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254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254화
254. 의심
딸랑-
카페의 문을 연 류민이 두리번거렸다.
민주리가 앉아 있는 걸 보고 손을 슬쩍 들었다.
마주 앉은 류민은 자신을 뚫어져라 보는 민주리의 모습에 조금 안심했다.
‘다행히 표정은 괜찮아 보이네.’
전처럼 고개를 숙이거나 눈을 피하려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매듭을 짓겠다는 듯 당당한 눈빛이다.
“내 커피 미리 주문해 놨네? 고마워.”
“아니야.”
“…….”
“…….”
둘 사이에 어색함은 여전했다.
고백을 거절하고 먼저 친구로 지내고 싶다고 말을 꺼낸 류민이지만 쉬울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렇게 자주 만남을 갖다 보면 차차 나아지겠지. 민주리도 어색한 관계로 남기 싫어하는 눈치고.’
그러니 자신의 부름에 선뜻 나오겠다고 한 거 아니겠는가?
“민아.”
“응?”
먼저 불러놓고 민주리가 침묵했다.
입술을 달싹이는 걸 보니 내적 갈등을 겪고 있나 보다.
차분히 기다리니 이내 결심한 듯 입을 연다.
“전에 나한테 친구로 지내자고 말했지?”
“그랬지.”
“그때 솔직히 혼란스러웠는데 지금은 확실하게 마음을 굳혔어.”
민주리의 눈이 결연히 빛난다.
“친구로 지내자. 대신.”
조금 쑥스러운지 민주리가 시선을 내렸다.
“전에 했던 고백은 없던 일로 해줘. 그럴 수 있지?”
“아무렴. 당연하지.”
너무 즉답해서일까?
민주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존심이 짓밟힌 표정.
오해가 커지기 전에 류민이 말했다.
“내가 대답을 좀 빨리했는데 오해하지 마. 네 고백이 정말 아무렇지 않다는 뜻은 아니야. 기억 속에서 지우는 건 어렵겠지. 하지만 원한다면 최대한…….”
“아니.”
민주리의 눈빛은 어느새 자존심으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생각이 바뀌었어.”
“응?”
“잊지 마. 기억에서 지우지 말아줘. 나는 분명히 너한테 고백을 했고 차였어. 그건 사실이잖아?”
목소리에서 떨림이 느껴진다.
자존심이 상해서 충동적으로 내뱉는 느낌이다.
“이렇게 된 거 솔직하게 말할게. 나 아직 포기 안 했어. 너랑 친구 하겠다고 한 것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야. 생각해 봐. 사람의 감정이 그렇게 쉽게 식겠어? 아직도 좋아…… 한다고.”
자신이 뱉고도 쑥스러운 듯 마지막 말엔 시선을 내린다.
“포기하지 않을 거야. 네가 날 좋아하게 만들 거야. 그러니까 계속 친구로 지낼 수 있게 해줘. 친구 이상으로 발전할 기회를 줘. 이게 내 솔직한 심정이야.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
류민의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뭐라고 거절해야 하나 고민하는 게 아니었다.
‘거절은 선택 사항에 없어. 버퍼를 잃을 순 없으니까.’
그저 진심을 들었더니 조금 당황스러울 뿐이다.
“그래.”
“어?”
“네 좋을 대로 해.”
“정말?”
“이러나저러나 우리는 친구니까.”
“…….”
선을 긋는 말이었지만 민주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도전하라는 검은 낫의 조언을 떠올리며.
“그것만으로도 만족해.”
민주리의 얼굴에 그제야 미소가 지어졌다.
“이걸로 된 거지?”
“응.”
“좋아. 이제 16라운드 공략법 알려줄게.”
분위기를 전환할 겸 류민이 서둘러 공략법을 말해줬다.
그 과정에서 민주리가 놀란 눈빛이 되었다.
“정말 다음 라운드가 그렇게 진행된다고?”
“응. 그러니 되도록 피해가 가지 않게 조심해야지. 아마 검은 낫 님이 조만간 신도들을 불러서 공략 방법을 알려줄 거야.”
“검은 낫 님에게 미래에 대해 말했어?”
“말했지.”
“안 그래도 둘이 정보를 공유하는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공유는 원래부터 하고 있었어.”
“그럼 검은 낫 님은 왜 보상으로 다음 라운드 정보를 선택하는 거야? 너한테서 예언을 들으면 되는데?”
“나라고 정해진 시간에 딱딱 미래를 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내가 예지하지 못한 라운드는 검은 낫 님이 보상을 이용해서 채우는 식이지.”
뻔뻔한 거짓말이었지만 민주리는 이제야 앞뒤가 맞는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행이다. 난 또 서로 사이가 안 좋은 줄…….”
‘안 좋긴. 한 몸이나 마찬가지인데.’
아직은 민주리에게 자신이 검은 낫이라고 밝힐 수 없다.
지금은 오히려 밝혀봤자 독이다.
‘그동안 감쪽같이 속였다는 배신감 때문에 치를 떨지도 모르지.’
득이랄 게 아무것도 없었기에 꼭꼭 숨겨야 한다.
“아까는 미안해.”
별안간 사과하는 민주리를 보며 류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아까 나도 모르게 급발진해서…….”
“아니야. 그 정도야 뭐…….”
류민으로선 전처럼 친구 사이로 돌아온 것 같아 기분이 좋을 뿐이다.
‘엄밀히 말하면 다르지.’
따지고 보면 민주리에게 다시 기회를 주고 고백을 보류한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그런데 민, 너도 사신교에 가입한 거 맞지?”
“응? 그렇지. 그건 왜 물어?”
“요새 사신교에 나가도 네 모습이 안 보이길래.”
“활동은 안 하고 이름만 올려놨을 뿐이야. 다른 사람에게 내 존재가 알려지면 곤란하잖아.”
“하긴, 예언자 클래스라는 걸 알면 사람들이 너도나도 달라붙겠구나?”
“그렇지.”
쭈웁 커피를 마시며 민주리를 쳐다보니 여전히 궁금하다는 표정이다.
“궁금한 거 있으면 또 물어봐.”
“아, 별건 아니고…… 너도 15라운드에서 검은 낫 님에게 호명 받았어? 닉네임이 로스트야크였나?”
“어? 아아. 그랬지.”
“근데 왜 난 들은 기억이 없지?”
‘그야 부른 적이 없으니까.’
류민은 태연한 얼굴로 대꾸했다.
“못 들은 거겠지. 안 그럼 내가 이렇게 살아 있었겠어?”
“그런가? 하긴…….”
576명의 닉네임을 모두 들은 것도 아니기에 민주리는 의심하지 않고 그러려니 넘어갔다.
“그럼 얘기도 끝났으니 이만 일어날까?”
“그래.”
카페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이 이내 서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공략 알려줘서 고마웠어. 다음에 또 만나자.”
“응. 종종 연락할게.”
웃어 보인 류민이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다행이야. 민주리의 상태가 좋아 보여서.’
전에 이계에서 했던 검은 낫의 조언을 잘 받아들인 모양.
비록 계속 도전하겠다는 포부를 밝혀서 부담스럽긴 하지만…….
‘적어도 서먹한 것보단 낫겠지.’
남은 라운드를 헤쳐나가려면 민주리는 정신적으로 온전한 상태여야 한다.
고백에 차였다고 늘 저기압이어선 곤란하다.
‘특히 16라운드에선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
까딱 잘못했다간 피해가 커질 수 있는 라운드니까.
‘아마 16라운드가 끝나면 플레이어의 가치는 더욱 급부상할 거야. 사람들의 시각도 달라질 테고.’
사신교의 명성은 물론 현실에서 룬도 얻을 수 있다.
‘조만간 사신교를 모집해서 공략법을 알려줘야겠어. 그전에 크리스틴과의 오해 좀 풀고.’
모르긴 몰라도 자신이 존 델가도를 살려둔 것에 대해 오해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크리스틴 역시 민주리처럼 중요한 서포터였기에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도록 케어해 줄 필요가 있다.
로스트야크의 핸드폰을 들어 크리스틴에게 전화를 걸었다.
“크리스틴.”
-앗, 검은 낫 님?
“용건부터 말하지. 다음 라운드 공략에 대한 일로 만났으면 하는데.”
-아, 저, 전화로 하면 안 될까요?
‘전화?’
여태껏 공략은 만나서 알려줬는데?
“전화는 보안상 문제가 있어서 안 된다.”
-역시 그런가요?
“왜? 만나지 못할 이유라도 있나?”
-아, 아니요. 없죠. 남는 게 시간인데…….
“그럼 내가 그쪽으로 가지. 조용히 대화하기엔 회당만 한 곳도 없으니까.”
-아니에요, 힘들게 오실 바엔 제가…….
“퍼스트 클래스 타고 편하게 갈 예정이니 걱정 마라. 그럼 도착해서 다시 전화하지.”
나름 배려한답시고 류민이 먼저 찾아가겠다고 말했다.
가만히 기다리는 것보단 움직이는 편이 더 성미에 맞기도 했고.
‘만나서 제대로 해명해야겠어.’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해두며 미국행 티켓을 알아보는 류민이었다.
* * *
핸드폰을 내려놓은 크리스틴은 한동안 멍한 얼굴로 허공을 응시했다.
‘아, 검은 낫 님이…… 결국에 여기로…….’
현실에서 검은 낫을 만나는 건 처음이 아니다.
그렇기에 지금 가지는 감정은 설렘이 아니다.
불안감.
크리스틴의 얼굴엔 불안감이 떠올라 있었다.
검은 낫이 눈치챌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아니야, 괜찮을 거야. 며칠 동안 잘 숨겼잖아. 이계에서도 내색하지 않았고.’
되도록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아니, 알고 있다는 표현은 아직 섣부르다.
아직은 짐작하는 단계라고, 의심하는 단계라고 부르는 게 맞으리라.
‘예언자님과 검은 낫 님이 동일 인물이라니…….’
위험한 가정이었다.
어처구니없는 가정이기도 하고.
‘누가 봐도 약해 보이는 예언자님과 검은 낫 님을 누가 매칭시키겠어?’
정반대의 이미지였기에 누구도 연결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크리스틴은 둘이 동일 인물이라고 봤다.
근거 없는 추론이 아니었다.
최근 예언자가 미국에 왔을 때, 크리스틴은 살인을 목격했다.
예언자의 등에 업힌 채로.
‘총을 겨누던 부랑자들을 능력을 써서 죽이셨지.’
당시에는 비몽사몽에 그리 놀라지 않았다.
꿈이라 생각하고 다시 자버렸다.
‘눈을 떴을 땐 회당 안이었지.’
예언자는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없었다.
뒤늦게 꿈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확신은 없었다.
현장에 다시 가봐도 증거가 없었기에.
‘검은 낫 님과의 연관성도 짓지 못했고.’
하지만 이계에서 검은 낫이 그림자 같은 능력을 쓰는 걸 보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어쩌면…… 그때 본 것이 꿈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검은 낫과 예언자가 동일 인물일 수도 있겠다고.
물론 이 생각은 순전히 의심과 추론일 뿐이다.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아니, 아니겠지. 동일 인물은 무슨…… 능력만 같은 거겠지. 전혀 이미지가 안 겹치잖아.”
크리스틴은 불안한 얼굴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기척 감지의 범위에 누가 들어온 줄도 모른 채.
“뭐가 아니라는 거예요?”
“힉!”
소리소문없는 제프리의 등장에 크리스틴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뭘 그렇게 놀라요?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아…… 아니에요.”
“표정이 안 좋은데? 무슨 일 있습니까?”
“일은요, 무슨…… 그런 거 없어요.”
딱 잘라 선을 긋는 크리스틴이었지만 제프리는 오히려 더 수상하다고 느낀 모양이다.
“에이, 있구만. 뭔데요? 걱정거리 있으면 속 시원하게 말해보십시오. 고민이라면 들어드릴게요.”
“없다니깐요.”
“아직도 저한테 삐치신 거예요?”
“삐치긴 누가요. 고민 없다니깐 그러시네.”
“그렇게 우기면 모를 줄 알아요? 옆에서 십여 년을 지켜본 제가 크리스틴을 모르겠어요?”
“…….”
“그러지 말고 말해봐요. 무슨 고민인데요?”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자 크리스틴도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뭐라도 던져줘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은 털어놓았다.
“집사님은 만약 약해 보였던 상대가 힘을 숨겼다는 걸 알면 어쩌시겠어요?”
“힘을 숨겨요? 누가요?”
“아니, 제가 먼저 질문했잖아요. 답을 하셔야지…….”
“흐음…….”
고민하던 제프리가 입을 열었다.
“저라면 그냥 모르는 척 가만히 있을 거 같습니다.”
“왜요?”
“힘을 숨겼다는 건 밝히기 꺼린다는 뜻이잖아요? 상대를 존중한다면 굳이 아는 척해서 무안을 줄 필요는 없겠죠.”
“역시 그렇겠죠?”
크리스틴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졌다.
자신과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 답답함이 풀린 느낌이다.
“그래서, 그 힘을 숨긴 찐따가 누군데요?”
“찐따라뇨. 말조심하세요!”
“어? 역정 내는 거 보니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분인가 보네요?”
“아, 됐어요! 안 알려줄 거예요. 더 이상 물어보지 마세요. 고민 끝!”
그리 말한 크리스틴이 종종걸음으로 자리를 벗어났다.
마치 곤란한 상황을 피하듯.
“흐으음…….”
그 모습을 의심스레 쳐다보던 제프리는 이내 핸드폰을 들어 문자를 보냈다.
[얌띠 님. 특이사항이 있습니다.]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보고하라는 명을 받았기에.