에 안 남으셨을 텐데.”
흑선보끼리 죽이면 손가락 하나를 자르는 모양이다. 나는 이게 옳은 판결인지 아닌지 당장 구분할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나는 흑선보의 이 모든 짓거리에 크게 감탄했다.
“이야, 진짜 대단히 미친놈들이네.”
흑선보주가 총대장처럼 가만히 서 있는 와중에 무려 스무 명의 늙은 강호인들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동시에 밀려드는 병기만 해도 삼첨도, 환도, 꼬챙이, 직도…….
아, 몰라.
나도 칼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