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Farmer RAW novel - Chapter (54)
모든 작업을 마친 건우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 잠깐 휴식을 한다는 게, 완전히 잠들어 버렸다. 작업복의 방한 기능 덕분에, 아직 날씨가 쌀쌀함에도 불구하고 잠드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무한정 잘 수는 없었다. 작업복이 강렬한 노을빛까지 막아 주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건우가 천천히 눈을 떴다.
‘나도 모르게 잠들었네. 으음.’
건우는 그러면서 몸을 움직이려고 했다. 그 순간 둔중한 통증이 그의 온몸을 강타했다.
그의 표정이 절로 찡그려졌다.
‘오늘 작업이 빡세긴 빡셌나 보네.’
건우는 평소에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 정령들에게 지시만 내리는 식으로 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오늘은 유독 격하게 움직였다. 지지대를 한두 개도 아니고, 수백 개를 박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가 능력으로 보정을 받는다 해도 근육통을 피할 수는 없었다.
‘평소에 운동 좀 할걸.’
30대가 넘어가면 습관처럼 하는 말을 읊조린 건우가 힘겹게 상체를 일으켰다.
그때였다.
“하와앙······.”
건우의 허벅지를 베고 있던 하와가 잠꼬대를 하듯이 몸을 뒤척였다.
‘뭐야 이건?’
그러면서 반대쪽 허벅지를 바라보는 건우.
거기도 상황은 비슷했다. 엘이 허벅지를 베고 대(大)자로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건우가 잠이 든 사이에 양쪽 허벅지를 두 정령에게 점령당한 것이다.
‘어쩐지, 다리가 묵직하다 싶었다.’
그런데 점령당한 곳은 그곳뿐만이 아니었다. 건우는 따뜻하면서도 푹신한 무엇인가가 자신의 가랑이 사이를 점령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뀨웅······뀨웅······.”
뀨뀽이가 건우의 가장 따뜻한 곳(?)을 차지한 채로 자고 있었다.
건우가 자기도 모르게 한차례 흠칫 놀랐다.
‘괜찮아. 그냥 잠에 든 것뿐이니까. 내 소중이는 멀쩡해. 공격당하지 않았어.’
그는 그러면서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봤다.
‘확실히 오늘은 다들 피곤할 만도 했지.’
그렇게 생각한 건우는 한동안은 아이들을 지켜보기만 했다. 자고 있는 모습이 귀여웠던 것이다.
하지만 계속 그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슬슬 주변이 어두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건우는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가볍게 흔들어서 깨우기 시작했다,
“자, 다들 일어나. 잠은 집에서 자야지.”
건우가 그러자,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엘이었다.
“우웅. 바위벌하고 같이 꿀을 따고 있었는뎅······.”
그러면서 눈을 비비는 엘.
건우가 잠이 덜 깬 엘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잘 잤어?”
“헤헤.”
엘이 건우의 손길을 가만히 즐겼다.
하지만 곧 깜짝 놀라서 몸을 일으켰다.
“앗! 저, 저기, 그러니까······죄송하답니다!”
그러면서 바닥에 넙죽 엎드리는 엘.
아무래도 건우의 허벅지를 허락 없이 베고 잔 것이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건우가 엘의 행동에 움찔 놀라면서 말했다.
“엘. 내가 그러지 말라고 했잖아. 왜 자꾸 넙죽넙죽 엎드려서 사죄하는 거야?”
그 말에 엘이 아차 싶은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다급하게 일어났다.
“잠깐 깜빡하고 있었답니다. 그, 그럼 어떻게 할까요?”
그러고는 어떤 포즈로 사죄해야 할지 몰라서 혼란스러워했다.
건우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안 죄송해도 돼. 내 허벅지 정도는 언제든지 빌려줄 수 있으니까.”
“정, 정말로요?”
“그래. 그리고 뭔가 실수를 하면 그냥 ‘죄송합니다’ 하고 고개 숙여서 인사하면 되는 거야.”
“그, 그 정도만 사죄드리면 되는 건가요?”
“응. 그 정도면 충분해.”
엘은 건우의 아량(?)에 크게 감동받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뀨뀽이가 소란스러움에 눈을 뜬 것은 바로 그때였다.
“뀽······.(시끄럽다뀽······.)”
몸을 일으킨 녀석은 잠시 건우와 엘의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무심하게 사육장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자신의 지정석에 몸을 눕혀서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거의 반쯤 자고 있는 상태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 것이다. 괜히 본능이 뛰어난 몬스터가 아니었다.
건우가 그 모습을 보면서 황당한 듯 웃어 보였다.
‘뀨뀽이가 잠에 빠지면 주변 상황은 전혀 신경 못 쓰는 타입이구나.’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하와를 깨웠다.
“하왕?” 눈을 반개한 채로 일어난 하와.
건우가 그런 하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잘 잤어? 집에 가서 마저 자자.”
“하와앙.”
하와는 졸립다고 투정을 부리면서 은근슬쩍 건우에게 안겼다. 건우는 피식 웃으면서 그런 하와를 안아 주었다. 그리고 뻐근한 몸을 일으켰다.
“끄응. 삭신이야.”
그는 그러면서 온몸의 뻐근함을 느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 보는 근육통이었다.
완전히 잠에서 깬 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으신가요?”
“아, 나는 괜찮아. 그것보다 먼저 가서 쉬어.”
건우는 작업실에 있는 엘을 위한 보금자리를 떠올리면서 그리 말했다.
하지만 엘은 먼저 들어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먼저 가시면 저도 들어갈 생각이랍니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그래도 그러고 싶답니다.”
“음, 그럼 그럴래?”
“네!”
건우는 활기차게 대답하는 엘을 보면서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주 착한 딸을 보는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엘이 내 둘째 딸인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 던전 농지를 둘러보았다.
넷이서 함께 이룬 오늘의 결과물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세 마지기를 가득 채운 고추들과 나란히 세워진 지지대들.
‘장관이네.’
건우는 미소를 지으면서 뿌듯한 감정을 만끽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그도 자신이 만든 결과물을 보면서 만족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보다 더 좋은 건 통장에 숫자가 찍히는 거지만······.’
그는 꽤나 속물적인 생각을 하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있어서 하와를 한 팔로 안았다. 그러고는 나머지 한 팔로 스마트폰을 찾았다.
오늘이 바로 독피시 의뢰에 대한 의뢰비 입금 날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어?”
하지만 건우는 스마트폰을 꺼낼 수 없었다. 스마트폰이 애초에 없으니, 꺼낼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건우가 크게 당황했다.
“내 폰이 어디로 갔지?”
그러면서 그는 주머니란 주머니는 전부 두드려 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엘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인가요?”
“내 폰이 없어졌어.”
“폰이라고 하면 그 네모 난 작은 물건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엘도 건우의 스마트폰을 본 적이 있었기에 스마트폰의 생김새를 특정할 수 있었다. 심심하면 건우가 사진을 찍겠다고 들이밀기 일쑤였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건우가 고개를 주억였다.
“응, 맞아. 작업하다가 떨어진 것 같은데, 혹시 못 봤어?”
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못 봤답니다.”
건우는 물론이고, 엘 역시도 지지대 작업에 정신이 팔려서 스마트폰을 보지 못한 것이다.
건우가 인상을 가볍게 찌푸렸다.
“고추밭 사이에 떨어뜨린 것 같은데······.”
그러면서 그는 고추밭을 다시 돌아보았다.
분명히 방금 전까지만 해도 뿌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저 넓은 고추밭 사이에서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을 찾으려니 한숨만 나왔다.
‘오늘은 너무 피곤한데, 시간도 늦었고······.’
건우는 오랜만에 격하게 몸을 써서 너무 피곤한 상태였다. 그래서 그런지 스마트폰을 찾는 일이 더 귀찮게 느껴졌다.
“전화라도 걸 수 있으면 벨소리로 금방 찾을 텐데······.”
하지만 아쉽게도 현 던전 농지에 통화 수단이라고는 없어진 스마트폰밖에 없었다.
‘정령들한테 부탁할까?’
건우는 24시간 던전 농지에 상주시키고 있는 4원소 정령들을 떠올렸다.
그 정령들에게 스마트폰을 찾아 달라고 부탁하면 금방 찾아와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때, 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일까지 제가 찾아 놓을까요?”
그 물음에 건우가 움찔거렸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게 해 줄 수 있어?”
“네. 자신 있답니다!”
엘은 눈을 반짝이면서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건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4원소 정령들에게 부탁하는 것도 결국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현재 그는 어서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을 뿐이었다.
“그럼 부탁 좀 할게.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빨리 가서 쉬고 싶네.”
“네! 저만 믿으시면 된답니다. 마음 놓고 푹 쉬세요!”
“그래. 고마워. 그럼 부탁할게.”
건우는 그렇게 엘을 믿기로 하고서 던전 농지를 떠났다.
*** 건우와 하와가 돌아간 후.
엘은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그러면서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건우 님이 저를 믿고 큰일을 맡겨 주셨답니다.’
엘은 평소에 건우가 얼마나 스마트폰을 애지중지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건우가 평소에 시간만 나면 스마트폰을 꺼내서 들여다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소중한 것을 저한테 찾으라고 한 것은, 그만큼 제가 신뢰를 받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엘은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잔뜩 흥분해서 눈을 반짝였다.
“빨리 찾아서 잔뜩 칭찬받을 거랍니다!”
그러면서 날아오른 엘은 고추밭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때, 엘을 발견한 한 바람의 정령이 말을 걸어왔다.
-힝?
“이건우 님의 폰을 찾고 있답니다.”
-힝?
“검은색의 작고 네모 난 거랍니다.”
엘의 설명을 들은 바람의 정령이 가볍게 고개를 주억였다. 그러더니 다른 바람의 정령들과 함께, 던전 농지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후.
엘은 바람의 정령들이 찾아온 건우의 스마트폰을 넘겨받을 수 있었다.
“대단하답니다! 역시 이건우 님의 정령들이랍니다!”
-힝~
바람의 정령들은 엘의 칭찬이 기분 좋은지, 엘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날아다녔다.
엘도 질 수 없다는 듯이 몸을 띄워서 같이 빙글빙글 돌다가 내려섰다.
“그건 그렇고 사실 궁금한 게 있었답니다.”
-힝?
“이건우 님이 매일 이 폰이라는 걸로 뭘 보는지 궁금했답니다.”
엘은 그러면서 건우의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 엘이 스마트폰의 전원 버튼을 꾹 눌렀다.
“오! 켜졌답니다.”
엘이 그리 말하자, 호기심이 생긴 건지 바람의 정령들이 몰려들었다.
엘은 그런 바람의 정령들과 함께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만져 보면서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한 어플이 켜졌다.
[METUBE]그것을 본 엘이 움찔거렸다.
글자처럼 보이긴 했는데, 자신이 배운 한글하고는 그 모양이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작은 한글들과 함께 커다란 그림들이 떠올랐다.
‘그림······아니, 사진이랍니다!’
엘은 사진을 알아보고는 별생각 없이 그것을 꾸욱 눌렀다.
그 순간이었다.
사진이 화면 전체 크기로 커지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유명 초인들을 만나기까지 달린다! 안녕하세요? 수색영장입니다!
동영상이 재생된 것이다.
엘은 물론이고 바람의 정령들까지 깜짝 놀랐다.
하와는 TV도 보고 가끔씩 건우와 함께 ‘미튜브’도 보지만, 엘이나 바람의 정령들은 동영상을 처음 보기 때문이었다.
동영상이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오늘 제가 만날 초인은 바로······경기도 대표 초인 뇌제입니다! 자, 그럼 긴말 필요 없이 바로 출발합니다!
그리고 엘과 바람의 정령들도 뭔가에 홀린 듯, 동영상을 계속 바라보았다.
하필이면 처음 보게 된 영상이 세계 최고의 ‘미튜버’인 ‘수색영장’의 동영상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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