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01)
제 333화
92화. 휴가(3)
원로들이었다.
약 스무 명. 룬칸델의 원로들이 이토록 뭉쳐서 이동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하인들은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고, 수호기사들은 그들을 마주칠 때마다 절도 있는 경례를 올렸다.
원로들이 대체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인지 다들 궁금했으나 감히 물어볼 수 없었다.
‘어, 원로님들이잖아?’
막 일어난 토나 형제가 눈을 비비며 창밖을 보았다.
‘어딜 가는 거지? 제드 숙부님도 계시네. 어째, 막내 방이 있는 쪽 같은데.’
토나 형제의 예상대로, 원로들이 향하고 있는 곳은 진의 방이었다.
“제드 원로, 그것이 정말 확실한 이야기요?”
“이 사람들, 정말 속고만 살았군! 몇 번이나 이야기해줘야 한단 말이오? 내 분명 보여주지 않았소, 결전기 낙화의 발전된 형태를. 그건 나 혼자 이룩한 것이 아니란 말이오.”
원로들이 진을 찾아가고 있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결전기.
제드는 낙화의 개량을 끝낸 후, 원로회에 심의를 신청한 상태였다. 사정을 몰랐던 원로들은 제드를 축하하며 새로 탄생한 낙화에 당연히 그의 이름을 붙이자고 말했다.
그러나 제드는 낙화에 추가되는 이름에 자신이 아닌,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 진의 이름이 붙어야 옳다고 주장했다.
“아니, 도통 이해할 수가 없어서 그렇소. 대체, 이제 막 기수가 된 아이에게서 결전기 진보의 단서를 발견했다니…….”
“심지어 진 룬칸델이 제드 원로에게 낙화를 전수받은 건 며칠 지나지도 않은 일이오.”
“이런 우라질, 내가 12기수를 띄워주고 싶어 거짓말이라도 하고 있다는 것이오? 아까부터 자꾸 의심이나 하고 말이야. 이럴 거면 따라오지를 말든가!”
“에헤이, 그런 말은 아니외다. 자자, 흥분을 가라앉히시오. 내가 잘못했소.”
“맞소, 맞소, 그대가 잘못했소. 제드 원로가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니지. 게다가 어젯밤엔 4기수까지 찾아와서 묘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소.”
다른 원로가 제드의 어깨를 살살 주무르며 말을 이었다.
“12기수가 이번 임무에서 제6결전기 전광보다 뛰어난 검을 사용했다고 그랬지. 어쩌면, 12기수는 제드 원로의 말대로 우리 룬칸델의 결전기들이 진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는 인물일지도 모르오.”
디푸스는 일부러 원로들에게 진이 사용한 명왕검 절기 천둥날에 대한 정보를 흘렸다.
본인이 물어봐봤자 진이 설명해줄 리가 없을 것 같으니, 원로들의 입을 빌리기로 한 것이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4기수 또한 헛소리를 할 인물은 아니지. 아무튼, 우리가 직접 확인해보자고 이렇게 모인 것이잖소. 거의 다 왔으니, 다들 궁금증을 조금만 가라앉히시구려.”
에헴, 흠! 헴! 흠흠!
원로들이 살살 제드의 눈치를 살피며 헛기침을 했다.
이윽고 원로들이 진의 방문 앞에 섰다.
‘이놈의 영감쟁이들, 막내 녀석이 직접 검술을 보여주면 침 질질 흘리면서 탐낼 모습이 눈에 훤한데, 감히 날 의심해?’
까득!
제드가 이를 악물며 방문을 두들겼다.
“원로회의 부름이다! 12기수 진 룬칸델은 속히 나오도록!”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외치는 제드.
그러나 방 안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막내! 빨리 나와라!”
재차 불러도 답이 없자, 제드가 홱 문고리를 돌렸다.
뻐걱, 잠금장치가 박살나며 문이 열렸고, 방 안엔 사람이 없었다.
“아니, 이 녀석이 왜…… 없지? 흠, 흠!”
이번엔 제드가 슬쩍 원로들의 눈치를 살폈다.
원로들은 ‘그럼 그렇지’라는 얼굴로 어깨만 으쓱이고 있었다.
“아쉽게 됐구려, 제드 원로. 다들 귀한 시간을 빼서 왔건만…….”
“그, 막내가 없는 건 둘째치더라도. 다들 왜 그렇게 실망한 기색인 거요? 정말 날 믿지 못하겠다는 거요?”
“자자, 그런 것 아니오. 암, 우린 제드 원로를 믿소. 12기수에게 뭔가 사정이 있었겠지, 허허. 그러니 일단 돌아갑시다.”
우르르.
원로들이 한꺼번에 돌아서자 제드는 속으로 진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놈의 자식은 대체 어딜 간 게야? 이 숙부가 이렇게 망신을 당한 것도 모르고!’
* * *
끼룩- 끼루룩, 끼룩!
진은 갈매기가 울어대는 탁 트인 해변의 주점에 앉아 칵테일을 마시고 있었다.
앞에선 산뜻하게 차려입은 길리가 갈매기들에게 먹이를 던져주고 있었다.
“여기 칵테일 두 잔만 더 부탁해요. 같은 걸로. 그나저나, 슬슬 다들 올 때가 되지 않았나요? 도련님.”
“응, 저기 오네.”
진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자 갈매기들이 어디론가 황급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막 시야에 드러난 한 마리의 용이 하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라칸이었다.
그의 등에는 티칸의 동료들이 타 있었다.
“오, 나으리! 이 제트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아십니까!”
“우어어! 진 고옹자아아!”
가장 먼저 달려온 것은 제트와 엔야였다.
그들은 거의 잃어버렸던 주인과 상봉한 강아지처럼 반가운 기색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제트, 엔야. 잘들 지냈어?”
“아유, 저야 나리 덕에 늘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죠. 아이고, 그간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검의 정원에 가시자마자 또 정신없었다고 들었습니다요.”
“아니, 이제 공자가 아니라 경이라고 불러야 하나? 여전히 잘생기셨군요! 일단 사인부터 해주세요! 룬칸델 12기수라는 것도 꼭 적어서. 여기, 등짝에!”
언제나처럼, 엔야는 흥분한 영장류 짐승처럼 제 가슴팍을 쿵쿵 쳐대며 기쁨을 표시하는 모습.
“하아, 그래. 엔야. 사인 받으니까 좋지? 응, 좋겠네. 반갑다, 진.”
“잘 지내셨습니까? 퀴칸텔 님.”
“그럼. 엔야랑 유리아, 핀테가 너 보고 싶다고 맨날 징징댄 것만 빼면.”
퀴칸텔은 더 이상 엔야에게 올타의 계약자로서 체면을 지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진 경. 경은 원래도 애 같지 않았지만, 이젠 정말 어른 같습니다.”
“알리사 님, 그냥 예전처럼 불러주십시오. 엔야 너도.”
“그럴까요?”
진과 알리사가 악수하며 가볍게 포옹했다.
“공자와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오르는군요.”
뒤이어 다가온 카시미르가 진과 눈을 맞췄다.
“카시미르 경.”
“그때 공자가 구해준 덕에 딸아이는 지금도 잘 크고 있습니다. 벌써 아홉 살이 되었지요.”
“시간이 빠른 것 같군요. 처음 만났을 땐 다섯 살이었는데.”
티칸의 사람들과 인연을 맺은 것도 벌써 4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진에겐 오히려 이들이 진짜 형제들보다 더욱 가족 같았고, 검의 정원보다 티칸이 더욱 집처럼 느껴졌다.
“딸아이와 라트리 님은 오지 못했습니다. 과자점 일이 밀려서…… 베리스도 함께 거들고 있습니다. 쿠잔과 율리안은 아직 공자가 내린 임무를 수행하고 있고요.”
베리스가 그 성격에 과자점에서 일을 한다는 건 실로 놀라운 사실이었다.
카시미르가 내민 바구니에 쿠키가 한 가득 들어있었다. 상큼상큼딱딱 리트라 쿠키, 리트라 과자점의 시그니처.
그러나 그건 진을 위해 준비한 과자가 아니었다.
진은 쿠키의 상태만 확인한 후, 다시 바구니를 닫았다.
“마음에 들어 하면 좋겠군요.”
“아마 그럴 겁니다. 정보원들이 확인한 바, 올망고의 계약자가 이게 먹고 싶어 그렇게나 애를 태우고 있다고 하니…….”
진과 카시미르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칠색조는 올망고의 계약자의 정확한 소재지를 이미 옛적에 파악해두었다. 진이 이번에 명을 내리기도 전에 확인해둔 것이다.
그 결과, 올망고의 계약자가 리트라 쿠키에 묘한 환상을 갖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리트라 쿠키는 작년쯤부터 전 세계를 향해 그 오묘한 맛과 향의 위명을 떨치고 있었다.
각국의 저명인사들마저 줄을 서서 먹어야 하는 쿠키가 된 것이다.
온갖 잡지와 소식지에도 심심하면 소개가 될 지경. ‘다과 좀 먹는다’ 하는 이들에게 리트라 쿠키는 꿈의 과자로 통했다.
오죽하면 리트라 쿠키를 먹기 위해서라도, 죽기 전에 한 번쯤은 꼭 티칸 자유도시를 가야 한다고 설파하는 음유 시인들도 있었다.
하지만 쿠키 하나 먹자고 티칸 자유도시를 찾아갈 수 있는 것은, 돈 많고 시간 많은 귀족과 자산가들 정도다.
안타깝게도 올망고의 계약자에겐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어쨌거나, 우선은.”
진이 동료들을 바라보며 뒷말을 이었다.
“며칠쯤 휴가를 즐기도록 하죠. 또 이렇게 다 같이 모일 수 있는 날이 많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때부터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닷가에서 한량처럼 놀기만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회포도 풀고, 도시의 음유 시인을 초청해 노래도 듣고, 요리사들을 데려와 즉석요리도 맛보고, 수영과 낚시도 하면서.
그렇게 3박 4일이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 동료들은 단순히 ‘논다’는 것이 이렇게까지 즐거운 일이라는 걸 무척이나 오랫동안 잊고 살았었다.
“다들 사이가 무척 좋아 보이시네요. 손님들 덕에 이번 달은 매상 신기록을 수립할 것 같아요.”
주점의 청년 점원이 진을 보며 말했다.
그는 이제 막 스물이 되었을 것 같은 앳된 얼굴에, 이상할 정도로 촉촉한 피부를 소유한 청년이었다.
그는 아직 진과 동료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알았다면 이렇게 쉽게 말을 걸지 못했을 것이다.
“조거비.”
갑작스레 이름이 불리자 흠칫하는 점원.
그의 입장에선 진과 동료들에게 이름을 알려준 적이 없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예, 손님?”
턱.
진이 탁자 위에 리트라 쿠키가 가득 들어있는 바구니를 올렸다.
“나는 진 룬칸델, 룬칸델의 12기수이자 솔더렛의 계약자다. 그리고 이건 선물.”
진과 동료들이 이 해변 구석의 주점에서 며칠이나 휴가를 보낸 건 다름이 아니었다.
이곳이 바로 조거비, 올망고의 계약자가 일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일순 석상처럼 굳어 입을 뻥긋대는 조거비.
떨리는 손으로 상자를 열자, 향긋하면서도 고소한 쿠키 냄새가 확 올라왔다.
“네 신에게 받을 것이 있어서 찾아왔지. 괜찮다면, 잠시 올망고 님을 불러줄 수 있겠나?”
충격이 큰 모양이었다.
진의 신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눈앞에 가득 놓여있는 쿠키에 눈이 돌아간 것이다.
“이거…… 정말로 제게 다 주시는 겁니까?”
“물론.”
“머, 먹으면서 이야기해도 괜찮을까요?”
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조거비가 떨리는 손으로 쿠키를 집었다.
왕, 한입 깨물어 먹은 그의 얼굴이 즉시 홍조로 물들었다.
그리곤 잠시 후, 진짜로 흰자위만 남긴 채 눈알이 돌아가는 모습.
쿠키의 맛이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그건 신이 화신할 때의 반응이었다.
빈 브랑슈의 몸에 피콘이 들어섰을 때와 거의 비슷했다.
[죽이는군! 그래, 어패류는 이제 지긋지긋해!]“……올망고 님?”
[잠깐만 기다려, 솔더렛의 계약자. 이것 좀 다 먹고 네가 찾는 것을 주도록 하마.]바구니에 머리를 박고 쿠키를 먹어대는 올망고에게선, 과연 신의 권위와 격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